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같은 피해액의 사건에서 두 피고인의 형이 갈리는 지점을 모티브 장면으로 삼아, 그 까닭이 판결문의 어디에 적히는지 묻는다. 같은 금액, 갈리는 형에서 출발하여 형을 정하는 계단과 양형을 재는 저울, 가중의 문턱과 피해 규모, 반환과 합의의 자리, 갈라지는 지점의 글을 차례로 살핀다.
1.1같은 금액, 갈리는 형
한 사건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40억 원이다. 그런데 선고될 형이 반드시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할 때 무엇을 함께 놓고 볼지를 열거한다. 그 열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시작한다(형법 제51조). 범행에 쓰인 금액이 하나라도, 형을 정하는 자리에는 다른 사실들이 함께 놓인다는 뜻이다.
정과 무의 형이 갈리는 자리는 그 열거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정은 선고 전까지 전액을 회사에 반환하였고, 회사와 합의서가 작성되었다. 이런 사정은 형법 제51조가 열거한 "범행 후의 정황"에 관한 항목이 다루는 자리에 놓인다. 반환과 합의는 범행이 끝난 뒤에 생긴 사실이므로, 범행의 결과를 이루는 요소와는 구분된다. 이로 확인된 사실은 확정 손해나 고의와 같은 법적 평가를 뜻하지 않는다. 반환과 합의가 생긴 때와 방식, 그에 이르게 된 경위는 형을 정하는 자리에서 따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사정이다. 조문은 이 항목을 범행 전이나 범행 당시의 사정과 나란히 놓고 있으므로, 두 때의 사실을 한 덩어리로 묶지 않는다.
무는 반환하지 못하였으나 지시를 받고 자금 이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시에 따른 이체의 실행은 형법 제51조가 열거한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의 항목이 들여다보는 자리에 놓인다. 누가 자금을 옮기도록 지시하였고, 이체가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동기와 수단과 결과는 조문에서 한 항목 안에 묶여 있으나, 그 셋이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는 점은 나누어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가담 정도가 형량에서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는 여기서 정해지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놓이는 사실도 있다. 같은 사건에서 같은 40억 원의 자금 이체에 관여한 두 사람의 관계는 형법 제51조가 열거한 "피해자에 대한 관계"를 참작할 때 함께 읽힌다. 회사가 피해자라면, 두 사람 각자와 회사의 관계는 형을 정하는 데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여기에 형법 제51조가 열거한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이 함께 놓이므로, 두 사람의 사정은 각각 따로 살펴보아야 한다. 연령과 성행과 지능과 환경은 범인 한 사람을 둘러싼 사실이므로, 한 사람의 사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놓을 수 없다. 한 사건에 함께 기소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두 사람의 이 항목이 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놓인 항목들이 이 사건에서 어떤 비중으로 작용할지는 미정이다. 손해 확정 시점, 무의 가담 정도에 따른 형량 범위, 합의가 양형에 반영되는 비중은 모두 정해지지 않았다. 조문이 그어 둔 자리는 항목의 자리를 가리킬 뿐, 항목마다의 무게까지 미리 밝혀 두지 않는다. 같은 40억 원 앞에서 두 사람의 형이 갈리는 자리는 바로 이 자리이다.
1.2형을 정하는 계단
앞 장에서 갈린 형의 자리를 양형의 조건에서 찾았다면, 이제 그 조건이 놓이는 형을 정하는 절차를 차례로 살펴보아야 한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하는 일의 순서를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두었는데, 조문의 문언은 다음과 같다. "제51조(양형의 조건)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 (형법 제51조). 이 조문은 형을 정할 때 무엇을 참작하여야 하는지를 가리킬 뿐, 항목 사이의 우선순위나 비중은 적어 두지 않았다.
형을 정하는 절차는 계단과 같은 형상을 갖는다. 가장 먼저 밟는 단은 형벌의 종류와 정도를 가를 수 있는 테두리이고, 그다음 단은 그 테두리 안에서 양형의 조건을 놓는 자리이다. 형법 제51조는 후자의 단에 놓일 항목을 제시한 것이므로, 조문이 직접 그어 둔 것은 테두리의 바깥 모서리가 아니라 안쪽의 네 자리이다. 사안에서 두 피고인이 함께 기소되었으므로 두 사람 모두 같은 계단의 앞뒤를 밟되, 항목이 놓이는 자리는 각자 다르게 채워질 수밖에 없다.
