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당사자별로 요구와 가능한 구제를 나누고 사건 경계를 다시 잡는 방법을 묻는다. 당사자별 요구의 분리, 구제 유형과 요구의 구분, 범위 밖 사건의 식별, 관련 사건과의 연결 기준, 초기 설명 변경에 따른 재분류와 그 뒤 남는 경계를 차례로 살핀다.
2.1당사자별 요구의 분리
손해를 시점별로 묶어 두었으니, 이제 상대방이 한꺼번에 내놓은 주장을 당사자별 요구 단위로 나누는 기준을 살핀다. 이 경우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가 한 흐름으로 제시되었지만, 법원이 각각에 대해 무엇을 판단할지는 당사자가 신청한 범위에서 정해진다.
그 전제는 민사소송법 제203조에서 확인된다.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법원이 스스로 요구를 만들어 판단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므로 제출된 문서가 여러 건이라도, 그것만으로 당사자별 요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요구를 나누는 출발점은 상대방이 밝힌 청구의 내용이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주장했고,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함께 내놓았다. 이 자료들은 요구를 뒷받침하는 근거일 뿐, 각각이 새로운 요구를 이루지 않는다.
다만 어떤 근거가 어느 요구에 관련되는지는 따로 정해야 한다.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른 문서와, 목록에는 있으나 파일이 없는 메시지·원자료가 섞여 있고,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근거의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어도, 요구 자체를 새 항목으로 벌리지는 않는다.
요구의 구분이 불분명하면 법원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제1항은 "재판장은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고, 증명을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당사자는 필요한 경우 재판장에게 상대방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둔다. 또 제4항은 "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하였음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법률상 사항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민사소송법 제136조)고 규정한다.
같은 상대방에 대해 민사로 낸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에도, 두 문서의 대상이 서로 다른 요구인지는 표시된 청구 내용으로 확인한다. 문서가 늘었다는 사실이 요구를 늘리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계약 버전이 적용되는지, 변경 합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는 미정이며, 손해액 계산 기준 시점도 미정이다. 이들 쟁점은 다음 논의로 넘기되, 요구의 목록은 상대방이 신청한 내용으로 한정해 두어야 한다.
2.2구제 유형과 요구의 구분
요구를 당사자별로 나눈 뒤에는 각 요구에 어떤 구제가 대응하는지 따로 표시한다. 요구 자체와 그 구제를 한 덩어리로 묶어 읽으면, 상대방이 내놓은 문서의 양이 곧 법적 평가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절은 요구와 구제의 대응 관계를 표시하는 방법에 한정하고, 어떤 구제가 실제로 인정될지는 판단하지 않는다.
구제 유형을 표시하려면 우선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제1항은 "재판장은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고, 증명을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 사례에서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른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이 함께 제출되었다면, 재판장은 각 요구가 어느 문서에 근거하는지 질문할 수 있다. 같은 조 제3항은 "당사자는 필요한 경우 재판장에게 상대방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한다. 권한에 관한 미정 사항은 이 설명 요청을 거치더라도 미정으로 남는다.
구제 유형을 표시한 뒤에는 법률상 사항을 놓쳤는지 살핀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제4항은 "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하였음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법률상 사항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정한다. 예컨대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으로 남은 상태에서 요구와 구제가 한 덩어리로 묶여 있으면, 그 기준 시점이라는 법률상 사항이 간과되기 쉽다. 이 조항은 기회를 주도록 정할 뿐이며, 어느 기준 시점이 맞는지는 여기서 정해지지 않는다.
요구와 구제를 나누어 표시하는 일은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1조 제1항은 "법원은 소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제1조 제2항은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뒤에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같은 일에 대해 다르게 표현하더라도, 그 문장 자체를 요구나 구제로 삼지 않고 출처와 시점을 표시한 채 두어야 한다. 사건 뒤 작성된 문서의 표현이 당시 문서를 대신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 요구 옆에는 대응하는 구제 유형만 기록한다.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는 메시지와 원자료는 요구나 구제의 근거로 삼지 않고, 빈 항목으로 남긴다. 이 자리에서 요구의 존부나 구제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면 안 되며, 손해액의 산정도 여기서 하지 않는다. 판단은 미정으로 남는다.
