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이 장은 법정 질문과 제출 자료가 대응하는지, 새 진술과 감정이 기존 주장을 어떻게 바꾸며, 보고서를 제3자가 같은 자료로 다시 확인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법정 질문과 제출 자료의 대응, 새 진술이 주장을 바꾸는 경로, 감정이 손해액을 다루는 방식과 감사조서·손해배상 책임을 차례로 살피고, 독립 확인과 재검토의 조건을 더한다.
14.1법정 질문과 제출 자료의 대응
판단의 한계를 표시한 뒤에는 제출 자료 하나하나가 법정의 어느 물음에 놓이는지를 가려야 한다. 제출 자료는 어떤 사유의 유무를 묻는 물음에 대해 어떤 관찰로 답하고, 어떤 추론을 더하는지를 나누어 읽어야만 정확한 자료가 정확한 자리에 놓인다. 그래야 자료를 제출했다는 사실 자체를 자료의 내용에 대한 평가로 착각하지 않는다.
법정의 물음은 네 갈래로 나뉜다. 계약의 성립과 내용이 첫째이고, 변경 이메일이 계약의 내용을 바꿨는지가 둘째이다. 자금 기록이 지급의 유무에 답하는지가 셋째이며, 손해액 계산서가 손해의 범위를 얼마로 잡는지가 넷째이다. 자료는 이 물음들에 각각 대응한다. 계약서는 첫째 물음에, 변경 이메일은 둘째 물음에, 자금 기록은 셋째 물음에, 손해액 계산서는 넷째 물음에 대응한다.
이 대응을 읽어내는 데에는 소명의 방법에 관한 규율이 틀을 제공한다. 민사소송법 제299조는 소명의 방법을 두고, "소명은 즉시 조사할 수 있는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자료가 법정의 물음에 대응하려면 즉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제시한다. 대응표에 놓일 자료는 먼저 조사 가능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조사 가능성은 제출 자료마다 따로 살핀다.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은 문서의 형태로 제출되어 당장 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자금 기록도 기록 자체는 조사할 수 있다. 반면 손해액 계산서에 붙은 참고 자료 목록 가운데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는 제출 자료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목록에 오른 자료가 즉시 조사할 수 있는 형태로 제출되지 않았다면, 그 부분은 대응표에서 빈칸으로 남겨 둔다.
빈칸은 채우지 않고 남겨 두는 것이 정확한 읽기이다. 손해액 계산서는 손해의 범위에 대한 대답을 담고 있으나, 그 대답이 어떤 관찰에 기초하고 어떤 추론을 더했는지는 원자료가 뒷받침해야 한다. 원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채 계산서만 제출된 경우, 계산서 자체는 읽을 수 있어도 계산의 바탕이 된 관찰은 확인할 수 없다. 자료가 제출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자료가 어떤 관찰에 기초하고 어떤 추론을 더했는지에 대한 법적 평가가 아니다.
대응표의 빈칸이 남으면 그 자료에 의한 대답은 미정으로 표시한다. 손해액 계산서가 채택한 기준 시점, 누락된 메시지의 내용은 지금 확인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확인된 것으로 적으면 나중에 그 사실이 뒤바뀌었을 때 대응표 전체가 흔들린다. 미정은 미정으로 적는 편이 안전하다.
진술이 놓이는 자리도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 관계자 A의 진술은 회의에서 직접 들은 내용과 직접 확인한 문서 내용을 하나의 서술로 담고 있으며,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를 당시 의사결정의 근거로 함께 인용한다. 이 진술이 어느 물음에 대응하는지는 둘로 나누어 살핀 뒤에야 정해진다. 형사소송법 제318조의2는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한 증거를 두고, "제312조부터 제316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증거로 할 수 없는 서류나 진술이라도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공소제기 전에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하였거나 그 조사에 참여하였던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증명력을 다투는 자리에 서류나 진술이 놓일 수 있다는 점을 밝힌다. 이 자리에 놓이는 자료는 관찰과 추론이 함께 담긴 서술을 해체하는 데 쓰인다.
대응표를 그리는 일은 자료의 이름을 적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 자료가 어느 물음에 답하는지, 그 답이 어떤 관찰에 서 있는지, 어떤 추론을 더했는지, 어느 부분이 조사되지 않았는지를 함께 적어야 한다.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과 자금 기록은 각자의 물음에 자리를 잡는다. 손해액 계산서의 빈칸은 빈칸으로 남는다. A의 진술에서 직접 들은 내용과 들은 뒤 서술한 내용을 나누는 일은 그 진술을 어느 물음에 놓을지 정하는 데에 선행한다. 그 나눔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대응표에 올리면, 한 진술이 여러 물음에 겹쳐 놓이게 된다.
