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외부감사법 제31조가 감사인에게 어떤 요건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지를 묻는다. 회사에 대한 책임과 제3자에 대한 책임을 조문에서 가르고,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함의 문언과 입증책임이 놓인 자리를 읽어 요건을 정리한다.
4.1제31조가 놓는 책임의 틀
기록 의무의 범위를 넓히거나 좁힐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이제 그 위반의 효과를 정하는 조문을 읽어야 한다. 외부감사법 제31조는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을 한 조에 모아 두었다. 이 조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으면, 책임의 주체와 상대, 성립의 방식, 그리고 그 책임을 제한하는 장치가 어떤 순서로 놓여 있는지가 드러난다.
우선 책임의 주체가 누군지가 적혀 있다. 감사인이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그 자체가 책임자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3항은 책임 주체를 넓혀 두었는데, "제1항 또는 제2항에 해당하는 감사인이 감사반인 경우에는 해당 회사에 대한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정한다. 감사반이 감사인인 경우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 개인이 연대 책임자로 함께 선다.
책임의 상대는 두 갈래로 갈린다. 회사를 향한 책임은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1항에 놓인다. 그 조문은 "감사인이 그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3자를 향한 책임은 같은 조 제2항에 놓인다. 그 조문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음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연결재무제표의 경우에 붙는 단서는 "다만, 연결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중요한 사항을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은 책임이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의 감사인에게 있는 경우에는 해당 감사인은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1항은 임무를 게을리한 사실을, 제2항은 중요한 사항의 누락 또는 거짓 기재를 각각 요건으로 삼는다.
책임은 감사인 혼자만 지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이사나 감사도 책임자로 함께 놓인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4항은 "감사인이 회사 또는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해당 회사의 이사 또는 감사(감사위원회가 설치된 경우에는 감사위원회의 위원을 말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도 그 책임이 있으면 그 감사인과 해당 회사의 이사 및 감사는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다만 같은 항 단서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가 고의가 없는 경우에 그 자는 법원이 귀책사유에 따라 정하는 책임비율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고의가 없는 자에 대해서는 연대가 아니라 책임비율에 따른 배상으로 무게가 옮겨간다.
그러나 이 단서에도 예외가 있다. 제31조 제5항은 청구권자의 소득인정액이 일정 금액 이하인 경우에 대해서 "감사인과 해당 회사의 이사 및 감사는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여 연대 책임을 되살린다. 제31조 제6항은 책임비율이 정해진 뒤 배상능력이 없는 자로 인해 손해액 일부가 배상되지 못하는 경우를 두고 "각자 책임비율의 100분의 50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손해액을 추가로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덧붙인다. 연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능력자의 몫이 일정 범위에서 다시 부활하는 구조다.
책임의 성립을 둘러싼 증명의 부담과 기한도 조문 안에 들어 있다. 제31조 제7항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다만 제7항 각 호의 자가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그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임무를 게을리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부담이 뒤바뀐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8항은 책임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기금 적립이나 보험가입 같은 필요한 조치를 요구하고, 제9항은 청구권 행사를 "그 청구권자가 해당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이내 또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날부터 8년 이내"로 제한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다만 "제10조에 따른 선임을 할 때 계약으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 사례에서 R회계법인이 회사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지는 제1항이 정한 임무 해태와 손해 발생의 요건으로 돌아와 판단할 일이고, 제3자에 대한 책임은 제2항이 정한 중요한 사항의 누락 또는 거짓 기재와 그 보고서의 믿음·이용이라는 경로로 판단할 일이다. 두 창고에서 수행된 절차와 확인서의 내용, 투자자의 이용 방식, 귀책 비율은 모두 아직 미정이다. 이 정리는 책임의 틀을 가르는 작업이며, 확정된 손해나 고의와 같은 법적 평가를 미리 내리는 것이 아니다.
4.2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제31조의 틀을 세 항으로 나누어 읽은 뒤, 이번에는 그 가운데 회사를 상대로 한 책임만을 떼어 조문의 요건을 차례로 살펴야 한다. 회사에 대한 책임은 제31조 제1항에 한 문장으로 놓여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1항은 감사인이 그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의 책임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감사인이 그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 문장에서 책임의 계기는 '임무를 게을리한 것'이고, 그 결과로 요구되는 것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것'이다. 요건의 수가 적다는 점은 책임의 틀이 단순하다는 뜻이며, 요건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조문이 요구하는 첫 번째 요건은 임무의 해태이다. '임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조문은 더 밝히지 않으므로, 감사인에게 지워진 임무의 내용은 다른 규정에서 찾아야 한다. 조문은 다만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감사인이 그 임무의 내용에 비추어 요구되는 주의를 다하지 않은 것이 요건이 된다. 회계감사기준의 내용은 이 조문에서 더 보태지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임무의 범위와 주의의 정도가 미정으로 남는다. R회계법인이 S사의 재고자산 실사를 창고 세 곳 가운데 한 곳에서만 하고 나머지는 S사가 준 확인서로 갈음한 일이 임무의 해태에 해당하는지는, 임무의 내용이 먼저 밝혀진 뒤에 판단할 일이다.
