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민사소송법 제87조가 정한 소송대리인의 자격을 조문 그대로 읽고, 법령에 따른 위임과 법인 아닌 사단·재단의 자리를 살핀다. 변호사만 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이 어디에 적혀 있는지를 찾아 을이 세울 수 있는 사람을 가늠한다. 예외의 요건과 변호사 아닌 사람의 처벌 문제는 다음 장으로 남긴다.
3.1제87조의 자리
앞 절에서 을의 사례를 대리의 자리에 놓아 읽었으니, 이제 그 자리를 법률이 어떻게 정해 두었는지 조문의 자리부터 훑어 보기로 한다. 남의 소송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는 법률이 직접 그어 둔 선 안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이므로, 선의 위치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다. 이 선은 민사소송법 제87조에 있다.
그 조항은 무엇을 정해 두고 있는지 먼저 조문의 문구 그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민사소송법 제87조는 소송대리인의 자격을 제목으로 삼아,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조항의 제목이 「소송대리인의 자격」인 점을 함께 생각하면, 이 조문이 다루는 대상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조문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면 맨 앞에 나오는 것은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민사소송법 제87조)이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변호사 자격과 나란히 놓이고 있다. 따라서 조문의 구조상 두 부류의 사람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선다. 한쪽이 법률이 따로 정한 대리인이라면, 다른 쪽은 변호사이다.
그다음 단서는 두 부류 사이의 관계를 한 줄로 정리한다. 앞서 본 조문은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민사소송법 제87조)고 하여,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소송대리인 자리에 설 수 있는 범위를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에게로 한정한다. 바꾸어 말하면 변호사는 별도의 요건을 적어 둔 자리가 없고,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그 예외의 문구 안에 들어와야 한다. 이 조문에 적힌 문구만으로 대리인의 범위가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이곳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제87조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을 여기에 보태지 않는 것도 이 조문을 읽는 일의 일부이다. 누구를 변호사로 볼 것인지, 어떤 결격 사유가 소송대리인 자격을 박탈하는지, 소송대리권의 수여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조문의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송대리인 자격을 나누는 이분법의 틀뿐이고, 각 자격의 내용은 조문이 지목하는 다른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고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썼다는 사정을 이 조문에 놓아 보면, 대리의 자리에 서 있는지 묻는 일이 곧 이 두 문구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 묻는 일이 된다. 을 자신이 소송의 당사자이니 대리인의 문제가 생기지 않고, 이웃이 대리의 자리에 서려는지에 대해서는 관찰된 사실이 아직 그에 이르지 못한다. 제87조가 그 자리를 정하는 조항이며, 변호사와 법률에 따른 대리인 두 부류만이 그 자리에 선다는 것. 이 조항이 서 있는 자리가 여기이다.
3.2법령에 따른 위임
제87조가 변호사 원칙의 예외로 남겨 둔 자격의 한 갈래가 바로 법령에 따른 위임이다. 민사소송법 제87조는 자격자 범위를 열거하는 방식 대신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 문장은 자격의 원천을 '법률에 따라'라는 단서에 붙여 둔다. 조문 자체가 어떤 법령을 지목하지 않으므로, 어떤 규정이 소송에서의 위임을 허용하는지는 이 조항의 문장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자격은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이라는 문구 위에 선다(민사소송법 제87조). 제87조가 요구하는 것은 남의 소송을 맡을 수 있다는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라, 특정 법령이 재판상 행위를 맡길 수 있도록 정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문구에는 두 가지 요구가 함께 들어 있다. 하나는 위임을 가능하게 하는 법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그 법령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이 자격에 도달하지 못한다.
위임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 밝혀져야 하고, 그 법령이 정한 범위 안에서 소송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근거 법령이 밝혀지지 않으면 '법률에 따라'라는 단서가 채워지지 않는다. 법령이 정한 범위를 넘어선 행위는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상태를 벗어난다. 이 두 조건은 자격의 성립과 범위를 함께 가르는 문구에 놓여 있다. 자격의 근거 법령은 여기서 단정하지 않으며,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는다.
