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기관의 권한을 나누는 조문과 중요한 업무집행이라는 판단 기준을 살핀다. 결의와 집행을 따로 기록하는 방법, 승인의 존재와 실질적인 임무, 한 쪽의 의사록이 남기는 질문을 검토한다.
12.1기관의 권한을 나누는 조문
확인된 판단만 공유한 채 다른 판단을 닫지 않는 태도는, 이제 기관의 권한을 나누는 조문을 그대로 읽는 일로 이어진다. 배임의 임무위배 여부를 묻기 전에, 먼저 회사의 어느 기관이 어떤 행위를 맡는지를 상법이 어떻게 배치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대표이사의 선정과 이사회의 권한은 각각 다른 조문에 놓여 있으며, 그 문언의 구분이 곧 이 사례의 판단 기준이 된다.
대표권의 귀속을 정하는 조문은 상법 제389조다. 이 조문은 누가 회사를 대표할지를 먼저 정하는데, "제389조(대표이사) ①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관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를 선정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상법 제389조). 회사를 대표할 이사는 원칙적으로 이사회의 결의로 선정하되, 정관으로 주주총회 선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단서가 함께 놓여 있다. 갑이 A사의 대표라면, 그 대표 지위의 근거는 이 선정 절차에 놓여 있다.
같은 조문은 대표의 방식도 정한다. "②전항의 경우에는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하여, 복수의 대표이사를 공동 대표로 정하는 허용 여부를 밝힌다(상법 제389조). 또한 "③제208조제2항, 제209조, 제210조와 제386조의 규정은 대표이사에 준용한다. <개정 1962. 12. 12.>"라고 규정한다(상법 제389조). 대표이사의 권한 범위를 이해하려면 이 준용 조항이 함께 놓여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사회가 맡는 사무의 범위는 상법 제393조가 정한다. 이 조문은 결의 사항을 열거하며, "제393조(이사회의 권한) ①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 <개정 2001. 7. 24.>"라고 규정한다(상법 제393조). 중요한 자산의 처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은 이사회의 결의로 정하며, 열거된 사유의 끝에 "등"이 놓여 있어 목록이 닫혀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이사회는 결의에 그치지 않고 감독의 권한을 가진다. 상법 제393조는 "②이사회는 이사의 직무의 집행을 감독한다."고 규정하며, 같은 조문은 "③이사는 대표이사로 하여금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신설 2001. 7. 24.>"라고 보고 요구권을 둔다(상법 제393조). 아울러 "④이사는 3월에 1회 이상 업무의 집행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신설 2001. 7. 24.>"라고 정기 보고의무를 함께 둔다(상법 제393조). 이사회가 결의 기능과 감독·보고 기능을 함께 갖는 구조가 이 조문에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조문들의 문언만으로는 특정 행위가 "중요한 자산의 처분"에 해당하는지, 또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범위를 넘었는지가 정해지지 않는다. 대표권의 귀속과 이사회의 권한은 별개의 조문에 나뉘어 놓여 있고, 두 권한의 경계는 열거 사유의 문언과 개별 행위의 성격에 따라 판단할 문제로 남는다. A사에서 갑이 취한 조치가 어느 기관의 권한에 속하는지는 이 구분을 전제로 살필 일이다.
12.2중요한 업무집행이라는 판단
대표권과 이사회 권한의 경계를 문언으로 나눈 데 이어, 이제는 어떤 거래를 이사회의 결의를 요하는 것인지가 남는다. 그 답은 금액을 표로 정하는 방식으로 나오지 않는다. 상법 제393조 제1항은 결의 대상의 성격을 먼저 열거하고 있다. 이 규정에 비추어 담보 없는 거래처 대여를 잣대에 놓는 일이 이 절의 출발이다.
상법 제393조 제1항은 결의로 정할 업무집행을 이렇게 적고 있다.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 (상법 제393조). 같은 조 제2항은 "이사회는 이사의 직무의 집행을 감독한다"고 하며, 제4항은 "이사는 3월에 1회 이상 업무의 집행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상법 제393조). 문언이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이라고 성격과 규모를 함께 붙인 까닭에, 거래의 종류와 회사에 미치는 무게를 함께 살피지 않고는 결의 대상 여부를 말할 수 없다. 조문이 금액을 적지 않았으므로 회사 밖에서 금액을 만들어 그 잣대로 삼아서는 곧 문언을 벗어난다.
