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재산관리와 신임관계를 출발점으로 삼아 회사와 이사의 관계, 대표권과 사무의 담당, 대리의 효과와 형사상 지위를 검토한다. 신탁의 충실의무를 살피고, 직함만으로 주체의 범위가 닫히지 않는 경계를 정리한다.
3.1재산관리와 신임관계
요건을 나누어 남겨 둔 판단의 틀은, 배임죄에서 가장 앞에 놓이는 ‘주체’ 요건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정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이 사례의 첫 쟁점이다.
그 의미에 관하여 대법원은 범죄의 주체를 확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위배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하며,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하였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L16)). 이 문장에서 주체의 자격은 곧바로 ‘신임관계에 기초한 재산관리 사무의 대행 또는 재산 보전행위의 협력’으로 좁혀진다.
대표 갑은 회사의 대표이사이다.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법정되어 있는데, 상법 제382조 제2항은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선언한다. 이 위임 준용 규정이 회사의 재산관리 사무를 대표 갑에게 맡기는 관계를 구성하며, 대표 갑이 타인인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에 놓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만 이 관계가 어떤 범위의 사무를 대표 갑에게 맡기는지, 그리고 그것이 B사에 대한 금전 대여의 결정에까지 미치는지는 별도로 밝혀야 한다.
한편 모든 계약상 채무가 곧 ‘타인의 사무’로 놓이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주체의 의미를 판시하면서 그러한 사무가 무엇을 전제로 하는지를 함께 밝혔고, 나아가 그 판결에서 다룬 사안은 피고인이 피해자 종중의 종손이자 부회장으로서 피해자 종중으로부터 종중 소유 토지의 매도 여부 및 그 가격 결정에 관한 권한을 사실상 위임받아 거래 상대방과 매매협의를 한 경우였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사무의 대행과 권한의 위임이 함께 놓일 때 신임관계가 드러난다. B사에 대한 무담보 대여가 회사의 사무 대행에 속하는지 판단하려면 그 대여가 회사의 재산관리 사무라는 신임관계 안에 놓였는지를 먼저 밝혀야 하고, 이 점은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아 미정이다.
특히 대법원은 신임관계를 전제로 삼으면서 사무의 내용과 성질을 구체적 상황에서 살펴야 한다고 하였고, 그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기대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를 나누어야 한다고 하였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L16)). 자금난인 거래처에 대한 담보 없는 대여가 그러한 기대에 부합하는지, 또는 그것을 저버리는지는 계약의 내용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판단할 사항이다. 이사회 승인 여부와 당시 변제능력, 갑의 인식, 계열관계, 회수액이 모두 미정이므로 주체 요건을 넘어서는 이 판단은 이 사례에서 확정되지 않고, 송금액은 확정된 손해액이나 이득액으로도 볼 수 없다.
3.2회사와 이사의 관계
모든 계약상 채무를 곧바로 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다면, A사의 대표 갑이 회사의 돈을 거래처에 내어준 경우에 그가 누구의 사무를 맡은 자인지를 먼저 가려야 한다. 이 물음은 회사와 이사의 관계가 무엇에 기초하는지에서 시작한다. 상법 제382조 제2항은 회사와 이사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라고 정한다. 이에 따라 이사는 회사의 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지위를 얻고, 그 지위는 계약으로 맺어진 신임관계에 놓인다.
위임의 준용은 대리의 효력 규칙과도 맞물린다. 민법 제114조 제1항은 "대리인이 그 권한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선언한다.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행한 뜻을 밝혀 회사에 귀속되는 효과를 낳는 자리이므로, 그가 처리하는 사무의 주체는 이사 자신이 아니라 회사다. 이사회 권한의 조항도 같은 방향이다. 상법 제393조 제1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하여, 회사 사무의 주요 결정이 회사 기관의 몫임을 밝힌다.
형법상 배임의 주체를 정하는 문언도 그 사무의 소속을 가리킨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규정한다. 회사와 이사 사이의 위임 준용에 따라, 이사가 회사 돈을 다루는 사무는 회사의 사무가 되고, 그 이사가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놓인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그 주체를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하며"라고 설명한다.
