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기대되는 행위의 출처를 묻고,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했던 일을 나누어 살핀다. 회사법상 충실의무의 문언, 절차 위반과 실질 판단, 임무위배와 고의의 구별을 차례로 검토한다.
4.1기대되는 행위의 출처
직함으로 사무의 범위를 가를 수 없다면, 이제 그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임무의 내용이 어디에서 정해지는지 묻게 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를 처벌한다. 이 조문에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는 문장 안에 적혀 있지 않으므로, 그 뜻은 판례에서 찾아야 한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이 대목에서 기대되는 행위의 출처를 세 가지로 밝히고 있다. 위 판결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여기에 법률의 규정과 계약의 내용이 함께 놓인 것은, 임무의 내용이 법령에서 직접 오기도 하고 당사자 사이의 약정에서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출처인 신의성실의 원칙은 앞의 둘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리를 메운다. 다만 위 판결은 신의칙을 따로 떼어 도덕적 척도로 쓰지 않고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라는 단서를 앞에 두었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즉 신의칙이 요구하거나 금지하는 행위는 그 사무가 놓인 구체적 상황 안에서 비로소 특정된다. 이런 까닭에 A사 대표 갑의 대여가 임무에 위배되는지 물을 때에 신의칙에 어긋나는지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갑이 맡은 사무가 무엇이고, 그 사무의 내용과 성질이 담보 없는 대여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도록 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계약이 출처가 되는 지점은 상법 제382조의3이 시사하는 바와 맞닿는다.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령과 정관이 임무의 테두리를 그린다는 뜻에서, 위 판결이 말하는 법률의 규정·계약의 내용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다만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의 뜻을 다루면서 출처를 법률·계약·신의칙의 셋으로 들었을 뿐이다. 갑의 대여에 어떤 법령과 계약 조항이 적용되는지, 그 조항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자료로 확인되지 않으므로 미정으로 남는다.
결국 임무의 기준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그리고 구체적 상황에서의 신의성실의 원칙이 함께 그 기준을 이루고, 각 출처가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사무의 내용과 성질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이 출처들에서 어떤 행위가 기대되는지를 밝히는 일은 대여를 실제로 평가하기 위한 첫 작업이다.
4.2하지 말아야 할 일
그렇다면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지에 답할 차례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형법 제355조 제2항이 배임죄의 성립 요건을 어떻게 놓고 있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독립된 성립 요건으로 세우고 있으므로, 어떤 행위가 배임죄의 객체가 될지는 곧 임무의 경계를 먼저 긋는 문제에 달려 있다.
그 경계를 어떻게 긋는지는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이 밝힌다. 위 판결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고 판시하였다. 이 판시는 임무의 기대를 법률·계약·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세 갈래에서 끌어온다. 이 기대는 사무의 내용과 성질이라는 구체적 상황 속에서만 형태를 갖춘다.
판시는 또한 두 갈래의 행동을 함께 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경우와 기대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후자, 곧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를 작위의 문제라고 부른다. 작위를 평가하려면 먼저 무엇이 금지되는 기대인지가 정해져야 하고, 그 기대가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놓여 있는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비교 기준 없이 행위 자체만 가지고는 위배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A사 대표 갑이 자금난인 거래처 B사에 담보 없이 50억 원을 대여한 사안을, 기대되는 행위의 출처를 세 갈래로 나누어 놓고 조건부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법률이나 계약에 갑이 담보 없이 대여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있다면, 그 규범이 그 대여를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하는 근거가 된다. 기록상 회수 검토 자료는 제공되지 않았으므로 그 자료가 남기지 않은 것은 이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사회 승인 여부, 당시 변제능력, 계열관계, 갑의 인식은 미정이므로, 이 사안에서 그 기대가 실제로 성립하였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나아가 배임의 고의는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을 유지하여야 하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리를 세운다. 갑의 인식이 미정이고 1년 뒤 B사가 무너진 사실만으로는 작위의 위배 여부나 배임의 고의가 확정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작위의 비교 기준을 먼저 세우는 과제만을 마치며, 송금액 50억 원이 확정된 손해액이나 이득액이 되는 것은 아니다.
4.3해야 했던 일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판별한 다음에 남는 물음은, 회사가 기대하던 것을 갑이 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는지이다. 이 물음에는 부작위도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에 포함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의 뜻을 이렇게 밝힌다.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이 정의는 두 갈래의 기대를 함께 담는다.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한 경우와,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가 모두 같은 임무위배에 들어간다.