14.2새 진술이 주장을 바꾸는 경로
제출 자료가 법정의 물음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묻고 나서, 이제 관계자 A의 진술이 원래의 주장을 어떤 경로로 바꾸는지 살필 차례이다. A는 회의에서 직접 들은 내용과 직접 열람한 문서의 내용을 하나의 서술로 엮어 말하면서, 사건 뒤에 작성된 설명 문서를 당시 의사결정의 근거로 함께 인용하였다. 이 두 종류의 진술을 나누어 읽지 않으면, 관찰한 사실과 사건 뒤의 해석이 뒤섞인 채로 주장의 방향만 옮겨가게 된다.
A의 진술을 나눌 때 출발점은 직접 심리의 원칙이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의 면전에서 직접 조사한 증거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는다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취한다. 대법원은 그 취지를 "법관이 법정에서 직접 원본 증거를 조사하는 방법을 통하여 사건에 대한 신선하고 정확한 심증을 형성할 수 있고 피고인에게 원본 증거에 관한 직접적인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공정한 재판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대법원 2006. 11. 24. 선고 2006도4994 판결). 이 기준은 A의 진술에 대하여 그가 말한 각 대목이 어떤 원본에 붙어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옮겨 올 수 있다. 회의에서 들은 내용은 그 회의라는 사건에 붙고, 문서를 열람한 내용은 그 문서라는 원본에 붙는다.
그런데 A의 진술 가운데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는 성격이 다르다. 이 문서는 당시의 회의나 당시의 문서가 아니라, 사건이 지난 뒤에 만들어진 서류이다. A가 이 문서를 당시 의사결정의 근거로 함께 인용하는 것은, 자신이 관찰한 사실 뒤에 사건 뒤의 해석을 덧붙이는 일에 해당한다. 설명 문서가 당시의 판단을 재구성한 것이라면 그것은 별도의 추론이며, A가 직접 들은 내용이나 직접 본 문서의 내용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는 사건 뒤 문서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A가 무엇을 직접 들었고 무엇을 직접 보았는지가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
진술의 신빙성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순서가 있다. 대법원은 "제1심판결 내용과 제1심에서 적법하게 증거조사를 거친 증거들에 비추어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대한 제1심의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되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항소심으로서는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대한 제1심의 판단이 항소심의 판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대한 제1심의 판단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대법원 2006. 11. 24. 선고 2006도4994 판결). 이 태도는 A의 진술을 한 덩어리로 받아들이려는 접근을 경계하게 한다. 들은 것과 본 것을 섞은 서술은 그 덩어리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가 드러나야 비로소 평가의 대상이 된다.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한 자료도 같은 방향에서 읽힌다. 형사소송법 제318조의2는 "제312조부터 제316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증거로 할 수 없는 서류나 진술이라도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공소제기 전에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하였거나 그 조사에 참여하였던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경로는 A의 진술을 대신하는 증거를 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그 진술이 딛고 있는 관찰과 추론을 가르는 데 쓰인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이 경로로 들어온다면, 그 문서는 당시의 근거를 대체하는 서류가 아니라 A의 진술에 섞인 추론을 되짚는 자료로 놓인다.
이 사례에서 관계자 A가 회의에 몇 명이 참석했는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직접 열람한 문서가 어느 범위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참석 인원의 수와 열람 범위가 미정인 채로 남아 있는 한, 그 자리는 추측으로 메울 수 없다. A의 진술이 주장을 바꾸려면 바뀌는 지점이 관찰에서 나온 것인지, 사건 뒤의 해석에서 나온 것인지가 드러나야 한다. 앞에서 본 자료의 대응과 이어지는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이며, 여기서 갈리는 것은 자료가 제출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자료가 어떤 관찰에 기초하고 어떤 추론을 더했는지에 대한 평가이다.
14.3감정이 손해액을 다루는 방식
A의 진술과 설명 문서를 분리한 뒤에는, 상대방이 제출한 손해액 계산서가 무엇을 근거로 숫자를 만들었는지가 남는다. 계산서에 참고 자료 목록이 붙어 있으나 기준 시점과 산출 근거가 적혀 있지는 않다. 여기서는 감정의 촉탁 경로를 따라, 감정이 손해액을 다루는 방식이 무엇을 먼저 확정하는지를 살핀다.
