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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설계도: 사실·쟁점·입증책임의 통합 재구성 · II-01 · Chapter 7 · First edition

입증책임의 틀: 증명 대상, 주장 책임, 증명 책임

절차별 증명 대상과 판단 기준을 정한 뒤 주장 책임과 증명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Length
about 2,900 words · 13 min
Sources
5 statutes · 3 decisions
As of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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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mmary
  2. 7.1절차별 증명 대상의 한정
  3. 7.2증명의 정도와 판단 기준
  4. 7.3주장 책임과 증명 책임의 구별
  5. 7.4불요증사실과 반증의 자리
  6. 7.5입증 방해와 자료 사용의 효과
  7. 7.6쟁점별 입증 책임의 배분
  8. Statutes referred to
  9. Decisions referred to

Synthetic case The parties and facts in this chapter come from the volume's synthetic case, not from a real matter.

Summary

절차별 증명 대상과 판단 기준을 정한 뒤 주장 책임과 증명 책임을 나누는 방법을 묻는다. 절차별 증명 대상의 한정, 증명의 정도와 판단 기준, 주장 책임과 증명 책임의 구별, 불요증사실과 반증의 자리, 입증 방해와 자료 사용의 효과, 쟁점별 입증 책임의 배분을 차례로 살핀다.

7.1절차별 증명 대상의 한정

요건 사실의 확정 여부에 따라 법적 구성의 성립이 갈린다는 결론은, 결국 무엇을 증명할 것인가의 범위를 어느 절차에서 정하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증명 대상은 각 절차가 정한 심리 범위 안에서만 정해지며, 한 절차의 심리 범위를 다른 절차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형사소송법은 사실 인정의 근거와 정도를 분명히 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①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규정한다(형사소송법 제307조). 형사절차에서 증명 대상이 되는 범죄사실은 증거로만 인정될 수 있고, 그 인정에 이르는 정도도 같은 조문이 정한 한도에서 판단된다.

행정소송법은 이와 달리 법원의 심리 범위를 넓게 열어 둔다. 행정소송법 제26조는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도 판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행정소송에서 법원이 증명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범위는 당사자가 내놓은 주장에 묶이지 않으므로, 형사절차의 범위를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

집단소송의 소송허가절차는 다시 다른 심리 대상을 갖는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1]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소송허가요건) 및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이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인지 여부(원칙적 소극) / 법원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로 판시사항을 제시한다. 같은 결정은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고 판결한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이 판례에 따르면 소송허가절차의 심리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에 한정되고,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은 원칙적으로 본안소송절차의 몫이다. 다만 공통 쟁점의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 쟁점이 되는 행위에 대한 심리가 허용되며, 이 한도를 넘어 본안의 심리로 확장할 수 없다.

같은 결정은 총원의 범위를 확정하는 방법과 정도도 함께 다룬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2]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5조 제2항 제4호에 따라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허가결정서에 기재하여야 하는 ‘총원의 범위’를 확정하는 방법 및 정도 / (…) 예탁결제기관에 예탁되어 있는 주식을 피해기간 중 일부 매도한 구성원이 존재할 수 있는 경우, 먼저 취득한 주식을 먼저 처분한 것으로 의제하는 이른바 선입선출법에 의하여 총원의 범위를 확정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로 판시사항을 제시한다. 판결 이유는 "‘총원의 범위’는 증권 발행회사, 증권의 종류, 발행시기, 피해의 원인이 된 증권의 거래행위 유형, 피해기간 등을 특정하는 방법으로 확정하되, 소송허가결정 확정 후 지체 없이 총원을 구성하는 구성원에게 소송허가결정을 고지하여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 관련 자료에 의하여 특정인이 구성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여야 한다."고 밝힌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또한 "예탁결제기관에 예탁되어 있는 주식을 피해기간 중 일부 매도한 구성원이 존재할 수 있는 경우에 이른바 선입선출법에 의하여 총원의 범위를 확정한다고 하여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따라서 소송허가절차에서 확정할 총원의 범위는 관련 자료로 특정인이 구성원인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하고, 선입선출법에 따른 확정이 위법하지 않다는 기준이 함께 주어진다.

