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법령과 판결이 공개되어 있어도 읽을 수 있는 꼴이 아닐 때 무엇이 문제인지 짚고, 재판청구권의 정보 조건을 살핀다. 을이 서면을 쓰는 데 필요한 정보의 흐름과 준비서면 사이의 격차를 더듬는다. 일반 정보의 제공과 법률사무의 취급을 가르는 선과 정보 공개 제도의 개선책은 다루지 않는다.
12.1재판청구권의 정보 조건
변호사 강제주의의 한계를 확인한 데서 나아가, 이번에는 재판청구권 문언이 스스로 소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보장하는지 살핀다. 을이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쓰면서 법원이 정한 청구원인 정리와 준비서면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지, 그 전에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상황이 정보의 얻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문언에서 직접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재판청구권의 기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 문언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그 재판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함께 요구한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어 법원의 문 앞에 이른 경우, 이 조항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장하는지는 위 문언의 범위 안에서 읽어야 한다.
같은 조항의 다른 항들도 재판청구권의 내용을 구체화한다. 헌법 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하고,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규정하며, 제5항은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이 항들은 각각 신속한 재판과 공개재판, 무죄추정, 형사피해자의 진술을 다루며, 을이 제기한 보증금 반환 청구처럼 당사자가 스스로 소를 수행하는 민사절차에서 무엇을 직접 보장하는지까지 문언이 말하고 있지는 않다.
정보에 관한 권리를 새로 설정하는 것은 문언의 범위를 넘는다. 제27조 각 항은 법관에 의한 법률에 의한 재판, 신속한 재판, 공개재판, 무죄추정, 형사피해자의 진술을 명시하되, 소송의 상대방이 제출한 준비서면을 읽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거나, 청구원인을 정리하는 방법을 안내받을 권리를 별도로 선언하지 않는다. 을이 상대방의 30쪽짜리 준비서면에 대응할 수 있었는지, 청구원인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는지는 이 문언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소송구조 신청 여부와 그 결과, 석명의 범위,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 역시 미정이다.
결국 제27조가 스스로 소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보장하는 것은 조문에 적힌 내용에 그친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문언이 보장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와 그 재판이 갖추어야 할 형식적 조건이 골자이며, 신속한 재판과 공개재판 등 다른 항의 보장은 그 대상이 구분되어 있다.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상황이 정보의 얻음에 어떤 법적 효과를 끼치는지, 그리고 그 이웃이 수고비를 받은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는 미정이며, 헌법 제27조의 문언만으로는 확정되지 않는다.
12.2공개와 읽기의 간격
재판청구권의 문언이 어떤 절차를 보장하는지를 살핀 데서 나아가, 이제 그 절차의 바탕에 놓인 법령과 판결이 국민 앞에 놓여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고 청구원인을 정리하려 할 때 그가 먼저 부딪치는 것은 절차규범의 문안이다. 그런데 법령과 판결이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을이 실제로 읽을 수 있는 꼴로 놓여 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이 둘의 간격이 정보라는 네 번째 문턱을 이룬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면서 그 재판의 성격을 한정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재판청구권에 관하여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한다. 이 문언은 재판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그리고 법률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밝힌다. 따라서 재판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무엇인지 아는 일은 이 조항이 정한 재판의 조건을 스스로 지키려는 을에게 떨어져 나갈 수 없는 과제이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3항은 재판의 공개와 시기에 관한 권리를 함께 두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3항은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다(대한민국헌법 제27조). 여기서 공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재판의 심리 과정이며, 그 공개의 권자를 형사피고인으로 특정한 대목은 형사 사건에 관한 것이다. 을의 보증금 반환 청구는 형사 사건이 아니므로, 을이 이 항에서 직접 받는 보장은 심리의 공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을이 마주한 정보의 문제는 심리의 공개와는 다른 자리에 놓인다.
한편 대한민국헌법은 제27조의 다섯 항에 걸쳐 재판청구권·군사법원의 관할·신속한 재판과 공개재판·무죄추정·형사피해자의 진술을 규율하면서, 그 어디에도 법령이나 판결문의 공개에 관한 항을 두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제4항은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하여 판결의 확정에 관한 문언을 사용하고, 제5항은 "⑤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라고 하여 법률의 위임을 두고 있다(대한민국헌법 제27조). 이처럼 헌법 제27조가 판결의 확정과 법률의 정함을 전제로 삼는 구조를 두고 있으므로, 판결이 공개되는 꼴과 법령이 알려지는 방식은 법률이 정할 사항으로 남는다. 이 사례에서 을이 어느 법령의 어느 조문에 서면의 형식을 정한 규정을 찾아 읽었는지, 또는 읽지 못하였는지는 미정이다.
