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적용 시점과 적용 법령을 구분하고 주위적·예비적 구성의 사실 정합성을 검증하는 방법을 묻는다. 적용 시점과 적용 법령의 분리, 적용 법령과 해석 원리의 자리, 손해의 시점과 고의의 대상, 주위적 구성의 사실 배열, 예비적 구성의 정합 검사, 구성 성립을 멈추는 조건을 차례로 살핀다.
6.1적용 시점과 적용 법령의 분리
목록에 이름만 남은 자료를 석명으로 되돌려 보낸 뒤에 남는 질문은, 그 자료가 언제 작성되었는지와 어느 법령이 그 자료를 규율하는지가 하나인지 둘인지이다. 행정기본법 제14조는 이 두 질문을 각각의 문언으로 나누어 놓으므로, 먼저 그 기준을 그대로 읽어 둔다.
적용 시점의 기준을 먼저 두는 이유는 계약서 버전과 변경 이메일이 서로 다른 날짜에 작성된 장면에서, 무엇을 전에 완성된 사실관계로 볼지가 먼저 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법령이 새로 생겼을 때 그 이전의 사정에까지 미치는지를 가르는 문언으로, 행정기본법 제14조 제1항은 "새로운 법령등은 법령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법령등의 효력 발생 전에 완성되거나 종결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민사소송법 제299조). 이 기준은 완성·종결의 시점을 묻는 것이지, 어느 법령이 본래 이 관계를 규율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이 사례에서 계약 체결과 자금 집행이 언제 완성되었는지에 따라 적용 시점이 갈리지만, 그 결론만으로 적용 법령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으로 당사자의 신청에 따른 처분의 경우를 나누어 본다. 처분을 신청한 때와 처분을 하는 때가 다른 장면에서 어느 시점의 법령을 대는지에 관하여, 행정기본법 제14조 제2항은 "당사자의 신청에 따른 처분은 법령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처분 당시의 법령등을 적용하기 곤란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분 당시의 법령등에 따른다"고 정한다(민사소송법 제299조). 이 규정은 신청을 낸 시점의 법령이 아니라 처분 당시의 법령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계약 해지를 요구한 때와 기관에 설명을 낸 때가 달라도, 신청에 따른 처분의 시점을 어디로 볼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위반 행위와 제재처분의 경우를 보면, 적용 법령이 행위 시점에 묶이는 예외와 함께 놓여 있다. 행정기본법 제14조 제3항은 "법령등을 위반한 행위의 성립과 이에 대한 제재처분은 법령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령등을 위반한 행위 당시의 법령등에 따른다. 다만, 법령등을 위반한 행위 후 법령등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법령등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거나 제재처분 기준이 가벼워진 경우로서 해당 법령등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변경된 법령등을 적용한다"고 규정한다(민사소송법 제299조). 단서가 다루는 것은 행위가 위반에 해당하지 않게 되거나 제재 기준이 가벼워진 경우로 한정된다. 이 사례에서 변경 합의에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미정인 채로, 이 단서를 들어 적용 법령 자체를 바꾸는 처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적용 시점은 어느 시점의 사실관계·법률관계를 기준으로 삼을지를 정하는 질문이고, 적용 법령은 그 사실관계를 규율할 법령이 어느 것인지를 정하는 질문이다. 앞에서 석명으로 남겨 둔 작성 시점의 불일치는 전자의 질문에 관계하고, 적용 법령의 확정은 후자의 질문에서 별도로 다룬다. 이 사례에서는 계약서 버전의 적용 시점, 변경 합의의 권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모두 미정이므로, 행정기본법 제14조의 문언은 이 셋을 하나로 합쳐 결론을 내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6.2적용 법령과 해석 원리의 자리
적용 시점과 적용 법령이 갈린 뒤에는 그 법령 안에서 계약을 읽는 일이 남는다. 상대방은 여러 버전의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을 내놓으며 그 문구 사이의 공백을 신의성실로 메우자고 한다. 이 주장의 자리를 민법 제2조에서 확인한다.