부작위가 임무위배가 되려면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가 먼저 특정되어야 한다. 그 기대는 법령의 규정에서 오기도 하고, 계약의 내용에서 오기도 하며,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오기도 한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을 지키면서도,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판단하라고 요구한다. 부작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행위를 해야 했는지, 언제까지 해야 했는지, 어느 방식으로 해야 했는지는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과 구체적 상황 속에서만 정해진다.
갑이 거래처 B사에 50억 원을 대여한 뒤 회수를 위한 조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기록의 빈자리를 말할 뿐이다. 회수를 위한 검토가 회사에 기대되던 행위였는지, 그 행위를 할 지위에 갑이 있었는지, 언제까지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임무위배로 이어지는지는 자료가 정하지 않았다. 대여 의사록이 한 쪽뿐이라는 사정만으로 회수 검토라는 적극적 의무가 성립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부작위가 임무위배 행위가 되었다고 해서 곧 손해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배임죄의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에 관하여,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밝힌다. 회수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사정이 손해의 현실화나 그 위험의 초래로 이어졌는지 역시 미정이다. 송금액은 확정 손해액이나 이득액이 아니므로, 부작위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손해의 산정은 별도로 남는다.
4.4회사법상 충실의무의 문언
행위의 위법 여부를 정한 문언 다음으로, 이사가 무엇을 위하여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를 정한 문언을 확인한다. 상법 제382조의3은 2025년 7월 22일에 전문개정되었는데, 그 제1항은 의무의 방향을 이렇게 적는다.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 문언은 충실의무의 주체를 이사로, 이행의 기준을 법령과 정관으로, 봉사의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밝힌다.
같은 조 제2항은 그 수행의 내부 기준을 한층 더 두는데, 그 문언은 다음과 같다. 상법 제382조의3 제2항은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제1항이 회사 및 주주를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 두었다면, 제2항은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에 대한 공평한 대우를 함께 요구한다. 갑이 A사 자금난의 거래처 B사에 담보 없이 50억 원을 대여한 결정에 이 조문이 어떤 요구를 두는지는, 앞 문언이 가리키는 대상과 기준에서 출발한다.
다만 이 문언은 2025년 7월 22일에 전문개정된 것이다. 따라서 그 개정 문언을 갑의 대여 결정이 있었던 시점의 기준으로 소급하여 읽거나, 오래 전의 판례가 쓴 문언을 이와 같은 현행 조문의 말로 바꾸어 옮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갑의 결정 시점과 이사회 승인 여부가 미정인 지금, 개정 문언을 어디에 적용할 수 있는지도 미정으로 남는다.
그와 별개로 형법 제355조 제2항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의 법정 뜻을 두는데,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그 문언의 뜻을 이렇게 밝힌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위배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하며,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판시한다. 이 정의는 상법상 충실의무 문언과 달리, 그 사무의 구체적 상황과 기대되는 행위를 함께 놓고 본다.
같은 판결이 밝힌 주체와 임무의 뜻은 서로 이어진다. 갑이 B사에 대한 대여라는 재산관리 사무를 대행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는, 회수액·계열관계·당시 변제능력·갑의 인식·이사회 승인 여부가 모두 미정인 지금 확정할 수 없다. 갑이 대여 결정 당시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가 무엇이었는지는 그 결정의 구체적 상황에서 봐야 하며, 회수 검토 자료가 없다는 점만으로 곧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신임관계와 임무위배의 판단은 함께 움직이며, 그 범위는 정해진 시점의 사정과 함께 남는다.
4.5절차 위반과 실질 판단
충실의무가 법령과 정관에 따른 직무수행을 요구한다는 점을 확인한 뒤, 내규나 승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행위가 곧바로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인지가 다음 문제로 떠오른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정한다. 이 문언은 임무위배의 존재를 범죄 성립의 요건으로 놓고 있다. 대표이사가 정관이나 내규가 정한 결재·승인 절차를 건너뛴 사실은 임무위배 판단의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그 사실 하나로 나머지 요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절차를 지켰는지 판단하려면 먼저 그 절차가 지켜야 할 대상인 임무의 내용과 성질을 특정해야 한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임무위배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이 기준에서 절차 규정은 법률의 규정이나 계약의 내용 가운데 하나로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기대되는 행위를 했는지는 구체적 상황과 함께 보아야 하며, 신임관계를 저버렸는지가 최종적으로 문제 된다.