이상의 세 절차 기준을 이 사례에 적용하면,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주장하며 내놓은 계약서 여러 버전,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의 쟁점을 어느 범위에서 다룰지는 각 절차가 정한 심리 범위 안에서 가려진다. 형사소송법 제307조가 정한 범위, 행정소송법 제26조가 정한 범위, 그리고 소송허가절차에서 소송허가요건에 한정된 심리 범위는 서로 다르며, 어느 하나를 다른 절차에 옮겨 쓸 수 없다.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의 권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미정이고, 각 절차의 심리 대상이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이 쟁점들을 다룰 수 있는 범위도 달라진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은 곧 법적 평가가 아니며, 증명 대상의 한정은 그 평가에 앞서 각 절차가 정한 범위에서 먼저 정해진다.

7.2증명의 정도와 판단 기준

절차별 증명 대상의 범위를 가른 뒤에 남는 질문은, 그 대상에 오른 사실을 어느 정도까지 밝혀야 법원이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은 증거를 하나씩 채택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 있다. 민사소송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가 어떠한지, 그리고 법원의 판단이 무슨 기준에 묶여 있는지를 차례로 읽어 판단 기준을 세운다.

민사소송의 증명이 어느 높이에 있는지를 밝힌 판시를 먼저 살핀다. 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하여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판정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일 것을 필요로 한다." 이 판시는 민사소송의 증명이 자연과학적 확실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개연성이나 가능성에 머물지 않고 고도의 개연성에 이르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통상인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라는 문구는 그 판정이 법관의 개인적 확신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판단에 가닿아야 함을 뜻한다.

같은 판결은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의심을 구체적으로 가려낸다. 위 판결은 "화재가 담뱃불로 발생하였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나 이러한 의심만으로는 갑 회사 직원들이 피운 담뱃불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아울러 화재의 원인이 갑 회사 직원들의 과실에 있음을 증명할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는 이유로, 화재가 갑 회사 직원들이 피운 담뱃불로 인한 것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한 원심판단을 수긍한 사례"로 판시하였다. 상당한 가능성에 대한 의심만으로는 요건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 의심을 끝까지 밀어붙여 사실로 확정할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도 함께 밝혔다.

증명의 정도와 나란히 놓아 읽어야 할 것이 판단 기준이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자유심증주의)는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규정한다. 법원이 사실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자유로운 심증에 맡겨져 있으면서도, 그 심증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이라는 외부의 기준에 구속된다는 점이 이 조문에 함께 담겨 있다.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가 판단의 재료임도 조문에서 분명히 한다.

자유심증주의의 의미와 한계를 다룬 형사소송의 판시는 그 구속의 실체를 보여 준다.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 제308조는 증거에 의하여 사실을 인정하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관이 증거능력 있는 증거 중 필요한 증거를 채택·사용하고 증거의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하여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충분한 증명력이 있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 없이 배척하거나 반대로 객관적인 사실에 명백히 반하는 증거를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 없이 채택·사용하는 등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법관은 자유심증으로 증거를 채택하여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자유심증이 법관에게 넓은 판단 여지를 주되,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배척이나 채택은 그 한계를 넘는 일로 본 것이다. 같은 판결의 반대의견은 진술조서의 신빙성을 인정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사실이 존재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자유심증이 넓다 할지라도 신빙성의 판단이 막연한 느낌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 반대의견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계약 해지와 손해를 함께 다투는 사안에서 상대방이 계약서의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의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았다고 하자.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는 아니다. 어느 버전이 적용되는지, 변경 합의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손해액의 기준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그 미정의 쟁점마다 제출된 문서와 기록이 고도의 개연성에 이르렀는지를 위 기준으로 재야 하고, 통상인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인지에 답해야 한다. 자금 기록이나 전문가 계산서를 채택하는 방향이든,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를 배척하는 방향이든, 합리적인 근거와 논리·경험의 법칙을 내놓아야 한다. 여기까지가 판단 기준의 자리이고, 같은 상대방에게 제출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서로 다르게 남아 있는 경우 그 차이를 어떻게 다룰지는 주장 책임과 증명 책임의 구별에서 따로 살필 일이다.

