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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설계도: 사실·쟁점·입증책임의 통합 재구성 · II-01 · Chapter 5 · First edition

청구·혐의·처분 사유의 원자화와 요건 연결

청구·혐의·처분 사유를 원자 단위로 쪼갠 뒤 어떤 사실이 어느 요건에 필요한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Length
about 2,600 words · 11 min
Sources
6 statutes · 3 decisions
As of
2026-10-11
On this page
  1. Summary
  2. 5.1청구 사유의 원자 분해
  3. 5.2요건과 사실의 연결 고리
  4. 5.3주체와 행위의 분리
  5. 5.4고의와 인과관계의 분리
  6. 5.5요건별 증명책임의 배치
  7. 5.6미연결 사실의 석명과 정리
  8. Statutes referred to
  9. Decisions referred to

Synthetic case The parties and facts in this chapter come from the volume's synthetic case, not from a real matter.

Summary

청구·혐의·처분 사유를 원자 단위로 쪼개고 어떤 사실이 어느 요건에 필요한지 연결하는 방법을 묻는다. 청구 사유의 원자 분해, 요건과 사실의 연결 고리, 주체와 행위의 분리, 고의와 인과관계의 분리, 요건별 증명책임의 배치, 미연결 사실의 석명과 정리를 차례로 살핀다.

5.1청구 사유의 원자 분해

앞 단위에서 서사에 숨은 전제를 적어 분리해 둔 데서 출발하여, 이제 그 전제를 떠받치는 청구 사유를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사실 단위로 나눌 차례이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주장하며 계약서 여러 버전,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은 장면에서, 무엇을 쪼개야 하는지가 이 문제의 질문이다.

소장에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민사소송법 제249조는 “제249조(소장의 기재사항) ①소장에는 당사자와 법정대리인, 청구의 취지와 원인을 적어야 한다. ②소장에는 준비서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민사소송법 제249조)고 규정한다. 청구의 원인이 곧 사유의 근거가 된다는 뜻에서, 이 사례에서는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을 함께 내세운 청구의 원인이 각각 어떤 사실에 호소하는지 먼저 가려내야 한다. 계약서 여러 버전이 한꺼번에 제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청구 원인이 특정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법원이 다룰 수 있는 범위에 관하여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제203조(처분권주의)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고 선을 긋는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신청한 바깥에 법원이 스스로 사유를 보탤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된다. 따라서 청구 사유를 나눌 때 조문이나 신청에 없는 요건을 새로 만들어 붙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청구 사유를 나누는 작업은 문장에 쓰인 표현 하나하나를 사실 단위로 옮겨 적는 일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의 설명 가운데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취지의 표현은 해지의 의사 표시, 해지 사유의 발생, 상대방에 대한 도달처럼 따로 확인할 사실로 풀어 써야 한다. 한 표현 안에 여러 판단이 겹쳐 있으면 그대로 사실 항목으로 두지 않고, 각 판단이 기대는 사건으로 벗겨낸다.

그러나 쪼개지 않고 남은 표현을 그대로 사실 항목으로 슬그머니 올려 놓는 일은 피한다. 전문가 계산서에 적힌 손해액,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에 대해 쓴 표현,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 사실로 못박는 일은 이 작업의 범위 밖에 있다. 이들 서류의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고,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는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다는 점은 사실 단위를 정리할 때 적어둘 상황이지, 사실 자체의 성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국 청구 사유의 원자 분해는 청구 원인을 이루는 표현을 개별 사건으로 풀어 적되, 신청과 조문이 세운 범위를 넘어서 새 요건을 만들지 않는 작업이다.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에 관한 권한의 귀속,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인 채로 남아 있어도, 원자 사실을 적는 일을 멈출 이유는 없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은 곧 법적 평가가 아니므로, 사실 단위를 모으는 일과 요건에 붙이는 일은 분리해서 진행한다.

