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재산의 명의와 실제 지배가 어긋날 때 보관자의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다. 대법원 2014도6992와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결요지에서 보관자 지위를 가르는 기준을 읽고, 중간생략등기형의 구조, 명의신탁의 보관자 지위, 사기이용계좌의 예금을 차례로 살핀다. 명의신탁 계약 자체의 유효성과 민사상 반환 문제는 이 장의 범위 밖에 남는다.
12.1두 판결이 묻는 것
회사 자금을 개인 계좌로 옮긴 뒤 일부만 돌려놓은 기재를 판례의 임의 소비와 나란히 두는 작업은, 결국 '누가 누구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인가'라는 질문에 이르게 한다. 이 물음에 대해 명의신탁과 사기이용계좌라는 두 가지 명의와 실질이 어긋나는 장면에서 전원합의체가 내놓은 답을 함께 읽어야 한다. 명의신탁 계약 자체의 유효성이나 민사상 반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먼저 형법 제355조 제1항의 문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확인한다.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은 횡령죄 주체의 의미를 이렇게 밝힌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같은 판결은 이 위탁관계의 범위를 넓히면서도 한정한다. "그러나 횡령죄의 본질이 위탁받은 타인의 재물을 불법으로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보관자 지위의 성립 여부는 명의의 표시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라는 규범적 판단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기준을 명의신탁 장면에 대입한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론은 이와 다르다. 그 판결은 수탁자의 지위를 이렇게 서술한다. "따라서 명의신탁자로서는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질 뿐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 아니하고, 명의수탁자 역시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직접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부담하지는 아니하므로, 신탁부동산의 소유자도 아닌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명의수탁자가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명의와 등기만으로 형법상 보관자 지위가 생기지 않고, 위탁신임관계를 뒷받침할 유효한 신임이 없다면 보관자 지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명의만 가진 자가 실제 자금을 움직이는 장면은 어떠한가. 사기이용계좌 판결은 계좌명의인과 송금의뢰인 사이의 법률관계가 없더라도 반환 의무에서 보관자 지위를 찾는다. "이와 같이 계좌명의인이 송금·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여기서는 등기의 무효 여부가 아니라 반환 의무의 존재가 보관자 지위를 구성한다.
두 판결은 모두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판단 기준을 묻되, 명의신탁에서는 보호할 가치 있는 신임이 없다고 보았고 사기이용계좌에서는 반환 의무로 보관 관계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회사 계좌에서 개인 계좌로 옮겨진 자금에 대해 병이 보관자 지위에 있는지는, 등기의 형식이나 계좌의 명의가 아니라 당사자 사이의 관계와 자금이 보관되게 된 경위를 규범적으로 살핀 뒤에야 판단할 수 있다. 이 판단에 필요한 사실 가운데 반환 계획과 자산 규모는 미정으로 남는다.
12.2중간생략등기형의 구조
두 판결이 공통으로 묻는 보관자 지위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 등기가 어떻게 경유되고 당사자 사이에 어떤 법적 관계가 놓이는지 정확히 펼쳐 놓아야 한다. 앞서 명의와 실제 지배가 어긋나는 장면을 관찰했다면, 이제는 그 어긋남의 각이 각 당사자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판결이 서술한 대로 따라갈 차례다. 이 서술은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이 판결이라 한다)의 판결요지에 나타난 사실 구조만으로 짜이고, 판결요지가 밝히지 않은 등기 절차의 세목이나 당사자 사이의 합의 내용은 더하지 않는다.
이 판결이 설정하는 첫 장면은 부동산 매수의 출발점이다. 명의신탁자는 부동산을 매수하였으나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아니하였고, 명의수탁자와 맺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매도인에게서 바로 명의수탁자에게 중간생략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 판결이 그러한 등기 경위를 전제한 것은,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판례 유형을 그대로 구성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매도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수탁자 명의로 등기가 옮겨지는 대목이 중간생략이라는 이름의 근거가 된다.
등기의 형식은 무효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본문에 의하면 명의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고 이 판결은 선언한다. 즉, 등기부에 놓인 이름과 소유자의 위치가 서로 어긋난 채로 남고, 그 어긋남의 법적 효과는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가지 않고 매도인에게 머문다는 점에서 판결요지가 분명히 적시한다.
이 구조에서 남는 권리는 명의신탁자의 몫이다. 명의신탁자는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지는 데 그치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가지지 아니한다. 명의수탁자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로,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직접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부담하지는 아니한다. 이렇게 얽힌 당사자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면, 소유자는 매도인이고 명의신탁자는 청구권을 가진 자이며 명의수탁자는 등기부의 명의인이지만 소유권 이전의무를 져 있지 않은 자라는 그림이 완성된다.
