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혼자 낸 소장의 첫 장면에서 절차의 말과 서면의 양이 문턱이 되는 모습을 살피고, 수고비를 둘러싼 망설임을 더한다. 이어서 헌법 제27조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 문언을 읽으며 접근을 가로막는 요소를 센다. 소송구조, 석명, 대리의 예외의 구체적 내용은 뒤 장에서 살필 일로 남긴다.
1.1혼자 낸 소장의 첫 장면
앞에서 본 것처럼 법정에 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을은 변호사를 세우지 않고 보증금 2,800만 원을 돌려달라는 소장을 혼자 냈다. 이 장면을 그대로 놓고 보면, 본인소송은 당사자가 직접 종이를 들고 법원 문턱을 넘는 데서 시작한다. 출발은 소장을 낸 그 행위 하나이며, 그 너머의 평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혼자 소를 내는 당사자도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은 그 출발점을 이렇게 적는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한다. 이 조항은 변호사의 유무에 따라 재판을 받는 자격이 달라지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을이 소장을 낼 수 있었던 까닭도 여기 있다. 권리를 가진 자가 누구인지를 가를 때 법률대리인의 존재 여부는 표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헌법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이라는 요건도 함께 읽힌다. 재판을 받을 권리는 아무 법정에서나 아무 절차로나 행사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이 다루는 절차 안에서 행사된다. 을이 혼자 낸 소장도 마찬가지로 법원이 심리의 대상으로 삼는 절차 안에 놓인다. 당사자의 소송수행 능력이 넉넉한지와 별개로, 그 소장이 법원의 문 앞에 놓인 순간 사건은 재판의 절차로 편입된다.
재판을 받을 권리는 절차가 끝나는 시점까지 이어진다. 헌법 제27조 제3항 전단은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덧붙인다. 을이 맞닥뜨린 첫 장면이 곧 이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첫 걸음이라는 뜻이다. 다만 신속성의 구체적 기준이나 지연의 법적 효과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이 자리에서 확정되는 것은 권리를 행사하는 첫 동작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이 시점에서 확정된 것은 관찰된 사실의 나열이다. 을은 변호사 없이 보증금 반환을 구했고, 그 금액은 2,800만 원이다. 소송구조를 신청했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청구가 결국 얼마를 회복할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확정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를 지금 자리에서 만들 수 없다.
본인소송의 첫 장면은 이렇듯 단출하다. 당사자 한 사람이 서면 한 벌을 들고 법원을 찾아 신청하고, 법원은 이를 심리의 대상으로 삼는다. 변호사의 부재가 이 출발을 무효로 만들지 않으며, 대신 그다음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곧바로 문제가 된다. 을이 서류를 내밀고 받은 첫 장면은 서면 한 벌의 접수이지만, 그 한 벌을 두고 법정 안에서 오갈 말들이 곧 뒤이어 기다린다.
1.2청구원인을 정리하라는 말
소장이 접수된 뒤 열린 첫 변론기일에서 판사는 을에게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말했다. 이 말이 혼자 선 당사자에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피려면, 먼저 재판을 받을 권리가 무엇을 보장하는지 헌법의 문구로 확인해 두어야 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한다. 이 조항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며, 을처럼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은 당사자 역시 그 주체에 든다. 판사의 요구가 이 조항이 그린 법관에 의한 재판의 한 장면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재판을 받을 권리는 사건 번호를 배정받고 기일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3항은 신속성 역시 그 권리의 내용임을 밝히며, "제27조 (…)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다. 형사피고인에게는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함께 주어진다고 하면서, 같은 항은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앞에 둔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판사가 청구원인 정리를 요구한 것은 이 사건의 쟁점을 가려내어 절차를 진전시키려는 요구로 보이고, 그 요구는 신속한 재판을 구하는 흐름에 놓여 있다. 을의 사건 역시 그 흐름의 한 가운데에 놓인 것이다.