7.3주장 책임과 증명 책임의 구별

판단 기준을 세웠다면, 이제 그 기준을 둘러싼 주장이 누구의 몫인지, 증명이 누구의 몫인지로 나아가야 한다. 합성 사례에서 상대방은 계약서와 메시지·자금 기록·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으며 해지와 손해를 함께 주장한다. 이 장면을 법적으로 읽으려면, 먼저 특정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책임과 그 사실을 끝까지 밝히지 못한 책임을 분리해 두어야 한다.

이 구별은 회생절차 부인권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00조 제1항 제1호의 부인대상 행위에 관한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75291 판결은, 수익자의 악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때 각 행위로 인하여 이익을 받은 자(이하 ‘수익자’라 한다)가 행위 당시 회생채권자 등을 해하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 행위를 부인할 수 없으나, 그와 같은 수익자의 악의는 추정되므로, 수익자 자신이 선의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즉 악의라는 방어 사실을 말하는 쪽의 몫은 수익자이고, 그 사실이 진짜임을 끝까지 밝히는 몫도 수익자에게 있다. 추정은 증명 책임의 소재를 옮길 뿐, 상대방이 나서야 할 주장을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전득자에 대한 행사에서는 소재가 뒤바뀐다. 같은 판결은 관리인이 전득자에게 부인권을 행사하는 경우를 두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전득자의 악의에 대한 증명책임은 전득자에 대한 부인권을 행사하는 관리인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경우 관리인이 전득자의 악의를 주장해야 하고, 그 주장이 진실임을 보여야 하는 책임도 관리인이 진다. 수익자에 대한 추정이 그대로 전득자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이 판결의 조건은, 책임의 소재를 정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부분이다.

같은 쟁점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00조 제1항 제3호의 채권자 쪽에서도 반복된다. 앞의 판결은 이 경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00조 제1항 제3호에서 정하는 부인의 대상이 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행위 당시 채무자가 다른 회생채권자 등과의 평등을 해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부인할 수 없으나, 이때 채권자는 채무자가 행위 당시 다른 회생채권자 등과의 평등을 해하게 되는 것을 알았다고 추정되므로, 채권자 자신이 선의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알지 못했다는 방어 사실을 내세우는 주체와, 그 사실을 밝히는 증명의 주체가 같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 구분은 합성 사례에서 변경 합의의 권한이나 손해액 산정 기준을 누가 말하고 누가 끝까지 밝힐지 정하는 출발점이 된다.

주장 책임과 증명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정한 뒤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어떻게 제출되는지를 살핀다. 민사소송법 제289조(증거의 신청과 조사)는 "①증거를 신청할 때에는 증명할 사실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증거 신청은 곧 특정 사실의 표시를 동반하고, 그 사실은 앞에서 정한 주장 책임의 범위 안에 놓인다. 나아가 같은 조 제2항은 "②증거의 신청과 조사는 변론기일전에도 할 수 있다"고 하여 조사의 시기를 넓게 열어 둔다. 이 두 문장을 합성 사례에 적용하면, 목록에 이름만 있고 파일이 없는 메시지나 원자료를 어느 사실의 증거로 신청할지가 먼저 정해져야 하고, 그 신청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남는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법적 평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합성 사례에서 계약서의 여러 버전과 자금 기록·전문가 계산서가 함께 놓여 있다고 해서, 어떤 버전이 적용되는지에 대한 증명 책임이 저절로 정해지지 않는다.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과 변경 합의에 관한 권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모두 미정으로 남아 있고, 어느 쪽이 이 세 가지 중 어떤 사실을 주장하고 어떤 사실을 끝까지 밝힐지는 앞에서 확인한 추정과 증명 책임의 소재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의 의사결정을 새롭게 표현하고, 민사로 낸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서로 다르게 남아 있더라도, 이 사례에 적용되는 책임 배분의 요건을 새로 더하거나 뺄 이유가 되지 않는다.

7.4불요증사실과 반증의 자리

증명 책임의 소재를 나눈 뒤에는 증명 자체가 생략되는 자리가 남는다. 민사소송법 제288조는 불요증사실을 정하여 그 자리를 밝힌다.

