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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의 경쟁: 최강 반론·불리한 판례·구별 논증 · II-05 · Chapter 9 · First edition

주장의 뼈대에서 결함은 어디에 생기는가

요건 누락·결론의 비약·동어반복·순환 논증·사실과 평가와 입증책임의 혼동 중 우리 설명에서 가장 크게 열려 있는 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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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2,700 words · 12 min
Sources
3 statutes · 4 decisions
As of
2026-10-11
On this page
  1. Summary
  2. 9.1주장 뼈대에서 요건의 자리
  3. 9.2사실에서 결론으로의 비약
  4. 9.3동어반복과 순환 논증의 자리
  5. 9.4사실과 평가의 경계 혼동
  6. 9.5입증 못함과 평가 결여의 분리
  7. 9.6가장 크게 열린 틈의 확인
  8. Statutes referred to
  9. Decisions referred to

Synthetic case The parties and facts in this chapter come from the volume's synthetic case, not from a real matter.

Summary

요건 누락·결론의 비약·동어반복·순환 논증·사실과 평가와 입증책임의 혼동 가운데 우리 설명에서 가장 크게 열려 있는 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주장 뼈대에서 요건의 자리, 사실에서 결론으로의 비약, 동어반복과 순환 논증의 자리를 차례로 살핀다. 사실과 평가의 경계 혼동, 입증 못함과 평가 결여의 분리, 가장 크게 열린 틈의 확인을 다룬다.

9.1주장 뼈대에서 요건의 자리

선례가 답하지 않는 자리를 유보로 남기는 태도는 곧 요건의 자리를 비워 두는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 설명의 뼈대에 빠진 요건이 있으면, 논증은 어느 지점에서 열리는가.

민사소송법 제136조는 재판장의 질문과 촉구에 더하여 당사자의 요청과 법원의 의견진술 기회 부여까지 규정하고 있다. 법원이 당사자가 간과한 법률상 사항을 다루는 방식은 그 조문 안에서 네 갈래로 나뉘며, 각 갈래는 서로 다른 주체를 전제로 한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제1항은 "재판장은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고, 증명을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재판장이 능동적으로 소송관계를 정리하는 지점을 열어 준다. 같은 조 제4항은 "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하였음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법률상 사항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민사소송법 제136조). 요건이 당사자의 설명에 빠져 있으면 법원은 의견을 들을 기회를 마련할 의무를 진다.

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은 배임죄의 성립요건과 실행의 착수시기 및 기수시기를 다루면서 요건이 서술의 어디에 놓이는지를 보여 준다. 그 판결은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문언을 되짚으며 객관적 구성요건의 틀을 밝힌다. 판결요지는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할 것과 그러한 행위로 인해 행위자나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배임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배임의 범의로, 즉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한다는 점과 이로 인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이익을 취득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나 의사를 가지고 임무에 위배한 행위를 개시한 때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고,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이익을 취득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기수에 이른다"고 서술한다(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요건을 한 문장에 나열한 다음 그 요건이 충족되는 시점을 가르치는 구성이다. 요건의 자리가 바로 결론의 자리 앞에 놓인다.

이 판결은 요건을 서술하면서 그 요건이 사안에 적용되는 조건을 함께 밝힌다. 판결요지는 "결국 형사재판에서 배임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인 손해 발생 또는 배임죄의 보호법익인 피해자의 재산상 이익의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종래의 대법원판례를 기준으로 하되 구체적 사안별로 타인의 사무의 내용과 성질, 임무위배의 중대성 및 본인의 재산 상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덧붙인다(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요건의 충족을 결론에서 바로 떼어 내지 않고 판단의 척도를 함께 제시하는 대목이다. 이 사건의 계약 해지와 손해 배상 주장에서 우리 측은 요건의 자리를 이렇게 특정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세운 손해의 인정 근거가 이 판결이 요구하는 판단 척도 위에 놓이는지가 남는다.

