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창고 한 곳만 실사하고 확인서로 갈음한 감사가 어디에서 임무 해태가 되는지를 묻는다. 회계감사기준이 정한 절차와 판결의 임무 해태 척도에 재고 실사의 범위, 경영진 확인서의 자리, 감사조서 기재의 한계를 대어 보고 임무 해태가 성립하는 지점을 가른다.
9.1회계감사기준이 정한 절차
2008다36930이 임무 해태의 판단 기준을 밝힌 데서 나아가, 이제는 그 기준의 출처를 가릴 차례이다. 외부감사법이 감사인에게 절차의 준거를 직접 두고 있는지, 그리고 그 준거가 무엇을 내용으로 하는지가 이 절의 질문이 된다.
우선 조문의 출발점을 확인한다. 외부감사법 제16조는 감사인의 감사 실시 기준을 이렇게 정한다.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여야 한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이 문장은 감사의 목표나 결과를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사를 실시하는 방식 자체를 회계감사기준에 묶는다. 따라서 감사인이 정한 절차를 실제로 수행했는지는 감사 실시의 적법 여부를 가르는 첫 문턱이 된다.
그렇다면 회계감사기준은 누가 정하고 무엇을 담는가. 같은 조 제2항은 기준의 정립 주체와 내용을 밝힌다. "제1항의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의 신뢰성 유지에 필요한 사항 등을 포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사전승인을 받아 정한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기준의 내용이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의 신뢰성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요구된다는 점에서, 이 기준은 절차의 형식만 규율하는 것이 아니다. 절차가 지키려는 가치가 조문 안에 함께 자리한다.
이 조문을 R회계법인의 감사에 대조하면 관점이 분명해진다. R회계법인은 감사인이고, S사에 대한 감사 실시에는 회계감사기준이 적용된다. 감사인이 세 창고 가운데 한 곳에서만 재고자산 실사를 하고 나머지 두 곳은 S사가 준 확인서로 갈음한 일이, 회계감사기준이 정한 절차에 부합하는지는 이 기준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다만 어떤 절차 항목을 요구했는지, 그 항목이 이번 감사에서 어떻게 이행되었는지는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다.
한 가지 구별해둘 점은 조문의 범위이다. 제16조는 감사인이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할 의무를 두고, 그 기준을 누가 어떤 내용으로 정할지를 정할 뿐이다. 조문은 구체적 감사 절차의 항목을 하나씩 열거하지 않고, 회계감사기준의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감사조서에 경영진 확인서를 받았다는 기록만 한 줄 남은 사정을 법조문의 문언으로만 읽어 어떤 절차의 위반을 확정할 수는 없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결국 회계감사기준은 외부감사법이 감사인의 감사 실시에 대한 준거로 삼은 기준이고, 그 기준은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의 신뢰성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포함한다. R회계법인의 감사가 그 기준을 지켰는지, 지키지 못했다면 어떤 절차에서 어긋났는지는 회계감사기준의 내용을 근거로 따져야 한다. 이 판단은 여기서 멈추며, 절차 위반이 곧 임무 해태로 이어지는지의 문제는 남는다.
9.2판결의 임무 해태 척도
회계감사기준이 감사 절차의 준수 기준이 되는 것을 확인한 뒤, 이제는 그 기준을 지키지 않았을 때 법원이 감사인의 임무 해태를 어떻게 재는지 물어야 한다. 두 판결은 각각 다른 시점의 판례이면서도 주의의무의 내용과 판단 기준에 관해 같은 줄기를 놓고 있다.
먼저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은 감사인의 주의의무 내용을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감사인은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2009. 2. 3. 법률 제940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주식회사에 대한 감사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함으로써 피감사회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적정한 의견을 표명하지 못함으로 인한 이해관계인의 손해를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같은 법 제1조, 제5조 제1항)"(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 이 판시는 감사인이 절차를 지키는 것이 이해관계인의 손해를 막기 위한 의무의 본체임을 분명히 한다.