헌법이 신속성을 권리의 내용으로 적은 것은, 재판이 미루어지는 사이에 당사자의 삶이 멈추기 때문이다. 을이 돌려받으려는 보증금은 이미 임대차 관계가 끝난 뒤의 문제이고, 그 돈이 손에 돌아오지 않는 동안 을의 살림은 그 자리를 채울 수 없다.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요구가 절차를 앞당기려는 성격을 지닌다고 읽을 때, 그 요구는 을에게 부담이 되면서도 을의 재판을 받을 권리에 봉사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요구와 권리가 한 방향을 본다는 점이 이 장면의 첫 결론이다.
그러나 헌법 조문만으로는 판사의 그 말이 을에게 어떤 구체적 행동을 요구하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청구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은 헌법 제27조에서 직접 읽어낼 수 없다. 제27조 제1항이 말하는 "법률에 의한 재판" 은 재판의 기준이 법률에 맡겨져 있음을 뜻할 뿐, 청구원인을 정리하는 방식과 정도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제3항이 보장하는 신속성 역시 절차가 나아갈 방향을 말할 뿐, 을이 당장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판사의 요구 앞에 선 을에게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의 지도와, 그 지도가 가리키지 않은 좁은 길이 함께 놓여 있다.
정리의 방식과 정도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자료는 주어진 법령과 판례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따라서 석명의 범위나 석명의무의 한계는 이 자리에서 확정할 수 없다. 판사가 요구한 말이 을에게 어느 선까지 무엇을 하게 하는지, 그 요구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에 관한 판단 역시 남는다. 미정인 것은 미정으로 두어야 한다. 헌법이 그린 권리의 자리에서 시작하되, 그 아래의 판단 기준은 확인된 자료 안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속성을 확인한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이 장면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좁다. 판사는 첫 변론기일에 을에게 절차의 언어로 무언가를 요구했고, 을은 그 요구의 내용을 스스로 풀이해야 했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이 보장하는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을에게도 열려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일은 을 혼자의 몫으로 남는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같은 항이 함께 두고 있어도, 을이 기일에 서서 판사의 말을 받은 자리는 을 하나뿐이다. 청구원인 정리라는 요구가 을에게 실제로 어떤 부담이 되었는지, 그 부담의 크기는 이웃이 도운 서면의 모습과 함께 살펴볼 일이다.
1.3서면의 양이 만드는 거리
청구원인을 정리하라는 요구 앞에서 을은 무엇을 써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바로 그 지점에서 상대방 측이 낸 서면과 자기가 낼 서면 사이의 거리가 드러났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적은 서면은 몇 장에 그쳤으나, 상대방 변호사가 낸 준비서면은 30쪽에 이르렀다. 양만 놓고 보면 같은 사건 안에 두 개의 다른 말하기가 놓인 셈이다.
헌법 제27조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선언한다. 그 권리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로 적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이 보장하는 재판받을 권리는 서면을 많이 낼 수 있는가와는 별개의 문제로 선언되어 있으나, 실제 절차에서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은 서면의 왕래로 이루어진다.
을은 서면을 직접 쓰면서 절차의 말에 부딪혔다.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요구는 이미 앞에서 살폈듯이 혼자 선 당사자에게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상대방이 낸 준비서면에는 서면의 형식과 논리의 배열이 갖추어져 있었고, 을은 그 분량과 형식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대응 서면을 썼다. 서면의 양 자체가 절차의 문턱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서면이 길다는 사실이 곧 재판의 결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헌법 제27조 제1항이 말하는 "법률에 의한 재판"은 서면의 분량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법률에 의한 재판이다. 이 사례에서 을이 쓴 서면이 짧았다는 관찰과 상대방 서면이 30쪽이었다는 관찰은 확정된 손해나 불리한 결과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재판의 결론이 어느 쪽에 유리하게 내려졌는지 여부도 미정이다.