두 번째 요건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것이다. 조문은 '손해를 발생하게 한'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감사인의 해태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요청된다는 뜻이 이 표현 안에 들어 있다. 다만 손해의 산정 기준이나 확정의 시점은 이 항에서 정해져 있지 않다. S사의 재고자산 가운데 가공 재고 400억 원이 드러난 사실만으로 그 400억 원이 곧 회사가 입은 손해의 액수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두 창고에 대해 감사인이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 확인서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회사와 감사인의 귀책 비율은 미정이다. 이 정리가 곧 확정 손해나 고의와 같은 법적 평가는 아니다.
회사에 대한 책임과 제3자에 대한 책임은 조문이 서로 다른 항에 놓고 서로 다른 요건을 요구한다. 제31조 제2항은 중요한 사항의 기재 누락 또는 거짓 기재와 그 기재를 믿고 이용한 제3자의 손해를 요건으로 삼는다. 제1항은 이러한 기재나 이용의 요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사보고서의 기재가 아니라 감사인의 임무 수행 그 자체를 책임의 계기로 삼는다. 회사에 대한 책임에서 감사보고서에 무엇이 적혔는지는 요건이 아니므로, S사의 감사조서에 경영진 확인서 수령이라는 한 줄만 적혔다는 사정은 그 자체로 제1항의 요건을 이루지 않는다.
제1항의 책임을 인정하는 자가 그 책임을 다툴 때에는 입증의 부담이 뒤바뀐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7항은 감사인의 면책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다만 그 단서가 정하는 자가 감사인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청구자가 해태를 증명하여야 한다. 그 자 가운데 첫 번째가 "제10조에 따라 감사인을 선임한 회사"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이다. S사가 제10조에 따라 R회계법인을 선임한 회사라면, S사가 제1항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그 해태의 증명은 S사의 몫이 된다.
회사가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하는 시한은 같은 조 제9항에 놓여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9항은 소멸시효를 "그 청구권자가 해당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이내 또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날부터 8년 이내에 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한다" 고 정한다. 단서는 선임 시 계약으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음을 둔다. S사의 가공 재고가 드러난 지 2년이 지났으므로, S사가 그 사실을 안 시점과 감사보고서 제출일이 언제인지에 따라 이 항의 시한이 걸리는지가 달라진다. 회사와 감사인 사이의 별도 계약 내용은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4.3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회사에 대한 책임의 요건을 조문에서 뽑아 본 다음에는, 같은 조가 제3자를 상대로 한 책임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따로 살펴야 한다. 외부감사법 제31조는 회사에 대한 책임과 제3자에 대한 책임을 각각 다른 항에 나누어 두고 있다. 제31조 제2항은 그 문언을 다음과 같이 둔다.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음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사례에서 R회계법인이 S사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재고자산 금액을 어떻게 기재했는지, 그 기재가 중요한 사항에 관한 것인지, 400억 원의 가공 재고가 기재와 어떻게 어긋나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같은 항은 연결재무제표의 경우에 대한 단서를 붙인다. "다만, 연결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중요한 사항을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은 책임이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의 감사인에게 있는 경우에는 해당 감사인은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단서는 연결재무제표에 관한 잘못된 기재의 책임이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의 감사인에게 있는 경우에 그 감사인을 제3자 책임의 주체로 끌어온다. 이 사례는 S사 단독의 재고자산 실사를 다루므로 연결재무제표에 관한 책임의 소재는 여기서 확정되지 않는다.
제3자 책임의 성립에 붙는 문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음"이라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제3자가 감사보고서를 "믿고 이용한" 뒤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관계이다. 조문은 이 관계를 손해의 발생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로 둔다. 이 사례에서 투자자가 감사보고서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미정이므로, 조문이 요구하는 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
제31조 제7항은 책임을 면하기 위한 증명의 분담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그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임무를 게을리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이 항은 제3자 책임의 경우에도 감사인이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도록 둔 뒤, 같은 항 각 호의 청구권자에 대해서는 그 입책을 뒤집는다. 이 사례에서 청구를 구하는 주체가 어느 쪽인지는 미정이다.