가장 앞 단의 테두리를 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에서 읽을 수 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이득액에 따라 가중처벌의 범위를 나누어 두었는데, 그 문언은 다음과 같다. "제3조(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 ① 「형법」 제347조(사기), 제347조의2(컴퓨터등 사용사기), 제350조(공갈), 제350조의2(특수공갈), 제351조(제347조, 제347조의2, 제350조 및 제350조의2의 상습범만 해당한다), 제355조(횡령·배임) 또는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의 죄를 범한 사람은 그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하 이 조에서 “이득액”이라 한다)이 5억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 1.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2.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② 제1항의 경우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사안에서 회사 자금 40억 원이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손해 확정 시점은 미정이고 이득액에 대한 법적 평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호의 테두리에 놓일지는 이 자리에서 결론지을 수 없다.
이렇게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형법 제51조의 네 항목이 차례로 놓인다. 정의 경우 전액 반환과 합의서가 이미 확인된 사실이므로, 그 자리는 "범행 후의 정황" 항목 아래에 놓일 수 있다. 무의 경우 지시를 받고 이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사실은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나 "피해자에 대한 관계" 항목의 자리를 고르는 데 참작될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의 손해 확정 시점과 무의 가담 정도에 따른 형량 범위는 미정이고, 합의가 양형에 반영되는 비중도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형법 제51조 제1호는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을 첫 항목으로 두고 있고, 제2호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를 두고 있다. 이 두 항목과 제3호, 제4호가 계단 위에서 각자 어느 자리에 놓이는지, 그리고 항목 사이의 무게를 어떻게 잴지는 이 조문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형을 정하는 절차가 테두리를 정한 뒤 조건을 놓는 순서로 이루어진다는 구조이며, 사안의 두 피고인에 대한 구체적인 형량은 그 구조 안에서 여전히 미정으로 남는다.
1.3양형을 재는 저울
형의 계단을 오른 뒤에는 조문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무게를 재는 일이 남는다. 그 무게를 재는 척도를 형법이 열거한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할 때 참작할 사항을 네 항으로 정하는데,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이라고 규정한다(형법 제51조). 네 항은 양형을 흔들 저울의 양팔에 놓이는 추다.
제2항의 "피해자에 대한 관계"는 범행이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무엇을 건드렸는지를 묻는다. 회사 자금 40억 원이 빠져나간 사건에서 정과 무는 각기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정이 선고 전까지 전액을 회사에 반환하고 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한 사실, 무가 반환하지 못한 사실은 이 항이 쳐다보는 관계의 양쪽이다. 다만 이 사실들이 확정 손해의 액수나 고의의 존부를 뜻하지는 않는다. 회사와 정 사이에 합의서가 작성되었다는 점도 관계의 한 모습일 뿐, 회사가 입은 손해가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손해 확정 시점이 언제인지도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이 항이 재는 관계의 크기는 아직 닫혀 있지 않다.
제4항의 "범행 후의 정황"은 행위가 끝난 뒤에 벌어진 일을 따로 담아 놓는 자리다. 정의 전액 반환과 합의서 작성은 시점상 범행 후의 정황에 놓인다. 형법 제51조는 이 항을 참작할 사항으로 열거하면서도, 그 사실을 어디까지 반영하라고 수치로 지정하지 않는다. 참작하라는 문구는 읽는 사람에게 판단을 맡기는 틈을 남긴다. 합의가 양형에 반영되는 비중은 미정이다. 정의 반환 행위를 어디서 평가할지 확정된 바도 없다. 그러므로 제4항에 놓인 사정은 저울 위에서 자리를 잡되, 그 값을 미리 읽어 내기는 어렵다.
무의 사정은 제3항과 제4항의 접경에서 읽힌다. 무가 지시를 받고 자금 이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조사된 점은 범행의 수단과 가담의 형태에 관한 사실이다. 이를 제3항의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중 어디에 놓을지, 그리고 가담 정도에 따라 형량 범위를 어떻게 좁힐지는 미정이다.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동기의 판단에 걸리는지, 수단의 판단에 걸리는지도 조문이 풀어 주지 않는다. 반환하지 못한 점은 제4항의 정황에 남지만, 그 자체로 형을 늘리거나 줄인다는 규칙은 형법 제51조에 적혀 있지 않다. 무의 가담이 정과 나란히 놓일 때 두 항의 배치는 그대로 남고, 무게만 달라질 뿐이다.