결국 이 단계에서 확인되는 것은 한정된 사실이다. 헌법 제27조는 을이 어떤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그 법률의 내용을 읽고 판결의 논리를 확인하는 일까지를 그 조문 안에 직접 적어 두지 아니하였다.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과 읽을 수 있는 꼴로 놓여 있다는 사실은 서로 어긋날 수 있다. 을이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써야 했던 까닭이 그 어긋남에 닿아 있는지의 여부는, 서면을 쓰는 데 어떤 정보가 필요했는지를 밝힌 뒤에야 가려질 수 있다.
12.3을의 서면과 정보 흐름
공개와 읽기의 사이를 가른 뒤에 남는 물음은, 을이 제출한 글에 담길 정보가 어디서 오고 어디서 끊기는지이다. 을은 보증금 2,800만 원을 돌려받으려고 혼자 소장을 냈고, 첫 변론기일에 판사는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했다.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는, 대한민국헌법 제27조에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되어 있다. 이 선언에서 '법률에 의한 재판'이란, 당사자가 자기 주장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여건을 전제로 삼는다. 을이 서면을 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서면을 쓰는 데 필요한 정보는 세 갈래로 갈린다. 첫째는 사실이다. 보증금 계약이 언제 끝났는지, 얼마를 언제 냈는지와 같은 기록은 을이 손에 쥐고 있거나 쥘 수 있다. 둘째는 형식이다. 청구원인을 어떤 항목으로 나누어 적어야 하는지는 판사의 말만으로는 온전히 오지 않는다. 셋째는 상대방이 내놓은 것이다. 상대방은 변호사를 통해 30쪽짜리 준비서면을 냈고, 그 문장에 담긴 방어 논리는 을에게 새로 들어온 정보이다. 이 세 갈래가 뒤섞이면 을은 무엇을 먼저 적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판사는 석명을 요구한다. 석명의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미정으로 남겨 둔 쟁점이다.
을이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썼다는 점에서 정보의 경로는 한 번 더 꺾인다. 이웃은 법률 지식을 옮기는 매개이지만, 그 매개에는 처벌의 그늘이 있다. 이웃은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나아가 대리의 예외 요건이 충족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확인되는 것은 정보가 이웃의 손을 거쳐 을에게 도달했다는 사실뿐이다. 그 거래가 적법했는지, 아니면 제재 대상이었는지에 관하여는 판단을 유보한다.
한편 을은 소송구조를 신청했는지, 신청했다면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가 미정이다. 소송구조는 소장 작성에 드는 비용과 전문성의 부담을 덜어 주는 통로이지만, 그 통로가 실제로 열렸는지는 여기서 단정하지 않는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례에서 정보의 흐름이 법원·상대방·이웃의 세 지점에서 각기 다르게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법원의 석명 요구는 형식 정보를 요구하지만 알려 주지는 않고, 상대방의 준비서면은 사실과 논리를 담되 을의 편에서 읽히지 않으며, 이웃의 조력은 지식을 전달하되 그 대가에 제재의 위험이 붙어 있다.
결국 을이 청구원인을 정리하는 일은 사실을 늘어놓는 작업이 아니라, 세 갈래로 갈라진 정보를 서면의 꼴로 다시 묶는 작업이다. 그 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정보가 공개되어 있다는 것과, 그 정보가 당사자의 서면에 실릴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12.4준비서면 사이의 격차
을이 서면을 마련하는 정보 흐름이 어디서 이어지고 어디서 끊기는지 살핀 뒤에는, 이제 그 결과로 남는 두 서면의 간격이 재판청구권에 무슨 문제를 놓는지 따져야 한다. 헌법 제27조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그 조문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이 선언이 이 사건에서 얻는 무게는, 을이 소장을 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는 다 헤아리기 어렵다.
첫 변론기일에 판사는 을에게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했다. 이 요구는 을이 자기 청구의 근거를 스스로 짜서 내놓아야 함을 뜻한다. 같은 시각 상대방은 변호사를 통해 30쪽짜리 준비서면을 냈다. 두 문서가 같은 자리에 놓이면,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쟁점의 틀은 어느 쪽 서면이 더 촘촘한가에 따라 기울기 쉽다. 재판을 받을 권리는 절차가 형식적으로 열려 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권리는 어떤 내용으로 재판을 받는가의 문제를 함께 끌어안는다.