제31조 제4항은 감사인과 회사의 이사 및 감사가 함께 책임을 지는 경우를 둔다. "감사인이 회사 또는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해당 회사의 이사 또는 감사(감사위원회가 설치된 경우에는 감사위원회의 위원을 말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도 그 책임이 있으면 그 감사인과 해당 회사의 이사 및 감사는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같은 항 단서는 고의가 없는 자의 책임비율을 다음과 같이 조정한다. "다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가 고의가 없는 경우에 그 자는 법원이 귀책사유에 따라 정하는 책임비율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사례에서 회사와 감사인의 귀책 비율은 미정이므로 책임의 분담은 여기서 가르지 않는다.
위의 인용에서 조문이 제3자 책임의 요건으로 둔 것은 중요한 사항에 관한 기재의 누락 또는 거짓, 그 기재를 믿고 이용한 제3자, 그리고 그로 인한 손해이다. 조문이 쓰지 않는 신뢰의 범위나 이용의 시점 같은 요건을 여기서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이 사례의 미정 사항은 남아 있고,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는 문언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따로 살펴야 한다.
4.4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함
제31조가 회사에 대한 책임을 성립시키는 데 필요한 요건으로 무엇을 적어 두었는지 조문의 문구를 차례로 살핀다. 이 문언이 회계감사기준 준수 여부와 같은 판단으로 곧바로 옮겨지는지 여부는 이 자리에서 단정하지 않으며, 회계법인이 실제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여기서는 내리지 않는다.
우선 손해를 입힐 주체를 향한 요구가 어느 문장 안에 들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회사에 대한 책임을 다룬 항에서는 손해의 원인이 감사인의 행위가 아니라 태도에 놓여 있다. 그 요건을 규정한 문장은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제1항에 다음과 같이 놓여 있다. "감사인이 그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 문장은 책임의 주체인 감사인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묻고, 그 결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를 함께 요구한다.
다음으로 문언이 두는 기준의 위치를 살펴보면, 행위의 구체적 양태를 나열하지 않고 있다. 문장은 감사인이 실제로 무엇을 하였는지를 항목으로 적지 아니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 소홀하였다는 점 하나로 요건을 삼는다. 따라서 이 사례에서 회계법인이 두 개의 창고에 대하여 어떤 절차를 수행하였는지, 확인서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에 관한 사실은 미정으로 남아 있고, 문언이 요구하는 태도의 판단에는 확인할 사항이 남아 있다.
한편 제31조는 제3자에 대한 책임을 정하는 항에서 다른 요건을 쓰고 있다. 같은 법 제31조제2항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음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 문장은 임무를 게을리하였다는 표현을 쓰지 아니하고, 감사보고서의 기재에 관한 요건을 둔다.
이 사례에서 드러난 가공 재고 400억 원이 두 항 가운데 어느 항의 판단 대상에 해당하는지, 투자자가 감사보고서를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는 미정이다. 다만 문언상으로는 회사에 대한 책임의 요건과 제3자에 대한 책임의 요건이 서로 다르게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이 문언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별도로 정하여 두지 않았다. 조문은 감사인이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고만 적고, 그 증명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아니한다. 회계법인이 창고 세 곳 가운데 한 곳에서만 실사를 하고, 감사조서에 경영진 확인서를 받았다는 취지의 한 줄만 적은 사정이 이 문언의 판단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4.5입증책임이 놓인 자리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보이는 책임이 누구에게 놓이는지는, 외부감사법 제31조 제7항의 문언이 놓인 자리에서 읽는다. 같은 항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 문언은 증명의 주체를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로 특정하고, 증명의 대상을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으로 둔다. 곧 입증책임의 자리를 조문 자체가 감사인 쪽에 두고 있다.
이어지는 단서는 그 자리를 옮겨 놓는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그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임무를 게을리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정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여기서 증명의 주체는 청구인이 되고, 증명의 대상은 임무를 게을리하였음이 된다. 단서는 그 자를 여섯 가지로 한정한다. 제1호는 "제10조에 따라 감사인을 선임한 회사"이고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나머지 호는 은행, 농협은행 또는 수협은행, 보험회사, 종합금융회사, 상호저축은행을 차례로 적는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 목록 밖의 청구인에 대해서는 단서가 적용되지 않는다.