민법 제2조는 신의성실의 자리를 두 항으로 나눈다. 먼저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민법 제2조)라고 선언한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을 규율하는 원칙이지, 새로운 사실 요건을 만들어 내는 문구가 아니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권리의 행사나 의무의 이행을 언제 어떻게 하였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제2항은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민법 제2조)라고 선언한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행사하는 권리의 내용 자체가 미정이며,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도 미정이다. 권리의 범위가 확정되기 전에 남용의 유무를 판단할 자리는 남아 있지 않다.
계약 해석의 자리에서 신의성실은 제공된 문구를 왜곡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다른 표현으로 적어 두었더라도, 그 문서는 작성 시점이 다르다.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이 남아 있을 때 신의성실이 하나의 표현을 밀어내고 다른 표현을 세워 주는 것은 아니다.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미정인 변경 합의에 대해서도, 신의칙이 권한 없는 합의를 권한 있는 합의로 바꾸어 주지 않는다.
신의성실의 자리는 보충적이다.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의 문구를 먼저 정리하고,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는 메시지와 원자료는 열람하지 못한 것으로 남긴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듯, 자료의 공백을 신의칙으로 채우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사실의 창작이다. 적용 계약의 버전이 미정인 채로 남아 있는 한, 신의성실의 원칙이 그 자리를 대신 확정해 주지 않는다.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서로 다를 때도, 신의성실은 어느 쪽 설명이 사실인지 가려 주지 않는다.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인 것 역시 같은 이치이며, 신의칙이 계산의 시점을 정해 주지 않는다. 계약 해석에서 민법 제2조는 확정된 문구의 이행과 행사가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향만 제시하며, 확정되지 않은 사항을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
6.3손해의 시점과 고의의 대상
신의칙이 계약 해석에서 보충적 자리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한 뒤, 이제 상대방이 함께 제기한 손해 주장에서 시점과 대상이 어느 쪽에 붙는지 묻는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하나로 묶어 주장하지만, 형사 구성에서 손해의 시점과 고의의 대상은 각각의 요건에 붙어 판단된다. 여기서는 판결이 정의한 표현을 그대로 옮겨 두 자리의 의미를 읽는다.
먼저 손해의 시점이 언제인지를 판결의 말로 확인한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손해의 시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배임죄에 있어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이 정의에 따르면 손해의 시점은 현실적인 손해가 확정된 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위험이 초래된 때도 같은 자리에 들어간다.
고의의 대상은 이와 다른 요건으로 읽는다. 같은 판결은 고의의 성립 요소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업무상배임죄의 고의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와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의 이득의 의사가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과 결합하여 성립되는 것"(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이다. 고의의 대상은 손해 자체만이 아니다.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와 이득의 의사가 임무위배의 인식과 결합하여 비로소 성립한다.
고의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입증의 자리도 함께 읽는다. 판결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와 같은 업무상배임죄의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고의, 동기 등의 내심적 사실)은 피고인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문제가 된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범의를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하고"(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라 한다. 내심의 사실은 간접사실의 연결로 판단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정의들이 배임죄의 자리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를 함께 내밀었지만, 손해의 시점에 대한 위 정의는 배임죄의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는 표현을 다룬다. 다른 범죄의 요건이나 다른 시점의 의미를 이 자리에 끌어오지 않는다. 계약서의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고,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가 파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해 같은 일에 다른 표현을 쓰는 장면에서, 위험 초래의 때가 언제인지는 그때 모인 사실로 판단할 문제이다.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 변경 합의의 권한,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은 모두 미정으로 남는다.
