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선결 쟁점과 후속 쟁점을 배열하고 법리·증거·절차 위험을 겹쳐 보는 방법을 묻는다. 선결 쟁점과 후속 쟁점의 배열, 소송허가요건의 우선 심리 범위, 책임 성립 심리의 원칙적 소외, 자기이용문서 단정의 판단 기준, 문서제출 필요와 정당한 이유, 위험의 겹침을 차례로 살핀다.
10.1선결 쟁점과 후속 쟁점의 배열
증거신청의 채택과 충분성을 확인한 뒤에는 무엇을 먼저 판단할지의 문제가 남는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므로, 쟁점을 선결과 후속으로 나누는 일은 사실 확인보다 먼저 서야 한다. 이 배열을 세울 때는 심리할 대상의 범위가 먼저 정해지는 구조를 자료에서 확인해야 한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을 한정하는 기준을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이 한정은 이 사례에서 첫 단계를 결정한다. 계약 해지와 손해액의 실체 판단은 원칙적으로 그대로 두고, 소송허가요건의 충족 여부를 먼저 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 원칙에는 한도 안의 예외가 붙어 있다. 같은 결정은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한도 안의 심리만 허용되므로, 손해배상청구 원인 행위의 심리 범위는 공통 쟁점 요건 판단에 필요한 분량에서 그친다. 이 사례의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은 그 한도 안에서만 다루어진다.
공통 쟁점 요건 자체의 의미도 같은 결정에서 확인된다. "이란 요건은 모든 구성원의 청구원인 가운데 중요사실이 공통되면 충족되고, 각 구성원의 청구에 약간의 다른 사실이 존재한다거나 개별 구성원에 대한 항변사항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위 요건이 흠결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중요한 사실이 공통되면 요건이 충족되므로, 문서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고 표현이 갈리는 사정만으로 선결 쟁점이 깨지지는 않는다. 대신 공통성 판단에 필요한 중요한 사실을 무엇으로 볼지는 여전히 미정으로 남는다.
쟁점의 배열은 결국 두 층으로 나뉜다. 먼저 소송허가요건의 충족 여부를 놓고, 그 판단에 필요한 한도에서만 손해배상청구 원인 행위를 들여다본다.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의 권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모두 그 한도에 닿는 범위에서만 기록되고, 본안 판단은 남는다. 자료가 모여 있어도 그 자체로 배열이 정해지지 않으므로, 무엇을 선결로 놓을지는 판단 순서에 달려 있다.
10.2소송허가요건의 우선 심리 범위
쟁점을 선결과 후속으로 배열한 뒤에는 각 쟁점마다 심리가 열리는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책임을 함께 주장하며 자료를 한꺼번에 내놓았으므로, 어떤 주장이 먼저 심사의 문을 지나고 어디까지 파고드는지가 우선 쟁점이다.
이 구조는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에서 확인된다. 그 결정은 우선 심리의 대상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이 인용은 심리가 우선 열리는 자리와 그 심리가 넘지 않는 경계를 함께 보여준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낸 자료 묶음이 아무리 두텁다 해도, 청구 원인이 되는 행위를 들여다보는 것은 공통 쟁점을 가늠하는 데 쓰일 때에만 허용된다.
우선 심리의 첫 자리는 소송허가요건이다. 같은 결정은 요건의 충족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한도를 전제로 한다. 이 한도는 심리의 깊이를 자른다.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을 확정하는 심리까지 나아가지 않는 범위에서만 원인이 되는 행위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이 사례에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미정이다. 계산 기준을 확정하기 위한 심리와 공통 쟁점의 존재를 가늠하기 위한 심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 놓인다.
우선 심리에 오르는 요건 가운데 공통 쟁점 요건은 이 사례의 자료가 모여 있는 모습과 맞닿는다. 같은 결정은 이 요건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란 요건은 모든 구성원의 청구원인 가운데 중요사실이 공통되면 충족되고, 각 구성원의 청구에 약간의 다른 사실이 존재한다거나 개별 구성원에 대한 항변사항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위 요건이 흠결된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이 기준은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이 서로 다른 시점에 작성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공통 쟁점이 무너지지 않음을 뜻한다. 다만 어떤 버전이 적용되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한편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다른 표현으로 옮겼다는 사정은 이 사례의 절차적 맥락을 더한다. 같은 결정은 심리의 목적을 공통 쟁점의 확인에 두되, 판단에 필요한 한도 안에서 원인이 되는 행위를 본다. 따라서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를 당시 의사결정의 증거로 삼을지는 이 한도 안에서 가려질 일이다.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어도, 우선 심리의 자리는 그 설명들의 차이를 이유로 앞서 달라지지 않는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라는 전제는 이 구분을 지킬 때 비로소 유지된다.