물론 명의신탁자가 매매계약의 당사자로서 매도인을 대위하여 신탁부동산을 이전받아 취득할 수 있는 권리 기타 법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는 점은 이 판결이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권리 등을 보유하였음을 이유로 명의신탁자를 사실상 또는 실질적 소유권자로 보아 민사상 소유권이론과 달리 횡령죄가 보호하는 신탁부동산의 소유자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결요지의 태도다. 이는 명의신탁자의 지위를 실질에 기대어 확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번 사례의 자금 이동을 읽는 데서도 같은 방향의 경계선이 된다.
이상으로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구조가 등기의 무효, 매도인의 잔류 소유권, 명의신탁자의 청구권, 명의수탁자의 형식적 등기라는 네 축으로 정리되었다. 앞에서 세운 보관자 지위의 물음은 이 구조 위에서 비로소 정확한 형태를 띤다. 명의수탁자가 위 네 축의 어느 지점에서 타인의 재물을 맡은 자로 서 있는지, 혹은 서 있지 않은지가 다음 물음이다.
12.3명의신탁의 보관자 지위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등기 구조를 정리한 데 이어, 이제 그 구조 안에서 명의수탁자를 횡령죄의 주체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로 남는다.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한정되므로, 위 판결요지는 명의수탁자가 누구의 무엇을 보관하는지부터 묻는다.
이 점에 관하여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은 횡령죄의 주체와 보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타인의 재물인지 아닌지는 민법, 상법, 기타의 실체법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신임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이러한 위탁신임관계는 사용대차·임대차·위임 등의 계약에 의하여서뿐만 아니라 사무관리·관습·조리·신의칙 등에 의해서도 성립될 수 있으나, 횡령죄의 본질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위탁신임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 보관자란 위탁관계로 재물을 점유하는 자를 뜻하며, 그 위탁신임관계는 형법이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서 먼저 소유의 귀속을 살핀다. 위 판결은 부동산의 소유권이 명의수탁자에게로 이전되었다고 보지 않으며,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런데 부동산을 매수한 명의신탁자가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아니하고 명의수탁자와 맺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매도인에게서 바로 명의수탁자에게 중간생략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경우,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라 한다) 제4조 제2항 본문에 의하여 명의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명의신탁자로서는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질 뿐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 아니하고, 명의수탁자 역시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직접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부담하지는 아니하므로, 신탁부동산의 소유자도 아닌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명의수탁자가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에 따라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는 효력을 잃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에게 남는다.
그리하여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평가되는지가 다음 쟁점이 된다. 위 판결은 명의신탁자를 사실상 또는 실질적 소유권자로 볼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명의신탁자가 매매계약의 당사자로서 매도인을 대위하여 신탁부동산을 이전받아 취득할 수 있는 권리 기타 법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명의신탁자가 이러한 권리 등을 보유하였음을 이유로 명의신탁자를 사실상 또는 실질적 소유권자로 보아 민사상 소유권이론과 달리 횡령죄가 보호하는 신탁부동산의 소유자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명의수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명의신탁자를 사실상 또는 실질적 소유권자라고 형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이 명의신탁약정을 무효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소유권의 상대적 귀속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부동산실명법의 규정과 취지에 명백히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신탁부동산의 소유자가 아닌 명의신탁자를 두고 명의수탁자를 그의 재물 보관자로 삼을 수 없다.
명의신탁약정 자체의 무효도 같은 결론을 뒷받침한다. 위 판결은 사무관리·관습·조리·신의칙에 기초한 위탁신임관계도 인정되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쌍방을 형사처벌까지 하고 있는 부동산실명법의 명의신탁관계에 대한 규율 내용 및 태도 등에 비추어 볼 때,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위탁신임관계를 근거 지우는 계약인 명의신탁약정 또는 이에 부수한 위임약정이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횡령죄 성립을 위한 사무관리·관습·조리·신의칙에 기초한 위탁신임관계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무효인 약정이 남긴 자리에 형법이 보호할 신임을 세울 수 없다.
결국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아니다. 위 판결은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그러므로 명의신탁자가 매수한 부동산에 관하여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명의수탁자와 맺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매도인에게서 바로 명의수탁자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을 한 경우, 명의신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 아니하고,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위탁신임관계를 인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할 수 없으므로,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이 판단은 손해의 산정 기준이나 고의의 요건을 새로 정하는 것은 아니다. C사의 계좌 이동에서 가지급금 항목의 기재가 가지는 법적 의미나 병의 의사에 관하여 확정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미정인 쟁점은 미정으로 남는다.
