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형법 제355조, 상법 제398조, 공정거래법 제45조를 나란히 놓고 각각이 보호하려는 이익이 어떻게 다른지 가른다. 형법이 지키는 회사의 재산, 상법이 세운 이해충돌의 문, 공정거래법이 지키는 거래 질서를 차례로 살핀 뒤 보호 이익이 갈리는 지점에서 사례로 되돌아본다. 조문별 요건의 세부 해석과 행정 제재와 형벌의 겹침의 문제는 뒷장에서 다룬다.
3.1세 법이 나란히 서는 자리
형법과 상법, 그리고 공정거래법이 나란히 놓일 때, 앞서 이사의 임무가 어느 회사에 대한 것인지를 물었던 자리에서 이제는 그 세 규정이 각자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가를 차례이다.
먼저 형법 제355조는 타인의 재산을 지키는 데 서 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임무 위배 행위와 손해 사이의 연결을 요구하며, 보호하려는 것은 본인의 재산적 이익이다. 따라서 D1이 D2의 기업어음을 사들이는 거래에 이 규정을 들이댈 때, 질문은 그 거래가 D1 자신의 재산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향한다.
다음으로 상법 제398조는 회사와 이사 사이의 거래가 공정하게 진행되었는지를 절차로 살핀다. 상법 제398조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는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하고,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규정이 묻는 것은 그 거래가 누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맺은 것인지, 그리고 미리 밝히고 승인을 받았는지이다. 이사회 자료에서 D1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는 소수주자의 말은, 이 절차가 요구한 밝힘과 승인이 거래에서 어떻게 남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끝으로 공정거래법은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를 지키는 방향에서 다른 사업자와 계열회사를 함께 살핀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 제1항은 "① 사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선언하면서, 그 제9호 가목에서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규정한다. 이 규정은 특정 회사의 재산이나 특정 거래의 절차에 머무르지 않고, 거래가 시장 전체에 남기는 영향을 함께 본다.
이 셋을 한 자리에 놓아도 D1의 기업어음 매입을 두고 하나가 다른 하나의 자리를 대신한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형법이 본인의 재산 이익을 향해 묻는 동안, 상법은 이사회 절차의 공정성을 묻고, 공정거래법은 거래가 시장에 미칠 우려를 묻는다. D2가 왜 지원 대상이 되었는지, D1의 자금 사정과 부담 능력, 어음의 회수 가능성, 지배주주가 개별 회사에 내린 지시의 내용과 시점은 모두 아직 미정이다. 그 사정들이 채워지기 전에, 세 규정 가운데 어느 하나가 이 거래를 모두 설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3.2형법이 지키는 회사의 재산
형법이 지키는 회사의 재산
세 규정을 나란히 놓고 본 자리에서, 형법이 결국 무엇을 보호하려는지 가르는 일이 남았다. 계열사 간 자금 지원이 형사적 평가를 받을 때, 회사의 재산이 형법의 장 안에서 어떤 지위에 놓이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형법 제355조는 횡령과 배임을 한 조에 묶어 두고, 그중 배임을 회사 사무의 처리자가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로 규정한다. 그 문언을 그대로 읽으면, 배임죄가 본인의 재산 이익을 해하는 행위를 규율 대상으로 삑음이 드러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고 선언한다. 이 문장은 임무 위배와 손해를 함께 요구하면서, 본인의 재산이 그 지키는 이익임을 분명히 한다.
D1의 이사회가 D2의 기업어음을 사들이는 거래에서 '본인'은 D1이고, 형법이 보호하려는 재산은 D1의 재산이다. 소수주주가 이사회 자료에서 찾지 못한 'D1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바로 그 D1의 재산상 이익과 손해의 견주어짐에 관한 물음이다.
다만 형법 제355조가 보호 이익을 어디까지 그려 놓았는지, 확정 손해가 어느 범위에서 요구되는지, 고의의 내용이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는 이 조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요건의 해석은 뒤 장에 남겨 두고, 여기서는 형법이 회사의 재산을 배임죄의 보호 이익으로 놓고 계약을 규율한다는 점만을 옮겨 놓는다.
3.3상법이 세운 이해충돌의 문
형법이 회사의 재산 이익을 지키는 자리를 확인한 데서 나아가, 이번에는 그 재산이 이사와 회사 사이의 거래에서 어떻게 놓이는지를 살펴본다. 회사의 재산이 의심스러운 경로로 빠져나가려 할 때 형법과 상법은 나란히 서 있지만, 두 법이 보호하려는 이익은 서로 놓인 자리가 다르다. 형법이 재산 그 자체를 지키는 곳에서 상법은 그 재산을 옮기려는 거래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 점에서 상법은 이사 등과 회사 사이의 거래를 따로 분류하여 규정한다. 상법 제398조는 그 거래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자를 "이사 또는 제542조의8제2항제6호에 따른 주요주주", "제1호의 자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제1호의 자의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자가 단독 또는 공동으로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진 회사 및 그 자회사",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자가 제4호의 회사와 합하여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진 회사"로 열거한다. 이 열거가 지시하는 것은 이사회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할 거래의 한계이다. 회사 밖의 일반 거래 상대방이 아니라 회사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지위에 있는 자와 그 관련자가 거래에 끼어드는 장면을 상법은 따로 표시한다.