10.3책임 성립 심리의 원칙적 소외
소송허가요건이 먼저 심리 대상에 놓인다면,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가 그 심리 범위에 들어오는지는 별도로 확인할 문제이다.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을 함께 주장하며 다수의 문서와 금융 기록을 제출한 사안에서, 그 자료들이 책임 성립의 판단을 위해 지금 다루어져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이 물음의 출발점을 소송허가절차의 구조에서 잡는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먼저 절차 분리의 근거를 밝힌다. 그 결정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제2장 소의 제기 및 허가 절차’에 관한 부분에서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허가요건을 별도로 정하고(제11조, 제12조), 대표당사자가 소송허가 신청의 이유를 소명하도록 하며(제13조 제1항), 소송허가요건에 적합한 경우에만 결정으로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허가하도록 하는(제15조 제1항) 등 소송허가결정이 확정되어야 비로소 본안소송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집단소송이라는 특수한 절차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인 소송허가절차와 집단소송의 본안소송절차를 분리하고 있다"고 판시한다. 이 인용에서 소송허가절차는 본안의 판단을 앞당겨 하는 자리가 아니라 집단소송 진행 필요성만을 가리는 절차로 설정된 것이 드러난다.
같은 맥락에서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심리 대상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못 박는다. "따라서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 이 선에 따르면 계약 해지의 효력이나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은 그 자체로는 소송허가절차의 심리 대상에 들지 않는다. 제출된 계약서 버전과 변경 이메일이 각각 어떤 효과를 갖는지는, 소송허가 단계에서 정리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다만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 예외는 책임 성립 자체를 재판하는 권한이 아니라 공통성 요건의 판단에 필요한 범위의 심리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 여러 문서의 작성 시점 차이나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의 표현 차이가 공통 쟁점의 존재를 가늠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 다루어질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책임의 유무가 확정되지는 않는다.
이미 확인한 소송허가요건의 우선 심리 구조와 맞물려 보면,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은 심리 대상의 선정을 좌우하지 않는다.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가 한꺼번에 제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제출 사실만으로 책임 성립에 관한 심리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공통성 요건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 원인이 되는 행위를 살필 수 있다는 것과,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을 소송허가절차에서 확정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이 사안에서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이 미정이고, 변경 합의에 관한 권한의 귀속이 미정이며,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이라면, 그 미정의 상태는 소송허가절차에서 책임 성립을 앞서 결정해야 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이 소송허가요건으로 한정되고,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가 원칙적으로 그 심리 대상에서 소외된다는 위 판시의 구도 안에서, 미정 사항은 미정으로 남겨 둔 채 본안의 문제로 넘겨 두는 것이 그 판시가 그어 놓은 선에 부합한다.
10.4자기이용문서 단정의 판단 기준
책임 성립의 심리 여부를 차점으로 미룬 채, 지금은 상대방이 내놓은 문서 더미를 놓고 자기이용문서의 단정 기준이 무엇인지 묻는다.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 기관 제출용 설명이 한편에 섞여 있고 그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므로, 어느 문서를 내어놓혀야 하는지의 판단은 문서 자체의 성격에서 출발한다.
문서제출 거부의 예외사유는 법문이 정한 바에 한정되며,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은 민사소송법 제344조 제2항이 "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제344조 제1항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문서의 제출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면서 예외사유로서 ‘오로지 문서를 가진 사람이 이용하기 위한 문서’(이른바 ‘자기이용문서’)를 들고 있다"고 밝혔다. 자기이용문서는 제출 거부의 예외이므로, 그 범위를 넓게 읽는 것은 예외를 원칙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하는지의 기준으로 그 결정은 "어느 문서가 오로지 문서를 가진 사람이 이용할 목적으로 작성되고 외부자에게 개시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개시할 경우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생길 염려가 있다면, 문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규정의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한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고 보았다. 세 가지 요건, 즉 작성 목적상의 자기 이용, 외부 개시의 부예정, 개시 시 심각한 불이익의 염려가 함께 놓여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제시된 문서가 위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지는 판단의 출발점에서 확인할 일이지, 문서가 내부 결재를 거쳤다는 사실 하나로 대신할 성질이 아니다.
