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제422조가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을 때 두는 방식과 제420조 사유와의 관계를 조문에서 읽는다. 확정판결로 증명할 사유와 대체 증명이 발동하는 조건, 대신하는 증명의 성격을 차례로 살피고 두 조문이 연결되는 방식을 정리한다. 제422조에 따른 증명이 실제로 충족되었는지의 판단은 이 장에서 다루지 않는다.
4.1제422조가 놓인 자리
제420조와 제421조에서 확인한 재심사유와 범위를 제422조가 받들어 서는 자리를 짚어 보기 전에, 이 조문이 확정판결에 대신하여 요구하는 증명이 어떤 사유에 붙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에 관하여 "전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한다(형사소송법 제422조). 문언이 가리키는 자리는 분명하다. 전2조가 정한 사유 가운데 범죄의 증명을 확정판결에 맡기는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한하여 다른 증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증명의 대상은 재심사유의 성립이 아니라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조문의 후단은 예외를 분명히 붙인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대신하는 증명이 허용되지 않는다. 확정판결을 얻지 못한 사정이 증거의 부족에 있는 경우라면, 재심청구인이 그 사정을 다른 증명으로 메울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구인이 내세울 증명은 증거 부족이 아닌 다른 사유로 확정판결을 구할 수 없음을 가리켜야 한다.
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의 반대의견은 이 자리에 붙는 증명의 정도를 이렇게 밝힌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하였고, 제422조도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을 열어두고 있으나 그 증명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므로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자리에 놓이는 증명은 확정판결의 공백만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확정판결이 맡았던 범죄의 증명을 그 정도로 떠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반대의견은 장시간의 경과가 증명의 정도를 낮추지 못함을 분명히 한다. "형사소송법은 장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사정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공소시효가 완성한 경우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다른 방법에 의한 증명을 허용하고 있을 뿐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고 있지는 않으므로(형사소송법 제422조), 설령 장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사법경찰관의 직무범죄를 증명할 충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게 된 경우라도 법원으로서는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의 증명이 없는 이상 증거부족을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하여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 이는 제422조 후단이 붙인 예외와 같은 방향에서 읽힌다. 확정판결이 남지 않았다는 사정을 시간의 흐름 탓으로 돌리더라도, 남은 증명이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에 이르지 못하면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제422조가 두는 자리는 앞선 두 조문의 끝에 붙어 있다. 전2조가 정한 사유의 틀을 떠나 대신하는 증명이 설 자리는 없다. 확정판결로 증명할 사유가 무엇인지, 그 사유에 어떤 표지가 붙는지는 앞선 조문에서 읽어 가려내야 한다.
이를 합성 사례에 적용하면, 유전자의 검출이나 목격자의 새 말이 곧바로 이 조문의 증명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어떤 사유를 근거로 하는지,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는지, 증거 부족에 해당하는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확정된 유죄의 증거가 흔들리는지 살피는 작업은 이 자리에서 사유를 먼저 가리는 일로 이어진다.
4.2확정판결로 증명할 사유
제422조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의 자리를 옮겨놓은 까닭을 헤아린 뒤, 이제 그 대체 증명이 붙는 사유가 무엇인지 제420조의 각 호에서 가려내야 한다. 즉,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다고 적힌 사유와 그렇지 않은 사유를 문언만으로 갈라놓는 일이 남았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이유를 일곱 가지로 적고 있다. 그 가운데 확정판결이 증명의 수단으로 직접 적힌 사유를 먼저 세어 보면, 제1호는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임이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를 꼽는다. 이 호는 증거의 형태를 서류와 증거물로 한정하고 위조와 변조라는 두 가지 결함만을 다룬다. 증언과 관련된 제2호는 "원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임이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로 사유를 좁힌다. 증언에 덧붙여 감정·통역·번역을 함께 놓았으나, 결함의 성질은 허위라는 하나로 모아진다. 제3호는 "무고로 인하여 유죄를 선고받은 경우에 그 무고의 죄가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를 사유로 삼는다. 이 호에서 확정판결이 증명하는 것은 무고의 죄이며, 유죄 선고와 무고 사이의 인과가 함께 적혀 있다.