민사소송법 제288조는 증명이 면제되는 사실을 자백한 사실과 현저한 사실로 한정하여 선언한다. 법원에서 당사자가 자백한 사실과 현저한 사실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민사소송법 제288조). 이 규정은 그 사실을 둘러싼 증명의 유무를 말할 뿐, 자백이나 현저성의 성립 요건을 따로 적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위 문언에 적힌 두 가지 사실이 어떤 성질을 갖는지는 이 규정의 문언 밖에서 새로 정할 일이 아니다.

자백에는 취소의 길이 함께 열려 있다. 제288조 단서는 진실에 어긋나는 자백이 착오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한 때에 한하여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한다. 단서가 요구하는 증명은 취소의 조건으로 놓이며, 자백을 한 당사자가 그 증명을 감당한다. 이 사례에서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 중 어느 쪽이 자백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자백이 진실에 어긋나는지 여부는 미정이다. 따라서 취소의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현저한 사실에 대하여는 규정이 그 범위를 더 적지 아니한다. 제288조는 현저한 사실이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아니함만을 선언할 뿐이다. 현저성의 요건이나 예를 새로 만들 수는 없다. 앞서 나눈 증명 책임의 배분과 달리, 이 규정은 그 사실을 주장한 쪽의 증명을 면제할 뿐이다. 자백과 현저한 사실이 모두 없는 사실은 여전히 증명의 대상으로 남는다.

증명이 면제되었다는 사정은 그 사실의 진실을 확정하는 것과 구별된다. 제288조가 정하는 것은 증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며, 자백의 취소 길이 남아 있는 것처럼 그 사실에 대한 반증이 들어갈 틈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정이 그 틈을 어디까지 열어 두는지는 문언이 더 말하지 아니한다. 반증이 들어갈 자리는 규정이 정한 자백 취소의 조건 외에는 별도로 정하지 아니한 셈이다.

자료가 모였다는 사실 자체는 불요증사실에 관한 판단을 대신하지 아니한다.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가 한꺼번어 제출되었다고 하여 자백이나 현저성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자백의 존재와 그 취소 요건, 현저성의 유무는 각각 별개의 사실 판단으로 남는다. 이 판단은 이 사례에서 아직 미정이다.

7.5입증 방해와 자료 사용의 효과

증거의 사용을 막는 행위가 남기는 효과를 정해 두어야 빠진 문서와 미정의 쟁점을 다루는 기준이 선다. 당사자가 증거의 사용을 방해한 때의 효과 규정을 읽어 자료 부재가 증명의 구조에 끼치는 자리를 가르치고, 자료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쟁점의 진상을 확정하지 않는 태도를 남긴다.

문서의 사용 방해에 관한 기준은 민사소송법 제350조에 놓여 있다. 규정은 제350조의 문언대로 "당사자가 상대방의 사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제출의무가 있는 문서를 훼손하여 버리거나 이를 사용할 수 없게 한 때에는, 법원은 그 문서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정한다. 여기에는 방해의 목적이 요구되고, 제출의무가 있는 문서가 대상이며, 훼손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행위가 나열된다. 그 결과는 법원이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선택적 규정이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은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았고, 목록에는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는 메시지와 원자료가 섞여 있다. 제350조의 효과는 그러한 부재에 대해 무엇이 왜 없어졌는지를 따진 뒤에야 열리며, 파일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상대방의 주장이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제출의무가 있는 문서라는 요건은 행위의 평가와 함께 살핀다. 상대방이 계약의 변경을 주장하며 문서를 내놓았다면, 그 문서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와 어느 쪽이 그 문서를 내놓아야 하는지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 사용을 방해한 자로 지목되기 위해서는 그 문서의 제출의무가 그에게 있어야 한다. 따라서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가 미정인 이 사건에서, 변경 이메일이나 원자료의 소재와 제출의무의 소재도 함께 미정으로 남는다. 미정은 미정으로 둔 채로만 규정이 요구하는 요건의 채부를 판단할 자리가 생긴다.