상대방이 언급한 판례의 사실관계와 이 사건의 시점·문건 구성이 다르다는 점은 대조표로 정리되었다. 다만 대조가 곧 법적 평가는 아니다. 앞 인용은 요건을 판단할 때 사안별 사정을 종합할 것을 요구하므로, 시점과 문건 구성의 차이가 그 종합에서 어느 무게를 갖는지는 자료가 가르치지 않는다. 어느 계약서가 적용되는지,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주는지, 우리 측이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는 미정이다. 성립요건의 실체법적 해석을 새로 만들지 않는 한, 요건의 자리를 표시하는 일은 이 범위에서 멈춘다. 뼈대에 남겨진 자리를 표시한 뒤에는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가 문제로 남는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9.2사실에서 결론으로의 비약

요건의 자리를 확인한 뒤에는, 그 요건에 놓인 사실이 결론으로 넘어가는 길을 살핀다. 이번에는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에서 업무상배임죄의 고의와 입증, 손해의 의미를 다룬 판시사항을 읽고, 사실 서술이 법적 평가로 미끄러지는 자리를 찾는다.

우선 우리 설명의 출발점인 변경 이메일이 무엇을 보여 주는지를 가리는 일은,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작업에 속한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자유심증주의)는 그 판단의 방법을 밝히고 있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자유심증주의)에서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문건이 언제 작성되었고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증거에 따라 가려지는 사실의 문제이고, 그 사실이 어느 요건에 부합하는지는 별도의 판단을 거친다.

그러면 사실에서 법적 평가로 넘어가는 길은 어떻게 서술되어야 하는가.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1]에서 업무상배임죄의 고의와 그 입증 방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반적으로 업무상배임죄의 고의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와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의 이득의 의사가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과 결합하여 성립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업무상배임죄의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고의, 동기 등의 내심적 사실)은 피고인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문제가 된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범의를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하고, 배임죄에 있어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두 가지이다. 고의 같은 내심의 사실은 간접사실의 증명으로 가리고, 그 간접사실의 관련성은 경험칙에 비추어 판단한다는 점이다. 손해는 현실적 손해에 그치지 않고 발생의 위험을 포함한다는 말도, 같은 판시 안에서 끝난다. 이 판시가 ‘손해’의 개념을 새로 정의했다고 이르거나, 고의의 기준을 넓혔다고 단정하는 서술은 인용된 문장 밖으로 나간다.

같은 판결 [2]는 경영자의 판단에 관한 별도의 판시를 둔다. “경영상의 판단과 관련하여 기업의 경영자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업무상배임죄에 있어서 고의의 입증 방법과 마찬가지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여 있어서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선의에 기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하여 업무상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임은 물론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도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어 당해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므로, 현행 형법상의 배임죄가 위태범이라는 법리를 부인할 수 없다 할지라도,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이 판시가 말하는 것은 경위와 동기, 사업의 내용, 경제적 상황, 개연성 등을 두루 살핀 뒤에라야 비로소 고의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손해가 있었다는 결과만으로 곧바로 고의를 끌어내는 서술은, 이 판시가 열거한 사정을 건너뛴 것이 된다.

이를 우리 설명에 비추어 보면, 상대방이 제출한 계약서와 자금 기록이 손해의 발생을 보여 준다 하더라도, 그 사실에서 곧 상대방의 주장대로 해지와 배상이 따라 나온다고 서술하는 것은 앞선 판시가 요구하는 연결을 생략한 것이다.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의 시점·문건 구성과 어떻게 다른지는, 판시의 사정들 가운데 어느 것을 비출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고 따로 가려야 할 대목이다. 그러므로 우리 측의 대조표는 그런 가림의 근거를 보여 주는 것에 그치고, 그 자체로 결론이 되지는 못한다. 판시가 밝힌 입증의 경로를 환기하는 데까지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9.3동어반복과 순환 논증의 자리

결론을 전제로 되돌려 쓰는 서술은 앞서 본 비약과는 다른 곳에서 생긴다. 민사소송법 제208조는 판결서에 적을 사항을 나열하면서 주문과 이유를 따로 두었으므로, 이제 그 둘이 각각 어떤 자리를 맡는지를 읽어 결함의 자리를 찾는다.