2.3범위 밖 사건의 식별
구제 유형을 요구별로 나누어 놓았다면, 이제 함께 놓인 설명들 가운데 무엇이 이 사건의 자료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가려야 한다. 여기서는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을 함께 주장하며 내놓은 자료 더미 속에서,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각각 이 사건의 범위 안에 드는지 살핀다. 두 설명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쓴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곧 범위 밖의 것으로 배척되는 것은 아니다.
범위의 경계는 먼저 소송 절차의 흐름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만드는 법의 취지에서 길어 올린다. 민사소송법 제1조는 법원과 당사자의 책무를 각각 선언하는데, "법원은 소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고도 하였다 (민사소송법 제1조). 상대방이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른 계약서와 이메일, 자금 기록,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은 장면에서, 어느 자료를 정리된 심리의 대상으로 삼을지는 이 두 문장이 함께 놓은 신속성과 성실성의 요구 안에서 정해진다.
그런 다음, 자료를 묶는 데서 범위 밖 사건의 성질이 드러난다. 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은 피고와 제3자 사이 민사소송의 확정판결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하여 "피고와 제3자 사이에 있었던 민사소송의 확정판결의 존재를 넘어서 판결의 이유를 구성하는 사실관계들까지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로 그 쟁점을 적었다. 여기서 나아가 그 확정판결은 "피고와 제3자 사이에 있었던 민사소송의 확정판결의 존재를 넘어서 그 판결의 이유를 구성하는 사실관계들까지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볼 수는 없다"고 선언하였다 (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함께 제출된 민사 설명과 기관 설명이 다른 사건의 판결문과 그 이유 사실관계를 끌어오는 자료라면, 그 자료는 확정판결의 존재 자체와 그 안의 사실 인정을 뚜렷이 구분해야 한다.
그 구분은 이 사례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한다. 다른 사건의 확정판결문이 남아 있어도, 이번 사건에서 증거로 제출된 적이 없고 당사자가 그 사실관계를 주장한 바 없는 서류를 사건 내 사실인양 정리하면, 위 판결이 제2항에서 지적한 잘못에 놓인다. 대법원은 원심이 다른 하급심판결의 이유 중 일부 사실관계에 관한 인정 사실을 그대로 인정한 데 대하여 "당해 재판의 제1심 및 원심에서 다른 하급심판결의 판결문 등이 증거로 제출된 적이 없고, 당사자들도 이에 관하여 주장한 바가 없음에도 이를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로 그 잘못을 밝혔다 (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쓴 경우에도, 그 문서가 재판 안에서 어떤 위치에 놓였는지가 함께 밝혀져야 한다.
범위 밖 사건의 식별이 마무리되면, 계약서의 어느 버전이 적용되는지, 변경 합의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손해액 기준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열린 문제로 남는다. 이 자리에서 정하는 것은,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과 그 자료들이 이 사건의 범위 안에 있는지 여부를 나누는 것뿐이다. 같은 상대방에 대한 민사 설명과 기관 설명을 나란히 두고 읽되, 어느 쪽이 범위 밖의 다른 사건에 붙어 있는 것인지를 여기서 확인한다.
