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이 장은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넓은 문언이 무엇을 채우지 않은 채 두는지를 묻는다. 문언에서 뽑은 구성요건 요소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이익 취득의 두 가지 모습과 행위와 결과를 잇는 자리로 나누어 살핀다. 배임죄의 손해나 이득의 내용은 다루지 않으며, 문언이 남긴 공백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그친다.
5.1문언에서 뽑은 구성요건 요소
보충적 해석과 입법적 구체화 사이의 경계를 묻던 흐름을 받아, 이제 그 해석의 출발점이 되는 문언의 자리를 확인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이 적어 둔 말을 하나씩 떼어 읽을 때, 이 조항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각 요소가 무엇을 정해 놓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이번 쟁점의 근거가 되는 형법 제355조 제2항은 처벌되는 행위를 다음과 같이 정한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355조) 이 문장에 적힌 말을 그대로 놓아두고 읽으면, 이 조항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요소는 네 자리로 나뉜다. 첫째는 처벌되는 주체를 가리키는 자리이고, 둘째는 처벌되는 행위의 성질을 가리키는 자리이며, 셋째는 그 행위로 취득되는 이익의 귀속을 가리키고, 넷째는 본인에게 가해지는 손해를 가리킨다. 문언의 배치가 이 넷을 하나의 문장으로 엮고 있기에, 어느 요소를 빼거나 새로 더하지 않고 네 자리만을 놓고 읽는다.
행위자의 지위를 정하는 말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다. 이 말은 처벌되는 주체를 문언으로 한정한다. 문언이 적어 둔 것은 지위의 존재이며, 그 한정이 어디까지 가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남는다. 무엇이 지위를 이루는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도 이 말 자체에는 없다. 지위를 구성요건의 한 요소로 놓는 데까지가 문언이 정한 범위이다.
행위의 성질을 정하는 말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이다. 이 말은 처벌되는 행위를 임무 위배라는 기준에 묶는다. 여기서 문언이 함께 적어 둔 것은 그 행위가 수단으로서 이어지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라는 뒷부분이다. 이 말을 이어 읽을 때, 처벌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이익 취득의 경위가 되는 것이 문언의 배치이다. 다만 무엇이 임무이고 무엇이 그에의 위배인지에 대해서는 문언이 따로 풀어 쓰지 않았다. 이는 남겨진 자리를 가리킬 뿐, 그 자리를 채울 기준을 문언 밖에서 찾아오라는 뜻은 아니다.
이익의 취득을 정하는 말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이다. 이 말은 이익을 취득하는 주체가 행위자이거나 제삼자임을 함께 담는다. 문언은 이 둘 중 어느 한쪽만을 정한 것이 아니라, 둘을 나란히 놓고 있다. 본인에게 가해지는 손해를 정하는 말은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이다. 이 말은 손해를 구성요건의 한 요소로 놓는다. "전항의 형과 같다"는 부분은 법정형을 전항에 가리킬 뿐, 요소를 새로 더하지 않는다.
이 네 요소가 문언에 놓인 순서는, 행위자의 지위, 임무 위배 행위, 이익 취득, 손해의 발생이다. 각 요소가 무엇을 정해 놓는지를 나누어 보면, 지위는 처벌되는 주체를, 임무 위배는 처벌되는 행위의 성질을, 이익 취득은 그 행위의 결과가 어느 주체에게 귀속하는지를, 손해는 그 결과가 본인에게 미치는 효과를 정한다. 이렇게 나누어 놓은 뒤에 보면, 요소마다 문언이 밝힌 것과 밝히지 않은 것이 갈린다. 지위에 대해서는 그 존재만이, 임무 위배에 대해서는 그 기준의 이름만이, 이익 취득에 대해서는 귀속의 주체만이, 손해에 대해서는 그 발생만이 적혀 있다.
이 문언에 적힌 말 이외의 요소나 요건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문언이 정하지 않은 사정을 새로 만들어 넣으면, 해석의 출발점이 흔들린다. 그러므로 요소별로 문언이 정한 자리를 확인한 뒤에, 문언이 비워 둔 자리를 그대로 인식하고 넘어가는 것이 이 해석의 순서이다. 이 문언이 무엇을 정하고 무엇을 비워 두었는지를 가리는 일은, 그 한정이 어디까지 이르는지를 읽는 문제로 이어진다.
