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재판에 실질적으로 닿는 일을 가로막는 요소를 비용, 절차 지식, 대리라는 세 문턱으로 나누어 살핀다. 각 문턱이 어느 조문에서 조정되는지 표시하는 데 그치고, 합성 사례 을의 장면에 세 문턱을 놓아 본다. 문턱 사이의 우선순위나 상호작용의 이론과 정보의 문턱은 이 장의 범위 밖에 둔다.
2.1접근을 나누는 세 문턱
앞에서 셈한 문턱은 이제 그 문턱이 무엇 앞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이 물음에 답하려면 우선 재판을 받을 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 헌법 조문을 읽는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그 권리를 여러 항에 나누어 선언한다. 먼저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여 누구나 재판을 청구할 수 있음을 밝힌다. 이 선언은 을이 혼자 소장을 낸 일에 그대로 닿는다. 을이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말을 들은 것은 이미 법정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법관에 의한 재판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막힌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을 앞에 놓인 어려움은 자격의 유무가 아니라 그 자격을 실제로 행사하는 길의 폭에서 나온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3항은 같은 권리를 시간의 차원에서 이어 선언한다. 그 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여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재판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함께 밝힌다. 이 문장은 을의 사건이 민사사건인 이 사례에서 형사피고인의 부분만을 떼어 읽어 내려는 것이 아니다. 앞의 문장이 말하는 '모든 국민'의 범위를 그대로 둔다. 을도 이 범위 안에 있다. 이 권리를 이루는 조건이 같은 조문 안에 놓여 있음에 주의한다.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나뉘어 선언되지만, 을 앞에 놓인 장면에서는 하나로 겹쳐 보인다. 서면을 읽고 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재판 자체가 늦어진다.
권리를 선언하는 조문과 그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 사이에 놓인 것은 서류와 말이다. 을은 소장을 혼자 썼고, 첫 변론기일에서 판사는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했다. 상대방은 변호사를 대동해 30쪽짜리 준비서면을 냈다. 을이 받은 서면을 읽고 답할 방법을 찾는 일이 곧 재판에 닿는 첫 걸음이다. 서면을 읽는 데 필요한 지식과 시간이 이 걸음을 나누는 문턱이 된다. 같은 서면 앞에서도 어떤 사람은 곧바로 쟁점을 알아보고, 어떤 사람은 우선 낯선 말을 풀어야 한다. 이 차이가 재판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가른다.
서면을 쓰는 일에 을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다. 을은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작성했다. 그 이웃은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대리인이 아닌 사람이 대가를 받고 소송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을 앞에 놓인 또 하나의 문턱이다.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은 미정이다. 을이 이웃에게 무엇을 부탁했고 얼마를 건넸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다만 도움을 받는 일에 대가가 끼어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움의 길이 좁아진다.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함께 그 대가의 경계를 가늠해야 하는 상황이 놓인다.
을 앞에 놓인 것은 이렇게 셋이다. 소장과 서면을 읽고 쓰는 데 드는 비용, 낯선 절차를 스스로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지식, 그리고 곁을 도울 사람이 도움을 주는 데 부딪히는 대리의 경계이다. 이 셋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을의 길을 가로막는다. 비용은 주머니의 문제이고, 절차 지식은 아는 양의 문제이며, 대리의 경계는 곁에 있는 사람의 문제이다. 이 셋을 함께 놓고 보아야 을이 재판에 닿는 일에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 그 형태가 드러난다.
이 문턱들의 순서를 미리 정할 필요는 없다. 비용을 먼저 볼지, 절차 지식을 먼저 볼지, 대리의 문제를 먼저 볼지는 이 사건에서 확인된 사실의 배열에 따르면 된다. 을이 소송구조를 신청했는지 그 결과는 미정이다. 대리의 예외 요건을 충족했는지도 확인된 바 없다. 확정된 손해나 고의 같은 평가는 아직 내리지 않는다. 헌법 제27조가 선언한 권리를 기준으로 삼는 한, 이 세 문턱은 을이 재판에 닿는 길을 나누는 관찰의 틀로만 남는다. 이 틀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미리 정하지 않는다. 을 앞에 놓인 것을 나누어 보이게 할 뿐이다.
2.2비용이 가르는 첫 문턱
재판받을 권리를 세 문턱으로 나누어 살핀 데서 이어져, 이번에는 그 가운데 비용이 첫째 문턱으로 놓이는 까닭을 읽는다. 을이 돌려받으려는 보증금은 2,800만 원인데, 을은 그 돈을 받으려고 혼자 소장을 냈다. 소장을 낼 때부터 돈이 드는 까닭에, 을과 같은 사람은 재판 앞에 서기 전에 이미 문턱에 걸린다.