감정의 시작은 감정인의 지정이다. 민사소송법 제335조는 "감정인은 수소법원·수명법관 또는 수탁판사가 지정한다"고 정한다. 감정인이 누구인지가 법원의 지정으로 정해진다는 뜻이다. 이 사례에서 손해액 계산서를 누가 작성했는지, 그 작성자가 법원의 지정을 받은 감정인인지 여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계산서의 참고 자료 목록만으로는 작성자의 지정 경위를 알 수 없다.
법원이 외부 단체의 판단을 빌릴 수도 있다. 민사소송법 제341조 제1항은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공공기관·학교, 그 밖에 상당한 설비가 있는 단체 또는 외국의 공공기관에 감정을 촉탁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선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정한다 (민사소송법 제341조). 촉탁은 법원이 필요를 인정할 때 선택하는 경로이며, 이 경로에서는 선서가 요구되지 않는다. 손해액 계산서를 만든 주체가 이런 단체에 해당하는지는 미정이다.
촉탁된 기관이 만든 문서도 그 자리에서 설명될 수 있다. 민사소송법 제341조 제2항은 "제1항의 경우에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공공기관·학교, 그 밖의 단체 또는 외국 공공기관이 지정한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서를 설명하게 할 수 있다"고 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제2항의 경우에는 제339조의3을 준용한다"고 덧붙인다. 문서에 적힌 계산이 어떻게 나왔는지 만든 사람이 설명하는 절차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이 사례에서 계산서의 기준 시점과 산출 근거가 바로 그 설명에서 밝혀질 수 있다.
다만 참고 자료 목록이 붙어 있다는 사실은 산출 근거가 확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목록에 오른 자료가 어느 시점의 값인지, 계산서가 그 값 가운데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뺐는지,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가 빠져 있는 일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미정이다. 자료가 제출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자료가 어떤 관찰에 기초하고 어떤 추론을 더했는지에 대한 법적 평가가 아니다.
따라서 손해액 계산서를 읽는 일은 누가, 어떤 경로로,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숫자를 냈는지를 차례로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감정인이 법원의 지정을 받았는지, 촉탁 경로를 거쳤는지가 먼저 밝혀져야 하고, 그다음에 계산서가 채택한 기준 시점과 산출 근거가 확인되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미정으로 남겨 두는 것이 이 사례의 남은 물음에 답하는 길이다.
14.4감사조서와 손해배상 책임
감정이 손해액을 어떻게 산출했는지 가리는 문제에 이어, 이제 조사 기록 자체가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남겨두었는지 살핀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손해 배상을 함께 주장하며 계약서,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손해액 계산서를 냈고, 관계자 A는 자신이 들은 회의 내용과 직접 확인한 문서 내용을 하나의 서술로 진술하면서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를 당시 의사결정의 근거로 함께 인용했다. 조사 기록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물으려면 외부감사에서 감사조서가 어떤 내용을 문서화하도록 요구되는지부터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9조는 감사조서에 담길 내용을 이렇게 밝힌다. "감사인은 감사를 실시하여 감사의견을 표명한 경우에는 회사의 회계기록으로부터 감사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하여 적용하였던 감사절차의 내용과 그 과정에서 입수한 정보 및 정보의 분석결과 등을 문서화한 서류(자기테이프·디스켓, 그 밖의 정보보존장치를 포함한다. 이하 “감사조서”라 한다)를 작성하여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9조) 같은 조 제2항과 제3항은 보존 기간과 훼손 금지를 함께 정한다. "감사인은 감사조서를 감사종료 시점부터 8년간 보존하여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9조) 그리고 "감사인(그에 소속된 자 및 그 사용인을 포함한다)은 감사조서를 위조·변조·훼손 및 파기해서는 아니 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9조) 이에 비추어 보면 기록에 남겨야 할 것은 적용한 절차의 내용과 입수한 정보, 그 분석의 결과이다. A가 들은 회의 내용과 열람한 문서의 내용을 하나로 엮어 적는 서술이 그 둘을 각각 어디까지 확인했는지 가르지 않는다면, 그 기록은 분석의 결과만을 남기고 절차와 정보의 경계를 유보한 셈이다.
