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질 확률을 하나로 적으면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묻고, 숫자 하나에 압축된 근거와 사라진 쟁점별 추론을 살핀다. 반반이라는 빈자리와 미정인 자료의 조건, 되짚을 수 없는 경로, 숫자로 검증할 수 없는 것을 차례로 둔다.
2.1숫자 하나에 압축된 근거
검증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그 숫자가 한데 묶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 펼쳐 놓아야 한다. 담당자가 작성자에게 물은 자리에서 돌아온 대답은 쟁점 셋, 그중 둘은 자사에 유리하고 하나는 반반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관찰된 대답의 기록일 뿐 쟁점별 판단의 확정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그 구조만을 읽는다.
우선 "쟁점이 셋"이라는 대답은 30%라는 숫자가 하나의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라 셋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한 자리에 놓은 것임을 드러낸다. 소송은 하나의 사건이라 불리지만, 판단의 자리는 셋으로 갈라져 있고 그 자리는 각각 다른 근거를 요구한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그 셋의 자리가 지워진 채 숫자만 남았다.
다음으로 세 자리 중 둘은 자사에 유리하고 나머지 하나는 반반이라는 대답은 세 자리에 놓인 근거의 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보인다. 유리하다는 평가는 어느 자료에 기대어 서 있는지 대답에 담기지 않았고, 반반이라는 말이 어떤 근거와 판단의 결합인지도 드러나지 않았다. 이 사례에서 셋째 쟁점에 걸린 문언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둘째 쟁점에 관한 자료가 제출될 것인지, 첫째 쟁점과 셋째 쟁점의 판단이 서로를 제약할 것인지는 미정이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라고 선언한다. 이 조문이 요구하는 바는, 사실을 세울 때 자리마다 무엇이 근거인지를 밝히는 일이다. 30%라는 숫자는 쟁점별 근거를 함께 지워 버렸고, 따라서 그 숫자만으로는 어느 사실이 무엇에 의해 서 있는지 읽을 수 없다. 이 소송의 청구 금액과 그 판결이 당사자에게 낳을 결과도 미정이므로, 여기 적은 것은 관찰된 사실과 말의 기록에 그친다.
결국 그 숫자 하나는 셋의 판단 자리와 그에 놓인 근거를 한 점에 압축해 놓았다. 압축이 벌어진 자리를 되돌리는 일은, 쟁점마다 어떤 자료와 어떤 판단이 서 있는지를 다시 세워 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남은 것은 관찰된 말과 기록뿐이며, 승패의 확률이나 확정 손해·고의 같은 법적 평가의 확정은 이 자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2.2사라진 쟁점별 추론
숫자 하나가 세 쟁점의 유불리를 한데 묶어 놓은 채, 각 쟁점에서 어떤 추론이 서 있었는지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 묶음 안에서 사라진 추론의 자리를 형사소송법 제307조가 요구하는 사실 인정의 방식에 비추어 살핀다. 이 소송의 기록에 어떤 증거가 제출되었는지, 그 증거가 어느 쟁점에 관한 것인지는 미정이다.
사실 인정의 출발점을 법조문은 이렇게 정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은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라고 선언한다. 이 항이 요구하는 것은 사실을 세울 때 증거를 빠뜨리지 않는 일이다. 검토 보고서에는 이 소송에서 질 확률 30%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으나, 그 유불리를 지탱하는 증거가 무엇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범죄사실에 관한 인정은 더 높은 도달점을 요구한다. 같은 조 제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07조)라고 정한다. 이 항이 두는 기준은 확신의 정도이다. 이 소송이 범죄사실의 인정을 다투는 소송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 기준이 어느 쟁점에 걸리는지 자료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항을 두 쟁점에 유리하다는 작성자의 구두 답변에 그대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쟁점별 추론은 이 형식에서 자리를 얻는다. 어떤 증거가 어느 사실을 떠받치는지, 그 사실이 어느 쟁점의 판단으로 이어지는지가 하나씩 드러나야 사실 인정의 고리가 보인다. 작성자는 쟁점 셋 가운데 둘은 자사에 유리하고 하나는 반반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어느 증거가 어느 쟁점의 유리함을 세웠는지, 그리고 그 유리함이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이 말하는 증거에 의한 인정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셋째 쟁점에 걸린 문언을 어떻게 읽을지, 둘째 쟁점에 관한 자료가 제출될지, 첫째 쟁점과 셋째 쟁점의 판단이 서로를 제약할지는 모두 미정이다. 미정인 항목마다 서야 할 추론이 따로 남는다. 그 추론들은 지금 하나의 숫자 뒤에 놓여 있다. 이 소송의 청구 금액과 그 판결이 당사자에게 낳을 결과도 미정이므로, 숫자가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를 함께 가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30%라는 숫자는 쟁점별로 서야 할 근거를 대신 놓지 못한다. 관찰된 것은 작성자의 구두 답변과 보고서의 문장뿐이며, 확률의 산출 근거나 승패의 확률, 확정 손해 같은 법적 평가는 이 자리에서 확정되지 않는다. 그 자리를 확인하는 일은 다음 단계로 넘겨진다.