5.2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문언은 처벌되는 주체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특정하고 있다. 앞에서 본 구성요건 요소 가운데 이 주체 요소가 무엇을 정하고 무엇을 비워 두는지가 이제 남은 물음이다. 문언이 적어 둔 말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이라는 한 구에 그치며, 그 밖의 지위나 계약의 종류를 적어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문언이 처벌되는 사람의 범위를 어떻게 한정하고, 그 한정이 어디까지 닿으며, 무엇을 비워 두었는지 차례로 읽어야 한다.
우선 처벌되는 주체가 누구인지 문언에서 그대로 옮기면,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정한다. 이 문언에서 주체를 가리키는 말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며, 그 자가 무엇을 하는지까지 함께 적어 두고 있다. 이 구절은 처벌되는 사람을 사무의 처리에 결부된 사람으로 묶어 둔다.
이 주체 한정은 형법 제355조 제1항과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제355조 제1항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한다. 제1항은 재물의 보관이라는 사정으로 주체를 묶고, 제2항은 사무의 처리라는 사정으로 주체를 묶는다. 두 항이 각각 다른 사정으로 처벌되는 주체를 가리키고 있으므로, 제2항의 문언은 재물 보관자의 범위로 좁혀 읽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한정이 어디까지 닿는지 문언의 어구에서 살핀다. 문언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만 하였고, 그 사무가 어떤 것인지, 그 처리가 어떤 모양인지 적어 두지 않았다. 문언이 쓴 "타인의"라는 어구는 처리되는 사무가 자기 것이 아니라 남의 것임을 가리키고, "사무를 처리하는"이라는 어구는 그 사람이 그 사무에 관여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다만 그 관여가 어떤 지위나 어떤 계약에 터 잡고 있는지는 이 문언에서 정해 두지 않았다.
나아가 문언이 비워 둔 자리도 함께 적어 두어야 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처벌되는 주체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적었을 뿐, 그 자의 지위가 어떤 이름을 갖는지, 그 자와 본인 사이에 어떤 계약이 놓여 있는지 적어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문언에 적힌 말 밖의 지위나 계약의 종류를 새로 만들어 이 자리를 채울 수는 없다. 지위의 명칭이나 계약의 종류는 이 문언이 정해 두지 않은 것이며, 미정으로 남는다.
결국 제355조 제2항의 문언은 처벌되는 주체를 사무의 처리라는 사정으로 묶어 두되, 그 사정이 어떤 지위나 어떤 계약에 터 잡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비워 두고 있다. 이 한정은 주체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어야 한다는 데까지 닿고, 그 처리자의 지위나 계약의 이름까지 닿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례에서 갑이 처벌되는 주체에 해당하는지는 문언에 적힌 주체 한정을 기준으로만 살펴야 하며, 그 밖의 요소는 문언이 정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5.3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형법 제355조 제2항은 처벌되는 행위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고 쓰고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한정되었다. 이어서 문언이 가리키는 행위는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이다. 이 단서에서는 이 문언이 무엇과 비교해서 성립하는 말인지, 그리고 그 비교의 기준이 되는 임무가 무엇인지가 문제이다.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는 문언은 두 개의 사물을 서로 견준다. 한쪽은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이고, 다른 쪽은 그 행위가 어긋난다고 쓰인 임무이다. 문언은 이 둘의 어긋남만을 말할 뿐, 행위가 임무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가릴 구체적인 척도를 적어 두지 않았다. 따라서 문언의 구조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행위가 혼자서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특정한 임무와의 관계에서 위배된다는 점이다. 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조문이 요구하는 "위배"도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
문언은 다만 그 임무를 "그"라는 지시어로 가리킬 뿐이다. 이 지시어는 앞 구절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다시 받아 쓴 것으로 보인다. 즉, 임무는 사무 처리자가 맡은 사무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문언에 쓰여 있다. 다만 문언이 사무 처리자에게 맡겨진 임무를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조문이 말하고 있지 않다. 임무의 범위와 내용을 확정하는 기준이 따로 문언에 놓여 있지 않으므로, 이 문언만으로는 비교의 대상인 임무가 무엇인지가 미정이다.