직무에 관한 죄를 다루는 제7호는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가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다만, 원판결의 선고 전에 법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 대하여 공소가 제기되었을 경우에는 원판결의 법원이 그 사유를 알지 못한 때로 한정한다."(형사소송법 제420조)고 적는다. 단서는 공소 제기 시기와 원판결 법원의 인지를 한정하므로, 확정판결로 증명할 사유를 읽을 때 함께 따라가야 한다. 이 호의 문언이 두는 표지에 관하여 대법원 2018. 5. 2. 자 2015모3243 결정은 수사기관이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한 경우를 두고 "불법체포·감금의 직무범죄가 인정되는 경우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같은 결정은 헌법 제12조 제3항이 영장주의를 천명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를 위 재심사유가 규정하는 대표적인 직무범죄로 꼽는다. 이 판시는 제7호의 적힌 사유에 준하는 경우까지 이 호로 다루는 경계를 가리킬 뿐이며, 확정판결로 증명할 사유를 조문 밖에서 새로 늘리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제4호는 "원판결의 증거가 된 재판이 확정재판에 의하여 변경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로만 적는다. 제6호 역시 "저작권,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또는 상표권을 침해한 죄로 유죄의 선고를 받은 사건에 관하여 그 권리에 대한 무효의 심결 또는 무효의 판결이 확정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를 사유로 삼을 뿐이다. 나머지 제5호는 "유죄를 선고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또는 면소를,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가벼운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를 사유로 삼는다. 이 호는 확정판결이 아니라 새로 발견된 명백한 증거를 표지로 삼는다. 위 네 호의 사유는 확정판결을 증명의 수단으로 요구하므로, 제422조가 두는 대체 증명의 자리는 그 네 호에 붙는다. 제5호와 같이 다른 표지를 적은 사유에는 제422조를 그대로 붙일 수 없고, 제4호와 제6호가 적은 확정재판·무효 심결·무효 판결이 제422조의 확정판결에 함께 담기는지는 문언만으로 확정되지 않으므로 미정으로 남긴다.
다만 여기서 읽어 뽑은 것은 조문이 적어 놓은 표지뿐이다. 확정판결이 위조·변조나 허위, 무고의 죄, 직무에 관한 죄를 증명한다고 적힌 문언이 곧 그 증명에 나설 확정판결의 범위와 시기까지 새로 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례에서 수사기관이 보관해 온 증거물에서 다른 사람의 유전자가 검출된 사실이나, 목격자가 당시 경찰의 암시를 받았다고 말한 사실이 어느 호의 표지에 놓일지도 지금 정해지지 않았다.
4.3대체 증명이 발동하는 조건
제422조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를 대체 증명이 시작되는 자리로 두고 있다. 앞 절이 확정판결로 증명할 사유의 표지를 가려낸 것에 이어, 이 절은 그 자리가 열리는 조건을 조문의 문언에서 읽어내는 한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살핀다.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의 처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전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형사소송법 제422조) 이 조문은 전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하는 경우를 전제로 둔다. 여기서 말하는 확정판결은 앞 절에서 확인한, 확정판결로 증명해야 하는 사유에 대응하는 확정판결이다. 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재심청구의 이유가 문제인 때에는 이 조문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체 증명이 열리는 첫째 조건은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문언은 확정판결을 얻으려는 시도가 성립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킬 뿐, 그 시도가 왜 성립하지 못했는지의 사정을 따로 정해 두지 않는다. 따라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인지는 이 조문 밖에서 정해져야 하며, 조문만으로는 그 까닭을 특정할 수 없다.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이르는 경로가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음과 확정판결의 존재를 엄격히 구별하는 태도와도 이어진다. 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은 판결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정과 판결 자체가 없는 것은 다르다고 본다. 판결서 발견 여부만으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를 규정하지 않는 취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사례에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유전자의 출처, 목격자의 새 진술이 이루어진 경위, 증거물의 보관 상태가 모두 미정인 채로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대체 증명이 열리는 둘째 조건은 단서가 배제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단서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선언한다. 이 문언은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증거의 부재에 있는 때를 대체 증명의 문 밖에 둔다. 다시 말해 단서가 말하는 예외는 확정판결을 얻지 못한 사정이 증거 부족에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 다만 단서가 배제하는 증거의 부재와 대체 증명이 요구하는 증명의 정도는 구별되어야 한다. 위 결정의 반대의견은 그 경계를 이렇게 긋는다. "형사소송법은 장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사정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공소시효가 완성한 경우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다른 방법에 의한 증명을 허용하고 있을 뿐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고 있지는 않으므로(형사소송법 제422조)"(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 이 인용은 대체 증명의 문이 열린다 하더라도 남은 증명의 부담이 줄어들지는 않음을 분명히 한다. 이 사례에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것인지, 혹은 다른 사정에 의한 것인지는 미정이다. 따라서 단서가 이 사례에 적용되는지 역시 단정할 수 없다.