그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 상법 제398조는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는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정한다. 이 승인 절차는 회사가 거래의 내용을 알고 결정하게 하려는 장치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자리에서 회사 쪽이 손해 보는 조건으로 거래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 드러나 있다.
그런 승인에도 조건이 붙는다. 상법 제398조는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하고,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고 단서를 둔다. 다만 이 승인의 요건과 예외, 공정성 판단의 구체적 기준은 승인과 제한의 문제로 넘겨 두는 것이 타당하다. 그 판단은 지금 확인한 규정의 자리와는 별개의 것이다.
이 규정이 세우는 이해충돌의 문은 형법의 보호 이익과 겹치지 않는다. 형법이 회사의 재산 이익을 손해에서 보호하려는 자리에 놓인다면, 상법 제398조는 이사회 승인 절차를 통해 이해충돌이 낀 거래를 다룬다. 두 법이 같은 거래를 다룰 수 있으나, 각각이 붙드는 이익과 판단 기준은 다르다.
이 사례에서 D1이 D2의 기업어음 300억 원어치를 산 것은 계열사 사이의 거래이고, 지배주주와 그 관련자가 개별 회사의 의사에 관여한 여지는 남아 있다. 다만 지배주주가 내린 지시의 내용과 시점, 그리고 이사 등이 그 거래의 당사자 지위에서 회사와 거래했는지는 미정이다. 그러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은 채로, 상법 제398조가 그 거래를 이해충돌이 끼어든 거래로 가리킬 것인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3.4공정거래법이 지키는 거래 질서
상법이 이해충돌의 문을 세운 데 이어, 그룹 내부거래에서 세 번째로 떠오르는 법이 공정거래법이다. 거래가 두 회사 사이에서 이뤄진 것처럼 보여도 그 파장이 시장 전체에 미치는 경우, 다루어야 할 이해관계는 회사의 재산을 넘어선다. 공정거래법이 이 자리를 무엇으로 보호하는지가 이 절의 질문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는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다. 조문은 보호 대상을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제45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문장은 행위의 금지 기준으로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를 둔다. 손해의 발생이나 회사의 재산 감소가 기준이 아니며, 거래가 맺어지는 질서가 흔들릴 우려가 있으면 족한 구조로 읽힌다.
개별 회사의 손익이 아니라 거래 질서가 보호 이익이라는 점은, 같은 조가 다루는 행위 유형에서도 드러난다. 그룹 내부거래와 가까운 항목부터 보면, 조문은 "9. 부당하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라고 규정한다. 이어지는 목은 지원 수단을 열거한다. "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규제의 초점은 지원받은 회사가 남긴 이익의 액수가 아니라, 특정 회사에 유리한 조건이 거래에 스며드는 방식에 있다.
지원을 받는 쪽도 같은 질서 안에서 다뤄진다. 조문은 "② 특수관계인 또는 회사는 다른 사업자로부터 제1항제9호에 해당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원을 받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라고 받는다. 지원을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가 나란히 금지 대상이 되는 셈이다. 회사가 스스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따지는 문제와는 다른 축에서, 거래 상대방 사이의 조건이 부당하게 기울어지는 일이 방지 대상이 된다.
이러한 구조에 비추어 D그룹의 사정을 대조해 보면, 관점을 옮겨야 할 지점이 분명해진다. D1이 D2의 기업어음 300억 원어치를 사들이는 거래에서, 공정거래법이 먼저 묻는 것은 D1의 재산이 얼마 줄었는지가 아니다. 제45조가 두는 기준은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 이며, 그룹 기획실이 각 계열사에 전달한 보고가 거래 조건의 형성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가 쟁점이 된다. 다만 D2가 선정된 경위, D1의 자금 사정, 어음의 회수 가능성, 지배주주 지시의 내용과 시점은 미정이다. 제45조가 이 사정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결국 공정거래법이 그룹 내부거래에서 지키려는 것은 개별 회사의 재산이 아니라 거래 질서다. 상법이 이해충돌 상황을 통제하는 문을 세운 것과 나란히 놓고 보면, 두 법이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보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1 소수주주가 이사회 자료에서 찾지 못한 답이 회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라면, 공정거래법의 물음은 그 거래가 시장의 공정한 거래 조건을 어떻게 흔들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3.5보호 이익이 갈리는 지점
거래 질서를 염두에 둔다고 해서 개별 회사의 재산이 함께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다. 세 규정이 담는 보호 이익이 나뉘는 지점을 형법, 상법, 공정거래법의 문면에서 확인한다.
