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불법영득의사를 추론하는 데 쓰이는 외형의 자료가 무엇이고 각 자료의 몫이 어디인지를 묻는다. 사용처, 이동의 절차, 회계 처리가 각각 어떤 흔적을 남기고 어떤 근거를 이루는지를 나누어 살핀 뒤, 세 자료가 함께 놓이는 자리를 정리한다. 이사회 승인의 요건이 충족되었는지의 판단과 민사상 효과는 이 장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
9.1추론의 재료라는 문제
손해와 고의의 단정을 미루어 둔 채로, 이제 병의 자금 이동에서 불법영득의사를 가릴 때 무엇을 재료로 삼는지가 남는다. 형법 제355조가 횡령의 성립 요건을 적고 있는 문언부터 헤아려야, 이동 기록의 어떤 항목이 요건과 맞닿는지 알 수 있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고 덧붙인다. 제1항은 재물의 보관과 횡령, 반환 거부를 함께 놓고, 제2항은 임무 위배와 이익 취득, 손해를 나란히 둔다. 병이 회사 계좌의 8억 원을 개인 계좌로 옮긴 행위는 두 항 가운데 어느 쪽의 문언에 닿는지가 먼저 문제이고, 그 문언의 요건에 어떤 사실이 대응하는지가 곧 추론의 출발점이 된다.
요건에 대응하는 사실 가운데 자금의 흐름에서 직접 남는 것은 세 가지로 갈린다. 첫째는 이동된 돈이 이후 어디에 쓰였는지의 기록이고, 둘째는 이동에 어떤 절차가 뒤따랐는지이며, 셋째는 회사의 장부에 그 이동이 어떻게 적혔는지이다. 병의 8억 원 이동과 6억 원 반환, 그리고 '대표이사 가지급금' 항목은 각각 이 셋에 얹히지만, 셋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요건의 문언과 곧바로 같은 것은 아니다. 사용처의 기록은 자금이 어디로 갔는지를 보여줄 뿐이고, 절차의 기록은 이사회 결의나 약정의 유무를 보여줄 뿐이며, 회계 처리의 기록은 장부에 무엇이 적혔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이 셋을 가를 때 유의할 것은, 어느 한 가지 외형을 곧 불법영득의사 그 자체로 읽지 않는 점이다. 대법원 2020. 9. 24. 선고 2020도12927 판결은 변제에 충당하여야 할 금원을 임의로 소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대법원 2020. 9. 24. 선고 2020도12927 판결]. 이는 사용처가 추론의 재료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 판시는 사용처의 기록이 곧 결론이라는 뜻은 아니다. 병의 경우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의 사용처가 무엇인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이 판시를 들어 석 달 사이의 개인 계좌 자금 사용이 임의 소비였다고 곧바로 적을 수는 없다.
절차와 회계 처리도 같은 식으로 놓아야 한다. 병의 이동에는 이사회 결의나 이자·변제기에 관한 약정 기록이 보이지 않으나, 그 기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이동이 임무 위배의 행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부의 '대표이사 가지급금' 항목 역시 회사가 이동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드러낼 뿐이고, 그 항목이 언제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는 미정이다. 항목이 이동 직후 적힌 것인지 나중에 적힌 것인지에 따라 병의 인식과 회사의 처리 사이의 간격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불법영득의사의 추론은 사용처·절차·회계 처리의 기록을 각각의 자리에 놓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동한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이동에 어떤 절차가 뒤따랐는지, 장부에 무엇이 적혔는지는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고, 병이 반환을 계획하고 있었는지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회사의 자산 규모와 병이 가진 주식의 비율도 같은 상태이다. 이 기재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사실의 나열이며, 그 결과가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다.
9.2사용처가 남기는 흔적
사용처·절차·회계 처리 가운데서도 우선 이동된 자금의 사용처가 무엇을 남기는지 살핀다. 형법 제355조가 횡령의 대상을 '타인의 재물'로 한정하고 그 보관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때를 처벌한다고 규정하는 취지는,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의 기록이 곧 보관 관계의 성립 여부를 가늠하는 자료가 된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는 요건은 자금이 이동된 경위뿐 아니라 그 자금을 누가 어떤 지위에서 잡고 있었는지를 함께 묻는다.