그 신임관계의 내용으로 무엇이 기대되는가는 같은 판결이 밝힌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의 문구에서 드러난다. 대법원 2012도3840 판결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적는다. 회사 이사에게 기대되는 것은 법률의 규정과 계약 내용에서 도출되며, 위임 준용이 그 계약 내용의 뼈대를 이룬다.
여기서 회사의 재산과 이사 개인의 재산은 구별된다. 회사의 돈은 회사라는 본인의 재산이고, 이사의 개인 재산은 그 자신의 재산이다. 대리의 효력 규칙이 본인에게 효력을 귀속시키는 것도 같은 구분에서다. 갑이 담보 없이 B사에 50억 원을 대여한 그 돈이 A사의 회사 자금이라면, 다루어진 사무의 주체는 A사가 된다.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고 이사회 승인 여부도 미정이므로, 이 대여가 임무에 맞는지 어긋나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다만 사무의 방향은 여기서 정해진다. 이 대여는 갑 개인의 돈을 빌려주는 거래가 아니라 회사의 재산을 지키는 사무를 맡은 자가 한 행위로 다루어진다.
3.3대표권과 사무의 담당
회사와 이사의 관계가 위임 준용에 놓여 있다는 전제에서, 이제 구체적으로 누가 회사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지가 문제이다. 대표권의 귀속과 업무집행의 담당은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 대표권은 회사를 대표할 지위를, 업무집행은 회사의 사무를 실제로 수행하는 역할을 각각 뜻한다. 이 둘의 구분이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를 가르는 출발점이 된다.
대표권의 근거는 상법 제389조가 정한다. 대표이사의 선정에 관하여 같은 조 제1항은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관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를 선정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상법 제389조). 선정 주체는 원칙적으로 이사회이며, 정관으로 주주총회에 맡길 수 있다는 단서가 함께 놓여 있다. 다수의 대표이사를 두는 경우에도 같은 조 제2항은 "전항의 경우에는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하여 공동대표의 정함을 허용한다 (상법 제389조). 회사의 외부적 표시는 이 대표권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업무집행의 담당은 이사회와 이사 사이에 나누어진다. 상법 제393조 제1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하여 회사 업무집행의 핵심 사항을 이사회의 결의 사항으로 지정한다. 같은 조 제2항은 "이사회는 이사의 직무의 집행을 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제4항은 "이사는 3월에 1회 이상 업무의 집행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상법 제393조). 감독과 보고는 이사회가 개별 이사의 업무집행을 끌어안는 통로가 된다.
갑이 대표이사에 선정되었다면 상법 제389조에 따라 회사를 대표할 지위를 갖는다. 그러나 대표권만으로 B사에 대한 담보 없는 50억 원 대여가 회사의 업무집행에 속하는지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여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또는 대규모 재산의 차입에 해당한다면 상법 제393조 제1항의 결의 사항에 놓일 수 있다. 다만 이사회 승인 여부는 미정이고, 의사록은 한 쪽이다. 이사회 결의의 유무와 그 범위는 확인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대표권의 유무와 사무의 담당은 분리해서 살핀다. 대표이사로 선정된 자라도 담당한 사무의 내용과 성질을 따져 임무의 범위를 특정해야 한다. 이사회 결의로 맡겨진 사항인지, 대표이사 개인이 실제로 수행한 업무인지, 그 업무가 회사의 재산관리에 관한 것인지는 각각 구분된다. 갑이 대여를 실행한 경위와 이사회 결의의 유무가 확인되지 않은 이상, 임무의 범위와 그 위배 여부는 미정으로 남는다.
3.4대리의 효과와 형사상 지위
기관의 역할과 사무 담당이 구분된 뒤에 남는 물음은 대리인이 본인을 대신하여 한 행위의 효과가 누구에게 귀속되느냐이고, 나아가 그가 형사법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느냐이다. 이 두 물음은 닿는 방향이 다르므로 각각의 요건을 놓고 따로 살펴보아야 한다.
민법은 대리행위의 효력을 정하면서, 대리인이 권한 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가 본인에게 효력을 생기게 한다고 규정한다. 민법 제114조 제1항은 "대리인이 그 권한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라고 선언한다. 같은 조 제2항은 "전항의 규정은 대리인에게 대한 제삼자의 의사표시에 준용한다"라고 덧붙인다 (민법 제114조). 이에 따라 A사 명의로 B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계약을 맺고 돈을 보낸 사람이 대리인이었다면 그 대여 계약과 금원의 이동은 A사에 귀속된다.