따라서 손해의 시점과 고의의 대상은 한 자리에서 함께 정해지지 않는다. 손해의 시점은 위험을 포함해 판단하고, 고의의 대상은 손해 의사와 이득 의사가 임무위배 인식과 결합한 것으로 보되, 입증은 간접사실의 연결에 맡긴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6.4주위적 구성의 사실 배열
앞 단위가 정한 시점과 고의의 대상이 구성 요건에 고정되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요건을 실제로 신청한 범위 안에 어떻게 배열할지가 문제로 남는다.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처분권주의를 선언하면서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한꺼번에 내놓은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놓고 무엇을 구성에 담을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주위적 구성의 배열에서 가장 먼저 검사할 것은 당사자의 신청 범위이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주장하였으므로, 이 두 가지가 신청된 사항에 해당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놓은 서류 가운데 사건 뒤에 작성된 설명 문서는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하여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문서의 표현을 당시의 사실로 삼으면, 신청된 사항이 아니라 문서 작성자의 사후 해석을 재판의 대상으로 삼는 셈이 된다. 따라서 주위적 구성에는 신청된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에 직접 붙는 사실만 놓이고, 사후 해석이 덧붙인 표현은 배열에서 빠진다.
다음으로 검사할 것은 요건에 붙는 사실의 확정 여부이다. 제출된 문서의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고, 일부 메시지와 원자료는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다. 목록에 이름만 있는 자료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요건 사실로 채워 넣을 수 없다. 계약서 여러 버전 가운데 어느 것이 적용되는지 미정이고, 변경 합의에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도 미정이다. 미정인 사항은 미정으로 남겨 두어야 하며,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구성에 넣으면 처분권주의가 지키려는 신청 범위의 한계가 무너진다.
손해액의 계산 기준 시점도 마찬가지로 미정이다. 대법원은 배임죄에 있어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에 관하여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C01]. 이 판시는 손해의 의미를 넓히는 것이지,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을 특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문가 계산서가 제시한 액수를 그대로 구성에 옮길 수 없고,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인 상태에서는 손해액의 확정을 유보한다.
마지막으로 같은 상대방에 대해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는 점을 검사한다. 두 설명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쓴다면, 주위적 구성에는 당사자가 신청한 범위 안에서 확인되는 사실만 남는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므로, 자료의 수량만으로 구성을 채우지 않는다. 주위적 구성의 사실 배열은 이처럼 신청된 당사자와 행위, 확정된 요건 사실, 그리고 범위 안의 구제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비워 둔 채로 마무리된다.
6.5예비적 구성의 정합 검사
신청한 범위 안에 주위적 구성을 배열한 뒤에는, 같은 사실을 놓고 세운 예비적 구성이 그와 모순되지 않는지를 검사한다.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이 문장은 주위적 신청의 테두리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당사자가 주위적 구성과 함께 내놓은 예비적 신청도 신청한 사항의 범위에 포함되며, 두 구성이 각자 받는 사실이 서로 어긋나면 법원이 그 중 어느 쪽도 신청한 사항대로 판결하지 못하게 된다. 정합 검사란 이 어긋남을 판결 전에 찾아내는 절차이다.
정합 검사는 사실의 겹침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를 함께 주장하며 계약서 여러 버전,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았을 때, 주위적 구성과 예비적 구성은 같은 계약 관계를 원인으로 삼는다. 그런데 제출된 문서의 작성 시점이 서로 다르고, 적용되는 계약의 버전은 미정이며, 변경 합의에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도 미정이다. 이 사실 그대로를 두 구성에 나누어 넣으면, 한 구성은 어느 버전을 전제하고 다른 구성은 그와 다른 버전을 전제하게 된다. 두 구성이 같은 자료에 각기 다른 전제를 얹는 한, 이들은 함께 성립하지 않는다. 모순의 여지는 사실이 아니라 전제의 배치에서 생긴다.