같은 판결은 이어 기준의 지위를 다음과 같이 적는다. "그에 따라 마련된 구 회계감사기준(2005. 3. 29. 폐지되기 전의 것, 이하 '회계감사기준'이라고 한다) 제34조 제1항에 의하면 한국공인회계사회가 회계감사기준의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세부사항을 별도로 정할 수 있는바, 위와 같은 회계감사기준 및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그 시행을 위하여 마련한 회계감사준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으로서 감사인의 위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 회계감사준칙까지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임무 해태의 척도는 좁게 정해지지 않았다.
이 판결은 실제 임무 해태의 한 장면을 다룬다.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금융기관 등에 대한 조회절차를 실시할 때 스스로 조회처의 주소를 파악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감사회사 직원 등의 도움을 받아 조회처의 주소를 파악하는 경우에도 이를 다시 확인하는 등으로 조회서에 정확한 조회처의 주소가 표시되도록 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 피감사회사가 준 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는 것으로는 절차를 다한 것이 되지 않는다. 다만 책임의 범위는 다르다. "감사인이 금융기관에 대한 조회서의 주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관련한 피감사회사의 모든 손해에 대하여 감사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수는 없고, 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감사인의 잘못과 피감사회사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이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결과 발생의 개연성은 물론이고, 감사인의 의무를 부과하는 법령 기타 행동규범의 목적, 가해행위의 태양 및 피침해이익의 성질 및 피해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 임무 해태의 확인과 손해배상의 성립은 이리 나뉘어 있다.
나아가 그 판결은 의무의 목적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밝힌다. "감사인에게 금융기관에 대한 조회서에 정확한 조회처의 주소가 표시되도록 할 의무가 부과되는 취지는, 감사인으로 하여금 해당 금융기관 계좌에 관하여 왜곡되지 아니한 감사증거를 확보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재무제표가 피감사회사의 재무상태와 경영성과 및 기타 재무정보를 적정하게 표시하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의견을 표명하도록 하는데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재무제표의 검증 및 그에 대한 의견표명을 떠나 직접적으로 피감사회사의 내부자가 저지르는 장래의 부정행위를 예방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 절차의 목적은 감사증거의 왜곡을 막는 데 있으며, 그 바깥의 일까지 의무의 범위로 끌어오기 어렵다.
뒤이은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같은 기준을 오늘의 조문 체계에 두고 다시 적는다. "감사인은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2013. 12. 30. 법률 제1214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외부감사법'이라고 한다)에 따라 주식회사에 대한 감사업무를 수행할 때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함으로써 피감사회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적정한 의견을 표명하지 못함으로 인한 이해관계인의 손해를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구 외부감사법 제1조, 제5조 제1항). 구 외부감사법 제5조 제2항에 의하면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정하며, 그에 따라 마련된 회계감사기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으로서 감사인의 위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 앞 판결과 달라진 것은 기준의 지위가 아니라 개정 전 법률을 둘러싼 시점이다.
이 판결이 주는 것은 책임 성립의 요건 배분이다.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자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하였다는 점을 주장·증명해야 한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 두 판결을 나란히 두면, 회계감사기준은 임무 해태를 재는 주요한 기준이며, 그 해태가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려면 인과관계와 주장·증명이 뒤따라야 한다. 가공 재고 400억 원과 R회계법인의 감사 장면은 이 척도에 대질 대상일 뿐이고, 귀책 비율과 확정 손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9.3재고 실사의 범위
임무 해태의 척도가 주의의무와 회계감사기준에 두어진 이상, 그 척도는 재고 실사의 범위를 줄인 장면에도 그대로 내어놓아 보아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은 감사인의 실시 의무를 이렇게 정한다.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같은 조 제2항은 그 기준의 책정 주체와 승인 절차를 함께 정한다. "제1항의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의 신뢰성 유지에 필요한 사항 등을 포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사전승인을 받아 정한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이 두 문언은 실사의 범위가 감사인 마음대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아니라 기준이 정한 틀 안에서 정해지는 사항임을 분명히 한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그 기준의 자리를 이렇게 밝혔다. "구 외부감사법 제5조 제2항에 의하면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정하며, 그에 따라 마련된 회계감사기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으로서 감사인의 위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 이 판시에 따르면 실사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지는 회계감사기준을 기준으로 읽는다.