2.3반반이라는 빈자리
증거가 어느 쟁점을 세웠는지 따져 보아야 할 자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판단할 자리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셋째 쟁점의 문언을 어떻게 읽을지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그 쟁점을 '반반'으로 부르는 말이 쓰인 까닭을, 형사소송법 제308조가 남겨 둔 판단의 자리에 비추어 살핀다. 이 조는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이 판단하도록 두며,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판단을 요구하되 판단의 내용을 미리 정하지 않는 자리다.
조사관이 검토 보고서에 이 소송에서 질 확률이 30%라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은, 앞서 살핀 대로 쟁점별 추론을 하나로 뭉쳐 놓은 것이다. 그 숫자에 대응하는 설명으로 작성자는 쟁점이 셋이고, 그중 둘은 자사에 유리하며, 하나는 반반이라고 구두로 답했다. 이 답에서 '반반'은 셋째 쟁점의 문언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미정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미정인 판단을 이미 반이라는 값에 놓은 셈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가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긴 것은, 판단을 대신 정해 두지 않고 판단할 자리를 비워 두기 위해서다. 그 자리는 법관이 증거를 직접 대하고 판단을 밝힐 때에야 채워진다. '반반'이라는 말은 이 빈 자리를 미리 채운 자리에 값을 넣어 두는 것이나, 그 값이 법관의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확률의 값으로 빈 자리를 덮는 일과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은 서로 다르다.
셋째 쟁점의 문언을 어떻게 읽을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미정인 자리를 두고 값을 확정하는 일은, 판단의 내용을 지어내는 일과 같은 방향을 향한다. 앞의 증거배척 규칙과 달리 이 조가 판단의 내용을 정하지 않는 것은, 판단이 증거를 향한 법관의 몫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반'이라는 말로 자리를 메운 뒤 그 말을 확률로 옮기더라도, 남는 것은 값을 대신 정한 흔적일 뿐이다.
2.4미정인 자료의 조건
그 판단의 자리를 그대로 두면, 이제 둘째 쟁점에 관하여 제출될 자료 자체가 미정인 조건이 그 숫자 안에서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작성자는 셋의 쟁점 가운데 둘은 자사에 유리하고 하나는 반반이라고 구두로 답하였을 뿐이다. 어떤 문서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제출될 것인지에 대하여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보고서의 숫자는 그 자리에 이미 결정된 값 하나를 놓고 있다. 자료의 유무와 무관하게 숫자는 자리에 놓여 있으므로, 숫자만 읽는 독자는 미정의 조건을 읽지 못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에 필요한 근거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07조). 이 규정은 사실을 판단할 때 의거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조건을 정한다. 둘째 쟁점에 관한 판단도 마찬가지로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같은 조 제2항은 증명의 정도를 정하면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07조)라고 둔다. 단서나 예외는 이 둘 사이에 붙어 있지 않다. 판단의 자리와 증명의 조건이 함께 놓여 있음을 그 문언은 드러낸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둘째 쟁점에 관하여 제출될 자료는 아직 미정이다. 자료가 제출될지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그 자료가 어떤 내용일지도 미정이다. 제출되지 않은 자료의 내용을 가정하고 거기에서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지 계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조건은, 자료가 놓인 뒤에 판단이 시작됨을 뜻한다. 자료가 놓이지 않은 지금, 그 판단의 자리는 비어 있다.
보고서 속 "30%"라는 숫자는 비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이미 채운 값이다. 작성자는 둘째 쟁점이 자사에 유리하다고 말하였다. 그 말이 어떤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그 자료가 제출될 것인지에 관하여는 확인된 바가 없다. 미정의 조건은 숫자에 담기지 않고, 숫자를 읽는 사람의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따라서 이 사례에서 둘째 쟁점에 관한 판단의 자리는 비어 있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그 자리를 무엇이 채울지, 자료가 제출될지의 여부도 미정이다. 제출되지 않은 자료를 전제로 확률을 다시 계산하는 것은 위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 숫자 하나가 감추고 있는 것은 미정인 자료의 조건이다. 그 조건을 적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숫자만 남고 조건은 사라진다.