다만 서면 사이의 거리는 절차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체감되는 차이를 만든다. 한쪽은 변호사를 통해 준비된 서면을 제출하고, 다른 쪽은 이웃의 도움을 받아 서면을 작성한다. 헌법이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자리에서 이 두 방식이 같은 조건 위에 놓이는지 여부는 이 사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을의 서면이 30쪽 분량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판사가 서면의 양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 차이가 이후 절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관찰된 사실에 담겨 있지 않다. 서면의 양이 만든 거리를 법적 평가로 확정하기에는 확인된 바가 그만큼 적다.
1.4수고비를 둘러싼 망설임
서면의 양이 만드는 거리를 살핀 데서 나아가, 이번에는 그 서면을 함께 쓰는 사람을 둘러싼 망설임을 읽어보자. 을은 혼자 소장을 내고 첫 변론기일에서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말을 들었으며, 서면은 이웃의 도움으로 썼다. 그런데 그 이웃은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수고비를 둘러싼 이 말이 도움을 구하는 길 자체를 좁게 만드는 모습을 살핀다.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은 미정으로 둔다.
그 처벌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처벌 규정의 요건을 새로 만들거나 이웃의 행위를 유죄로 단정하지 않고, 다만 이웃이 처벌의 가능성을 전해 들었다는 관찰된 사실만을 놓아둔다. 이웃이 받은 금액이 얼마인지, 그 돈이 사례인지 실비 변상인지 역시 확인되어 있지 않다. 금액과 성격을 미정으로 둔 채, 수고비라는 말 자체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과 주는 사람 사이에 놓이는 무게를 살필 뿐이다.
소송을 혼자 수행하는 사람이 서면 작성의 어려움을 이웃에게 맡길 수 있다면, 그 도움은 대리인지 단순한 보조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대리는 변호사가 원칙적으로 독점하는 영역이며, 그 예외 요건이 무엇인지도 이 사례에서는 확인되어 있지 않다. 요건 충족 여부를 미정으로 둔 채, 수고비를 둘러싼 망설임이 대리와 보조의 경계 앞에서 도움 요청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모습만을 지적한다.
법정에 혼자 선 사람은 상대방의 30쪽 준비서면에 맞설 서면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변호사를 부를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웃의 손길은 사실상 유일한 보조 수단이다. 그런데 그 손길에 수고비가 따라붙는 순간, 이웃은 처벌의 가능성을 떠올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여기서 관찰되는 것은 명백한 손해가 아니라, 수고비라는 말이 만들어내는 주저함이다. 을과 이웃 사이에 놓인 것은 확정된 법률관계가 아니라 도움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정황이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고 규정한다. 이 문언이 본인소송을 수행하는 을에게 무엇을 보장하는지는 별도의 검토를 요한다. 다만 서면 작성의 도움을 둘러싼 망설임이 그 앞에 놓이는 현실이라는 점만을, 앞의 관찰과 함께 놓아둔다. 수고비를 둘러싼 이웃의 주저함이 을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을 넓히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찰이다.
1.5헌법 제27조의 문언 읽기
수고비를 둘러싼 망설임 앞에서 을이 붙들 것은 헌법이 정한 문언뿐이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이를 두고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문언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돌리되, 그 재판이 누구에 의하여 그리고 어떠한 근거로 이루어지는지를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 말한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어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은 이 선언의 앞마당에 놓여 있다.
그 문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먼저 주어가 넓다. 권리를 가진 자는 "모든 국민"이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따로 가르지 않는다. 을이 변호사를 세웠는지 세우지 않았는지는 문언에 적힌 바가 아니다. 혼자 선 법정이라 하여 그가 권리를 덜 갖는 것은 이 문언이 말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의 넓이란 점에서, 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지는 문언이 곧바로 밝히지 않으므로 이 자리는 열어 둔 채로 놓아둔다.
그 다음 축은 재판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이라는 두 표현을 함께 놓았다. 이 두 표현은 을이 받을 대우가 법관과 법률 양쪽에 붙어 있음을 뜻한다. 한쪽은 누가 재판하는지, 다른 한쪽은 어떤 근거로 재판하는지를 각각 적시한다. 따라서 판사가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한 일과 상대방이 변호사를 통해 준비서면을 낸 일은, 문언으로 보면 법관의 지휘라는 이름 아래 을과 상대방이 놓인 자리의 문제로 옮겨진다.