R회계법인은 S사의 재고자산 실사를 창고 세 곳 가운데 한 곳에서만 하고 나머지는 S사가 준 확인서로 갈음했다. 감사조서에는 경영진 확인서를 받았다는 한 줄만 적혔다. 실사를 하지 않은 두 창고에 대해 감사인이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는 미정이다. 확인서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도 미정이다. 확인서 자체가 어떤 자료이며 실사를 어떻게 대체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서의 자리를 읽는 자리에서 따로 살피므로, 여기에서는 실사 범위가 줄어든 자리만을 본다.
이 장면에서 남는 것은 두 가지이다. 실사를 하지 않은 나머지 두 창고에 대해 무엇을 했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지 않고, 남은 기록이라고는 확인서 수령 사실을 알리는 한 줄뿐이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이 요구하는 실시 의무는 그 한 줄로 채워졌다고 보이지 않는다. 앞서 읽은 판시가 회계감사기준을 주의의무 위반 판단의 주요한 기준으로 삼는 이상, 절차를 줄인 자리에서는 남은 절차가 무엇인지가 판시에 담긴 심사의 출발점이 된다. 그 출발점조차 비어 있으면 실사 범위의 축소가 기준의 요구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가릴 수 없다.
9.4경영진 확인서의 자리
실사 범위를 줄인 행위가 회계감사기준에 비추어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살핀 데서 나아가, 이제 확인서가 감사 절차 안에 놓이는 자리를 가를 차례다. R회계법인은 창고 두 곳의 실사를 S사가 준 확인서로 갈음했다. 이 장면에서 확인서가 감사인의 의무를 어느 선까지 대신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확인서의 자리를 가르는 데 앞서 기준을 다시 꺼낸다. 외부감사법 제16조 제1항은 감사인에게 절차의 준거를 지정하며, 그 법문은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선언한다. 같은 조 제2항은 회계감사기준의 정립 절차를 정하는데, "제1항의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의 신뢰성 유지에 필요한 사항 등을 포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사전승인을 받아 정한다"고 밝힌다. 확인서가 어느 자리에 놓이는지는 곧 이 기준이 정하는 바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회계감사기준의 지위를 확인한다. 감사인이 부담하는 주의의무의 내용과 회계감사기준의 기준 여부를 다룬 판시사항에 따라 그 판결은 "감사인은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2013. 12. 30. 법률 제1214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외부감사법’이라고 한다)에 따라 주식회사에 대한 감사업무를 수행할 때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함으로써 피감사회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적정한 의견을 표명하지 못함으로 인한 이해관계인의 손해를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구 외부감사법 제1조, 제5조 제1항)"고 보았다. 확인서로 실사를 갈음한 행위도 이 의무가 작동하는 자리에서 평가를 받는다. 그 판결은 회계감사기준의 지위를 두고 "구 외부감사법 제5조 제2항에 의하면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정하며, 그에 따라 마련된 회계감사기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으로서 감사인의 위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고도 밝혔다. R회계법인이 남은 두 창고에 대하여 어떤 절차로 갈음했는지는 이 기준에 대어 볼 일이다.
확인서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기준이 정한 자리 안에서뿐이다. 회계감사기준은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의 신뢰성 유지를 위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정해졌으므로, 경영진이 작성한 확인서를 감사인이 직접 수행할 절차의 자리에 놓는 것은 그 사정을 그대로 비춘다. 남은 두 창고에 대해 감사인이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 또 확인서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정해진 바 없다. 그 내용이 미정인 채로 확인서에 절차를 대신하는 힘이 인정되지는 않는다.