2.4관련 사건과의 연결 기준
식별을 통해 범위 밖 사건이 드러난 뒤에 남는 물음은, 그 사건을 언제까지 이 설계에 끌어올 것인가이다. 연결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한도와 연결을 넘어 사건 전체를 다루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 구분은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이 절차 사이의 경계를 그리는 방식과 같다. 그 결정은 먼저 대상의 분리를 선언한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제2장 소의 제기 및 허가 절차’에 관한 부분에서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허가요건을 별도로 정하고(제11조, 제12조), 대표당사자가 소송허가 신청의 이유를 소명하도록 하며(제13조 제1항), 소송허가요건에 적합한 경우에만 결정으로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허가하도록 하는(제15조 제1항) 등 소송허가결정이 확정되어야 비로소 본안소송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집단소송이라는 특수한 절차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인 소송허가절차와 집단소송의 본안소송절차를 분리하고 있다"고 하면서 "따라서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였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본안의 책임 성립이 허가 절차의 판단 대상이 아니듯이, 사건 경계 밖에 있는 책임 성립 여부는 연결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외부 사정을 아예 들여다보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같은 결정은 필요한 한도에서의 심리를 허용한다. "다만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연결에 필요한 한도에서만 외부 사건을 다룬다는 규칙이 여기에서 나온다. 본 사건의 요구·구제를 구성하는 데 외부 사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따지는 정도까지만 들여다보고, 그 사건 자체의 결론을 이 설계 안으로 옮겨오지 않는다.
한도의 바깥은 절차에 따라 다시 선을 긋는다. 그 결정은 한도의 정의로 되돌아간다. "[1]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소송허가요건) 및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이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인지 여부(원칙적 소극) / 법원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라고 판시사항을 정리하였다(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원칙과 예외가 함께 서 있다. 원칙은 판단 대상의 배제이고, 예외는 필요한 한도에서의 심리이다. 이 사례에서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은 각자 서 있는 사건의 경계 안에서 읽힌다. 어느 쪽이든 본 사건의 요구·구제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지점까지만 참조하고, 그 사건의 책임 성립을 따지는 자리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른 사건의 사실관계를 어디까지 데려올지도 같은 눈금으로 잰다. 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은 확정판결의 존재와 그 이유의 사실관계를 나누어 본다. "[1] 피고와 제3자 사이에 있었던 민사소송의 확정판결의 존재를 넘어서 판결의 이유를 구성하는 사실관계들까지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라고 하였다(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그 이유를 밝히면서 "피고와 제3자 사이에 있었던 민사소송의 확정판결의 존재를 넘어서 그 판결의 이유를 구성하는 사실관계들까지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볼 수는 없다"고 하였다(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별도 민사소송의 확정판결이 있다는 사실은 연결의 한 근거가 될 수 있으나, 그 판결이 인정한 사실관계까지 같은 무게로 끌어오지는 못한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내놓은 계약서 여러 버전과 자금 기록이 어떤 사건 안에서 무엇을 증명하는지는 그 사건의 몫으로 남는다.
연결의 한도를 넘어서는 읽기는 어떤 모습인지도 그 판결이 보여 준다. "[2] 원심이 다른 하급심판결의 이유 중 일부 사실관계에 관한 인정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위 사정들이 ‘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본 사안에서, 당해 재판의 제1심 및 원심에서 다른 하급심판결의 판결문 등이 증거로 제출된 적이 없고, 당사자들도 이에 관하여 주장한 바가 없음에도 이를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19. 8. 9. 선고 2019다222140 판결). 사건 밖의 문서에 이름이 있고 사건 안에 파일이 없는 경우에, 그 문서가 채운 자리를 사건 안의 사실로 대신 채우면 연결의 한도를 지난다. 앞 단위에서 식별한 범위 밖 사건은 이 한도 안에서만 참조되고, 그 사건의 책임 성립 여부나 판단 대상은 이 설계에 편입되지 않는다. 적용되는 계약 버전과 변경 합의 권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여전히 미정으로 남는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되지 않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2.5초기 설명 변경과 재분류
관련 사건을 연결하는 기준을 정리한 뒤에 남는 질문은,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와 표현이 달라진 초기 설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여기서는 요구와 구제의 구성을 다시 나누는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그 작업은 달라진 표현에 맞추어 당시 사실을 새로 채우는 일이 아니다.
민사소송법 제136조는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재판장이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을 둔다. 법원은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고, 증명을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136조)고 규정한다. 이 권한은 사실을 새로 만들어내는 근거가 아니라, 이미 나온 자료의 의미를 밝히는 수단이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해 같은 일에 다른 표현을 쓰고 있을 때, 재판장은 그 표현의 차이에 관하여 질문할 수 있다.
