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형법 제355조 제1항이 누구의 어떤 행위를 횡령으로 정하는지를 묻는다. 조문의 문장 구조를 읽고 타인의 재물, 보관, 횡령, 반환 거부라는 요소를 뽑아 각 요소의 자리를 정리하며, 제356조로 이어지는 자리를 둔다. 재산상 손해와 배임의 부분, 금액에 따른 처벌 구간은 이 장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
2.1제355조 제1항의 문장 구조
기록과 평가를 나눠둔 앞 단계를 넘기면서, 형법 제355조 제1항이 무엇을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그 문장부터 끊어 읽어야 한다. 조문의 요소를 먼저 세워 두어야, 병의 자금 이동을 두고 어떤 요소가 확인되었는지, 어떤 요소가 비어 있는지를 나중에 따로 판단할 수 있다. 이 항의 문장은 몇 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고, 각 덩어리는 서로 다른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들을 섞지 않고 차례로 두는 일에서 이 절의 일이 시작된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먼저 행위자의 자격을 적는다. 보관자의 지위를 범죄 성립의 출발점으로 삼는 문장이라, 행위자가 누구인지보다 그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그 점이 드러나는 표현이 곧 조문의 첫머리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보관자의 자격을 이렇게 적는다.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형법 제355조) 이 표현이 먼저 놓이므로, 보관 관계가 없는 사람의 행위는 이 항의 논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한 구절은 세 가지를 함께 담는다. 재물이 타인의 것이라는 점, 행위자가 그 재물을 보관한다는 점, 그리고 그 자격을 가진 자가 뒤이어 나오는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앞의 두 가지는 행위 이전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자금을 옮겼다는 사실만으로는 앞의 두 가지가 확인된 것이 되지 않는다.
그다음 조문은 대상이 되는 재물을 밝힌다. 앞서 본 보관자의 자격 표현은 이미 "타인의 재물"을 전제로 삼는다. 재물이 누구에게 속하는지와 그 재물을 누가 보관하는지가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 둘은 구분된다. 소유의 귀속과 보관이라는 지위는 같은 사실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같은 결론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 계좌의 자금이 회사의 것인지, 대표이사가 이를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는 각각 확인할 일이며, 그 결론을 조문의 문구만으로 미리 정할 수 없다. 조문은 그 확인의 결과를 미리 말해주지 않고 자리만 비워 둔다.
조문은 행위 유형을 둘로 나눈다. 전단과 후단이 나란히 놓여 있으므로, 행위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를 가르는 일은 문장 구조의 끝에 자리한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행위 유형을 나누어 이렇게 적는다.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형법 제355조) 앞쪽은 재물에 대한 행위이고, 뒤쪽은 반환에 대한 태도다. 두 표현 사이의 "또는"은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족함을 뜻하므로, 보관자가 재물을 취급한 경우에 그 행위가 앞쪽인지 뒤쪽인지를 가르는 일이 남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장의 끝에 놓인 형벌 규정은 앞의 요소들이 모두 놓였을 때의 결과만을 적고 있다. 형벌 규정이 요소를 새로 더하지 않으므로, 요소의 확인은 그 앞에서 끝난다.
이 항의 문장 구조는 행위자·객체·행위 유형이라는 셋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밖의 요소를 이 항의 문장에서 찾아내기는 어렵다. 병의 자금 이동이 이 셋 가운데 무엇을 충족하는지는 미정이다. 가지급금 항목의 작성 시기와 경위,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의 사용처, 석 달 동안 개인 계좌 자금의 쓰임, 반환 계획과 반환 능력도 함께 미정으로 남는다. 이 기재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사실의 나열일 뿐이고, 그 결과가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병의 행위를 두고 이 항이 요구하는 셋 가운데 무엇이 놓였는지 말하기에 앞서, 각 덩어리가 담은 물음을 따로 떼어 놓는 일이 필요하다. 그 물음들은 그대로 남겨 두고, 이 절은 문장이 놓은 자리만을 세워 둔 상태로 끝난다.