판단 방법에 관하여 그 결정은 "여기서 어느 문서가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하는지는 문서의 표제나 명칭만으로 판단하여서는 아니 되고, 문서의 작성 목적, 기재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 당해 유형·종류의 문서가 일반적으로 갖는 성향, 문서의 소지 경위나 그 밖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데, 설령 주관적으로 내부 이용을 주된 목적으로 회사 내부에서 결재를 거쳐 작성된 문서일지라도, 신청자가 열람 등을 요구할 수 있는 사법상 권리를 가지는 문서와 동일한 정보 또는 직접적 기초·근거가 되는 정보가 문서의 기재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 객관적으로 외부에서의 이용이 작성 목적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는 볼 수 없는 경우, 문서 자체를 외부에 개시하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문서에 기재된 ‘정보’의 외부 개시가 예정되어 있거나 정보가 공익성을 가지는 경우 등에는 내부문서라는 이유로 자기이용문서라고 쉽게 단정할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고 밝혔다. 문서 표제는 서류철의 정리에 도움이 될 뿐이고, 법적 성격은 작성 목적과 기재 정보, 같은 종류 문서의 성향, 소지 경위를 함께 보아 판단된다. 이 사례에서 계약서의 표제와 메일 제목이 서로 어긋나 있다는 점은 표제만으로 단정할 수 없음을 뒷받침할 뿐이다.
주관적 내부 이용 목적과 회사 내부 결재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앞 인용은 내부 결재를 거쳤더라도 신청자가 열람을 요구할 수 있는 정보와 겹치는 문서를 자기이용문서로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한정한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의 의사결정을 같은 일에 대해 다르게 표현하여 남긴 경우, 그 설명은 내부 결재라는 외양과 무관하게 신청자가 열람을 요구할 수 있는 정보와 겹치는지가 따져져야 한다. 미리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사정들의 종합이며, 같은 상대방에 대해 민사로 낸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을 때에는 문서의 소지 경위와 기재 정보가 함께 고려 대상이 된다.
여기서 읽은 기준을 이 사건의 문서 더미에 그대로 적용하면, 문서마다 작성 목적과 기재 정보, 소지 경위를 나누어 살피되, 권한 있는 자의 변경 합의인지,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언제인지와 같은 쟁점은 아직 미정으로 남는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출 의무가 생기거나, 내부 결재의 흔적만으로 거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10.5문서제출 필요와 정당한 이유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 법원은 거부사유를 넘어 문서제출 자체를 명할 근거를 따로 살핀다.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은 거부사유의 인정 여부와 별개로 법원이 판단해야 할 두 단계의 관문을 이렇게 제시한다. "한편 자기이용문서 등 문서제출 거부사유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290조에 따라 제출명령신청의 대상이 된 문서가 서증으로서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제출명령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있고, 민사소송법 제347조 제1항에 따라 문서제출신청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 결정으로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제출을 명할 수 있으므로"(…) 이 결정은 거부사유의 부존재만으로 제출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제출의 필요는 서증으로서의 필요함과 관련한다. 같은 결정은 서증 신청의 한 방식으로서 문서제출명령을 파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그것을 제출하도록 명할 것을 신청하는 것은 서증을 신청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므로, 법원은 제출명령신청의 대상이 된 문서가 서증으로서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제출명령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있다."(…) 이를 받아 적용하면, 계약서 여러 버전이나 자금 기록이 목록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서증의 필요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 문서가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지가 먼저 자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증명하려는 사항이 청구와 직접 관련되는지도 별도로 본다. "또한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된 문서에 의하여 증명하고자 하는 사항이 청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있다."(…) 해지의 효력이나 손해액의 산정이라는 쟁점과 이어지지 않는 문서는 이 요건에서 걸러질 수 있다.
정당한 이유의 판단에서는 형량이 요구된다.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은 고려할 사정을 이렇게 열거한다. "문서가 쟁점 판단이나 사실의 증명에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 다른 문서로부터 자료를 얻는 것이 가능한지, 문서 제출로 얻게 될 소송상 이익과 피신청인이 문서를 제출함으로 인하여 받게 될 부담이나 재산적 피해 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법인 내부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및 영업 비밀, 기타 권리에 대한 침해와의 비교형량 및 기타 소송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이 사정들은 빠짐없이 주어진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판단의 지표다. 출처가 표기한 범위를 벗어나는 요소는 여기에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이 결정이 함께 밝힌 범위가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라는 사정만으로 거부가 되지 않음을 확인하면서, "임직원의 급여 및 상여금 내역 등이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에 해당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문서소지인이 문서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정보의 성격이 형량의 한 축이 될 수는 있어도 거부의 단독 근거는 되지 못한다. 이 사례에서 정당한 이유의 유무는 미정이며, 문서제출의 필요와 정당한 이유는 개별 사안의 제출 목록과 쟁점 구성을 놓고 그때 판단할 몫으로 남는다.