저울은 무게의 자리를 표시할 뿐 그 값을 미리 적지 않는다. 형법 제51조가 참작을 명한 네 항은 모두 함께 놓아야 하는 사항이고, 어느 항이 늘 먼저 놓인다고 조문은 말하지 않는다. 네 항 가운데 하나를 다른 항보다 앞세우라는 문구도, 두 항의 무게를 더하거나 빼라는 문구도 이 조문에 없다. 정과 무에게 같은 금액의 범행이 적용된다고 해서 두 저울이 같은 값을 보여줄 이유도 없다. 두 사람의 손해 확정 시점, 무의 가담 정도에 따른 형량 범위, 합의의 반영 비중은 확정되지 않았다. 자리를 정하고 값을 비워 둔 채로, 이 저울은 판사 앞에 놓인다.
1.4가중의 문턱과 피해 규모
저울의 양팔에 무엇이 놓일지 정해졌다면 이제 그 저울 자체의 단위가 달라지는 지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같은 액수의 재산상 이익이 범행의 결과로 발생하였더라도, 법이 정한 문턱을 넘는 순간 처벌의 구조가 바뀐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바로 그 문턱을 다룬 조항이고, 이 조항은 형법이 아닌 별도의 법률에서 가중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는 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 규정인데, 그 제1항은 가중의 요건과 효과를 함께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형법 제51조와 나란히 놓이는 까닭은, 피해 규모가 양형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별도의 가중 요건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51조가 형을 정할 때 참작할 사항을 열거하는 조항이라면, 이 조항은 특정 액수를 넘으면 처벌의 정도 자체를 달리하는 조항이다.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사기, 컴퓨터등 사용사기, 공갈, 특수공갈, 횡령·배임, 업무상의 횡령과 배임의 죄를 범한 사람이 그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 즉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에 가중처벌한다고 정한다. 가중의 대상 범죄와 이득액의 산정 기준이 이 한 항 안에서 함께 정해진다. 같은 항은 이득액의 규모에 따라 처벌의 구간을 나누어 두는데, "1.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2.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고 각 호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범죄행위라도 이득액이 어느 구간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법정형의 범위가 달라진다. 같은 항 제2항은 "제1항의 경우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고 하여, 징역형에 벌금을 병과할 수 있는 여지를 함께 열어 둔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그 사항으로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을 열거한다. 피해 규모는 여기서 제3호의 '범행의 결과' 안에 놓일 수 있고,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르면 별도로 가중의 요건이 된다. 두 규정이 피해 액수를 다루는 자리는 서로 다르고, 같은 액수라도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되는 때와 가중의 문턱으로 작동하는 때가 구분된다.
이 사례에서 회사 자금 40억 원이 빠져나갔다고 확인된 사실만으로는 이득액이 어느 구간에 해당하는지가 미정이다. 반환 시점, 손해의 확정, 무의 가담 정도에 따른 형량 범위와 합의의 반영 비중 역시 이 자리에서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피해 규모가 단순히 양형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만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중처벌의 문턱을 이루는 요소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사례에서 두 사람의 형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득액이 어느 구간에 놓이는지를 가려낼 필요가 있고, 그 판단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는 미정으로 남는다.
1.5반환과 합의의 자리
가중의 문턱을 피해 규모와 겹쳐 읽고 나면, 같은 금액의 사건에서 두 사람의 형이 갈리는 자리를 다음으로 물어야 한다. 정은 선고 전에 40억 원을 전액 회사에 반환하였고 회사와 합의서가 작성되었다. 무는 반환하지 못하였으나 지시를 받고 이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사실들이 형법 제51조의 어느 항목에서 다루어지는지가 이 자리의 질문이다.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을 열면서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어서 같은 조 제4호는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 사항으로 둔다 (형법 제51조). 정이 선고 전까지 전액을 돌려주고 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한 일은 범행의 결과가 아니라 범행이 끝난 뒤에 생긴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사정은 원칙적으로 제4호의 범행 후의 정황에서 읽힌다.
다만 형법 제51조 제3호는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도 함께 참작하도록 한다. 반환 전에 이미 회사 자금 40억 원이 빠져나간 사실과, 그 손해가 이후 전액 반환으로 되돌려졌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층위에 놓인다. 전자는 범행의 결과로, 후자는 범행 후의 정황으로 나뉘어 각각의 항목에서 다루어진다. 반환액이 전체 손해와 같다는 점만으로 두 항목이 하나로 합쳐지지는 않는다. 회사에 남은 손해가 무엇인지는 이 사건에서 미정이고, 그 평가를 앞서 확정하지 않은 채 항목의 자리를 나누는 작업만 이 자리에서 이룬다.
