Summary
재판은 분쟁 해결뿐 아니라 권한 수여의 심사와 공적 이유 제시, 강제력 통제와 회복 기능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이는 사실·규범의 정합성 외에 수여 범위의 식별과 선택 규칙의 공개, 그리고 집행의 개시·중단·회복 주체를 분리하는 조건이 충족될 때 성립한다.
1.1분쟁 종결을 넘어선 사법의 책무
사법이 수행해 온 일을 분쟁 해결 하나로 묶으면 제도의 절반이 사라진다. 법원은 분쟁을 종결하는 동시에 누구에게 어떤 강제력을 맡겼는지 확인하고, 그 행사가 수여된 범위를 넘었는지 심사하며, 잘못된 강제의 결과를 회복으로 연결하는 책무를 맡아 왔다. 이 물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당사자는 패소했다는 사실을 넘어, 왜 자신을 구속하는 판단이 자신에게 적용되는지를 물을 통로를 잃는다. 분쟁 해결의 정확도만 높이는 개혁은 나머지 기능을 비워 둔 채 종결의 속도만 올릴 수 있다. AI는 놓친 증거와 반론의 발견, 이해 가능한 설명, 빠른 피해 파악을 통해 당사자의 반박 능력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원이 관측과 해석과 판단의 경로를 한 체계에 묶는다면 독립된 반박의 여지는 오히려 좁아진다.
1.2네 가지 사법 기능의 성립 조건
각 기능이 성립하는 조건은 서로 다르다. 분쟁 해결은 사실 확인과 규범 적용의 정합성을 요구한다. 권한 심사는 수여의 주체와 범위, 변경 절차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하며, 공적 이유 제시는 결론뿐 아니라 제외된 대안과 선택 규칙을 드러내야 한다. 강제력의 통제는 집행의 개시자와 중단자, 회복 책임자의 분리를 요구한다. 하나의 지표로 네 조건을 대신할 수 없으며, 특히 기술 과업에서의 성공 확률을 법정에서의 정확성으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된다. 기술 능력의 실측은 제IV-01권에 맡기고 이 권은 그 측정이 이미 유리하게 주어졌다는 가정 아래 무엇을 더 요구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현행 강제집행 절차의 해설은 제III-29~V35권에 맡기고 이 장은 집행 권한을 누구에게 맡기고 어떻게 거둘 것인가의 규범적 기준에 집중한다.
1.3반론: 신속한 종결 우선론
가장 강한 반론은 기능 분화가 학문적 구분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빠른 종결 하나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당사자가 원하는 것은 긴 이유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해결이라는 것이다. 이 반론이 가리키는 비용의 현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기다릴 자원이 없는 사람에게 지연은 권리의 박탈과 같다. 다만 종결의 이익을 인정하는 것과 종결 방식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이유를 묻고 다투고 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 통로를 같은 비용으로 더 넓게 설계할 수 있다면 비싼 대면 절차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보호를 낮추어 얻은 속도와 보호를 유지하며 없앤 낭비를 구분하는 일이 이 권 전체를 관통하는 방법이다.
1.4명제의 기각 조건과 제도 선택
이 편의 명제는 기능별 조건이 실제 제도 선택을 바꾸지 못한다면 버려야 한다. 예컨대 자동 제도가 수여의 확인과 다툼의 실효성, 회복의 실행을 모두 더 잘 보장하는데도 기존 조직의 존속을 요구한다면 그 요구는 직역 보호로 전락한다. 반대로 우수한 성능에도 독립된 다툼이나 회복이 불가능한 제도에 강제 권한을 맡기는 제안 역시 거부된다. 성과는 기능의 목록을 늘어놓는 데 있지 않고, 각 기능의 충족 여부를 물을 수 있는 질문을 남기는 데 있다. 다음 편들은 그 질문을 권한과 지위와 책임의 언어로 풀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