그렇다면 무게를 따지는 데 무엇을 재료로 삼는가. 배임에서 임무 위배를 가르는 기준이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임을 밝힌 판례의 문장이 그 방향을 보여준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판시하였다. 같은 법리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한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이 판단은 형법상 임무에 관한 것이나, 사무의 내용과 성질을 구체적 상황에서 읽어야 한다는 태도는 이사회가 감독할 업무집행의 무게를 잴 때도 같은 방향이다.
같은 판결은 거래의 무게를 수치 하나로 옮겨 삼는 데도 경계를 둔다. 앞서 인용한 판결이 지적한 대로, 매매가격에 관하여는 "당해 부동산의 형상, 면적, 지목, 이용현황 등 일반적으로 부동산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외에도 거래에 임하는 당사자들의 태도, 협상조건이나 협상능력 등도 가격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마련이어서 객관적 가치가 비슷한 토지라도 구체적인 협상 결과에 따라 매매가격에 작지 않은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하였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그 법원은 같은 사안에서 "공소외 2 주식회사가 인근의 다른 토지를 평당 180만 원 또는 300만 원에 매수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여 피해자 종중도 피고인의 이 사건 배임행위가 없었더라면 종중 소유 토지를 평당 180만 원 또는 공소외 2 주식회사가 결과적으로 이 사건 토지 전체의 매매대금으로 지급한 셈이 되는 평당 1,831,370원에 매도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이는 거래 하나를 놓고 숫자 하나를 들이대어 무게를 매기는 방식이 구체적 상황을 대신하지 못함을 가리킨다. 결국 중요한 업무집행의 판단은 거래의 성격, 회사가 지는 위험, 상대방과의 관계, 자금의 흐름과 회수 가능성 같은 사정을 모아 살피는 일이다.
이 기준을 이번 대여에 적용하면 판단의 재료가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대표 갑이 자금난인 거래처에 담보 없이 50억 원을 빌려준 일은 자금의 대차라는 성격을 띠고, 회사가 떠안을 위험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담보 여부와 회수 가능성이다. 그런데 회수 검토 자료는 주어지지 않았고, 이사회의 승인 여부와 당시의 변제능력, 갑의 인식, 회수액 모두 미정이다. 이런 사정에서 50억 원이라는 숫자만으로 중요한 업무집행 여부를 확정할 수는 없다. 아울러 이사의 직무수행 기준으로,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제2항은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결의 대상 여부를 가른 뒤에 붙일 판단이 이 충실의무의 궤에 있는 까닭에, 거래의 성격과 무게를 살피는 일은 곧 이사의 직무 내용을 살피는 일과 이어진다.
결국 중요한 업무집행이라는 판단에는 정해진 금액의 선이 없다. 상법 제393조 제1항이 적은 자산의 처분·양도, 대규모 차입, 지배인의 선임·해임, 지점의 설치·이전·폐지 같은 예들이 그 방향을 그려줄 뿐이고, 앞서 본 대로 임무와 무게는 사무의 내용·성질과 구체적 상황에서 읽는다. 따라서 A사의 대여를 두고는 담보 부재와 회수 가능성의 공백을 포함한 사정이 모여 비로소 결의 대상 여부가 드러난다. 미정으로 남은 회수액과 이사회 승인 여부가 채워지기 전에는, 이 거래가 중요한 업무집행이었다는 결론도 그 반대의 결론도 내리지 못한다.
12.3결의와 집행을 따로 기록하기
중요성 판단이 끝난 뒤에는 그 거래가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었는지를 각각의 기록으로 확인하는 일이 남는다. 이사회가 결의한 것과 대표이사가 실행한 것은 별개의 사건이므로, 두 사실을 섞어 기록하면 나중에 서로 어긋난 부분을 찾아내기 어렵다.