합의서의 자리도 같은 구도에서 살핀다. 형법 제51조 제2호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를 참작 사항으로 적는다. 회사와 정 사이의 합의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사정이면서, 동시에 범행 뒤에 만들어진 문서이다. 따라서 합의는 제2호의 피해자에 대한 관계와 제4호의 범행 후의 정황이 겹치는 지점에 놓인다. 어느 항목에서 어느 비중으로 참작할지는 법률이 수치로 정하고 있지 않다. 합의서가 작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형량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의 숫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의 자리에서는 반환과 합의가 비어 있는 상태에, 지시를 받고 이체를 실행에 옮긴 가담 사실이 겹친다. 형법 제51조는 제3호의 수단과 결과를, 제4호의 범행 후의 정황을 각각의 항목으로 둔다. 이 둘은 벌려져 있으므로, 반환 여부가 가담 정도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한다. 무가 반환하지 못한 것은 제4호의 정황에서 읽히고, 지시를 받아 이체를 실행한 것은 제3호의 수단에서 읽힌다. 가담 정도에 따른 형량 범위는 미정이다.
이로써 반환과 합의는 형법 제51조 제4호의 범행 후의 정황에 자리를 잡고, 필요에 따라 제2호의 피해자에 대한 관계와 겹친다. 조문이 요구하는 것은 그 사정을 참작할 것인지의 여부이지, 그 사정에 값을 매기는 일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확인된 반환액과 합의 여부는 형량의 액수를 가리키지 않고, 참작되어야 할 사정이 어느 항목에 놓이는지의 문제만을 가리킨다.
1.6갈라지는 지점의 글
반환과 합의가 형법 제51조의 어느 항목에 놓이는지를 살핀 데서 나아가, 같은 금액의 사건에서 두 형이 갈리는 자리를 찾아야 한다. 회사 자금 40억 원이 빠져나간 사건에서 정과 무는 함께 기소되었으나, 정은 전액을 반환하고 합의한 반면 무는 그러하지 못하였고 지시에 따른 실행 역할만 조사되었다. 이 사례에서 손해 확정 시점과 고의의 유무, 무의 가담 정도에 따른 형량 범위, 합의의 반영 비중은 미정으로 남는다. 다만 형을 정하는 자리에서 무엇이 참작되는지는 형법 제51조의 문구로 확인된다. 그 조문은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이라고 정한다(형법 제51조). 같은 범행 결과에 서면서도 두 사람의 범행 후 정황이 갈라지므로, 조문의 네 항목이 두 형의 차이를 만드는 자리임을 이 인용이 보여 준다.
형 범위가 정해지고 나면 그 안에서 형을 고르는 작업이 남는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인 경우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인 경우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각각 정한다. 사례의 40억 원이 이득액에 해당하는지는 미정이며, 조문은 이득액을 "그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각각 어떤 구간에 서는지가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지금 확정할 수 있는 것은 형 범위의 틀이 두 사람에게 같은 자리를 마련한다는 사실뿐이다.
같은 틀 안에서 형이 갈리는 까닭은 범행 동기와 수단, 그리고 범행 후의 정황이 다르게 놓이기 때문이다(형법 제51조). 정은 선고 전 전액을 반환하고 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하였으며, 무는 반환하지 못하였으나 지시를 받고 이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자의 사정은 범행 후의 정황에서 읽히고, 후자의 사정은 범행의 수단과 그 가담 정도에서 읽힌다. 다만 이 사정들을 형량에 얼마로 반영할지는 미정이며, 무의 실행 역할이 어떤 형량 범위를 뜻하는지도 자료에서 확정되지 않았다.
판결문의 양형 이유는 바로 이 갈라지는 지점을 적어 두는 자리이다. 형법 제51조가 참작하여야 한다고 열거한 항목이 사실관계와 결합하여 하나의 서술로 남고, 두 사람의 차이는 그 서술 속에서 항목별로 자리한다. 합의서가 범행 후의 정황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그 자리에 적히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으며, 반환액이나 합의 여부가 형량의 수치를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로써 같은 피해액의 사건에서 두 형이 갈리는 지점이 양형의 조건 네 항목과 그에 붙은 사실관계의 글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다만 손해 확정 시점과 고의, 두 사람의 확정 형량은 이 단계에서 미정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