2.2타인의 재물이라는 객체
제355조 제1항의 문장 구조에서 행위자와 객체가 분리된 이상, 이제 객체에 해당하는 '타인의 재물'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다음 쟁점이다. 조문은 객체를 두 가지로 묶어 하나의 문장 안에 두는데, 하나는 횡령의 대상이 되는 재물이고 다른 하나는 반환 거부의 대상이 되는 재물이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그 객체를 가리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라는 문장 속에서 그 재물을 지시한다. 여기서 '타인의 재물'은 보관자에게 속하지 않는 재물을 뜻하며, 보관자와 소유자가 다른 사람임을 전제로 삼는다. 이 요소는 단순히 재물의 존재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재물이 누구에게 귀속하는지까지 함께 가리키므로, 재물의 소유가 행위자 밖에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개인 계좌로 옮겼다면, 그 자금이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는지는 병과 회사 사이에서 소유가 어떻게 나뉘는지에 달려 있다. 여기서 회사는 법인이고 병은 그 대표이사이지만, 그 사실만으로 자금의 소유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병은 개인으로서 자신의 계좌를 가진 사람이고, 회사는 별도의 계좌를 가진 주체이다. 따라서 8억 원이 어느 쪽에 귀속하는지에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회사 장부에는 '대표이사 가지급금'이라는 항목이 적혀 있다. 이 항목이 언제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 확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 기재만으로 소유의 귀속이 정해지지 않는다. 가지급금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전제로 하는지, 그 항목이 자금 이동 이전에 있었는지 이후에 작성되었는지도 밝혀져 있지 않다. 이사회 결의나 이자·변제기에 관한 약정 기록은 보이지 않으므로, 자금의 성격을 가를 만한 합의의 흔적도 확인되지 않는다. 회사의 자산 규모와 병이 가진 주식의 비율도 미정이므로, 그 수치들을 소유의 귀속에 대한 근거로 삼을 수 없다. 회사 계좌의 자금이 회사에 귀속되는지, 병에게 귀속되는지는 남은 사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석 달 뒤 6억 원이 회사 계좌로 되돌아온 점도 이 쟁점과 무관하지 않다. 돌려받은 6억 원과 남은 2억 원을 놓고 보면, 8억 원 전체가 한 가지 성격으로 움직였는지 여부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의 사용처가 미정이고, 석 달 동안 개인 계좌의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역시 미정이다. 병이 반환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도 미정이다. 자금의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이 사실들은 그 자체로 소유의 귀속을 확정짓지 않으며,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결국 병이 회사 계좌에서 옮긴 자금이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는지는, 소유의 귀속을 가를 사실이 더 확인되어야 판단할 수 있다. 회사 장부의 가지급금 항목과 자산 규모·주식 비율 모두 이를 확정짓는 근거가 되지 못하므로, 이 요소의 충족 여부는 미정으로 남는다.
2.3보관이라는 요소의 자리
타인의 재물이라는 객체가 자리한 데에 이어, 그 재물이 누구의 손에 놓여 있는지를 가르는 말이 조문에 남는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보관자에게 속하지 않는 재물에 대한 행위를 처벌하면서, 행위자가 그 재물을 '보관'하고 있음을 전제로 삼는다. 이 대목에서 '보관'이 요구하는 지위가 무엇인지 조문의 문구에서 읽어 두어야, 다음에 다룰 행위 유형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횡령죄의 객체와 보관자의 지위를 함께 규정한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행위자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한 문장 안에 묶어 둔다.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형법 제355조) 이 문장은 재물이 타인의 것임과 함께, 그 재물이 행위자의 보관 아래 놓여 있음을 요구한다. 보관의 지위가 없는 자가 타인의 재물을 취한 경우에는 이 조항이 아니라 별도의 논의가 놓일 자리가 생긴다.
그렇다면 '보관하는 자'가 어느 범위의 지위를 가리키는지가 문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다른 유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형법 제355조) 제2항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더 넓은 지위를 전제로 제1항과 같은 형을 정한 것은, 제1항의 보관이 재물에 대한 관계를 가리키는 좁은 지위임을 짐작게 한다. 보관은 사무 처리라는 광범위한 관계 속에 포섭되는, 재물이 행위자에게 맡겨져 있다는 사실관계를 뜻한다.
이 사례에서 병은 대표이사로서 회사 계좌의 자금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다. 회사 계좌의 자금은 회사의 재물이고, 병은 그 자금을 회사의 계좌라는 형식 아래 보관하는 지위에 놓인다. 회사 장부에 '대표이사 가지급금'이라는 항목이 적혀 있다는 사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기재일 뿐이고, 그 항목의 작성 시기나 경위가 미정인 이상 보관 지위의 성격을 확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자금이 회사의 계좌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병이 회사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는 조문상의 자리가 형성된다.