우선 판결서의 구성부터 확인한다. 민사소송법 제208조제1항은 "판결서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적고, 판결한 법관이 서명날인하여야 한다"고 한 뒤, 그 목록에서 "2. 주문"과 "4. 이유"를 각각의 항목으로 들고 있다(민사소송법 제208조). 이 규정은 주문과 이유를 같은 문건 안에 나란히 두되 서로 다른 항목으로 구분한다. 따라서 주문의 자리와 이유의 자리는 형식에서 이미 갈라져 있다.

그 구분의 실질은 이유에 관한 규정에서 분명해진다. 민사소송법 제208조제2항은 "판결서의 이유에는 주문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의 주장, 그 밖의 공격·방어방법에 관한 판단을 표시한다"고 정한다. 여기서 이유는 주문을 다시 적는 자리가 아니며, 주문이 정당하다고 인정될 수 있게 하는 판단을 표시하는 자리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손해 배상을 함께 주장하며 계약서,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함께 내놓았고, 우리 측은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어떤 판단이 표시되어야 주문이 정당해지는지는 바로 그 자료들이 놓인 자리에서 가려진다.

그런데 이유의 서술에는 다른 규정이 손을 댄다. 민사소송법 제136조제1항은 "재판장은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고, 증명을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고 하고, 같은 조 제3항은 "당사자는 필요한 경우 재판장에게 상대방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 두 항은 판단의 표시가 소송관계를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함을 보여 준다. 같은 조 제4항은 "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하였음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법률상 사항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덧붙인다(민사소송법 제136조).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의 사실관계와 이 사건의 시점·문건 구성이 다르다는 점은, 바로 그 사유로 설명되어야 할 사항에 놓여 있다.

이제 결함의 자리를 가릴 수 있다. 주문을 이유의 전제로 되돌려 쓰면, "주문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판단은 사라지고 같은 문장만 남는다. 반대로 이유 안에서 상대방이 내세운 판례와 이 사건을 가르는 근거를 문건의 시점과 구성에 두지 않고 결론 자체에 두면, 판단은 순환한다. 대조표는 근거를 늘어놓았을 뿐이며, 그 근거가 어느 판단까지 견디는지와 그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이유를 채운다면, 그 문장은 주문의 정당성을 세우는 판단이 되지 못한다. 판결서의 형식이 주문과 이유를 나눈 까닭이 거기에 있고, 두 항목을 같은 말로 채우는 방식은 그 형식이 정한 자리를 비워 둔다.

9.4사실과 평가의 경계 혼동

판결서의 형식이 주문과 이유에 각각 자리를 정해 준다고 본 뒤에, 남는 물음은 그 이유 안에서 사실 서술과 평가가 어디서 갈라지는지이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의 배상을 함께 주장하면서,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른 계약서·변경 이메일·자금 기록·전문가 계산서를 함께 제출하였다. 우리가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준다고 설명하는 자리와,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의 사실관계를 이 사건의 시점·문건 구성과 대조하는 자리는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어떤 문건이 사건에 적용되는지에 관한 주장이고, 후자는 그 주장에 붙은 근거의 견딜 자리를 가늠키 위한 대조이다. 이 둘을 한 꾸러미로 묶어 서술하면, 사실을 말하는 자리에 평가가 들어앉는다. 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은 그 자리를 갈라 놓는다.