먼저 결의 사실을 기록한다. 상법 제393조제1항은 어떤 업무가 이사회의 결의를 요하는지를 정한다. 이 조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상법 제393조). 따라서 거래가 이 항의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 먼저 밝히고, 실제 결의가 있었는지, 결의가 있었다면 그 시점이 언제인지를 별도로 적는다. A사의 50억 원 대여가 "대규모 재산의 차입"인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결의가 있었다면 그 결의의 사실과 시점은 대여 실행과 무관하게 남겨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결의 내용을 기록한다. 결의의 사실만으로는 거래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대여 금액, 담보 제공 여부, 상환 기간, 이자 조건처럼 거래의 실질을 이루는 항목을 결의문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대로 옮겨 적는다. A사의 사례에서는 의사록이 한 쪽뿐이고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으므로, 결의가 이러한 조건을 실제로 다루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점을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남기고, 결의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거래 조건이 정해졌다고 추정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다음으로 집행 행위를 따로 기록한다. 상법 제389조제1항은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관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를 선정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상법 제389조). 대표이사가 거래를 집행한 것은 결의 자체와 구분되는 행위이므로, 송금 시점, 송금액, 수령자, 그 행위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각각 적는다. A사의 50억 원 송금은 대표이사 갑이 실행한 집행 행위이며, 이 금액은 그 자체로 확정된 손해액이나 이득액이 아니다.
세 기록을 서로 대조한다. 결의 사실, 결의 내용, 집행 행위가 같은 내용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어긋나는지를 하나씩 확인한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설시하였다. 여기서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는 그 사무의 구체적 상황에서 판단되므로, 결의가 요구한 조건과 실제 집행이 일치하는지 여부는 그 상황을 적은 기록에 근거하여 대조할 수 있다. 같은 판결은 배임죄의 성립 요건을 설명하면서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위배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이 있어야 하고"라고 하였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따라서 결의와 집행의 대조는 임무의 내용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끝으로 이사회가 그 집행을 감독했는지도 별도로 기록한다. 상법 제393조제2항은 "이사회는 이사의 직무의 집행을 감독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이사는 대표이사로 하여금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제4항은 "이사는 3월에 1회 이상 업무의 집행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결의가 있었더라도 그 이후의 집행 상황이 이사회에 보고되었는지, 보고가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결의 기록과 분리하여 적는다. A사의 경우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보고나 감독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미정이다. 이사회 승인 여부도 미정으로 남는다.
12.4승인의 존재와 실질적인 임무
결의와 집행을 서로 대조해 보아도, 이사회 승인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배임의 나머지 요건까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승인의 존재를 판단하기 전에 승인 자체가 무엇을 정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승인이 배임의 어떤 요건에 작용하는지부터 가려야 한다. 승인은 대표이사의 권한과 직결되지만, 배임죄의 성립은 별도의 구조를 이룬다.
상법 제389조는 대표이사의 선정에 관하여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관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를 선정할 것을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이어서 "전항의 경우에는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할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상법 제389조). 회사를 대표할 이사가 선정되는 경로를 정한 조항이므로, 대표권의 원천을 파악하는 출발점이 된다. 다만 이 조항이 대표이사의 개별 의사결정까지 승인으로 묶어 두는 것은 아니며, 승인이 있었다고 해서 곧 대표이사의 모든 행위가 회사에 이로운 것으로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승인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이사회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감시하는지 보아야 한다. 상법 제393조는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라고 정하고, 다음 항에서 "이사회는 이사의 직무의 집행을 감독한다."라고 선언한다. 이 두 문장을 함께 놓고 보면 이사회의 승인은 회사 업무집행의 한 방식일 뿐이며, 감독이라는 별도의 기능도 함께 작동한다. 승인이 있었는지와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승인이 결여되었다고 곧바로 임무위배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승인이 있었다고 곧바로 임무위배가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이 쟁점과 관련하여 배임죄의 주체와 임무위배행위의 의미를 이렇게 밝힌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위배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하며,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16]. 이 판례에 따르면 임무위배는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판단되는 것이며, 이사회 승인의 유무는 그 구체적 상황 속의 한 사정에 지나지 않는다. 승인 여부는 임무위배를 좌우하는 독립된 기준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이사회 승인을 둘러싼 판단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승인 여부를 일률적인 기준으로 삼는 대신 사무의 내용과 성질, 그리고 당시의 구체적 정황을 함께 살펴야 한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충실의무는 이사의 직무수행 전반에 걸쳐 작동하므로, 이사회 승인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의무가 모두 이행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승인은 배임의 한 요건을 이루는 사정에 해당할 뿐이며, 임무위배의 존재나 손해의 발생을 대신 입증하지 않는다.