5.2요건과 사실의 연결 고리

원자 사실로 나눈 항목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각 요건에 붙일 자료가 된다. 민법 제114조는 대리행위의 효력을 정하면서 두 가지 요건을 함께 묶어 둔다. 같은 조 제1항은 "대리인이 그 권한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한다(민법 제114조). 이 문장에서 권한 내에서의 행위와 본인을 위한 것임의 표시는 둘 다 효력 발생에 필요한 요건이다.

따라서 이 계약 분쟁에서 변경 합의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미정인 항목은 권한 요건에 대응하는 사실 자리에 놓인다. 권한 근거가 될 계약서 조항, 위임 여부를 보여 주는 문서, 당시 승인 기록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런데 제출된 문서 가운데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는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다. 그 자리는 비어 있는 채로 남는다. 없는 사실을 추정으로 채우면 요건과 사실의 연결이 아니라 요건과 가정의 연결이 된다.

본인을 위한 것임의 표시 요건은 별개의 자리이다. 변경 이메일의 문구, 계약서 서명란의 기재, 대리인이 본인 명의로 행동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 이 자리에 붙는다. 이 표현을 권한 근거와 섞어 하나의 항목으로 만들면, 어느 쪽 자료가 어느 요건을 채우는지 나중에 확인할 수 없다.

민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은 "소장에는 당사자와 법정대리인, 청구의 취지와 원인을 적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청구의 원인이 곧 요건에 붙는 사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이 조는 위 연결 작업의 절차상 근거가 된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주장하며 계약서 여러 버전과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제출하였다. 제출 문서의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므로, 어느 문서가 어느 요건의 어느 시점 사실인지 나누어 붙여야 한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는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문서는 당시 사실의 증거 자리가 아니라, 이후 해석의 주장 자리에 놓인다. 같은 상대방이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다는 점도, 두 설명을 하나의 사실 항목으로 합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합성 사례 안에서 두 설명이 서로 다른 요건 자리를 채우는지, 같은 자리를 두고 겹치는지는 각 설명의 문구를 요건에 대조해 보아야 미정으로 남던 항목이 정해진다.

요건과 사실의 연결이 끊긴 자리는 끊긴 채로 기록된다.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의 권한 근거,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모두 미정인 상태에서 임의로 값을 넣으면 그 연결 고리는 자료가 아니라 상상에 기댄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므로, 모인 문서 수나 총 분량은 요건의 충족 여부를 말해 주지 않는다. 연결은 요건을 기준으로 자료를 하나씩 놓아 보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5.3주체와 행위의 분리

요건과 사실을 이어 놓은 뒤에는, 그 사실이 누구의 것인지를 따로 묻는 작업이 남는다. 대리행위의 효력을 정한 민법 제114조는 대리인의 권한과 본인을 위한 표시를 한 문장 안에 묶어 두었지만, 권한 유무가 미정인 항목을 확정된 사실로 적어 버리면 그 묶음이 먼저 무너진다. 여기서는 누구의 행위였는지와 어떤 행위였는지를 둘로 나누어 배열한다.

행위의 주체를 적을 때에는 권한의 범위를 묻는 문장이 함께 따라온다. 민법 제114조는 효력 귀속의 요건으로 권한 내의 행위임을 내세운다. 그 조항은 "①대리인이 그 권한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라고 규정하고, "②전항의 규정은 대리인에게 대한 제삼자의 의사표시에 준용한다"라는 단서를 둔다(민법 제114조). 이 사례에서 변경 합의에 대한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는 미정이다. 권한의 유무를 확정한 채 행위 항목을 쓰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실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대리인의 행위라는 항목과 본인의 행위라는 항목을 나란히 두고, 권한이 있다는 항목은 비워 둔 채로 남겨 둔다.