헌법 제27조 제1항은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재판을 청구하는 사람에게 법률이 정한 방식을 함께 요구하는데, 그 방식에는 소장의 작성과 제출이 들어 있다. 소장은 종이와 글자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다투는 금액을 정하고 법원을 정하고 사건을 설명하는 일을 거치므로, 을은 2,800만 원의 반환을 청구하면서 그 과정의 비용을 먼저 감당해야 한다. 청구하려는 금액이 곧 소송의 대상이 되지만, 그 금액을 손에 넣기 전에 이미 써야 할 비용이 놓인다. 을이 청구한 2,800만 원이 돌려받으려는 돈의 전부라는 점에서, 이 금액과 소송에 쓰이는 돈이 따로 놓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용은 소장을 낸 뒤에도 이어진다. 을이 소송구조를 신청했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미정이다. 확인된 것은 을이 혼자 소장을 냈고, 첫 변론기일에서 판사가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요구한 사실과, 상대방이 변호사를 통해 30쪽짜리 준비서면을 낸 사실이다. 서면의 분량과 대리의 유무가 대조를 이루는 장면에서, 비용의 부담이 어느 쪽에 놓였는지 드러난다. 을은 혼자서 소를 시작했고, 상대방은 변호사를 세워 대응했다. 변호사를 세우는 일에는 대가가 따르므로,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같은 자리에서 다투지 않는다. 상대방이 낸 준비서면이 30쪽에 이르고 을이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썼다는 사실은, 같은 재판을 두고 두 당사자가 쓸 수 있는 자원이 다르다는 점을 말해 준다.
여기서 비용이 첫째 문턱으로 놓이는 까닭이 드러난다. 을에게 필요한 것은 법원 앞에 서는 일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청구원인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러나 소장을 내는 데 드는 비용부터 을의 몫이다.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정까지 겹쳐, 을은 서면을 마련하는 데에도 돈을 대가로 내기 어렵다. 대가를 내지 못한 채 얻은 도움이라면, 을은 그 도움을 통해 서면을 마련했으나 그 대가의 문제는 미정으로 남는다. 비용이 없어서 대리인을 세우지 못하고, 대가를 내지 못해 도움을 얻기 어려운 상태라면, 을은 재판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면서도 그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
헌법 제27조 제1항이 보장하는 재판받을 권리는 소장 앞에 놓인 비용의 문턱을 지나 실질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을이 혼자 낸 소장과 상대방의 준비서면이 나란히 놓인 이 사건에서, 비용은 재판에 닿는 첫 관문을 가른다. 을이 청구하는 2,800만 원은 을에게 소송의 목적이지만, 그 목적에 닿으려는 길에는 미리 지불할 비용이 놓여 있다. 혼자 소장을 낸 을과 변호사를 통해 준비서면을 낸 상대방이 마주한 자리에서, 비용은 재판을 받는 힘을 갈라 놓는 첫째 문턱이 된다.
2.3절차 지식의 두 번째 문턱
비용의 문턱을 넘은 뒤에도 소송은 곧바로 나아가지 않는다. 을이 보증금 2,800만 원을 돌려받고자 혼자 낸 소장은 접수되었으나, 첫 변론기일에서 판사는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요구하였다. 을 앞에 놓인 물음은 이 요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이다. 이 물음은 비용과는 다른 성격의 난관이며, 절차의 모양을 아는가에 따라 소송의 진척이 갈린다.
헌법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면서도 그 행사의 방식을 법률에 맡긴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같은 조 제3항은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덧붙인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이 선언은 소를 제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판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재판을 어떤 절차로 이끌지는 법률의 몫으로 남긴다. 을이 소장을 냈다고 해서 청구가 그대로 심리되는 것은 아니다.
첫 변론기일의 요구는 절차 지식의 문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판사가 정리해 오라고 한 것은 청구원인이다. 을이 무엇을 왜 청구하는지 법원이 심리할 수 있도록 주장과 근거를 짜임새 있게 펴는 작업이 바로 뒤에 놓인다. 상대방은 변호사를 통해 30쪽짜리 준비서면을 냈다. 서면의 분량 자체가 실체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소송의 언어와 형식에 익숙한 쪽이 먼저 대응의 뼈대를 갖췄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을은 아직 서면의 형식도, 법정에서 통용되는 말의 방식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이 요구에 응해야 한다.
비용이 소를 내는 것과 말을 잇는 것 사이의 문턱이라면, 절차 지식은 낸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주장할지 묻는 문턱이다. 을은 혼자 소를 제기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나, 청구원인을 정리하라는 요구 앞에서 서게 되었다. 이것이 절차 지식의 두 번째 문턱이다. 을은 이웃의 도움을 받아 서면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서면이 사건의 기록에 어떻게 자리 잡고 법원이 이를 어떻게 읽을지는 이웃이 받은 대가의 성격과 결부되어,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되는 맥락과 함께 별도로 짚어야 할 문제로 남는다.