사용처의 기록은 그 자체로 보관 지위의 성립 여부를 정해주지 않는다. 같은 방향의 판단이 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도12927 판결에서 확인되는데, 그 판결은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사용할 의도로 제3채무자로부터 변제를 받아 변제금을 수령한 경우, 이는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뿐, 채무자가 채권자와의 위탁신임관계에 의하여 채권자를 위해 위 변제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채무자가 이를 임의로 소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였다. 임의 소비라는 사용처의 외형만으로 횡령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그 앞에 위탁신임관계에 의한 보관 지위가 놓여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판결은 그러한 보관 지위가 왜 성립하지 않았는지 다음처럼 밝힌다. 위탁신임관계의 유무는 담보 목적 채권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가 계약에 따른 자신의 채무에 불과한지에 달려 있고, 채권 양도담보계약의 목적과 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채권양도계약과 같지 않은 점이 그 판단에 반영된다. 요컨대 그 의무가 "계약에 따른 자신의 채무에 불과하고,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채무자가 채권자를 위하여 담보가치의 유지·보전사무를 처리함으로써 채무자의 사무처리를 통해 채권자가 담보 목적을 달성한다는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도12927 판결). 이 판결의 논의는 채권 양도담보라는 거래의 특수성에 놓여 있기에, 이 사례에 그대로 옮겨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사용처의 기록이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지 않는지는 분명히 한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개인 계좌로 옮긴 뒤 석 달 만에 6억 원을 돌려주었고, 회사 장부에 '대표이사 가지급금' 항목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자금 이동에서 관찰된 기록이다. 반면 남은 2억 원의 사용처와 석 달간 개인 계좌 자금의 용도는 미정이고, 병이 반환을 계획했는지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도 미정이다. 미정의 사정을 사용처의 기록에서 끌어오면 자료가 말하는 범위를 벗어난다.
결국 사용처가 남기는 흔적은 자금이 어디에 흘러갔는지의 사실을 보여줄 뿐이고,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는 지위의 성립 여부는 별도의 판단을 요구한다. 변제금의 임의 소비라는 외형 뒤에 위탁신임관계와 같은 보관 관계가 놓여 있는지가 핵심이며, 병의 자금 이동이 그러한 보관 관계 위에서 이루어졌는지는 사용처의 기록만으로 정해지지 않은 채 남는다.
9.3이동의 절차가 남기는 흔적
사용처의 기록을 놓고 확인할 수 없는 자리를 밝혀 두고 나면, 자금 이동을 둘러싼 절차의 외형이 별도의 근거를 이루는지가 문제로 남는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개인 계좌로 옮기면서 남긴 절차의 흔적 가운데, 이사회 결의나 이자·변제기에 관한 약정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기재들의 부재가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가늠하려면, 이사와 회사 사이의 거래에 관한 상법의 문언을 함께 살펴야 한다.
상법 제398조는 이사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할 때의 절차를 아래와 같이 정한다. 그 문언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는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하고,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 (상법 제398조) 같은 조는 그 대상의 첫머리를 아래와 같이 적는다. "이사 또는 제542조의8제2항제6호에 따른 주요주주" (상법 제398조). 병이 대표이사로서 회사 계좌의 자금을 자기의 개인 계좌로 옮긴 일은 이 문언이 상정하는 이사와 회사 간 거래의 외형에 닿는다.
이 문언이 놓은 절차의 틀은 순서로도 읽힌다. 상법 제398조는 거래에 앞서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이어서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라는 앞 구절과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뒤 구절을 하나의 선행 절차로 묶는다. 승인의 의결 방식까지 아울러 요구한다는 점도 같은 문언 안에 담겨 있다. 상법 제398조는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하고"라고 단정하고, 이어서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인다. 거래가 그 틀을 따르는 모습으로 정리되었는지를 읽는 일은, 밝힘과 승인과 의결 정족과 공정성을 하나로 묶어 본 자리에서 시작한다.
절차의 외형을 읽을 때 함께 살필 것은 조문이 정한 시점이다. 상법 제398조는 거래에 앞서 승인을 받는 틀을 놓았고, 그 문언은 '미리'를 절차의 앞에 두어 사후의 정리를 같은 자리에 놓지 않는다. 이사회 결의 기록과 이자·변제기 약정의 기록이 함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이동이 그 틀을 따르는 모습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외형을 남긴다. 다만 그 외형을 읽는 자리는 미정인 사실들 앞에서 멈춘다. 가지급금 항목이 언제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 석 달 동안 개인 계좌의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병이 반환을 계획했는지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 회사의 자산 규모와 병이 가진 주식의 비율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기재들의 부재가 절차 요건의 충족 여부에 관한 결론을 곧바로 대신하지는 않는다.
절차의 외형이 남기는 흔적은 그 자체로 법적 평가를 확정하지 않는다. 이동을 둘러싼 기록에 이사회 결의와 이자·변제기 약정이 함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사실의 나열일 뿐이고, 그 결과가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상법 제398조의 문언은 절차의 틀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밝힐 뿐이고, 그 요구가 이 사례에서 충족되었는지를 결론짓는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이사회 승인 요건이 실제로 충족되었는지의 판단과 그 민사상의 효과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조문의 문언이 절차의 틀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밝혀 두는 것만으로도, 절차의 외형이 사용처와 나란히 놓이는 자리는 차고 넘친다. 병의 이동에 남은 절차의 흔적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그대로 두고, 그 흔적을 읽어 내는 방식을 다음 자료로 넘긴다.