갑이 방송 전에 사 둔 종목을 방송에서 추천한 뒤 처분한 사안에서, 문제는 그러한 행위가 조문이 말하는 임무에 어긋나는지이다. 그러나 갑이 방송 진행자에게 어떤 임무가 맡겨졌고 그 임무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문언이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갑의 행위가 임무에 부합하는지 어긋나는지를 가릴 수 있는지 여부도 미정이다. 문언에 없는 자료로 임무의 구체적 내용을 새로 채워 넣을 수는 없다. 만일 임무의 내용이 특정되지 않는다면,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는 문언은 무엇을 비교해 무엇을 빼야 성립하는지 확정되지 않는다.
요컨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는 문언은 행위가 임무와 불일치하는 상태를 요구할 뿐이다. 그 임무가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은 조문이 맡기지 않은 몫으로 남는다. 임무의 내용이 확정되지 않는 한, 문언이 금지하는 행위의 외연도 함께 열린 채로 남는다. 이 열림은 다음 나눌 주제로 넘겨야 할 문제이다.
5.4이익 취득의 두 가지 모습
임무 위배의 기준을 묻는 자리에 이어, 그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아야 문언이 말하는 죄에 이르는지를 문언 순서대로 살필 차례이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결과를 이루는 길을 두 갈래로 놓는데, 그 둘이 무엇이고 서로 어떻게 갈라지는지가 이 절의 문제이다.
문언은 이익을 누가 가지느냐에 따라 첫째 갈래와 둘째 갈래를 나란히 둔다.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정한다. 같은 행위가 당사자 스스로 이익을 가지는 경우와 제삼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경우를 한 문장 안에서 병렬로 두고, 어느 쪽이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를 형이 같은 것으로 묶는다.
첫째 갈래에서 문언은 행위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모습을 그린다. 여기서 취득의 주체는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한 바로 그 사람이며, 문언은 이익이 그에게 돌아온다는 점만을 정한다. 이 갈래에서 이익의 내용이 무엇인지, 액수를 어떻게 산정하는지는 정해지지 않은 채 남는다.
둘째 갈래에서 문언은 행위자 자신이 이익을 가지지 아니하고 제삼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모습을 그린다. 제355조 제2항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라는 문구가 그 길을 가리키며, 이때도 행위자는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한 자이다. 이 갈래에는 누구를 제삼자로 볼지, 그 제삼자와 행위자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조건이 붙지 않으므로, 문언만으로는 그 테두리가 정해지지 않는다.
두 갈래는 이익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라는 한 가지 물음에서 갈라진다. 문언은 그 물음만을 나눌 뿐, 두 갈래 가운데 어느 쪽에 속하는지에 따라 요건이 달라진다는 말은 두지 않는다. 반면 공통되는 요소는 분명한데, 두 갈래 모두에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가 선행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아가 문언이 이 갈래를 어떻게 택하는지, 즉 하나의 행위가 두 갈래에 겹쳐 걸리는지, 어느 한쪽에만 붙는지는 문언에서 밝혀지지 아니한다. 이는 뒤에 행위와 결과를 잇는 자리를 다룰 때 다시 마주할 문제이며, 이익의 내용이나 액수를 정하는 일과는 구별되는 물음이다. 문언이 놓은 두 갈래의 자리만으로는 그 경계가 미정으로 남는다.
5.5행위와 결과를 잇는 자리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문언은 이익 취득의 두 갈래를 나란히 두고, 그 뒤에 손해의 발생을 놓는다. 앞 절에서 본바와 같이 이익 취득은 갑 자신의 것과 제3자의 것으로 갈린다. 그렇다면 이 문언은 주체에서 이익에 이르는 길목을 무엇으로 잇고, 무엇을 거치지 않은 채로 남겨두는가.
형법 제355조 제2항은 그 요소의 순서를 이렇게 적는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355조). 문언의 순서를 되짚으면 주체가 먼저 나오고,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가 뒤따른다. 그 행위가 이익 취득의 수단임을 '행위로써'라는 말이 잇는다. 이 '행위로써'가 이 문언이 행위와 결과 사이에 놓은 유일한 연결이다.