위 판결은 무엇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인지에 관하여, 확정판결의 존재와 그 이유를 이루는 사실관계를 나누어 말한다. 판결요지는 이에 관하여 “피고와 제3자 사이에 있었던 민사소송의 확정판결의 존재를 넘어서 그 판결의 이유를 구성하는 사실관계들까지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즉,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과 그 판결의 이유 안에 적힌 사실관계는 같은 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상대방이 다른 사건의 문건을 제시하며 적시한 사정들도, 그 문건이 제출되었다는 사실과 그 문건에 적힌 내용이 곧 사건의 사실이라는 주장 사이에서 갈라져 살펴보아야 한다.

위 판결요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확정된 관련 민사사건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이 민사재판에서 맡는 역할을 말한다. 판결요지는 “민사재판에 있어서 이미 확정된 관련 민사사건의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가 되지만, 당해 민사재판에서 제출된 다른 증거 내용에 비추어 확정된 관련 민사사건 판결의 사실인정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유를 설시하여 이를 배척할 수 있다는 법리도 그와 같이 확정된 민사판결 이유 중의 사실관계가 현저한 사실에 해당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고 밝혔다(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다른 판결의 사실인정은 증거의 일종으로 놓일 뿐, 그 자체로 현저한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도 이 구분에 서야 한다.

사실이 다른 자리에 놓인 까닭은 절차에 있다. 위 판결요지는 그러한 사실관계를 법원에 현저한 것으로 본 태도를 두고, “당해 재판의 제1심 및 원심에서 다른 하급심판결의 판결문 등이 증거로 제출된 적이 없고, 당사자들도 이에 관하여 주장한 바가 없음에도 이를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로 정리하였다(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제출되지 않은 문건과 주장되지 않은 사정은, 아무리 관련 사건에 적혀 있다 하여도 그 사건의 사실을 이 사건의 사실로 끌어오지 못한다. 이 판단은 어디까지나 이 판결이 다룬 범위 안에서 성립하며, 사실인정의 기준이나 증거법리 전반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실과 평가의 경계는 문장의 외양이 아니라 자리에서 갈라진다. 상대방이 언급한 판례의 사실관계와 이 사건의 시점·문건 구성이 서로 다르다는 대조표는,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에 관한 사실의 자리를 지키는 작업이다. 거기에 그 판결이 이 사건에 적용된다는 평가를 미리 적어 넣으면, 앞서 본 구분이 무너진다.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 우리가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는 미정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9.5입증 못함과 평가 결여의 분리

사실 서술이 평가로 대체되는 자리를 확인한 데에서, 이번에는 입증되지 않은 사실과 평가가 결여된 결론이 서로 다른 결함임을 가려야 한다. 자유심증주의가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을 놓고 있는지, 민사소송법 조문과 형사소송의 판례가 어디까지를 말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민사소송법 제202조는 판단의 재료와 준거를 함께 규정한다. 그 조문은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정한다 (민사소송법 제202조).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을 주장하며 제출한 계약서·변경 이메일·자금 기록·전문가 계산서는 모두 이 조문이 말하는 판단의 재료에 놓인다. 어느 문건이 실재하는지와 어느 문건이 적용되는지는 판단이 필요한 대상이다.

자유심증주의의 의미와 한계에 관해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수의견에서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 제308조는 증거에 의하여 사실을 인정하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관이 증거능력 있는 증거 중 필요한 증거를 채택·사용하고 증거의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하여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 판시가 이 사례에서 갖는 뜻은, 상대방이 함께 제출한 네 갈래 문건의 증명력을 어느 쪽으로 볼지는 법원의 판단에 속한다는 점이다. 다만 같은 다수의견은 자유심증의 범위를 한정한다. 그 다수의견은 "충분한 증명력이 있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 없이 배척하거나 반대로 객관적인 사실에 명백히 반하는 증거를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 없이 채택·사용하는 등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법관은 자유심증으로 증거를 채택하여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바꿔 말해 자유심증은 재량의 면책이 아니다. 채택과 배척 모두가 그 자체로 평가의 산물이며, 평가가 비어 있으면 자유심증의 틀 안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평가의 결여와 입증의 결여는 자꾸 한 자리에 뒤섞인다. 이 판결의 반대의견은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데에 보강이 필요한 정황을 나열하면서 판단자의 근거 제시 의무를 강하게 말한다. 반대의견은 "이때 단순히 추상적인 신빙성의 판단에 그쳐서는 아니 되고, 진술이 달라진 데 관하여 그럴 만한 뚜렷한 사유가 나타나 있지 않다면 위증죄의 부담을 지면서까지 한 법정에서의 자유로운 진술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함이 원칙이다"라고 밝혔다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시가 이 사례에서 갖는 뜻은, 상대방이 언급한 판례와 이 사건의 시점·문건 구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대조표로 정리한 것은 사실관계의 차이를 밝힌 것이며, 그 차이가 이 사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조표의 존재 자체가 곧 평가가 아니다.