절차 지식의 문턱은 금전보다 눈에 덜 띄지만, 앞선 비용의 문턱과 결합되어 을의 소송을 끌고 간다.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통해 행사된다. 을이 권리를 주장할 자격을 가졌다는 사실과, 그 주장을 절차에 맞게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요구 앞에 선 을의 모습은, 소를 제기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절차의 언어를 모르면 재판의 실질적 진행에서 한 걸음 더 서 있음을 보여준다.
2.4대리라는 세 번째 문턱
서면 작성에 이웃의 손을 빌린 것을 둘러싼 문제를 제12장에 남기고 나면, 남는 것은 을과 상대방의 자격 차이다. 을은 혼자 소장을 냈고, 상대방은 변호사를 내세워 준비서면을 냈다. 이 대비는 대리가 접근을 나누는 세 번째 문턱임을 가리킨다. 재판을 받을 권리를 누가 어떤 모습으로 행사하는가의 물음이 이 자리에 놓인다.
헌법 제27조 제1항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선언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다. 이 문장은 권리를 가질 주체를 국민으로 밝힌다.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은 법률이 정하도록 맡겨 둔다. 을은 소장을 내어 권리를 스스로 행사했다. 상대방은 변호사를 내세워 권리를 행사했다. 두 방식이 한 법정에서 맞선 이 사건에서, 방식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로 이어지는지는 대리의 요건을 확인한 뒤에야 드러난다.
같은 조항은 판사를 통한 재판을 함께 보장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1항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덧붙인다. 재판을 받는 쪽과 재판하는 쪽이 함께 적혀 있는 셈이다. 을이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는 요구를 받은 것은, 혼자 선 당사자가 스스로 그 자리를 지켜 나가야 함을 뜻한다. 상대방의 30쪽짜리 준비서면은 변호사를 내세운 쪽이 그 자리를 대신 꾸린 결과다. 한쪽은 법정에서 직접 말을 이어 가고, 다른 쪽은 서면으로 방어를 정리한다. 같은 조항 아래에서 두 당사자의 서 있는 모습이 이렇게 갈린다.
대리가 허용되는 범위와 그 밖의 요건은 법률이 정할 일이다. 이 사건에서 확인된 것은 이웃이 수고비를 받고 서면을 작성해 주었다는 관찰뿐이다.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리의 예외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웃이 대리인으로 서 있을 수 있었는지, 을이 대리에 의하지 않고 서면을 낸 자로 볼 것인지에 관하여 단정할 수 없다. 관찰된 사실이 법적 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이 자리에서 정해지지 않았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고 상대방만 변호사를 통해 서면을 낸 이 대비는, 대리가 접근을 나누는 문턱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한쪽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대리의 모습으로 행사했고, 다른 쪽은 스스로의 모습으로 행사했다. 두 방식 사이에 놓인 간격이 법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요건이 채워질 때 비로소 가려진다. 대리의 문턱은 그렇게 앞선 두 문턱에 이어 접근을 나누는 셋째 자리에 놓인다.
2.5문턱이 닿는 조문 표시
대리라는 세 번째 문턱을 표시하는 것으로 앞선 논의가 마무리되었으므로, 이제 세 문턱이 각각 어느 조문에서 조정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자료가 대한민국헌법 제27조의 문장만을 제시하고 있어, 그 조문에 한정해 표시하는 것으로 그친다. 여기서는 제27조에 없는 다른 조문을 끌어오지 않으며, 문턱 사이에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이론을 더하지 않는다.
접근의 출발점이 되는 문턱은 재판을 받을 권리 자체에서 확인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한다. 이 문장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 주체를 "모든 국민"으로 넓게 잡고 있으며, 동시에 그 재판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것임을 요한다. 이 사례에서 을은 혼자 소장을 냈고 첫 변론기일에 출석했는데, 그가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 주체임을 이 문장이 담고 있다. 다만 이 문장만으로는 을이 청구원인을 정리하라는 판사의 요구를 어느 범위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상대방이 낸 서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정해지지 않는다.