이 문언이 놓은 연결이 '행위로써'에 그친다는 점은 중요한 뜻을 지닌다. 그 사례에 비추어 보면,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와 이익 취득 사이에 문언은 시간의 간격을 두지 않았다. 어느 행위 뒤에 얼마가 지나야 이익이 취득된 것인지도 정하지 않았다. 문언은 행위가 이익의 수단이 되는 관계만을 말할 뿐, 그 사이에 얼마의 시차가 있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방송 전 취득과 방송 추천의 결합이 이 관계에 들어가는지, 그리고 추천과 처분 사이에 필요한 시차는 얼마인지는 이 조문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한편 문언은 이익 취득과 손해를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라는 표현으로 묶는다. 손해가 이익 취득과 나란히 놓인 요소임은 분명하다. 다만 이 문언은 손해를 이익 취득과 수치로 맞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처분 대금 가운데 얼마를 이익으로 삼을지도, 그 이익과 손해가 서로 어떻게 비례해야 하는지도 정하지 않았다. 기록으로 남은 취득 일자와 수량, 추천 방송의 일자와 내용, 처분 일자와 수량은 이 요소들에 무엇이 놓였는지 확인하는 자료가 될 뿐이다. 그러한 수치의 배분은 문언이 정한 바가 아니므로 미정으로 남는다.
문언의 폭을 한정하는 자리는 이 요소들 사이에 놓인 연결이다. 주체에서 임무 위반으로, 임무 위반에서 이익 취득으로, 이익 취득에서 손해로 이어지는 사슬 가운데 문언이 직접적으로 이어놓은 것은 '행위로써'뿐이다. 인과관계나 시차의 요건을 이 자리에 새로 넣는 것은 문언에 없는 것을 더하는 일이 된다. 갑이 방송 전에 사 둔 종목을 추천한 뒤 처분한 사실은 나열된 관찰에 그치며, 그 나열만으로 문언의 요건이 모두 갖추어졌다고 확정할 수 없다. 갑이 행위 시점에 그 뜻을 알 수 있었는지도 이 문언이 다루는 요소가 아니므로, 역시 미정으로 남는다.
5.6문언이 남긴 공백
문언의 어순에서 요소가 놓인 자리를 살핀 뒤에는, 그 사이에 무엇이 비어 있는지 한 목록으로 모아야 한다. 그래야 문언만으로 가를 수 있는 것과 다음 단계로 넘길 것을 나눌 수 있다.
형법 제355조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정한다. 조문은 이렇게 요소를 나열하면서, 요소 사이에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는 풀어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문언이 허용하는 자름은 어디까지인지가 남는다.
합성 사례에서 방송 전 취득과 방송 추천의 결합이 이 조문이 말하는 임무 위배에 해당하는지가 먼저 남는다. 갑은 조문을 읽고도 자기 행위가 금지되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방송 전 취득과 방송 추천의 결합이 조문이 말하는 부정한 기교에 해당하는지, 추천과 처분 사이에 필요한 시차는 얼마인지, 처분 대금 가운데 얼마를 이익으로 삼는지, 갑이 행위 시점에 그 뜻을 알 수 있었는지는 미정이다. 이 목록은 관찰된 사실의 나열이며,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가 아니다.
여기서 손해와 이익의 자리는 구체적인 숫자를 남긴다. 취득 일자와 수량, 추천한 방송의 일자와 내용, 처분 일자와 수량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기록이 곧 문언의 각 요소에 맞는 값을 주는 것은 아니다. 처분 대금 가운데 얼마를 이익으로 삼을지, 취득과 처분 사이의 시간이 임무 위배 행위의 성립에 무엇을 더하는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갑이 말한 '알 수 없었다'는 문언 그 자체로는 무엇을 물은 것인지가 모호하다. 조문의 요소 나열은 갑이 말한 그 뜻을 밝히는 자료를 품고 있지 않다. 그 뜻은 남은 목록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결국 문언이 남긴 공백은 한 가지로 줄지 않는다. 요소 사이의 결합 요건, 이익의 범위, 시차, 행위 시점의 인식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비어 있다. 이 가운데 문언의 구조로만 어느 정도 자를 수 있는 것과, 문언의 범위를 넘어서 판단이 필요한 것을 나누는 일은 다음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