R회계법인이 S사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지의 문제는 단서의 목록과 견주어 본다. 단서 제1호가 적는 자는 "제10조에 따라 감사인을 선임한 회사"이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S사가 감사인 선임 주체에 해당하는지는 이 문언과 대조하여 판단할 사정이고, 그 판단이 서면 제1항의 임무 해태로 인한 회사에 대한 책임에서 증명의 주체가 정해진다. 미정인 사례 사실은 이 문언의 요건에 놓인 채 남는다.
S사가 단서의 목록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 또는 제3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방향이 뒤집힌다. 제3자에 대한 책임은 제2항이 정하고, 같은 항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음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둔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 경우 제7항 본문이 적용되어 감사인이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단서의 목록에 해당하지 않는 자가 청구인이므로, 그 청구인이 임무 해태를 증명하여야 한다는 전환이 놓일 자리는 없다.
조문이 두는 증명의 자리는 그 문언의 범위에서 확인한 것으로 족하다. 제7항이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의 증명을 감사인에게 두는 경우와, 단서가 그 증명을 청구인에게 옮기는 경우를 구별하여 놓고, 어느 쪽인지는 청구인이 단서의 각 호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이 문언의 자리 밖에서 다른 증명책임 규칙을 끌어와 이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은 이 단계의 일이 아니다.
4.6제31조 요건의 정리
임무 게을리의 입증책임을 누가 지는지가 정해진 뒤에는, 그 문언이 가리키는 책임의 요건을 항별로 되짚어 놓아야 한다. 외부감사법 제31조는 회사에 대한 책임과 제3자에 대한 책임을 나란히 두면서, 각 책임이 성립하는 조건과 면책의 증명을 따로 적고 있다. 정리의 순서는 조문의 순서를 따르되, R회계법인과 S사의 일에 비추어 그 요건이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지 확인하는 데 둔다.
회사에 대한 책임은 감사인의 임무 게을리와 그로 인한 손해 발생을 요건으로 한다. 외부감사법 제31조제1항은 "감사인이 그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이 항의 요건은 임무를 게을리한 행위와 회사에 발생한 손해의 연결이다. S사에 드러난 가공 재고가 회사에 어떤 손해를 놓았는지는 미정이므로, 그 요건의 충족 여부도 미정으로 남는다.
제3자에 대한 책임은 중요한 사항의 누락 또는 거짓 기재와 그 기재를 믿고 이용한 제3자의 손해를 요건으로 한다. 외부감사법 제31조제2항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음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이어서 "다만, 연결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중요한 사항을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은 책임이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의 감사인에게 있는 경우에는 해당 감사인은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단서를 둔다. 이 항은 감사보고서의 기재를 매개로 삼으므로, R회계법인이 창고 두 곳에 대해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 확인서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투자자가 감사보고서를 어떻게 이용했는지가 미정인 한 요건의 충족을 단정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책임을 나를 때의 관계도 조문이 정한다. 외부감사법 제31조제3항은 "제1항 또는 제2항에 해당하는 감사인이 감사반인 경우에는 해당 회사에 대한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4항은 "감사인이 회사 또는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해당 회사의 이사 또는 감사(감사위원회가 설치된 경우에는 감사위원회의 위원을 말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도 그 책임이 있으면 그 감사인과 해당 회사의 이사 및 감사는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이어서 같은 항 단서는 "다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가 고의가 없는 경우에 그 자는 법원이 귀책사유에 따라 정하는 책임비율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한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회사와 감사인의 귀책 비율이 미정인 사안에서는, 이 단서가 가리키는 책임비율의 확정 역시 앞의 요건이 정해진 뒤에야 비로소 문제될 자리를 남긴다.
면책의 증명과 청구기간은 조문이 따로 적고 있다. 외부감사법 제31조제7항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되,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그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임무를 게을리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예외를 둔다. 같은 조 제9항은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그 청구권자가 해당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이내 또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날부터 8년 이내에 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다만, 제10조에 따른 선임을 할 때 계약으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이렇게 놓인 요건과 증명의 자리를 정리하면, 제31조는 감사인의 임무 게을리와 손해의 발생을 축으로 삼되, 회사와 제3자에 따라 매개물과 증명의 방향을 달리한다. 감사조서에 경영진 확인서를 받았다는 한 줄만 남은 일은 임무 게을리의 판단을 끌어올 근거로 소명되지 않으므로, 그 판단은 미정으로 남는다. 자본시장법 제170조가 이 틀에서 어느 자리를 놓을지는 별도로 읽어야 할 문제이며, 여기서 미리 단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