행위의 내용은 권한과 별개로 기술한다. 상대방이 내놓은 자료에는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이 함께 들어 있다. 그 문서의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므로, 어느 문서가 어느 시점의 행위를 담는지부터 구분해 적는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는 당시의 의사결정을 해석하여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한 설명은 당시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사건 뒤의 해석이므로, 행위 항목과 분리된 자리에 둔다. 행위의 법적 평가를 행위 항목 안에 미리 담지 않는 것이 이 분리의 핵심이다.

행위의 내용을 다룰 때 불법행위의 요건을 함께 떠올리되, 그 요건의 자리는 따로 두어야 한다. 민법 제750조는 책임의 요건을 하나로 묶어 둔 조항이다. 그 조항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한다(민법 제750조). 이 사례에서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주장하고 있고, 전문가 계산서와 자금 기록을 함께 내놓았다. 그 자료의 모임은 손해의 산출 근거를 보여 줄 뿐이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므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인 채로 항목을 세워 둔다.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을 때에도 같은 분리 기준을 적용한다. 두 설명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면, 각 설명은 각자의 작성 시점을 가진 별개의 문서로 적는다. 어느 설명이 어느 시점의 행위를 가리키는지 연결하지 않은 채로, 문서 자체의 사실 항목만 남겨 둔다.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는 메시지와 원자료는 항목의 이름만 둔 채로 비워 둔다. 그렇게 두면 주체 항목과 행위 항목이 각자의 자리에 놓이고, 권한 유무와 법적 평가는 확정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5.4고의와 인과관계의 분리

행위와 주체를 나누어 놓았다면, 그다음은 행위자의 내심과 손해의 흐름을 갈라 놓는 일이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한꺼번에 주장하며 내놓은 자료에는 작성 시점이 다른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가 섞여 있다. 이 장면에서 고의가 언제 자리했는지, 손해가 무엇으로부터 흘러나왔는지를 한 덩어리로 묶어 판단하면 자료의 모임을 법적 평가로 착각하게 된다. 따라서 고의의 인정과 인과관계의 성립을 서로 다른 요건 자리에 두고 각각 무엇이 필요한지 살핀다.

먼저 배임죄 판결이 고의를 어떻게 다루는지 확인한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고의의 성립 요건을 이렇게 밝힌다. "일반적으로 업무상배임죄의 고의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와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의 이득의 의사가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과 결합하여 성립되는 것이며"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고의는 손해를 가하려는 의사와 임무위배에 대한 인식이 함께 놓여야 비로소 성립하는 결합된 구성요소다. 사건에 놓인 메일 한 통이 임무위배의 인식을 보여 주는지와, 그것이 손해를 가하려는 의사까지 보여 주는지는 별개의 질문으로 남는다.

그 고의는 어떻게 입증하는지도 이 판결이 따로 말한다. "이와 같은 업무상배임죄의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고의, 동기 등의 내심적 사실)은 피고인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문제가 된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범의를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하고"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내심의 사실은 직접 볼 수 없으므로 간접사실의 연결로 나아간다. 다만 어떤 간접사실이 상당한 관련성을 가졌는지는 사실심에서 판단할 자리이며, 여기서는 고의 자리에 무엇이 놓일 수 있는지만 분리해 둔다.

경영상의 판단에서 고의는 더 좁아진다. 같은 판결은 일반 원칙과 함께 예측이 빗나간 경우를 따로 두고, 현행 형법상의 배임죄가 위태범이라는 법리를 부인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을 두루 살펴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미필적 인식을 포함한 그 인식 아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을 유지해야 하며,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나아간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이 기준에서 고의의 자리는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이익의 인식과 손해의 인식 아래 의도적 행위가 있었는지에 놓인다.

손해의 발생 시점은 고의와 분리된 자리에서 다룬다. 같은 판결은 "배임죄에 있어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고 선다. 위험의 초래도 손해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으므로, 자금 기록과 전문가 계산서가 보여 주는 손해의 범위는 이 문장의 테두리 안에서 편성된다. 다만 손해가 언제 성립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이 자리에서 열어 두고, 여기서는 그 자료가 고의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만 분리해 둔다.