12.5한 쪽의 의사록이 남기는 질문
승인의 실질이 배임의 나머지 요건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남은 것은 이사회 절차가 담긴 문서 자체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살피는 일이다. A사의 대표 갑이 50억 원을 담보 없이 대여하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작성된 의사록은 한 쪽뿐이다. 이 문서는 이사회가 열렸다는 사실, 그리고 결의의 방향을 짐작하게 하는 몇 가지 기재만 담고 있다. 그 한 쪽의 분량이 적다는 사실만으로 결의의 실효성을 부정할 수는 없고, 반대로 그 한 쪽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승인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 한 쪽의 기재 내용, 별도로 확인되어야 할 자료, 그리고 남는 물음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의사는 대표이사의 선정과 권한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상법 제389조는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관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를 선정할 것을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전항의 경우에는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상법 제389조). 이 조항들은 대표권의 원천을 정하고 있을 뿐, 대표이사가 개별 거래를 맺을 때 어떤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갑이 혼자 대표이사로 선정된 자인지, 공동 대표 구조 안에서 행동한 것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사회가 그 거래를 들여다보았어야 할 근거는 상법 제393조에 있다.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 제393조). 다만 의사는 담보 없는 50억 원 대여를 두고 결의가 있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는바, 회의의 소집과 통지, 출석 이사의 수, 찬반의 경위가 적혀 있는지도 빠져 있다. 이사회가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독하여야 한다는 같은 조 제2항의 요구에 비추어 보면, 담보 여부를 따진 흔적이 있었는지는 승인의 실질을 가르는 문제가 된다.
한 쪽에 담기지 않은 것은 문서 밖에서 찾아야 한다.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대여 당시 B사의 변제 능력, 담보 없이 자금을 내보낸 근거, 회수 방안을 따져 보았다는 자료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계열 관계와 갑의 인식도 열려 있다. 이런 나머지 사실들이 채워지기 전에, 한 쪽의 의사록만으로 승인의 존재를 단정할 수 없음은 물론 승인의 내용까지 추론하기 어렵다.
나아가 손해와 이득의 크기를 정하는 일은 별개의 과제로 남는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고, 그 취득한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하 ‘이득액’이라고 한다)이 얼마인지는 문제되지 아니하는 데 비하여, 배임으로 인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이라고 한다) 위반죄에 있어서는 취득한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또는 50억 원 이상이라는 것이 범죄구성요건의 일부로 되어 있고 이득액에 따라 그 죄에 대한 형벌도 가중되어 있으므로, 이를 적용함에 있어서는 취득한 이득액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산정함으로써, 범죄와 형벌 사이에 적정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죄형균형 원칙이나 형벌은 책임에 기초하고 그 책임에 비례하여야 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같은 판결은 "피고인과 공소외 2 주식회사가 이 사건 토지 전체를 합산하여 총매수가격을 정하였다거나 그 평당 가격을 180만 원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직접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산정의 기초가 될 사실을 직접 증거로 채워 넣지 못한 판단을 탓하였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50억 원의 송금액이 손해액인지, 이득액인지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 액수를 형벌의 가중 요건에 그대로 대입할 수 없음도 같은 맥락이다.
한 쪽의 의사록이 남기는 물음은 이처럼 구체적이다. 승인이 있었다면 그 승인이 담보 부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없었다면 누가 어떤 권한으로 그 거래를 맺었는지, 그리고 손해가 언제 확정되었는지가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 이 물음들이 채워지지 않은 채로는 배임의 구성 요건 가운데 어느 하나를 확정짓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