그러나 민법 제114조가 정하는 것은 의사표시의 효력이 본인에게 미친다는 점이다. 이 조문은 대리인 자신이 형법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지에 관해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다. 대리권이 있더라도 대리인은 별도의 판단을 거쳐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가 문제로 남는다.
배임죄의 주체 요건은 형법 제355조 제2항에 적혀 있다. 그 조문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고 규정한다 (형법 제355조). 따라서 대리인 지위만으로는 부족하고, 타인의 사무를 실제로 처리하였는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배임죄 주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위배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하며"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같은 판결은 임무위배의 뜻도 함께 제시한다.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여기서 주체의 범위는 이름이나 형식이 아니라 신임관계에 근거한 사무 대행이라는 실질에 매인다.
갑이 대표이사로서 A사를 대신하여 계약을 체결하고 송금한 것이라면 민법 제114조에 따라 그 효과는 A사에 돌아간다. 다만 대리인인 사실만으로 갑이 곧바로 배임죄의 주체임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갑이 A사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재산관리 사무를 대행하였는지, 그리고 이 사안에서 그 사무의 내용과 성질에 비추어 담보 없이 자금난인 거래처에 50억 원을 빌려주는 행위가 기대되는 행위에 반하는지에 관하여는 별도로 확인할 사실이 남는다. 회수 검토 자료는 제공되지 않았고, 의사록은 한 쪽뿐이다. 당시 B사의 변제능력과 갑의 인식, 이사회 승인 여부도 미정이다. 송금액은 확정된 손해액이나 이득액이 아니므로, 송금 사실만으로 임무위배와 손해가 곧바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민법 제114조의 효과 귀속과 배임 주체의 성립은 별개의 질문이다. 대리의 효과가 본인에게 돌아간다고 하여 대리인에게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이 부정되거나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이 사안에서 갑의 지위와 그 임무의 구체적 내용은 신임관계에 기초한 사무 대행이라는 기준 아래에서 판단할 일이다.
3.5신탁의 충실의무
민사대리인이라는 지위만으로 형사상 임무 위배를 선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어, 신탁 관계에서 수탁자가 받는 의무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탁법은 신탁재산에 속하는 금전의 관리방법을 열거한다. 신탁법 제41조는 "신탁재산에 속하는 금전의 관리는 신탁행위로 달리 정한 바가 없으면 다음 각 호의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1. 국채, 지방채 및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의 사채의 응모·인수 또는 매입 2. 국채나 그 밖에 제1호의 유가증권을 담보로 하는 대부 3. 은행예금 또는 우체국예금"이라고 정한다(신탁법 제41조). 이 조문은 담보 없이 금전을 대여하는 방식을 기본적 관리방법으로 두지 않는다. 신탁재산의 금전을 어떤 방식으로 굴릴 것인가를 둘러싼 기준이므로, A사가 수탁자라면 신탁행위의 다른 정함이 없는 한 제41조가 정한 셋 가운데 하나에 부합하는 관리가 요구된다. 다만 이 조문은 금전관리의 방법만을 다룰 뿐, 신탁재산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관한 답은 담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수탁자의 권한 범위나 신탁재산의 법적 귀속 문제는 이 조문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형법상 배임의 주체는 자격을 정한 조문에서 출발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규정한다. A사가 B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이 조문의 문언상 요건이다. 신탁법 제41조에 따른 금전 관리 의무를 부담한다고 곧바로 형법 제355조 제2항의 주체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규범은 각각 신탁재산의 관리방법과 형사책임의 요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형법 제355조 제2항의 주체와 임무 위배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위배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하며,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판시한다. 따라서 형법상 주체 판단은 신임관계와 그 위에 놓인 구체적 사무의 내용에서 출발한다. 이 판시는 사업 부지 매도 권한을 사실상 위임받은 자의 사례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탁 수탁자의 지위와 그 사무의 범위는 별도로 확인되어야 한다.