헌법 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덧붙인다. 신속함은 공정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쟁점이 상대방의 서면에서만 정리된 채로 진행되면, 을은 자기 청구를 방어하기보다 상대방이 짜놓은 틀에 대답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웃이 도와 쓴 서면이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어느 정도로 준비되었는지는 적힌 것이 없다. 서면 자체를 읽지 못한 상태에서 그 질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30쪽짜리 준비서면과 이웃의 도움으로 쓴 서면이 나란히 놓인다는 관찰만 남는다.
이웃이 왜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한 내막은 미정이다. 다만 그 말이 을 주변에 돌았다는 사실은, 을이 정보와 조력을 구할 통로가 좁다는 점을 드러낸다. 변호사를 통하지 않은 서면 작성의 통로에서조차 금지와 처벌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면, 을은 혼자 힘으로 격차를 메우기 어렵다. 재판청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법정에 서는 자격을 넘어서 상대방의 서면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그 여건이 무엇인지, 현재의 제도가 을에게 그것을 주었는지는 이 자리에서 확정할 수 없다.
그래서 두 서면 사이의 간격은 단지 문서의 분량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을이 재판에서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범위를 가늠하는 척도다. 을이 보증금 2,8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재판이 가릴 일이다. 이 자리에서 다루는 것은, 그 재판이 을에게 충분히 공정했는지를 물을 때 무엇을 보아야 할지 가리키는 일이다.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요구 앞에서 을이 가진 정보의 양과 상대방의 준비서면이 쌓아놓은 정보의 양을 함께 놓고 보아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을이 이웃에게 받은 도움과 수고비의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서면의 내용을 지어내어 을의 입장을 대신 말하지 않는 한, 이 격차가 재판청구권에 놓는 문제는 이렇게 정리된다. 문이 열려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문을 지나 법정 한가운데에 서서 자기 청구를 펼 수 있는가를 함께 보아야 한다.
12.5정보의 선과 법률사무
준비서면 사이의 격차를 본 뒤에도 이웃이 도운 서면의 행위가 무엇에 해당하는지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런 판단을 앞당길수록 재판청구권의 본질이 오히려 흐려진다. 정보가 손에 쥐어지지 않은 사람이 절차 안에서 무엇을 잃는지를 가늠하려면, 우선 헌법이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어디에 두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다. 그 첫 단락을 옮기면,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같은 조항에서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라고도 선언한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고 첫 변론기일에서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말을 들은 사정은, 이 두 문장이 보장하는 자리에서 무엇이 비어 있는지 묻게 만든다. 법관에 의한 재판이라는 형식은 갖추어졌으되, 그 재판에서 자기 주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형사절차를 염두에 둔 보충 규정도 함께 읽어 둘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나머지 단락에서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⑤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라고 정한다. 이 사례가 분쟁의 자리에 서게 한 것은 형사절차가 아니라 보증금 반환 청구이므로, 위 두 단락의 적용 자체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제5항이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고 표현한 대목은, 정보가 절차 안에서 기능하는 방식이 절차마다 갈린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형사피고인에게는 추정이 방패가 되고, 형사피해자에게는 진술이 자리가 되는 식으로, 같은 헌법 조항 안에서도 정보와 말의 자리는 다르게 놓인다.
그렇다면 일반 정보와 법률사무는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이웃은 을의 서면 작성을 도왔다. 그런데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정황만으로, 곧바로 어떤 법령의 어느 구성요건이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리의 예외 요건이 충족되었는지, 이웃이 받은 금액이 어떤 액수이며 어떤 성격인지, 그 정황이 관찰된 사실로만 남는지 법적 평가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서면 한 장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알려 주는 일과 남의 소송을 대신 꾸리는 일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 보이지만, 그 간격의 크기를 여기서 재어 버리면 뒤이어 살펴야 할 조문의 문언이 미리 결정되는 셈이 된다.
정보의 선이라는 말은 그래서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에 가깝다. 한쪽에는 서면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 주는 일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남의 소송을 대신 꾸리거나 그 대가를 챙기는 일이 있다. 이웃이 도운 서면이 어느 쪽에 닿아 있는지는, 처벌의 근거가 되는 구성요건과 대리의 예외를 놓고 따져 본 뒤에야 가려진다. 지금 여기서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관찰된 사실의 나열일 뿐이다.
을이 혼자 감당한 첫 변론기일과 30쪽짜리 준비서면 앞에 선 사정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형식적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묻게 한다. 헌법 제27조는 그 권리를 선언하되,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나눌지는 정하지 않는다. 석명의 범위와 소송구조 신청의 결과처럼 밝혀지지 않은 쟁점은 그대로 남겨 두고, 이웃이 받은 수고비의 액수와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도 단정하지 않는다. 일반 정보의 제공과 법률사무의 취급을 가르는 선은 그 문언과 요건을 직접 마주하는 자리에서 그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