이 사례는 그 자리를 가르는 척도를 확인하는 데 그치고, 확정된 손해나 고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제3자의 손해배상 청구가 나올 경우 입증의 부담은 그 제3자가 진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그 점에서 "구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2013. 5. 28. 법률 제1184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70조 제1항은 선의의 투자자가 사업보고서 등에 첨부된 회계감사인의 감사보고서를 신뢰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그 회계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2013. 12. 30. 법률 제1214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외부감사법’이라고 한다) 제17조 제2항부터 제7항까지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어서 "구 외부감사법 제17조 제2항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함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자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하였다는 점을 주장·증명해야 한다"고 하였다. 확인서로 갈음한 절차가 감사보고서의 중요한 사항에 미치는지 여부는 이 사례에서 그대로 결론 내릴 수 없다. 회사와 감사인의 귀책 비율과 투자자의 이용 상황도 미정으로 남는다.
9.5감사조서 기재의 한계
절차 수행을 갈음한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 살핀 뒤에는, 그 흔적이 가리키는 범위를 밝혀야 한다. 감사조서에는 경영진 확인서를 받았다는 한 줄만 적혔다. 이 기재가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기록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일은, 조서에 남은 글자의 빈약함과 실제로 절차를 수행했는지 여부를 서로 다른 문제로 나누는 일에서 시작한다.
조서의 한 줄은 그 자체로 완결된 감사 기록이라 보기 어렵다.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은 감사인이 조회절차를 수행할 때 행한 구체적 확인 작업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2009. 2. 3. 법률 제940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상의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금융기관 등에 대한 조회절차를 실시할 때 스스로 조회처의 주소를 파악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감사회사 직원 등의 도움을 받아 조회처의 주소를 파악하는 경우에도 이를 다시 확인하는 등으로 조회서에 정확한 조회처의 주소가 표시되도록 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 절차 안에서 감사인이 해야 할 확인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뜻이며, 단순히 서류를 받았다는 기록만으로 그 확인까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확인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지 않은 사안에서는, 기재만을 두고 절차의 실체를 단정할 수 없다. 창고 세 곳 가운데 한 곳만 실사한 감사에서 나머지 두 창고에 대해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 확인서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미정이다. 이 미정의 사정을 이유로 절차가 수행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이 자료의 범위를 넘어서는 판단이다. 다만 기재가 경영진 확인서를 수령했다는 내용에 그친 이상, 그 문구가 확인 대상, 확인 방법, 확인 결과를 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조서 기재의 빈약함과 책임 성립은 서로 겹치지 않는 판단이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감사보고서의 기재와 책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구 외부감사법 제17조 제2항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함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자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하였다는 점을 주장·증명해야 한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 조서의 기재가 무엇을 가리키지 않았는지 읽는 일과,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을 기재하지 않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그 단계가 다르다.
따라서 경영진 확인서를 수령했다는 한 줄의 기재는 그 자체로 절차 수행의 유무를 확정짓지 못하며, 그 문구가 담지 않은 범위를 드러낼 뿐이다. 나머지 두 창고에 대한 절차 수행 여부와 확인서의 내용, 그리고 기재 밖에서 절차를 뒷받침할 근거는 이 자료가 다루는 범위를 넘어서므로 여기서 단정하지 않는다.
9.6임무 해태가 성립하는 지점
조서 기재의 빈약함이 절차 수행 여부의 판단과 뒤섞이지 않는다는 점을 가른 뒤에는, 감사인이 실제로 창고 한 곳만 실사한 사안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성립하는 지점을 묻게 된다. 외부감사법 제16조는 감사인의 책무를 이렇게 선언한다. "①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같은 조 제2항은 회계감사기준이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의 신뢰성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포함해 정해진다고 덧붙인다. 이 사안에서 남은 두 창고에 관한 실사를 하지 않고 확인서로 갈음한 행위가 바로 이 조항이 정한 실시 의무의 이행 범위를 벗어났는지가 문제이다.