반대의견은 이어 보강의 요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는다. 그 반대의견은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 이해관계 유무 등과 함께 다른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사실에 의하여 진술의 신빙성이 보강될 수 있는지, 반대로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사정이 존재하는지 두루 살펴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례로 옮기면,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준다는 설명은 메일의 시점, 앞선 계약서와의 관계, 자금 기록이 뒤따르는지 여부를 함께 놓고 판단할 때에만 힘을 얻는다.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며, 어떤 문건이 적용되고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 우리가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는 미정이다.

결국 이 사례에서 다뤄야 할 자리는 두 갈래이다. 하나는 상대방이 제시한 증거가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의 요건 사실을 채우는지이며, 다른 하나는 그렇게 제시된 증거에 대하여 법원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평가를 내놓았는지이다. 앞의 것은 입증의 문제이고 뒤의 것은 평가의 문제이다. 이 둘을 한 묶음으로 다루면, 입증이 부족하다는 말과 평가가 비어 있다는 말이 서로를 대신하는 자리가 생긴다. 여기서는 입증책임의 배분 기준 자체를 다루지 않으므로, 누가 어느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남겨 둔다.

9.6가장 크게 열린 틈의 확인

입증되지 않은 사실과 평가가 결여된 결론이 뒤섞이는 자리를 가른 뒤에는, 우리 측이 내세운 변경 이메일 설명에 그 결함이 어느 쪽으로 열려 있는지 되비추어 보아야 한다. 앞에서 확인한 다섯 결함 유형을 하나씩 대조하면서, 어느 틈이 이 사건에서 가장 넓게 벌어져 있는지를 가리는 것이 이 절의 일이다.

우리 측은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준다고 설명하면서도,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의 사실관계와 이 사건의 시점·문건 구성이 다르다는 점을 대조표로 정리하였다. 다만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는 아니다. 대조표에 적힌 시점과 문건 구성의 차이는 그 자체로 결론이 되지 않는다.

민사소송법 제208조 제2항은 판결서의 이유에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정한다.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제1심 판결로서 다음 각호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청구를 특정함에 필요한 사항과 제216조제2항의 판단에 관한 사항만을 간략하게 표시할 수 있다." 사실과 판단을 나란히 놓아 두어야 한다는 요구는, 대조표의 어느 칸이 판단에 해당하는지를 가르는 작업이 남아 있음을 뜻한다.

민사소송법 제136조는 재판장이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질문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당사자는 필요한 경우 재판장에게 상대방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설명 요구의 자리는 우리 측이 상대방의 주장에 어떤 답을 두었는지를 물어 보게 한다. 대조표에 빈칸으로 남아 있는 자리가 이 설명 요구를 채울 자리를 가리킨다.

우리 측 논증에서 가장 크게 열려 있는 틈은,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라는 평가가 대조표의 사실 기재 위에 서 있는 자리를 가리키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앞서 확인한 다섯 결함 유형 가운데 이 사례에 가장 넓게 벌어진 자리는 바로 이 평가의 자리이다.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 우리가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이 미정은 대조표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닫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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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isions referre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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