9.4회계 처리가 남기는 흔적
형법 제355조는 재물의 보관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때를 처벌한다. 회계 처리의 흔적이 이 조항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살피는 일이 이 흐름의 다음 물음이다. 대표이사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개인 계좌로 옮기고 석 달 뒤 6억 원을 되돌린 과정에서, 회사 장부에는 '대표이사 가지급금'이라는 항목이 적혀 있다. 그 항목이 언제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는 미정이다.
형법 제355조는 처벌의 전제로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를 규정한다. 회사 계좌의 자금은 대표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며, 그 자금을 개인 계좌로 옮긴 뒤 회사의 의사에 반하여 그 지배를 벗어나게 한 행동이 횡령의 외형을 이룬다. 장부에 가지급금 항목이 적혀 있다는 사실은, 그 자금이 회사의 재물로서 다른 곳에 귀속되지 않고 대표이사에게 일시적으로 나간 것으로 처리되었음을 회사 스스로 기록한 것으로 읽힌다. 즉 회계 항목의 존재는 이동된 8억 원에 대하여 회사가 아직 반환을 전제로 한 보관 관계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방향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회계 항목이 언제 작성되었는지는 그 증명력을 좌우한다. 가지급금 항목이 자금 이동과 동시에 작성되었다면, 이동 자체를 회사가 승인하고 대표이사의 채무로 계상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반면 항목이 이동 뒤에 뒤늦게 정리된 흔적이라면, 애초에 회사의 승인 없이 옮겨진 자금을 사후에 장부상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병이 6억 원을 되돌린 시점과 가지급금 항목의 작성 시기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그리고 그 항목이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는 미정이다. 이 기재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사실의 나열일 뿐, 그 결과가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에 해당하지 않는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를 함께 처벌한다. 대표이사의 회사 자금 보관은 그 자체로 타인의 사무 처리에 해당하므로, 회계 처리의 흔적은 임무 위배의 판단에서도 한 근거를 이룬다. 이사회 결의나 이자·변제기에 관한 약정 기록이 보이지 않는 절차의 외형은 이미 살핀 바 있다. 회사 장부가 가지급금이라는 항목으로만 정리하고 이사회 승인의 흔적이나 거래 조건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회계 처리는 대표이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회사의 자금을 개인적으로 운용한 경위를 회사 측에서 소급하여 정리한 것으로 볼 여지가 남는다.
한편 회사 장부에 적힌 항목은 그 자체로 회사의 의사 표시이므로, 그 내용과 작성 시기의 기록이 정돈되어 있다면 자금 이동에 대한 회사의 승인 내지 채무 인정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도 읽힐 수 있다. 가지급금 항목이 이사회나 주주총회의 결의에 근거하여 작성되었다면, 이동된 자금은 횡령의 대상이 아니라 대표이사에 대한 회사의 채권으로 정리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미정인 가지급금 항목의 작성 경위가 바로 이 대목을 가른다.
결국 회계 처리가 남기는 흔적은 이동된 재물이 누구에게 귀속되었는지, 그리고 반환을 전제로 한 관계가 유지되었는지를 가늠하는 자료가 된다. 회사 장부의 '대표이사 가지급금' 항목은 그 자체로 횡령의 성립과 불법영득의사를 확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하며, 작성 시기와 경위의 확인을 전제로 한 방향성의 근거에 그친다. 그 항목이 무엇을 증명하는가는 별개의 물음으로 남는다.
9.5세 자료가 놓이는 자리
회계 처리의 흔적을 살핀 데서 나아가, 사용처·절차·회계 처리 세 자료가 각자 다른 몫을 맡는 자리를 정하여야 한다. 셋이 겹친다고 하여 곧 불법영득의사가 확정된다고 보는 것은 이르다. 세 자료가 서로를 대신하지 않는 구도를 먼저 짜 놓고, 병의 자금 이동을 그 위에 놓아 본다.
횡령의 근거 조문이 재물의 귀속을 어떻게 다루는지 먼저 본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고 덧붙인다. 이에 따르면 보관 지위와 임무 위배가 각각 성립의 자리에서 요구되며, 자금이 움직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그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다.
절차의 자료는 그 보관 지위와 임무의 내용을 가늠하는 데 쓰인다. 회사 자산을 대표이사 개인 계정으로 옮기는 거래가 이사와 회사 사이의 거래에 해당하는지를 묻기 위하여 상법 제398조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는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하고,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라고 정한다(상법 제398조). 병의 이동에서 이사회 결의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절차 요건이 채워졌는지 묻는 자료일 뿐이다.