민사의 손해배상 자리는 형사의 고의 자리와 규정의 결이 다르다.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고 규정한다. 고의와 과실이 나란히 놓이는 이 규정에 비추어 보면, 상대방이 내놓은 자료의 모임 자체를 고의의 증거로 환산할 수 없다. 계약서의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의 시점 차이, 목록에만 있고 파일이 없는 메시지와 원자료,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의 표현과 어긋나는 점, 민사와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놓인 점은 모두 원자 사실의 배열에서 풀어야 할 자리다. 어느 버전의 계약이 적용되고 변경 합의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손해액의 기준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미정으로 남아 있다.

5.5요건별 증명책임의 배치

행위·고의·인과관계를 나누어 놓은 뒤에는, 각 요건마다 누가 무엇을 입증하는지를 정하는 일이 남는다. 증거가 한꺼번에 들어온 뒤에 어떤 사실을 어느 쪽이 밝혀야 하는지를 정하지 않으면, 요건의 분리 자체가 자리 잡지 않는다. 이 글은 증명책임의 소재를 정하는 판결과 증명의 정도를 정하는 판결을 놓고, 요건마다 책임의 자리를 배치한다. 개별 증거의 평가와 요건 법리의 해석은 결론으로 삼지 아니한다.

먼저 증명책임의 소재는, 요건의 성립을 막는 항변 사유를 누가 들어야 하는지를 나누어 정한다.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75291 판결은 부인대상 행위 당시 수익자의 선의를 두고 "그와 같은 수익자의 악의는 추정되므로, 수익자 자신이 선의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힌다. 악의가 추정되면 선의의 입증은 수익자의 몫이 되고, 원고 측은 악의의 입증에서 벗어난다. 같은 판결은 채권자의 선의에 대해서도 "채권자 자신이 선의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75291 판결)고 둔다. 한편 전득자에 대한 행사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전득자의 악의에 대한 증명책임은 전득자에 대한 부인권을 행사하는 관리인에게 있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75291 판결)고 한다. 요건의 층이 달라지면 주장 방향이 뒤바뀌므로, 이 사례의 해지 항변과 손해 주장에서도 항변 요건의 사정이 어디에 속하는지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 다만 이 사례에 맞춰 어느 요건에 어느 추정이 붙는지는 여기서 정하지 아니한다.

이어 증명의 정도는 자연과학적 확실함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으로 정해진다. 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은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하여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판정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일 것을 필요로 한다"고 밝힌다. 다만 이 판결은 같은 사안에서 "화재가 담뱃불로 발생하였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나 이러한 의심만으로는 갑 회사 직원들이 피운 담뱃불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아울러 화재의 원인이 갑 회사 직원들의 과실에 있음을 증명할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고 하였다. 가능성만으로는 요건이 채워지지 않고, 요건에 대한 책임을 진 쪽이 그 정도를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례의 손해액 쟁점에 대해서도, 계산서가 제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손해의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니며 요건별 책임의 배치와 함께 그 정도가 함께 검토된다.

그런가 하면 주장·입증의 구조가 잘못 짜인 경우에도 책임의 배치는 그 자체로 심리의 지침이 된다. 위 판결에서 원심이 부인대상 행위의 전득에 대하여 "병 회사가 갑 회사의 부인대상 행위에 터 잡아 정에게서 위 수표를 교부받았다는 점과 병 회사가 을 또는 제1전득자 내지 수익자인 정의 위 수표 취득에 관하여 부인의 원인이 있음을 알았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수표를 전득한 병 회사에 부인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에는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75291 판결)로 나아간 것은, 어느 요건이 어느 층에 놓이는지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짐을 보인다. 단서와 조건을 붙인 요건이라도, 그 사정의 입증을 요건의 성립을 막는 쪽의 몫으로 두는지 여부는 배치의 결과이다. 이 사례에서 변경 합의의 권한과 계약서 버전에 대한 쟁점이 어느 쪽 책임인지에 관하여는, 여기서 결론으로 미리 적지 아니한다.