증거의 신청은 증명할 사실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민사소송법 제289조 제1항은 "①증거를 신청할 때에는 증명할 사실을 표시하여야 한다"라고 정한다. 방해 행위를 주장하는 쪽도 사용이 방해된 문서가 어느 쟁점의 증명에 관계되는지를 표시한 뒤에야 그 문서의 기재를 둘러싼 다툼으로 나아간다. 미정인 계약 버전과 손해액 기준 시점이 각각 어느 문서에 의존하는지가 이 표시를 통해 드러난다. 기재의 내용을 대신 주장할 수 있다는 효과는, 표시된 증명할 사실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민사소송법 제289조 제2항은 같은 조에서 "②증거의 신청과 조사는 변론기일전에도 할 수 있다"라고 정한다. 자료가 없어진 시점과 그 자료를 신청한 시점의 선후는 규정이 정한 효과의 범위를 가르는 데에서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문서의 사용이 방해된 뒤에 문서를 신청한 것인지, 신청 전에 이미 없어진 것인지에 따라 제350조가 요건으로 삼는 행위의 대상이 달라진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과 그 자료가 법적 평가를 받는 자리는 구분된다. 상대방의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고,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모임은 자료의 양적 축적일 뿐이며 그 자체로 쟁점의 진상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민사소송법 제350조는 방해의 목적이 있는 문서 훼손이나 사용 불능에 대해 법원이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만 정하고, 자료의 부재 자체를 진실의 표지로 삼지 않는다.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의 권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이 규정에 의해서도 미정으로 남는다.

7.6쟁점별 입증 책임의 배분

자료의 부재가 쟁점의 진상을 확정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확인한 뒤, 이제 남은 물음은 이 모임의 자료들이 어느 쟁점에 어떤 책임을 부과하는지 살피는 일이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를 함께 내세우며 계약서와 변경 메시지, 자금 기록과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았지만, 각 쟁점마다 요구되는 소명의 정도와 그 소명을 짊어질 쪽은 따로 정해져 있다. 먼저 쟁점별 배분의 출발점이 되는 판례의 문장을 옮긴다.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75291 판결은 악의의 추정과 그 반박의 책임을 가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때 채권자는 채무자가 행위 당시 다른 회생채권자 등과의 평등을 해하게 되는 것을 알았다고 추정되므로, 채권자 자신이 선의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75291 판결) 이 인용은 어떤 요소가 추정되고 그 추정을 깨뜨릴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절차가 먼저 정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사례에서 계약의 버전과 변경 권한은 각자 확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어느 쪽이 어떤 사실을 소명할지 먼저 가리는 일이 선행된다.

계약 버전에 관한 다툼은 먼저 쟁점의 공통성과 개별성의 경계를 가늠하는 문제로 접근한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공동의 쟁점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이렇게 밝힌다.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란 요건은 모든 구성원의 청구원인 가운데 중요사실이 공통되면 충족되고, 각 구성원의 청구에 약간의 다른 사실이 존재한다거나 개별 구성원에 대한 항변사항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위 요건이 흠결된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이 판례는 절차가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다루는지를 가르치지만, 우리 사례에서 계약서의 어느 버전이 적용되는지는 여기서 정해지지 않는다. 버전의 확정은 미정으로 남는다.

변경 합의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는 다툼의 성격에 따라 절차가 다루는 범위가 갈린다. 같은 결정은 절차별 판단 대상의 한계를 이렇게 구분한다. "따라서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권한의 유무는 본안에서 가릴 문제이고, 절차의 앞단에서는 그 판단이 뒤로 미루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사례에서 권한의 소재가 미정인 채 남는 까닭이다.

손해액의 기준 시점은 측정 방법의 선택이 곧 범위의 확정이 된다는 점에서 앞의 두 쟁점과 결이 다르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총원의 범위를 정하는 방법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대표당사자가 선택한 방법이 특히 불합리하다거나 그 방법에 의하여 총원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표당사자가 선택한 방법에 따라 총원의 범위를 확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전문가 계산서가 쓴 기준 시점도 같은 성격의 선택으로 취급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법정의 기준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사례에서 기준 시점은 미정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법적 평가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하며 마친다. 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은 증명의 정도를 이렇게 밝힌다.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하여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판정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일 것을 필요로 한다." (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 이 판례는 남은 의심이 무엇을 뜻하는지 뒤에 가서 다룰 문제의 단서를 남긴다. 계약서와 메시지, 자금 기록과 계산서가 아무리 한 자리에 모여 있어도, 그것이 어느 쟁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소명에 이르렀는지는 쟁점별로 따로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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