절차의 속도와 공개에 관한 문턱도 같은 조문 안에 놓인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정한다(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전단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인정한다. 후단은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형사피고인에게 두고,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라는 조건을 붙인다. 이 사례에서 을은 보증금 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의 당사자로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 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공개재판에 관한 후단의 권리는 형사피고인에게 붙어 있어, 을의 소송에서 그 권리를 그대로 대응시키지는 못한다. 이 조문이 두 권리를 한 문단에 묶으면서도 대상과 조건을 서로 다르게 두고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대리라는 세 번째 문턱이 조문에서 어디에 닿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표시가 없다. 자료가 제시하는 조문은 제27조뿐이며, 그 조문은 ①항부터 ⑤항까지 재판을 받을 권리, 군사법원의 예외, 신속한 재판과 공개재판, 무죄추정, 형사피해자의 진술을 다룬다. 이 가운데 변호사의 대리와 그 예외에 관한 문장은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을이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썼다는 사실과 그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관찰이 어느 조문에서 조정되는지는 여기서 표시되지 않는다.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도 미정이다.
나머지 두 항은 이 사례와 직접 맞닿는 자리를 잡지 않는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는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정하고, "⑤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라고 정한다. 앞의 문장은 무죄추정을 형사피고인에게 두었고, 뒤의 문장은 형사피해자의 진술권을 법률의 정함에 맡겼다. 을의 소송은 보증금 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이므로, 이 두 문장이 을에게 그대로 놓이지 않는다. 같은 조문 안에 형사 절차를 겨냥한 권리를 두 항에 걸쳐 두고 있어, 민사 당사자의 자리에 놓을 자리는 그만큼 좁아진다.
결국 세 문턱 가운데 대한민국헌법 제27조에서 직접 표시되는 것은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이며, 대리의 문턱은 이 조문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을이 청구원인을 정리하라는 요구를 어느 범위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상대방의 서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이 조문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미정의 자리는 그대로 두고 넘어간다.
2.6사례에 놓아 본 세 문턱
앞서 문턱이 헌법 어디에 붙는지를 표시한 데서 나아가, 이제 을의 사례를 세 문턱에 하나씩 놓아 본다. 을이 돌려받으려는 보증금은 2,800만 원이고, 을은 혼자 소장을 냈으며, 판사가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했고, 상대방은 변호사를 세워 30쪽짜리 준비서면을 냈다. 여기에 이웃이 서면 작성을 도왔고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관찰이 더해진다. 이 나열을 법적 평가로 바꾸지 않은 채, 각 문턱이 이 사실 앞에서 어디에 놓이는지를 살핀다.
첫째, 비용의 문턱은 을이 혼자 소장을 내어 소송을 시작한 장면에 놓인다. 이웃이 서면 작성을 도우면서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관찰은, 을이 살림에 보탤 돈을 지불하고 도움을 얻는 길이 막혀 있음을 뜻한다. 이 문턱이 무엇을 가로막는지는 대한민국헌법 제27조의 문구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같은 헌법 제27조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로 선언하고, 신속한 재판에 관하여도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함께 선언한다. 이 선언은 을이 혼자 준비한 서면으로도 재판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뜻하며, 을이 도움을 사는 데 따르는 제약이 그 자격을 지우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절차 지식의 문턱은 판사가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한 요구 앞에 놓인다. 청구원인이 무엇인지를 을이 스스로 정리해야 하고, 그 결과를 상대방의 30쪽짜리 준비서면에 맞춰 읽어야 한다는 관찰이 이 문턱을 만든다. 앞서 본 헌법 제27조의 재판을 받을 권리는 이 자리에서 그 문구대로 작동한다. 그 권리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것이므로, 재판이 무엇을 다투는지를 밝혀 쓰는 준비 절차가 을에게 그대로 요구된다고 읽는다. 다만 소송구조 신청 여부와 그 결과, 석명의 범위는 미정이므로, 이 문턱이 이 사례에서 실제로 얼마나 높았는지는 여기서 확정하지 않는다.
셋째, 대리의 문턱은 이웃이 도움을 준 자리에 놓인다. 을이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썼다는 관찰과, 그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관찰이 함께 있다. 이 문턱의 양쪽 끝은 앞서 본 재판을 받을 권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을은 혼자 서면을 써서 재판을 받을 자격을 지니고, 이웃이 보태는 힘이 그 자격을 대신하지 않는다.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는 미정이며,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역시 미정이다. 그러므로 이 문턱에 관한 확인은 관찰된 사실을 적는 데서 멈춘다.
이렇게 놓아 보면 세 문턱은 서로 다른 장면에서 을의 길을 가로막는다. 비용의 문턱은 도움을 사는 자리에, 절차 지식의 문턱은 청구원인을 쓰는 자리에, 대리의 문턱은 이웃이 선 자리에 각각 놓인다. 셋 다 앞서 확인한 헌법 제27조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앞에 두고 그 자리에서 확인되는 제약이다. 이 사례에서 확정 손해나 고의 같은 평가는 세우지 않았고, 미정으로 남긴 사실은 미정으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