반대로 절차를 모두 지켰다는 사실이 배임의 성립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위 판결이 정한 기대되는 행위의 내용이 법률·계약·신의성실의 원칙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결재란을 채웠다는 사정만으로 임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갑이 담보 없는 50억 원 대여에 관한 결재를 얻었다 하더라도, 대표이사가 거래처에 대해 사실상 위임받은 자산 보전의 임무를 저버렸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의사록이 한 쪽뿐이고 이사회 승인 여부가 미정이므로, 절차를 지켰는지조차 확정되어 있지 않다.
절차 위반의 판단과 배임의 다른 요건은 서로 다른 질문이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배임의 고의와 관련하여,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위 판결은,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덧붙인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따라서 승인 절차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은 간접자료가 될 뿐, 갑이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과 이득의 의사를 가지고 행위했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이 사례에서 50억 원의 송금액은 손해액이나 이득액이 아니다. 회수액과 당시 변제능력, 갑의 인식, 계열관계 모두 미정이다. 담보 없이 대여한 경위와 절차를 어떻게 지켰는지 검토한 자료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의사록이 한 쪽이며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임무위배와 배임의 나머지 요건이 함께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절차 위반의 존재와 임무위배의 성립, 나아가 배임죄의 다른 요건을 각각 나누어 살피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4.6임무위배와 고의의 구별
임무위배의 뜻을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판단과 배임의 고의 판단을 가르는 경계를 살펴야 한다. 두 판단은 흔히 같은 사실 자료를 토대로 하므로 자칫 하나로 뒤섞이기 쉽지만, 묻는 바가 서로 다르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임무위배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이 판시는 행위가 사무의 내용과 성질에 비추어 기대되는 바를 저버렸는지를 묻고 있으므로, 그 평가의 초점은 행위 자체의 객관적 성질에 놓인다. 갑이 자금난인 B사에 담보 없이 50억 원을 대여한 일과 관련하여 이 기준을 적용하면, 대여가 A사의 사무 내용과 성질에 비추어 당연히 하여야 할 기대를 저버렸는지가 먼저 따져져야 한다.
객관적 평가가 한편에 서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행위자의 인식과 의도가 있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그 주관적 요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업무상배임죄의 고의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와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의 이득의 의사가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과 결합하여 성립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업무상배임죄의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고의, 동기 등의 내심적 사실)은 피고인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문제가 된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범의를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하고"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이에 따르면 고의는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를 비롯한 내심의 사실이며, 그 입증은 간접사실에 의할 수밖에 없다. 갑의 인식이 미정인 이 사례에서, 회수 검토 자료가 없고 의사록이 한 쪽뿐이라는 사정은 그러한 간접사실에 관한 자료에 해당하지만, 그로써 갑의 인식이 곧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질문이 자료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것임은, 객관적 기대의 위반이 곧 고의의 입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대법원 2002도4229 판결은 그 구별을 더욱 분명히 하면서, 경영상의 판단에 관한 한 현행 형법상의 배임죄가 위태범이라는 법리를 부인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문제된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 발생의 개연성과 이익 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 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에 의하면 손해의 발생이나 주의의무의 소홀은 고의의 인정에 이르지 못하며, 경위와 동기 등 제반 사정이 인식과 의도를 뒷받침할 때에만 고의가 인정된다.
그렇다면 갑의 대여 행위는 두 겹의 물음 아래 놓인다. 첫째로 담보 없는 50억 원의 대여가 A사의 사무에 관한 기대를 저버린 행위인지, 둘째로 그러한 행위에 갑의 인식과 의도가 결합하였는지가 각각 따져져야 한다.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고, 의사록이 한 쪽뿐이라는 사실은 두 물음 가운데 어느 쪽에 놓일 자료인지를 가리는 일과 관련된다. 이사회 승인 여부가 미정인 사정 역시 절차의 문제가 객관적 행위 평가와 주관적 인식의 판단에 각각 어떻게 놓일지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임무위배의 판단과 고의의 판단은 같은 자료를 놓고도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전자는 행위가 사무의 내용과 성질에 비추어 기대되는 바를 저버렸는지를 묻고, 후자는 인식과 의도라는 내심의 사실이 간접사실로 뒷받침되는지를 묻는다. 갑의 인식과 당시 B사의 변제능력이 미정인 이 사례에서 두 판단의 확정은 각각 남은 자료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