형법 제355조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재산 범죄의 구성요건으로서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고 규정한다. 이 조문이 보호하는 것은 임무에 위배된 행위로 인한 본인의 재산 감소다. 회사의 자금이 밖으로 나갔다면 손해는 여기서 다루어진다. 그런데 손해의 유무가 곧 이해충돌의 통제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상법 제398조는 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를 절차에 묶는다. 상법 제398조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는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하고,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라고 정한다(상법 제398조). 이사와 주요주주 같은 자가 끼어드는 거래에서 회사가 그 사실을 알고 결정하도록 절차를 만드는 것이 이 조문의 취지다. 이사회가 절차를 지켰다면 회사에 손해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공정거래법 제45조는 거래 질서에 금이 가지 않도록 불공정거래행위를 막는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 제1항제9호가 "부당하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 목 가운데 가목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적는다(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 이 규정이 노리는 것은 지원이 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상황이다. 지원을 받은 회사가 이사회 승인을 받았는지 따지지 않고, 지원한 회사가 손해를 입었는지도 묻지 않는다.
같은 자금 흐름을 놓고 세 규정이 서로 다른 물음을 꺼내는 셈이다. 형법은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는지를, 상법은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는지를,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는지를 각각 묻는다. 한 규정에 대한 답이 정해지면 다른 규정의 물음도 함께 해소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회사에 손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해충돌 절차가 있었다고 할 수 없고, 이사회가 거래를 승인했다는 사정만으로 거래 질서가 지켜졌다고 할 수 없다.
D1이 D2의 기업어음 300억 원어치를 사들인 거래는 세 갈래의 보호 이익 앞에 나란히 놓인다. D1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아직 없으므로 확정 손해나 고의와 같은 법적 평가는 유보된다. 지배주주가 개별 회사에 내린 지시의 내용과 시점, 지원 대상으로 D2가 선정된 경위도 미정이다. 그 공백을 세 규정 각각의 문면으로 메울 수 없으며, 각 규정이 던지는 물음을 따로 둔 채 확인해 나갈 사정만이 남는다.
3.6사례로 되돌아보는 세 물음
보호 이익이 갈린 자리에서 사례로 되돌아오면, D1의 기업어음 300억 원 매입을 두고 세 규정이 각기 어떤 물음을 앞에 놓는지가 드러난다. 이 물음들은 서로 다른 것을 묻고 있으며, 하나의 답이 나머지 둘의 답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먼저 형법 제355조는 임무 위배와 손해를 묻는다. 이사 등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서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 그 행위가 임무에 위배되는 것임을 전제로 손해의 성립이 문제가 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정한다. 이 문장은 손해의 가해 사실을 요구하고 있다. D1이 D2의 기업어음을 사들이면서 무엇을 잃었는지, D1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아직 비어 있는 한, 손해의 성립 여부는 열린 물음으로 남는다. 소수주주가 D1의 이사회 자료에서 그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 대목이 바로 이 공백을 가리킨다.
다음으로 상법 제398조는 이해충돌 상황에서의 절차적 통제를 묻는다. 이 규정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는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상법 제398조)고 요구한다. 이 규정은 승인을 요구하는 자와 절차를 정하고 있다. 다만 그룹 기획실이 전달한 보고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지배주주가 개별 회사에 내린 지시의 구체적 내용과 시점이 무엇인지가 미정이므로, 이 규정이 이 거래의 어느 자리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채워 넣어야 할 사실이 남는다. 이 사실을 메우지 않은 채 승인 절차가 지켜졌는지부터 판단할 수는 없다.
끝으로 공정거래법 제45조는 거래 질서를 해칠 우려를 묻는다. 제1항 제9호 가목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를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의 한 유형으로 든다. 기업어음의 매매가 유가증권 제공에 해당하는지, 그 조건이 상당히 유리하였는지는 이 규정이 던지는 물음이다. 그런데 지원 대상으로 D2가 선정된 경위, D1의 자금 사정과 부담 능력, 어음의 회수 가능성은 미정이다. 이 사실들이 채워지지 않은 한, 이 규정의 물음에도 확정된 답이 생기지 않는다.
세 규정이 던지는 물음이 이와 같이 달라지므로, 어느 한 규정의 판단 결과가 다른 규정의 판단 결과를 끌고 오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이 요구하는 손해의 가해와 임무 위배는 하나의 평가이고, 상법 제398조가 요구하는 중요사실의 밝힘과 이사회의 승인은 또 하나의 문제이며, 공정거래법 제45조가 묻는 거래 질서의 해칠 우려는 또 다른 차원의 물음이다. 이 셋을 한 줄로 이어 놓으면 마치 하나의 귀결이 세 갈래로 나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앞에서 세 규정이 각각 회사의 재산, 이해충돌 상황의 통제, 거래 질서라는 서로 다른 보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대비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D1의 기업어음 매입을 둘러싼 사정만으로는 확정 손해나 고의와 같은 법적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손해의 성립, 임무 위배의 유무, 승인 절차의 준수 여부, 지원 행위 해당 여부는 각각 별도의 사실 위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대상 선정 경위, 부담 능력, 회수 가능성, 지시의 내용과 시점이 미정으로 남아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는, 그 공백에서 결론을 끌어내는 것도 이 공백을 임의의 사실로 채워 넣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례는 이 물음들을 열어 놓은 채 서 있으며, 그 열린 자리는 법이 요구하는 사실과 판단이 갖추어질 자리를 남겨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