이 지점에서 보관이 요구하는 지위가 위탁신임관계라는 틀로 설명된다는 견해는 다음에 살펴볼 논의로 남겨 둔다. 여기서는 조문이 '보관하는 자'라는 말로 무엇을 전제로 삼았는지만을 확인한다. 병이 대표이사의 지위에서 회사 계좌의 자금을 맡아 관리해 왔다면, 그는 조문이 요구하는 보관자의 자리에 서 있는 것으로 놓인다. 다만 병이 반환을 계획했는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 회사의 자산 규모와 병이 가진 주식의 비율이 어떠한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그 미정의 항목들은 보관 지위의 성립 자체를 뒤흔들지 않는다.
결국 보관은 타인의 재물이 행위자의 지배 아래 맡겨져 있다는 지위를 가리키는 요소이고, 이 요소는 횡령죄의 객체인 타인의 재물과 나란히 놓여야 한다. 병이 회사 계좌의 자금을 보관하는 자라는 지위는 확인되지만, 그 지위가 곧 행위의 유형이나 불법영득의사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둘은 별도로 확인되어야 할 요소로 남는다.
2.4횡령이라는 행위 유형
보관이라는 요소가 자리를 잡은 뒤에 남는 물음은,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에 대하여 무엇을 행했을 때 '횡령'이 성립하는가이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처벌 대상의 행위를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라고 정하고, 보관의 지위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에서는 그 가운데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이라는 행위 유형의 자리를 조문에서 읽어 놓는다.
조문이 횡령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그 재물'이다. 앞 문장의 주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가리키는 보관물과, '그 재물을'이 가리키는 대상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횡령은 보관의 대상인 재물 자체를 향한 행위이며, 보관의 지위를 망각한 다른 종류의 행위가 아니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옮긴 것은, 보관 중인 재물에 대한 행위로 기술될 여지가 있는 자금 이동이다.
그런데 조문은 횡령의 내용을 더 쪼개 적지 않고 '횡령'이라는 낱말 하나로 둔다.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이라는 기술이 남기는 행위의 범위는, 이 조문의 문장만으로는 더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병의 자금 이동을 이 자리에 놓을 때, 조문의 낱말이 곧 행위의 성격을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자금 이동이 '횡령'이라는 행위 유형에 들어맞는지는 남은 요소와 함께 판단되어야 한다.
앞에서 관찰한 사실 가운데 이 자리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석 달 뒤 6억 원이 회사 계좌로 되돌려졌다는 점과, 회사 장부에 '대표이사 가지급금'이라는 항목이 적혀 있다는 점이다.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의 사용처, 가지급금 항목이 언제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 석 달 동안 개인 계좌의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병이 반환을 계획하고 있었는지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 회사의 자산 규모와 병이 가진 주식의 비율은 미정이다. 이 기재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사실의 나열이며, 그 결과가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병이 회사 계좌에서 개인 계좌로 옮긴 8억 원을 두고 '횡령'이라는 행위 유형의 성립을 단정할 수 없다. 사용처와 반환 계획이 미정인 상태에서, 자금 이동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재물에 대한 행위의 성격이 확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횡령이라는 행위 유형의 자리는 조문에 이렇게 놓여 있고, 병의 사안은 그 자리를 채울 요소를 아직 다 갖추지 못한 채 남는다.
2.5반환 거부의 별개 자리
횡령이 보관 중인 재물에 대한 행위라는 확인에 이어, 이제 같은 조문에 놓인 또 하나의 표현을 살핀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보관자가 재물을 횡령한 때와 함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고 정한다. 이 문장은 횡령과 반환 거부를 "또는"으로 이어, 둘 중 하나의 모습이 드러나면 그 처벌 규정이 적용되는 구조로 읽힌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옮긴 자금 이동 자체는 앞에서 본 횡령의 자리에 놓였지만, 같은 사정이 반환 거부라는 별개의 모습을 함께 이루는지는 별도로 물어야 한다.
반환 거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조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표현이 횡령과 나란히 놓였다는 사실은, 반환 거부가 횡령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그 요건이 따로 읽히는 행위 유형임을 뜻한다.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는 지위가 함께 요구되는 것은 두 경우에 공통이지만, 반환 거부는 재물에 대한 처분 행위 대신 반환 요청에 대한 대응에서 그 모습이 드러난다. 병이 개인 계좌로 옮긴 8억 원 중 석 달 뒤 6억 원을 회사 계좌로 되돌린 뒤 남은 2억 원에 관한 관찰은 그 자체로 반환 거부의 요건이 모두 갖추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특히 회사 장부에 '대표이사 가지급금'이라는 항목이 적혀 있다는 사실은, 반환의 대상과 범위를 두고 당사자 사이에 어떤 인식이 있었는지 가리키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가지급금 항목이 언제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가 미정이라는 점은 이 항목을 반환 거부의 판단 근거로 삼는 데 남은 빈자리이다. 이사회 결의나 이자·변제기에 관한 약정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 역시, 반환 거부의 성립을 확정하는 방향으로만 읽힐 수는 없다.