2.5되짚을 수 없는 경로
자료가 제출될지 미정인 조건이 숫자 속에 드러나지 않는 데서 더 나아가, 이번에는 그 숫자 자체가 어느 쟁점에서 왔는지 거슬러 올라갈 길이 남아 있는지를 살핀다. 검토 보고서에 이 소송에서 질 확률 30%라는 뜻의 문장이 적혀 있다는 점과, 작성자가 구두로 밝힌 쟁점 셋 중 둘은 자사에 유리하고 하나는 반반이라는 말만 놓고 볼 때, 어느 쟁점이 어느 만큼의 숫자를 끌어내렸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증거의 증명력이 법관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제308조(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라고 규정한다. 증명력의 평가가 법관에게 맡겨져 있는 이상, 그 평가의 결과가 어느 경로로 나왔는지는 판결 밖에서 재구성하기 어렵다. 이 사례에서 셋째 쟁점에 걸린 문언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는 미정이고, 첫째 쟁점과 셋째 쟁점의 판단이 서로를 제약할지도 미정이다. 판단의 경로가 확정되지 않은 쟁점에 대해, 그 경로가 남긴 숫자만으로 계산의 순서를 되살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작성자의 구두 답에는 쟁점별 가중치가 들어 있지 않다. 둘은 유리하고 하나는 반반이라는 말은 쟁점의 성격을 표시한 것이지, 셋 가운데 어느 쟁점에 얼마의 몫이 돌아갔다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셋째 쟁점의 반반이라는 평가를 50%로 옮겨 놓고 나머지 둘을 합쳐 계산하는 식의 방법을 만들어 넣는 것은, 자료에 없는 수를 새로 놓는 일이 된다.
쟁점 셋의 판단이 서로를 제약할지 미정이라는 조건은, 계산의 순서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첫째 쟁점과 셋째 쟁점의 판단이 함께 움직인다면 앞뒤가 바뀌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서로를 제약하지 않는다면 각 쟁점이 남긴 값만 모으면 될 것이다. 어느 쪽인지는 미정으로 남아 있고, 이 미정이 풀리기 전에는 계산 경로를 하나로 확정할 수 없다.
되짚을 수 없는 경로라는 것은, 숫자 하나가 그 안에 들어간 쟁점별 판단과 계산의 순서를 함께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작성자의 구두 답은 쟁점의 성격을 표시할 뿐이고, 미정인 판단의 관계는 계산의 순서를 고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30%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어느 쟁점이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보여 주지 못하며, 그 기여를 복원하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2.6숫자로 검증할 수 없는 것
되짚을 수 없는 경로에서 본 그대로, 30%라는 숫자는 어느 쟁점이 그 값을 끌어내렸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숫자 하나가 무엇을 확인시키고 무엇을 확인시키지 못하는지 자리를 잡아 둘 필요가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 문언은 사실을 세울 때 무엇에 기대어야 하는지를 밝히며, 확률의 값 자체가 무엇을 증명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같은 조문은 증명의 정도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정한다. 이 문언이 요구하는 자리는 증명이 도달해야 할 정도이며, 그 정도에 다다랐는지의 판단은 숫자 하나로 대체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의심이 남는지 없는지가 문제인 자리에 30%라는 값이 놓이더라도, 그 값이 의심의 유무를 확인시켜 주지는 않는다.
증거의 증명력을 다루는 자리에도 한계가 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적는다. 증명력의 판단이 법관에게 맡겨져 있다는 이 문언은, 판단의 결과를 미리 산출된 수치에 구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성자의 구두 답에 셋 가운데 둘은 자사에 유리하고 하나는 반반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해도, 그 말이 법관의 판단을 예정한 것은 아니다.
이 사례에서 셋째 쟁점에 걸린 문언을 어떻게 읽을지, 둘째 쟁점에 관한 자료가 제출될지, 첫째 쟁점과 셋째 쟁점의 판단이 서로를 제약할지는 미정이다. 청구 금액과 판결이 당사자에게 낳을 결과도 함께 미정이다. 미정으로 남은 항목이 무엇인지 적어 두지 않으면, 30%가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나누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숫자 하나가 확인시켜 주는 것은 작성자가 셋 중 둘을 유리하게 보았다는 사실에 그친다. 확률 그 자체와 확정 손해, 고의 같은 법적 평가는 이 자리에서 확정되지 않는다. 앞 장이 밝힌 것은 숫자에 남지 않은 쟁점의 자리를 적는 일이었고, 그 자리를 되살릴 기록의 꼴은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