이 사례의 나열된 사실들은 대체 증명의 발동 여부를 판단하는 재료일 뿐이다. 유전자가 누구의 것인지, 목격자의 새 말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증거물이 어떤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는지, 원판결 당시 피고인 측이 이 증거물과 감정 가능성을 알았는지, 경찰의 암시가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모두 미정이다. 이 사정들은 재심이유를 구성하는 확정된 유죄의 증거들이 흔들리는지 살피는 데 쓰이는 사실들이다. 제422조가 요구하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는지, 단서가 배제하는 증거 부재의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이 사실들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결국 제422조의 대체 증명은 전2조의 사유에 해당하고,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으며, 그 까닭이 증거의 부재가 아닌 때에 한정하여 발동한다. 이 세 요건 가운데 어느 것도 이 사례에서 확정되어 있지 않다.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라는 문언은 이유의 종류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은 단서로 되돌려 보내므로, 이 사례의 전개에 따라 대체 증명의 문이 열릴지 닫혀 있을지가 정해진다.
4.4대신하는 증명의 성격
대체 증명이 시작되는 자리를 문언으로 확인한 뒤에 남는 것은 그 증명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다.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확정판결에 대신하여 증명할 대상을 무엇으로 삼는지, 그 증명이 확정판결을 어떤 자격으로 대체하는지를 한 문장 안에 함께 두고 있다. 그 문언을 끊어 읽어 대신하는 증명의 성격을 가려 낸다.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대체 증명의 출발점을 이렇게 밝힌다. "전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422조) 이 문장은 증명할 대상을 "그 사실"로 정한다. 여기서 "그 사실"은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된다는 사실, 다시 말해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6호에 따른 재심사유의 요건사실이다. 대체 증명이 범죄의 존재를 직접 새로 증명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증명은 무엇에 대한 확정판결을 대신하는가.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를 전제로 두고, 확정판결이 얻어지지 않은 사정을 그대로 둔 채 "그 사실"만을 증명하게 한다. 확정판결이 얻어졌다면 그 판결 자체가 범죄의 증명이 된다. 확정판결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그 자리를 대신하는 사실의 증명만 요구된다. 대체 증명이 확정판결과 같은 증명력을 가지는 것으로 문언이 나아가지 않는 까닭이다.
다만 이 대체에는 한정이 붙는다. 같은 조문 단서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못박는다. 증거 부족으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까지 그 사실의 증명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문언이 닫아 둔다. 대신하는 증명이 확정판결의 결여를 아무 때나 메우지 못한다는 점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이 사례에서 유죄를 떠받쳤던 자백과 목격자 진술, 혈액형 감정이 흔들리는지는 별도로 살필 일이다. 지금 문언이 말하는 것은 대체 증명이 요건사실, 곧 확정판결로 범죄가 증명된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며,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그 사실에 부여하는 증명은 아니라는 점이다. 제422조의 증명은 그 한도 안에서만 확정판결의 빈자리를 대신한다.
4.5제420조와의 연결 방식
제422조의 대체 증명이 제420조의 사유를 어떻게 받는지 살피려면, 먼저 그 문언이 놓인 위치를 읽어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전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형사소송법 제422조)고 정한다. 이 조문은 확정판결의 증명을 대신할 수 있게 하면서도, 그 앞의 조문들이 규정한 한정된 사유를 전제로 삼는다.
제420조는 "재심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이유가 있는 경우에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하여 그 선고를 받은 자의 이익을 위하여 청구할 수 있다"고 선언한 뒤 사유를 일곱 가지로 열거한다. 그 열거는 예시가 아니라 한정이다. 이 사례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목격자의 새 말이 재심이유에 해당하려면, 제420조의 어느 한 호에 자리를 찾아야 한다. 제1호는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임이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를, 제2호는 "원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임이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를 각각 사유로 둔다. 제5호는 "유죄를 선고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또는 면소를,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가벼운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를 적는다.