결론적으로, 증거가 모여 들어온 뒤에는 요건을 세우고 각 요건에 증명책임을 먼저 배치한 다음 정도의 기준을 함께 놓아야 한다. 요건별로 소재가 달라지고, 같은 요건이라도 추정의 유무에 따라 부담의 방향이 바뀌며, 가능성만으로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이 배치를 끝내야 비로소 연결이 비었거나 자료가 빠진 사실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5.6미연결 사실의 석명과 정리

요건별 증명책임의 배치를 마친 자리에서 남는 물음은, 연결이 비어 있거나 자료가 채워지지 않은 원자 사실을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내걸고 계약서 여러 버전,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은 장면은 자료가 모인 장면일 뿐, 곧 법적 평가에 이른 장면이 아니다. 이 장면에서 무엇이 비어 있는지 가려내는 작업이 석명과 정리이다.

미연결 사실을 밝히는 첫 수단은 재판장의 질문과 촉구이다. 민사소송법 제136조는 석명권의 내용과 행위 주체를 다음과 같이 둔다. "제136조(석명권·구문권 등) ①재판장은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고, 증명을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②합의부원은 재판장에게 알리고 제1항의 행위를 할 수 있다. ③당사자는 필요한 경우 재판장에게 상대방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④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하였음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법률상 사항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이 사례에서 재판장이 물을 수 있는 대상은, 계약서 여러 버전 중 어느 것이 당사자 사이의 최종 의사였는지, 변경 이메일을 보낸 사람과 이를 승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자금 기록이 어느 시점의 어느 거래를 뜻하는지, 전문가 계산서가 둔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무엇인지이다. 이 가운데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의 권한 소재,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미정으로 남는다. 석명은 미정을 미정인 채 적시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데까지 나아가며, 그 자체로 답을 채우지 않는다.

질문과 촉구를 거치고 나면 채워야 할 자리가 형체를 얻는다. 상대방이 낸 문서의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므로, 시점별로 어떤 의사가 존재했는지가 한 축의 미연결 사실이다.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는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으므로, 그 이름이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가 또 다른 축이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쓰므로, 당시 표현과 이후 해석을 어느 범위에서 함께 볼 것인지가 세 번째 축이다. 같은 상대방에 대해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으므로, 두 설명의 대목별 대응 관계가 네 번째 축이다. 이 축들마다 자료 제출 자체가 완결된 입증인지는 별개의 물음으로 남는다.

사실 인정의 바탕이 되는 기준을 형사소송법 제307조가 다음과 같이 밝힌다. "제307조(증거재판주의) ①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전문개정 2007. 6. 1.]" (형사소송법 제307조) 이 사례에 대입하면, 목록에 이름만 있는 자료의 내용을 지어낼 수 없고,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로 당시 의사결정을 확정할 수 없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을 법적 평가로 읽는 것도 피해야 한다. 남은 물음은 앞 단위에서 배치한 증명책임의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에 따라 정리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연결 사실의 정리는 목록으로 남긴다. 계약서 버전별 작성 시점과 상호 참조 관계, 변경 이메일의 발신자·수신자·발신 시점, 누락된 파일의 목록상 명칭과 제출 범위, 당시 의사결정을 가리키는 표현과 사건 뒤 설명 문서의 표현 대조, 민사 제출 설명과 기관 제출 설명의 문안 대응, 자금 기록의 시점별 항목, 전문가 계산서의 계산 기준 시점과 계산 요소가 그 목록에 들어간다. 이 가운데 어느 항목이 연결되지 않았는지, 어느 항목의 자료가 빠졌는지가 석명의 대상이 된다. 연결이 비었거나 자료가 빠진 자리는 미연결 사실로 남기고,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는 석명과 촉구로 요청하되, 그 자리를 임의로 채우지 않는 것이 이 사례의 정리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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