문언의 나머지 조항들도 같은 쪽을 가리키지만 형사 절차를 겨냥해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3항은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앞 문장은 모든 국민을 주어로 삼고 뒷 문장은 형사피고인을 주어로 삼는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이 구분에 따르면 민사의 을에게는 앞 문장만이 직접 걸린다. 같은 조 제4항은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하고, 제5항은 "⑤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고 하여 형사피고인과 형사피해자를 각각 따로 불러 말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보증금 반환을 다투는 이 자리는 그 둘의 자리가 아니다.
문언에 보태지 않은 것은 보태지 않은 채로 두어야 한다. 재판을 받을 권리에 소송구조의 신청이나 석명의 범위, 대리의 예외 요건이 함께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을이 이웃에게 받은 수고비의 액수와 성격이 무엇인지, 이웃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이 문언 어디에 근거하는지도 이 조문만으로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한 결론은 뒤의 문턱을 세며 따로 살필 일로 남는다.
1.6센 문턱과 남은 물음
헌법 제27조의 문언을 읽고 남은 것은 문언과 법정의 장면 사이에 놓인 거리였다. 그 거리를 앞에서 들여다본 결과, 을이 혼자 소장을 내고 첫 변론기일에 나아간 장면에는 관찰로 셀 수 있는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이 자리를 다시 정리해 두어야, 관찰된 사실과 법적 평가를 엄격히 구별한 채 다음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여기에서는 소송구조의 결과, 석명의 범위,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를 미리 판단하지 않는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문언으로 선언한다. 그 제1항은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정한다. 이 문언이 선언하는 권리를 을이 실제로 행사하려 했을 때 을 앞에 놓였던 것은 소를 내고 준비서면에 답하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소장은 을이 혼자 냈고, 판사는 첫 변론기일에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했다. 이 장면에서 을을 막은 것은 소를 제기하는 데 드는 금전적 비용만이 아니었다. 어떤 서류를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법정이 요구하는 말의 형식을 혼자 감당하는 어려움이 함께 놓여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을 앞에 놓인 문턱이라는 사실 자체는 관찰로 확인되지만, 어느 쪽이 더 크다고 하는 평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을 앞에 놓인 이웃의 도움에는 법률이 정한 한계가 닿는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를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가로 규정하면서 그 사명을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에 둔다. 같은 법 제3조는 변호사 자격을 갖추지 않은 자가 변호사의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다른 법률에 다른 규정이 있는 때를 예외로 둔다. 을이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썼다는 관찰과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는 관찰이 이 규율 앞에 놓인다. 다만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는 미정으로 남는다. 관찰된 사실은 이웃의 도움과 처벌 가능성에 관한 경고가 있었던 것까지이며, 그 이상의 법적 평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대방은 변호사를 통해 30쪽짜리 준비서면을 냈다. 이에 마주한 을은 서면을 쓰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서면에 담긴 법적 주장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답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소송을 수행하는 자가 절차를 이끌어 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환경의 차이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같은 장면에서 대리의 문제도 함께 보이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는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을이 혼자 감당한 일과 상대방 쪽에서 변호사가 맡은 일이 장면에서 겹쳐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손해나 고의를 확정할 수는 없다.
소송구조 신청 여부와 그 결과, 석명의 범위는 미정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확정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를 이 자리에서 내려서는 안 된다. 여기서 관찰로 셈을 마친 것은 을 앞에 놓였던 비용과 절차 지식과 대리의 문제이며, 이 셋이 각각 어떤 성격을 갖는지와 그 경계를 어떻게 나눌지는 뒤의 논의에 남긴다. 앞에서 읽은 문언과 여기서 확인된 장면의 거리가 넓다는 사실만이 이 자리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