그런데 각 호의 문언은 위조·변조의 증명과 허위의 증명에 관하여 "확정판결에 의하여"라는 말을 함께 붙인다. 제422조는 이 말이 붙은 증명을 확정판결로 갈음할 자리를 마련하는 조문이다. 따라서 제422조가 그대로 받아 조건을 바꾸는 것은 확정판결로 증명되는 사실이다. 이 사례에서 유전자의 검출이나 목격자의 말은, 원판결의 증거물이 변조되었거나 증언이 허위였다는 사실을 확정판결 없이 입증하는 수단으로 취급될 뿐이다. 그 사실 자체가 새로운 재심이유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제422조와 제420조의 관계는 두 조문을 함께 붙여 읽는 방식으로 확인된다. 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은 군경이 구속영장 없이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사건에서, "위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를 밝혔다. 같은 결정의 다수의견은 "재심의 청구를 받은 법원은 재심청구 이유의 유무를 판단함에 필요한 경우 사실을 조사할 수 있고(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공판절차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닌 점"(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을 이유 가운데 둔다. 제422조가 열어 둔 증명의 방법이 제420조의 사유를 판단하는 절차 안에서 작동함을 보여준다. 이 사례에서 유전자의 검출과 목격자의 새 말도, 사유의 존재를 판단할 때 조사할 사실의 재료로 놓일 뿐이다.
다만 같은 결정의 반대의견은 그 연결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하였고, 제422조도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을 열어두고 있으나 그 증명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므로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라고 밝혔다. 반대의견은 아울러 "형사소송법은 장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사정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공소시효가 완성한 경우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다른 방법에 의한 증명을 허용하고 있을 뿐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고 있지는 않으므로(형사소송법 제422조)"(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라고 덧붙인다. 제422조가 요건사실의 범위를 넓히지 않고 증명의 수단만 바꿈을 분명히 한 말이다.
결국 제422조는 제420조가 열거한 사유를 넓히는 조문이 아니라, 그 사유 안에서 요구되는 확정판결의 증명만을 다른 방법으로 채우게 하는 조문이다. 유전자의 출처가 누구인지, 목격자의 새 말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증거물이 어떤 상태로 보관되었는지가 밝혀진다 하여도, 그 사실은 제420조의 한 호가 정한 요건사실을 대체 증명하는 데 쓰일 때에만 재심청구의 근거가 된다. 제422조는 그 요건사실의 범위를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4.6이 장이 남긴 판단
대체 증명이 새로운 재심이유를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본 뒤에, 남는 것은 제422조가 요구하는 증명의 경계이다.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의 길을 다음과 같이 연다. "전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 (형사소송법 제422조) 이 문장은 확정판결 대신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마저 그 길이 닫히는지를 함께 적고 있다.
앞 장의 논의는 제422조가 제420조의 사유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조건만 바꾸는 구조임을 확인하였다. 다시 말해, 제420조 각 호의 사유 중 확정판결로 증명되는 것이 있는데 그 확정판결을 얻지 못한 경우에 대체 증명의 문이 열린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의 사유를 일곱 가지로 들며, 그중 첫째와 둘째는 각각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임이 증명된 때" 와 "원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임이 증명된 때" 를 꼽는다. 증거물의 위조·변조와 허위 진술이라는 두 자리가 모두 확정판결을 요하는 증명으로 묶여 있다.
이 사례에서 유죄를 떠받친 증거는 자백, 목격자 한 사람의 진술, 혈액형 감정이었다. 수사기관이 보관해 온 증거물에서는 다른 사람의 유전자가 검출되었고, 그 목격자는 당시 경찰의 암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확정판결이 없는 이 상황에서 제422조의 증명이 무엇을 향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 증명은 위조나 변조의 확정판결, 허위 증언의 확정판결을 대신할 "그 사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유전자가 검출된 경위, 목격자의 진술이 암시에 빚진 방식, 증거물의 보관 상태가 어떤지에 관한 사실들이 이 자리를 겨눈다. 다만 그 유전자가 누구의 것인지, 목격자의 새 말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증거물이 어떤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는지는 아직 미정이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422조 단서는 "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 고 선을 그어 둔다. 확정판결을 얻지 못한 사정이 곧 증거가 아예 없는 때에까지 이르면, 대체 증명의 길은 그때부터 열리지 않는다. 원판결 당시 피고인 측이 이 증거물과 감정 가능성을 알았는지, 경찰의 암시가 어떤 방식이었는지도 미정이다. 이 사실들이 단서의 적용과 어떻게 맞물릴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
이 장은 여기까지다. 제422조가 확정판결 대신 요구하는 증명의 대상과 범위를 제420조의 사유와 맞물려 정리하였을 뿐이며, 이 사례에서 그 증명이 실제로 충족되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 장이 남긴 판단은 경계를 긋는 데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