목록에 이름이 있으나 파일이 없는 자료를 두고도 같은 검사가 필요하다. 그 자료의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전제의 근거도 되지 못한다. 예비적 구성이 그 파일의 문언을 사실로 삼아 요건을 채우려 한다면, 그 요건은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남는다. 주위적 구성과 예비적 구성에 각각 그 파일의 내용을 서로 다르게 배정하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확인되지 않은 자료를 사실로 채워 넣는 순간, 두 구성의 정합 여부를 검사할 축이 사라진다.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는 정합 검사에서 별도로 취급한다. 그 문서가 당시 의사결정을 해석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표현을 쓰고 있으므로, 구성의 전제로 삼기 전에 작성 시점과 대상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같은 상대방에 대해 민사로 제출한 설명과 기관에 낸 설명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에도 사정은 같다. 두 설명의 문언이 갈리면, 예비적 구성은 어느 한쪽 설명을 전제로 삼아야 하고 주위적 구성은 다른 쪽을 전제로 삼을 수 없다. 손해액 계산의 기준 시점이 미정인 상태에서 전문가 계산서를 어느 구성에 배정하느냐에 따라, 두 구성이 동시에 성립한다는 전제는 다시 흔들린다.
정합 검사의 결론은 단순하다. 주위적 구성이 놓은 사실을 그대로 받아도 예비적 구성이 모순되지 않는 경우에만, 두 구성은 같은 사건 안에 나란히 선다. 모순이 확인되면 그 원인은 사실이 아니라 전제에 있으므로, 전제를 확정하지 않은 채 두 구성의 성립을 함께 논할 수 없다. 자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듯, 두 구성이 함께 적혔다는 사실도 곧 두 구성이 함께 성립한다는 뜻이 아니다. : 민사소송법 제203조(처분권주의)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
6.6구성 성립을 멈추는 조건
예비적 구성과 주위적 구성이 같은 사실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뒤에도 남는 물음은 요건 사실 자체가 자료에서 확정될 수 있는가이다. 요건 사실이 확정되지 않으면 법적 구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물음은 구성의 요건 하나하나에 대해 따로 묻지 않고, 대법원이 형사 분쟁에서 고의와 손해 요건을 다룬 판결에서 그 기준을 읽어 마무리한다.
구성의 요소가 내심의 사실일 때 자료가 어디까지 밝혀야 하는지를 먼저 본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업무상배임죄의 고의에 관해 "일반적으로 업무상배임죄의 고의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와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의 이득의 의사가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과 결합하여 성립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업무상배임죄의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고의, 동기 등의 내심적 사실)은 피고인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문제가 된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범의를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하고, 배임죄에 있어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 자료가 채워야 할 것은 직접 관찰된 내심이 아니라, 내심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의 연결 상태이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내놓은 메시지와 설명 문서가 그 연결 상태를 이루는지가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
간접사실의 연결 상태가 합리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고의 요건은 확정되지 않는다. 같은 판결은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선의에 기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하여 업무상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임은 물론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도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어 당해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므로, 현행 형법상의 배임죄가 위태범이라는 법리를 부인할 수 없다 할지라도,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 사례에서 사건 뒤 작성된 설명 문서가 당시의 인식을 소급해 적고 있다면, 그 문서만으로 위 나열된 제반 사정이 확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 하나로 요건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이 판시의 태도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의 요건을 판결한 것이 아니다. 다만 구성의 요소가 자료에서 확정되지 않을 때 성립을 멈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손해 요건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앞 인용한 대법원 2002도4229 판결은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손해의 발생 시점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그 시점 이전에 위험이 초래되었는지가 자료에서 드러나야 한다. 상대방이 제출한 전문가 계산서가 손해액의 기준 시점을 어떻게 잡았는지, 그 기준이 자료의 다른 기록과 맞는지는 이 사례에서 미정으로 남는다. 계산서가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손해 요건이 확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상대방이 계약서 여러 버전과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함께 내놓았다는 사실은 자료가 모여 있다는 뜻이며, 법적 구성이 성립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의 요소의 간접사실 연결이 합리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손해의 발생 또는 위험 초래의 시점이 자료에서 확정되지 않는다면 두 구성은 모두 성립을 멈춘다. 이 결론은 다른 요건의 부정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권한의 귀속과 적용 계약의 버전은 이 사례에서 미정이며, 그 미정이 곧 요건의 부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