12.4사기이용계좌의 예금
명의신탁 사례에서 재물의 보관자가 누구인지를 가른 뒤에는, 보관자의 지위가 형성되는 또 다른 장면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앞서 읽은 판단이 위탁관계를 전제로 삼은 것과 달리, 여기에서는 아무런 계약이 끼어들지 않은 송금의 자리에서 보관자 지위가 문제된다.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문제를 판결요지 [2]에서 다룬다.
이 판결은 먼저, 송금의뢰인이 다른 사람의 예금계좌에 자금을 보낼 때 그 자금이 어떤 법률관계에 기한 것인지가 예금계약의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결요지 [2]는 "송금의뢰인이 다른 사람의 예금계좌에 자금을 송금·이체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에 그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계좌명의인(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그 자금에 대하여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계좌명의인은 수취은행에 대하여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고 밝힌다. 따라서 원인이 없는 송금이라 하여 계좌명의인이 예금채권을 얻지 못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계좌명의인은 그 금액을 마음대로 두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판결요지는 "이와 같이 계좌명의인이 송금·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고 설명한다. 반환하여야 할 성격이라는 점이 곧 보관자의 지위로 이어진다. 이 지위에 있는 자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고 이 판결은 적는다.
사기이용계좌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판결요지 [2]는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만약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고 선을 긋는다. 다만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일 뿐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그가 송금·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는 단서가 뒤따른다. 아울러 이 판결요지는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고 덧붙인다.
명의신탁의 자리에서와 같이, 보관자 지위를 형성하는 관계가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지도 이 판단에서 갈린다. 이 판결요지는 "계좌명의인과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 사이의 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가 아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라고 밝히고, "사기범이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로 돈을 송금·이체하게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고 그 까닭을 든다. 아울러 "계좌명의인과 사기범 사이의 관계를 횡령죄로 보호하는 것은 그 범행으로 송금·이체된 돈을 사기범에게 귀속시키는 결과가 되어 옳지 않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고도 덧붙인다. 다만 "계좌명의인이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게 예금계좌에 연결된 접근매체를 양도하였다 하더라도 은행에 대하여 여전히 예금계약의 당사자로서 예금반환청구권을 가지는 이상 그 계좌에 송금·이체된 돈이 그 접근매체를 교부받은 사람에게 귀속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고 이 판결요지는 확인한다.
이 사례에서 계좌의 예금을 둘러싸고 보관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자금 이동의 관찰 사실만으로 그 지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병이 자신의 개인 계좌로 옮긴 8억 원과 회사 계좌로 되돌린 6억 원의 성격은 미정으로 남는다. 그러한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한 채로, 송금의 자리에서 보관자 지위를 형성하는 요건만을 살피는 데 그친다.
12.5두 판결의 보관 기준
사기이용계좌의 예금에 관한 논의를 마치면서 보관자 지위를 가르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명의신탁 사안에도 어떻게 서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은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의 지위를 문제 삼았다.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은 먼저 보관의 의미를 이렇게 밝힌다.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신임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같은 판결은 그 관계의 범위를 "위탁신임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고 제한한다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보관 여부는 점유라는 사실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신임의 가치까지 함께 살핀다는 뜻이다.
그 기준을 명의신탁에 적용한 결론이 이어진다.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은 "따라서 명의신탁자로서는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질 뿐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 아니하고, 명의수탁자 역시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직접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부담하지는 아니하므로, 신탁부동산의 소유자도 아닌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명의수탁자가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여기서는 소유자가 아니라는 점과 위탁신임관계가 없다는 점이 함께 지적되어, 어느 하나만으로도 보관자 지위가 서지 않는다.
이와 달리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실상의 관계에 있으면 충분하고 피고인이 반드시 민사상 계약의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도, "위탁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여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힌다. 두 판결이 ‘보호할 만한 가치’라는 문구를 함께 쓰되, 앞 판결은 신임의 가치에 방점을 두고 뒤 판결은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에 방점을 둔다.
이 사례에서 병은 회사 계좌의 자금을 개인 계좌로 옮겼고, 장부에는 ‘대표이사 가지급금’ 항목이 남아 있다. 앞 판결이 명의신탁약정의 무효를 이유로 보호할 신임을 부정한 것과 달리, 회사와 대표이사 사이의 관계는 어떤 성격이며 그 관계가 보관 의무를 정당화하는지는 위 두 판결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반환 계획과 능력, 가지급금 항목의 작성 경위, 자금의 사용처가 미정으로 남아 있는 이상, 병이 보관자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 역시 미정이다. 두 판결이 공통으로 확인하는 것은 보관자 지위를 위탁관계의 존재와 그 보호 가치로 판단한다는 기준뿐이며, 이 사례의 결론은 그 기준에 비추어 별도로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