이 지점에서 대법원은 주의의무의 내용과 회계감사기준의 지위를 함께 잡는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감사인의 주의의무가 무엇이며 회계감사기준이 그 판단에 어떤 구실을 하는지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감사인은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2013. 12. 30. 법률 제1214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외부감사법’이라고 한다)에 따라 주식회사에 대한 감사업무를 수행할 때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함으로써 피감사회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적정한 의견을 표명하지 못함으로 인한 이해관계인의 손해를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구 외부감사법 제1조, 제5조 제1항). 구 외부감사법 제5조 제2항에 의하면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정하며, 그에 따라 마련된 회계감사기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으로서 감사인의 위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 이 판시는 주의의무 위반을 따지는 자리에 회계감사기준이 주요한 기준으로 놓인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남은 두 창고의 재고자산에 대해 회계감사기준이 요구하는 실사 절차를 거치지 않은 행위는, 이 기준을 잣대로 삼아 비로소 주의의무의 이탈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다.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8다36930 판결은 회계감사준칙까지를 판단의 척도로 끌어들인다. 그 판결은 회계감사준칙의 지위를 이렇게 확인한다. "위와 같은 회계감사기준 및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그 시행을 위하여 마련한 회계감사준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으로서 감사인의 위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 같은 판결은 조회처의 주소를 확인하지 않은 사안에서 주의의무의 내용을 조금 더 세워 말하기도 한다.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2009. 2. 3. 법률 제940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상의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금융기관 등에 대한 조회절차를 실시할 때 스스로 조회처의 주소를 파악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감사회사 직원 등의 도움을 받아 조회처의 주소를 파악하는 경우에도 이를 다시 확인하는 등으로 조회서에 정확한 조회처의 주소가 표시되도록 할 의무가 있다." 이 판시는 피감사회사가 제시하는 자료와 설명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으로 절차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원리를 보인다. R회계법인이 S사가 준 확인서로 나머지 두 창고의 실사를 대체한 행위는 이 원리에 비추어 주의의무 이탈의 지점에 닿는다.
한편 절차 이탈의 성립과 손해배상책임의 인정은 겹쳐 보이되 서로 다르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은 제3자에 대한 책임의 요건에서 증명책임의 소재를 이렇게 나누어 둔다. "구 외부감사법 제17조 제2항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함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자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기재를 하였다는 점을 주장·증명해야 한다." 이 판시는 임무 해태의 성립만으로 제3자에 대한 배상책임이 곧바로 따라오지 않음을 뜻한다. 남은 두 창고에 관한 절차 이탈이 인정된다고 하여도, 그로 인해 감사보고서에 중요한 사항의 기재가 빠졌거나 거짓이 되었는지, 투자자가 그 보고서를 어떻게 믿고 이용했는지는 별도로 다루어야 할 물음으로 남는다.
같은 판결 2008다36930은 잘못과 손해 사이의 연결까지 그어 둔다. "감사인이 금융기관에 대한 조회서의 주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관련한 피감사회사의 모든 손해에 대하여 감사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수는 없고, 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감사인의 잘못과 피감사회사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이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결과 발생의 개연성은 물론이고, 감사인의 의무를 부과하는 법령 기타 행동규범의 목적, 가해행위의 태양 및 피침해이익의 성질 및 피해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이 판시는 절차 이탈의 지점이 손해의 범위까지 확정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 준다.
이 사안에서 임무 해태는 남은 두 창고의 실사를 생략하고 확인서로 갈음한 행위가 회계감사기준과 회계감사준칙이 정한 감사 절차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바로 그 지점에서 성립한다. 다만 2년 뒤 드러난 가공 재고 400억 원에 대해 감사인이 책임을 부담하는지는 상당인과관계의 판단을 거쳐야 하고, 그 판단에 필요한 감사인의 절차 수행 내역과 확인서의 내용, 감사보고서의 이용 모습, 회사와 감사인 사이의 귀책 비율은 아직 미정이다. 이 사정은 임무 해태 성립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그 이후의 평가에만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