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결론의 정확도가 완전하더라도 사법은 당사자를 분류의 객체로 삼지 않고 근거 확인과 이의 제기 및 응답을 받을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이해 가능한 반박 지원과 검토·중지가 명시된 이의 경로, AI 비이용 선택권이 함께 설계될 때 성립한다.
3.1정확한 판결 앞의 당사자 지위
당사자를 판단의 대상으로만 취급할 때 사법은 무엇을 잃는가. 이 편의 명제는 결론의 정확도가 완전하더라도 당사자에게 근거를 확인하고 이의를 내며 응답을 받을 지위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똑똑한 체계가 모든 반론을 미리 예상하더라도, 그 예상이 당사자를 대신하여 무엇을 주장할지 결정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 이 물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승소한 당사자조차 자신의 승소가 왜 자신에게 귀속되는지 설명받지 못하고, 패소한 당사자는 틀렸다는 통보 앞에 침묵을 강요받는다. AI는 방대한 기록에서 놓친 쟁점과 유리한 반론을 찾아내어 말할 자리가 없던 사람의 발언 능력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원이 당사자의 선택을 대체하도록 설계된다면 참여는 분류의 장식이 된다. 요구되는 지위는 원하는 판결을 얻을 권리도 무제한 재심사권도 아니다. 결론의 근거와 권한의 범위를 확인하고 이의가 이유 있게 다루어지는 통로를 뜻한다.
3.2지위 보장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이 명제가 성립하는 조건은 세 가지이다. 첫째, 반박 지원은 당사자가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유로 내려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태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둘째, 이의의 경로는 검토 주체와 답변 기한, 심리 중지 여부를 명시해야 하며 화면 위의 이의 표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셋째, AI를 이용하지 않을 선택권과 AI의 판단에 반대하는 사람의 권리가 같은 설계에 포함되어야 한다. 기술적 무지를 이유로 모든 자동 결정을 무효로 만드는 것도, 무지를 방치한 채 결정을 강행하는 것도 아니다. 현행 소송능력이나 공동소송의 요건 해설은 제III-02권 등에 맡기고 이 장은 미래 제도에서 당사자 지위를 기능적으로 보장하는 조건에 집중한다.
3.3반론: 온정적 자동화와 절차 부담
가장 강한 반론은 당사자 지위를 강조할수록 절차가 무거워지고 정작 급한 구제가 늦어지며, 잘 설계된 자동 분류가 당사자의 진정한 이익을 더 잘 실현한다는 주장이다. 온정적 자동화가 당사자의 부담을 덜어 준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다. 모든 사건에 대면 심리와 긴 구술 기회를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일은 자원이 없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 그러나 부담을 덜어 주는 것과 발언의 주인을 바꾸는 것은 다르다. 반박을 자동 생성하여 당사자에게 제공하고 당사자가 채택 여부를 정하게 하는 설계는 부담을 줄이면서 발언의 주인도 지킨다. 반대로 체계가 당사자의 반론까지 미리 처분해 버린다면 정확도는 올라도 비지배의 조건은 무너진다. 덜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같은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면 비싼 방식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다만 보호 수준을 낮추는 대가로 속도를 얻은 경우에는 그 가치 충돌을 숨기지 않아야 한다.
3.4당사자 지위 명제의 폐기 조건
이 명제는 당사자 지위의 독립된 가치가 제도 선택을 전혀 바꾸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나면 버려야 한다. 예컨대 모든 사건에서 당사자가 결과에만 관심을 갖고 이유 확인과 이의 통로를 이용하지 않으며, 그 통로의 유지 비용이 구제의 접근성을 심각하게 해친다고 하자. 이 점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그치지 않고 검증 가능한 설계 평가로 입증된다면 지위 보장 방식을 간소화해야 한다. 반대로 다툼과 회복의 실효성 없이 정확도만 높은 제도에 강제력을 맡기는 제안은 이 편의 기준에 따라 거부된다. 지위는 장식이 아니라 오판을 바로잡고 권한 남용을 멈추게 하는 실제 능력으로 남을 때만 정당화의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