무엇을 남겼는가와 무엇을 유보했는가를 가른 뒤에야 책임의 문제에 다가설 수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1항은 감사인과 회사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정한다. "감사인이 그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같은 조 제2항은 회사가 아닌 제3자가 이용한 경우를 별도로 다룬다.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음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연결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중요한 사항을 적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적은 책임이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의 감사인에게 있는 경우에는 해당 감사인은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여기서는 임무를 게을리하였는가와 중요한 사항을 빠뜨렸거나 거짓으로 적었는가가 책임의 축이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은 계약 당사자로서 손해 배상을 청구한다. 그 청구를 제3자에 대한 책임의 조항에 그대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제31조 제2항은 믿고 이용한 제3자를 보호하는 조항이고, 계약 당사자의 손해는 제1항이 다루는 임무 해태의 문제에 가깝다. 따라서 계약 분쟁에서 묻는 것은 조서의 기록이 어떤 관찰에 기초하고 어떤 추론을 더했는지, 즉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근거가 기록에 남았는가이다. 회의에 참석했다는 A가 직접 확인한 문서의 범위가 미정이고, 상대방이 낸 손해액 계산서에 붙은 참고 자료 목록의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가 제출 자료에 들어 있지 않다면, 그 공백은 기록으로 메울 수 있는 부분과 유보로 남겨야 할 부분으로 나뉜다.
증명의 부담이 어디에 놓이느냐도 함께 확인해 두어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7항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그 자가 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임무를 게을리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1조) 다만 각 호의 특정한 청구자가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그 자가 임무 해태를 증명해야 한다. 이 사례의 상대방이 그 각 호의 청구자에 해당하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으므로, 증명 책임의 귀속은 미정으로 남는다. 결국 조사 기록의 채움과 유보가 가르는 것은 손해액의 규모가 아니라,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볼 근거가 어느 선까지 서류로 남았는가이다. 그 선을 넘겨 계약 분쟁의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편이 옳다.
14.5독립 확인과 재검토의 조건
앞 단위가 감사조서에 남은 기록이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유보했는지의 구분을 끝낸 데서 이어져, 이제는 같은 자료로 제3자가 다시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확인이 성립하려면 무엇을 전제로 삼고 무엇을 남겨두어야 하는지가 남는 물음이다.
독립 확인의 출발점은 증거의 형태이다. 민사소송법 제299조 제1항은 소명의 방법을 두면서 "소명은 즉시 조사할 수 있는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회의 내용을 전해들은 진술과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는 조사 가능한 원자료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 서술을 독립 확인의 근거로 삼으려면 진술자가 직접 확인한 문서의 범위와 전해들은 내용을 나누어 적어야 한다.
전문지식이 필요할 때는 법원이 외부에 확인을 맡길 수 있다. 민사소송법 제341조 제1항은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공공기관·학교, 그 밖에 상당한 설비가 있는 단체 또는 외국의 공공기관에 감정을 촉탁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선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같은 조 제2항은 "제1항의 경우에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공공기관·학교, 그 밖에 단체 또는 외국 공공기관이 지정한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서를 설명하게 할 수 있다"고 둔다 (민사소송법 제341조). 손해액 계산서에 붙은 참고 자료 목록이 이러한 확인 절차의 대상이 되려면 계산이 채택한 기준 시점과 산식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 측 손해액 계산서의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는 제출 자료에 포함돼 있지 않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의 요건에 관하여, "이때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자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하였다는 점을 주장·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누락된 메시지와 원자료가 무엇을 보여주는지가 밝혀지지 않은 채로는, 그 자료의 부재가 어느 쪽의 입증 범위에 놓이는지조차 정해지지 않는다.
재검토의 조건은 확인된 범위를 넘는 요구가 아니라 남는 물음에 붙는다. 위 판결은 사후에 드러난 오류만으로 책임을 단정할 수 없음을 밝히면서, "감사인이 감사업무를 수행하면서 전문가적 의구심을 가지고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를 확보하고 경영자 진술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확인절차를 거치는 등 회계감사기준 등에 따른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면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라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 같은 논리로, A가 직접 열람한 문서의 범위와 전해들은 회의 내용이 분리되어 기록되지 않은 채로는 독립 확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핵심 전제가 바뀌었을 때의 처리도 같은 선 위에 놓인다. 회의 참석 인원의 정확한 수, 계산서가 채택한 기준 시점, 누락된 메시지의 내용은 모두 미정으로 남는다. 자료가 제출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자료가 어떤 관찰에 기초하고 어떤 추론을 더했는지에 대한 법적 평가가 아니므로, 이 사실만으로 확인의 범위가 확정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확인한 범위 안에서 무엇을 확정하고 무엇을 유보할지는 완결 검증의 몫으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