10.6법리·증거·절차 위험의 겹침
선결 쟁점의 순서를 정하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배열 위에 법리·증거·절차 위험이 겹친 장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를 함께 주장하며 계약서 버전,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은 장면에서,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법적 평가를 이루지 않는다.
먼저 법리 위험의 자리를 정해야 한다. 이 장면에서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이 미정이고, 변경 합의에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도 미정이므로, 법원이 어느 쟁점을 먼저 다룰지 정하는 데 필요한 한도 안에서 선행 판단이 이뤄진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절차의 분리를 전제로 심리 대상을 구분한다. “따라서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이 판례는 필요한 한도의 심리와 본안의 심리를 나누는데, 이 사례에서 그 한도는 계약 버전과 권한의 소재가 어느 쪽인지에 걸쳐 있다.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인 사정은, 쟁점마다 그 한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다음으로 증거 위험이 그 위에 겹친다. 상대방이 내놓은 문서와 메시지는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고,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는 항목이 섞여 있다.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은 문서제출 거부사유가 인정되지 않을 때의 판단 기준을 밝힌다. “한편 자기이용문서 등 문서제출 거부사유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290조에 따라 제출명령신청의 대상이 된 문서가 서증으로서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제출명령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있고, 민사소송법 제347조 제1항에 따라 문서제출신청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 결정으로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제출을 명할 수 있으므로, 문서가 쟁점 판단이나 사실의 증명에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 다른 문서로부터 자료를 얻는 것이 가능한지, 문서 제출로 얻게 될 소송상 이익과 피신청인이 문서를 제출함으로 인하여 받게 될 부담이나 재산적 피해 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법인 내부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및 영업 비밀, 기타 권리에 대한 침해와의 비교형량 및 기타 소송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과연 문서제출이 필요한지 및 문서제출신청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여기서 쟁점 판단이나 사실의 증명에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가 핵심 기준인데, 이 사례의 문서와 메시지 목록은 그 필요성을 쟁점별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을 낳는다. 같은 결정은 증거의 구체적 사정을 평가할 때의 기준도 제시한다. “나아가 어느 정보가 보호가치 있는 비밀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정보의 내용과 성격, 정보가 공개됨으로써 문서 소지자에게 미치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민사사건의 내용과 성격, 민사사건의 증거로 문서를 필요로 하는 정도 또는 대체할 수 있는 증거의 존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비밀의 공개로 발생하는 불이익과 이로 인하여 달성되는 실체적 진실 발견 및 재판의 공정을 비교형량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그 사정의 종합을 이 사례에 옮겨 보면, 목록에만 있고 파일이 없는 항목과 대체할 수 있는 증거의 존부는 같은 축에 놓인다.
절차 위험은 이 두 위험을 하나의 그림에 겹친다. 대표당사자가 선택한 방법에 따라 범위를 확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적용 범위에 해당하는 주식 발행회사 등의 법령 위반행위로 문제가 되는 주식을 취득하였다가 이를 피해기간 동안 그대로 보유하지 않고 일부를 처분하였으나 손해배상을 구하는 주식이 언제 취득한 주식인지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 먼저 취득한 주식을 먼저 처분한 것으로 의제하는 이른바 선입선출법과 나중에 취득한 주식을 먼저 처분한 것으로 의제하는 이른바 후입선출법 등의 방법이 있고, 총원의 범위를 어떤 방법으로 특정하는지에 따라 총원의 범위와 손해액의 규모에 차이가 생길 수 있지만, 대표당사자가 선택한 방법이 특히 불합리하다거나 그 방법에 의하여 총원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표당사자가 선택한 방법에 따라 총원의 범위를 확정할 수 있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인 이 사례에서, 그 방법에 따라 규모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사정은 절차 위험과 계산 위험을 한 점에서 만나게 한다.
이상에서 법리 위험과 증거 위험, 절차 위험이 한 장면 위에 겹쳐 있음이 드러났다. 이 겹침은 자료 추가의 가치가 어느 쟁점에서 생기는지, 그리고 보류·진행·축소·종결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결코 대신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은 판단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