나아가 병이 반환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반환할 능력이 있었는지가 미정이라는 점은 반환 거부의 평가에 직접 관련되는 부분이다.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의 사용처와 석 달 동안 개인 계좌의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역시 미정으로 남는다. 이 기재들은 자금 이동 과정에서 관찰된 사실의 나열이며, 그 결과가 곧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병의 자금 이동은 횡령이라는 하나의 모습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제355조 제1항이 반환 거부를 함께 둔 것은,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처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반환의 요청이나 기대에 응하지 않은 모습을 따로 다루기 위해서이다. 반환되지 않은 2억 원을 두고 반환 거부라는 평가가 이미 끝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그 자리는 앞의 횡령과 나란히 놓인 채로 남는다.
2.6제356조로 이어지는 자리
반환 거부가 횡령과 나란히 놓인 별개의 자리로 읽힌다고 정리된 데서 나아가, 형법 제356조는 제355조의 죄를 어떤 조건 위에 다시 놓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형법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는 다음과 같이 정한다.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형법 제356조). 이 문언은 제355조의 죄를 전제로 삼으면서, 그 죄를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범한 경우를 따로 묶어 놓는다. 조건이 하나만 붙었으므로, 제356조의 자리는 제355조의 죄를 그대로 두고 업무상의 임무 위배라는 겹을 더하는 구조로 읽힌다.
제356조가 붙잡는 제355조의 죄가 무엇인지는 조문에서 확인된다.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 제1항은 다음과 같다.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형법 제355조). 이에 따라 제356조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횡령이나 반환 거부를 업무상의 임무 위배와 겹쳐 놓는 자리가 된다. 앞서 반환 거부가 별개의 행위 유형으로 놓여 있던 것도 이 틀 안에서 다시 읽힌다. 제356조는 그 행위 유형을 지우지 않고, 그 유형 위에 업무상의 임무 위배라는 조건을 얹는다.
같은 조문의 제2항은 업무상의 임무 위배를 둘러싸고 또 다른 죄를 함께 다룬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정한다. 제356조의 문언이 "제355조의 죄"라고만 하여 어느 항의 죄를 가리키는지 구분하지 않으므로, 업무상의 임무 위배와 결합되는 자리는 제1항의 죄에 그치지 않고 제2항의 죄까지 함께 놓인다. 제2항은 그 자체로 임무 위배를 요소로 삼고 있으므로, 제356조의 조건과 겹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이 겹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조문만으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제2항의 임무 위배가 행위 수단이고 제356조의 임무 위배가 별도의 조건인지, 둘이 같은 자리에 놓이는 것인지에 관하여 자료는 말을 더하지 않는다. 다만 제356조가 제355조의 죄 전체를 가리키는 문언으로 쓰여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제355조 제2항의 죄와 결합한 자리는 업무상의 임무 위배라는 조건이 한 번 더 놓이는 자리로 읽힐 뿐, 그 해석의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확정하지 않는다.
이 자리를 C사의 사정에 대조하면, 남는 질문이 분명해진다. 병이 회사 계좌에서 8억 원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옮기고 석 달 뒤 6억 원을 되돌린 일은 자금 이동으로 관찰된 사실이다. 그러나 병이 업무상의 지위에 있었는지, 그 지위가 무엇을 임무로 지웠는지, 병이 그 임무에 위배하였는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범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판단은 미정의 사정으로 남는다. 병이 회사의 대표이사라는 지위에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임무의 내용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며, 회사 장부의 가지급금 항목이 임무 위배의 유무를 가르는 것도 아니다.
형법 제356조는 그 자체로 처벌의 구간만을 새로 정할 뿐, 제355조의 죄에 요구되는 요소를 바꾸지 않는다. 제355조 제1항의 자리와 제2항의 자리가 각각 따로 놓여 있는 것처럼, 업무상의 임무 위배라는 조건도 그 자리를 찾아 얹히는 문제로 남는다. 병이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범한 자인지 여부는 미정으로 남기고, 제355조 제1항과 제2항이 각각 요구하는 요소는 앞서 놓인 자리 그대로 다음에 살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