그 질문이 무엇을 향하는지도 규정에서 드러난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제4항은 「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하였음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법률상 사항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정한다. 요구와 구제의 구성을 법률상 사항으로 본다면, 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한 법률상 쟁점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의무의 대상은 의견을 진술할 기회이지, 새로운 설명 문서를 사실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민사소송법 제1조는 그 한도를 뒷받침한다. 「법원은 소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같은 조 제2항에서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구와 구제의 구성이 변경된 표현을 따라간다면, 같은 일에 대하여 다른 표현을 쓴 문서마다 별도의 사건 경계가 생길 것이다. 이는 절차를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하려는 이상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재분류의 대상은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나 표현이 달라진 초기 설명을 사실 자료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아니다. 요구·구제 구성을 어느 자료가 말하는 표현대로 새롭게 정하는 작업이며, 당시 사실이나 시점을 새로 채워 넣는 것은 이 범위에 들지 않는다.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에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미정으로 남는다. 같은 상대방에 대해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에도, 두 설명의 차이를 요구·구제 구성에 반영할 것인지만 정할 뿐, 어느 설명이 사실인지 새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2.6재분류 후 남는 경계
재분류가 요구·구성의 얼개를 다시 세웠다 하더라도, 사건의 경계는 그 바깥에서 그대로 남는다. 경계가 남는 자리는 서로 다른 두 자리다. 하나는 법원이 다룰 수 있는 사항의 한계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사안 안에서 심리를 어디까지 밀어 넣을지에 대한 판단이다. 재분류는 이 두 자리의 문턱을 낮추지 않는다.
먼저, 재분류로 요구의 이름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법원은 당사자가 세운 요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민사소송법 제203조(처분권주의)는 그 범위를 이렇게 정한다.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 (민사소송법 제203조)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해지와 손해배상을 함께 내놓았더라도, 두 요구가 어떻게 조합되어 있는지는 당사자가 정한 표시의 틀을 따른다. 재분류는 그 표시를 바꿔 적는 작업일 뿐, 표시되지 않은 사항을 새로 끌어들이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편 요구의 경계 안에서는, 다루어야 할 것과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는 선이 절차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은 이 선을 절차의 임무에 맞추어 긋는다. "따라서 소송허가절차에서 대표당사자가 소명할 대상은 소송허가요건이고, 본안소송절차에서 다루어질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등은 원칙적으로 소송허가절차에서 심리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법원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12조 제1항 제2호에 정한 '제3조 제1항 각 호의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될 것'이라는 소송허가요건이 충족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 등에 대하여 심리를 할 수 있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즉 심리의 밀어 넣기는 요건의 판단에 필요한 한도에서만 허용된다. 계약서의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이 한꺼번어 쌓여 있다 해서, 그 내용 전부가 당장 다루어야 할 사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계를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도, 무엇을 경계의 한복판에 두고 무엇을 안쪽으로 미룰지는 따로 가른다. 같은 결정은 절차가 분리되는 구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송허가결정이 확정되어야 비로소 본안소송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집단소송이라는 특수한 절차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인 소송허가절차와 집단소송의 본안소송절차를 분리하고 있다." (대법원 2016. 11. 4. 자 2015마4027 결정) 이 사례에 그 구조를 옮겨 보면, 손해액 산정의 기준 시점 같은 쟁점은 다루어야 할 대상의 자격을 가리는 자리에서 바로 확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한 자리는 미정으로 남겨 두는 편이, 경계를 먼저 그어 둔 뒤 사실을 세우는 다음 작업에 맞다.
재분류 이후에도 유지되는 경계는 요약하면 이렇다. 법원이 판결할 수 있는 범위는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으로 한정된다. 그 안에서 심리를 어디까지 넣을지는 지금 서 있는 절차가 감당할 임무의 한도에서 정한다. 확정되지 않은 사항은 확정되지 않은 채로 남겨 둔다. 이 경계의 안쪽에서 실제로 무엇이 붙어 있는지, 자료로 확인된 것은 무엇이고 주장으로 그치는 것은 무엇인지를 따지는 일은 이제 사실의 층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