사용처는 옮겨진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더듬는 자료이다. 석 달 사이 개인 계정의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미정으로 남아 있다. 사용처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반환 계획이나 변제 능력을 뒤집어 짐작할 수 없다.
셋이 겹치는 자리를 확인하기 위하여 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도12927 판결을 함께 놓는다. 그 판결은 "채무자가 기존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다른 금전채권을 채권자에게 양도하는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담보 목적 채권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는 채권 양도담보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의 한 내용에 불과하다"라고 전제하며, "채무자가 채권 양도담보계약에 따라 담보 목적 채권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는 계약에 따른 자신의 채무에 불과하고,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채무자가 채권자를 위하여 담보가치의 유지·보전사무를 처리함으로써 채무자의 사무처리를 통해 채권자가 담보 목적을 달성한다는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도12927 판결). 그 판결은 이어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사용할 의도로 제3채무자로부터 변제를 받아 변제금을 수령한 경우, 이는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뿐, 채무자가 채권자와의 위탁신임관계에 의하여 채권자를 위해 위 변제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채무자가 이를 임의로 소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도12927 판결). 여기서도 절차의 결여와 자금의 소비가 모여 있어도, 그 모임만으로 보관 지위나 신임관계가 생겨나지는 않았다.
따라서 사용처·절차·회계 처리는 각자 다른 자리를 지키며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지 않는다. 가지급금 항목의 기록과 이사회 결의의 부재와 석 달간의 사용처가 함께 놓인다 해도, 그 겹침이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병의 주식 비율과 회사의 자산 규모도 미정으로 남아 있어, 세 자료의 자리를 더 넓히지 못한다.
9.6추론이 닿지 못하는 곳
사용처·절차·회계 처리의 자료가 각기 다른 몫을 맡는다고 정리된 데에서, 이제 각 자료가 끝까지 밝히지 못하는 자리를 가려야 한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옮기고 6억 원을 되돌린 뒤 2억 원을 남겨 둔 사정은 관찰된 사실의 나열이며, 그 자체로 확정된 손해나 고의에 관한 평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정으로 남은 사실을 추론으로 채워 넣는 순간, 법적 평가와 사실 관찰의 경계가 무너진다.
사용처 자료가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는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의 운명이다. 자금 이동 경로는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보여 줄 뿐, 병이 처음에 반환을 계획했는지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한다. 이 규정의 구성요건인 횡령 또는 반환 거부는 행위 시점의 사정을 요하므로, 사용처만으로 그 시점의 의사를 확정할 수 없다.
절차 자료가 닿지 못하는 자리는 이사회 결의와 약정의 부재가 무엇을 뜻하는지이다. 결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결의가 없었음을 뜻할 수도 있고, 다만 기록이 남지 않았음을 뜻할 수도 있다. 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도12927 판결은 채권 양도담보계약의 의무에 관하여 "채무자가 채권 양도담보계약에 따라 담보 목적 채권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는 계약에 따른 자신의 채무에 불과하고,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채무자가 채권자를 위하여 담보가치의 유지·보전사무를 처리함으로써 채무자의 사무처리를 통해 채권자가 담보 목적을 달성한다는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이 판시는 계약 의무와 위탁신임관계의 구분을 보여 주며, 절차의 흔적만으로 병과 회사 사이의 관계 성격을 확정할 수 없음을 뒷받침한다.
회계 처리 자료가 남기지 못하는 것은 '대표이사 가지급금'이라는 항목의 작성 시점과 경위이다. 항목이 언제 어떤 사정에서 적혔는지가 미정인 이상, 장부가 자금 이동과 동시에 작성되었는지 사후에 정리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같은 판결은 채무자의 변제금 수령에 대하여 "그러므로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사용할 의도로 제3채무자로부터 변제를 받아 변제금을 수령한 경우, 이는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뿐, 채무자가 채권자와의 위탁신임관계에 의하여 채권자를 위해 위 변제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채무자가 이를 임의로 소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도12927 판결). 회계 기재가 채무의 계상을 보여 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보관 지위나 영득의사가 확정된다고 읽을 수 없음이 이 판시에서 드러난다.
석 달 사이 개인 계좌의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회사의 자산 규모와 병이 가진 주식의 비율이 어떠한지도 함께 미정으로 남아 있다. 이 기재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사실의 나열일 뿐이며, 그 결과가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처·절차·회계 처리가 모두 모였다 하더라도, 반환 계획과 능력, 가지급금 기재의 작성 경위, 자산 규모와 지분 비율이 채워지지 않는 한 추론은 그 자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남은 미정 사실을 보태어 확정된 손해나 고의를 만들어 내지 않는 한계가 이 자리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