신탁 관계에서 수탁자가 맡는 사무가 무엇인지는 신탁행위에 따라 정해진다. 신탁법 제41조는 신탁행위로 달리 정한 바가 없을 때 적용되는 보충적 관리방법을 제시할 뿐이므로, 그 문언은 수탁자가 수행할 사무의 내용을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 나아가 같은 조문은 이사의 지위에 관한 규정도 아니다. 상법 제382조 제2항은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만 정할 뿐이다. 그러므로 신탁법상 의무의 근거와 형법상 주체 요건은 각각 별도로 놓여 있다.
결국 A사 대표 갑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지 여부는 신탁법 제41조의 관리방법 열거만으로는 가려지지 않는다. 배임 주체의 판단에는 신임관계에 기초한 구체적 사무의 내용이 요구되며, 신탁행위에 따른 수탁자의 권한 범위도 함께 확인되어야 한다. B사에 대한 담보 없는 50억 원 대여가 신탁재산의 관리방법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그 대여가 위임받은 사무의 내용에 비추어 임무 위배에 해당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회수 검토 자료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 판단의 근거도 현재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3.6직함으로 닫히지 않는 경계
형법상 배임의 주체를 신탁재산 관리 의무와 나란히 놓고 본 뒤에 남는 것은, 그러한 의무를 진 사람이 실제로 누구인지의 문제이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그 범위를 직함이 아니라 신임관계와 사무의 내용에서 찾는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은 배임죄의 주체에 관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위배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하며,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당해 사무의 내용·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밝힌다. 이 정의는 대표이사나 이사라는 명칭을 요건으로 내걸지 않으며, 대신 신임관계에 기초한 사무 대행과 재산 보전의 협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한 사무 처리자의 지위는 법령이 부여하는 직함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판결이 인정한 사실에서는 피고인이 종손이자 부회장이라는 지위에 더하여, 회장이나 종중원이 아닌 그가 종중 소유 토지의 매도 여부와 그 가격 결정에 관한 권한을 사실상 위임받았다는 점이 주어졌다. 판결은 이를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에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피해자 종중으로부터 종중 소유 토지의 매도 여부 및 매매가격 결정에 관한 권한을 사실상 위임받은 자의 임무에 위배한 행위"로 판단한 바를 전한다. 이 판단에서 주체의 범위를 가른 것은 직함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임받았는지이다.
위임받은 사무의 범위는 임무위배의 판단과 바로 이어진다. 판결이 원심의 인정 사실로 전한 것은 피고인이 피해자 종중 소유 토지를 평당 101만 원에 매매하도록 하고 자신의 토지는 평당 258만 원에 매매한 것인데, 피고인이 종중 소유 토지의 가격을 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행위는 그 권한을 넘거나 어긋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3840 판결). 사무의 내용이 확인되어야 임무의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이 있어야 위반이 성립한다는 점이 이 사례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기준을 회사의 대표자에게 적용하려면 그가 처리하는 사무가 무엇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 상법 제389조는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관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를 선정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선정 절차를 정하고(상법 제389조), 회사와 이사의 관계에 관하여 상법 제382조는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한다.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곧 임무위배의 기준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며, 그에게 무엇이 위임되었는지가 정해져야 한다.
대표자의 권한이 정해지는 자리에는 이사회의 권한 규정이 있다. 상법 제393조는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선언하고, 대리의 효력은 민법 제114조가 "대리인이 그 권한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들은 그 자산 처리가 대표자 자신의 사무인지,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는 회사의 업무인지의 경계를 표시한다.
대표 갑이 자금난인 B사에 담보 없이 50억 원을 대여한 사안에서, 그가 대표이사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지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확인되어야 할 것은 A사가 그 대여에 관한 어떤 사무를 갑에게 맡겼는지이며, 그 위탁 범위 안에서 갑이 회수 검토를 포함하여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었는지이다. 회수 검토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고 의사록은 한 쪽뿐이므로, 대여가 회사의 사무로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회수액, 계열관계, 당시의 변제능력, 갑의 인식과 이사회 승인 여부는 모두 미정이다. 이처럼 주체와 임무의 범위가 미정인 상태에서 송금액만을 놓고 판단할 수는 없으므로, 이 사안에서 50억 원은 확정 손해액도 확정 이득액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