한편 제87조는 '위임에 의한 소송행위'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이라고 쓴다. 이 표현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의 자격을 무엇이라 부를지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게 하는 법령의 근거가 있는지를 가르는 문구이다. 말하자면 자격의 이름이 아니라 자격의 근거를 묻는 표시이다. 을이 서면을 이웃의 도움으로 썼다는 관찰된 사실이 이 문구에 해당하는지는, 도움의 성격과 근거 법령이 밝혀져야 판단할 수 있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고 이웃의 도움으로 서면을 작성한 일은, 제87조가 별도로 적어 둔 자격 요건이 아니라 법령이 정한 위임의 근거가 있는지로 가려진다. 즉 관찰된 사실은 제87조의 문구에 맞추어 읽어야 할 대상이지, 그 문구를 대신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은 관찰된 사실의 나열에 그치며, 제87조의 문구가 자격의 결격 사유를 따로 정하지 않으므로 그 사실만으로 대리인 자격의 유무가 정해지지 않는다. 결격에 관한 판단은 조문이 밝히지 않으므로 여기서 새로 세울 수 없다.
소송구조 신청 여부와 그 결과,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는 미정으로 남는다. 미정인 항목은 제87조의 문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이 자격이 서 있는 자리는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이라는 문구이며, 그 문구가 요구하는 근거 법령이 밝혀지는 대로 판단의 자리가 정해진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문구가 자격의 근거를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3.3법인 아닌 사단과 재단
제87조는 자격의 주체를 변호사와 법령에 따른 대리인으로 가르고 있다. 그런데 같은 조문은 법인이 아닌 사단이나 재단의 대표자와 관리인을 따로 적어 두고 있지 않다. 그들이 남의 소송을 맡을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가려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87조(소송대리인의 자격)는 그 자격을 이렇게 한정한다.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 (민사소송법 제87조) 이 문구는 사단과 재단의 대표자나 관리인을 소송대리인의 한 유형으로 세워 놓지 않는다. 그들이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으려면 법률이 그 행위를 허용한 대리인에 해당해야 한다.
따라서 대표자나 관리인의 자격은 소속 단체의 사건에 대한 대표·관리 권한 위에서만 서게 된다. 남의 소송을 임의로 맡아 수행하는 것은 이 문구가 정한 자격의 바깥에 있다. 자격의 기준을 놓고 보면, 문구는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과 "변호사" 두 갈래만을 남겨 놓는다. 대표자나 관리인이 어느 쪽에 놓이는지는 그가 어떤 법률에 근거하여 어떤 행위를 하는가에 따라 정해진다. 사단이나 재단이라는 소속 사실만으로 자격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렇게 읽으면 자격의 폭이 어느 사건의 명의에 묶여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대표자는 그가 대표하는 단체의 사건에서 대표 권한을 행사할 때 비로소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다. 관리인 역시 관리하는 재단의 사건에서 관리 권한에 따른 범위에서만 같은 자리에 선다. 그들이 제3자의 소송을 대리할 자격을 얻는 것은 이 문구만으로 되지 않는다. 제87조가 그 자격의 출구로 남긴 것은 변호사이거나 법률에 따른 대리인이라는 두 길뿐이다.
을 혼자 소장을 내고 첫 변론기일에 판사가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한 것은 당사자 본인이 나선 소송의 장면이다. 여기에 대리인이 없는 이상 제87조가 요구하는 자격의 확인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대리인이 놓이게 되면 그 자격이 어떤 사건의 명의에 묶여 있는지가 드러난다. 을의 보증금 반환 소송은 을 개인의 사건이고, 그 명의는 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웃이 서면 작성을 도운 일은 법인 아닌 사단·재단의 대표자나 관리인이 그 단체의 사건을 맡는 장면과 같은 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을의 사건에서 사단이나 재단이 당사자로 나선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소속 단체가 법인이 아닌 사단인지 재단인지, 그 대표자와 관리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역시 미정이다. 관찰된 것은 을이 소송을 제기했고, 이웃이 서면 작성을 도왔다는 사실의 나열이며, 이는 확정 손해나 고의 같은 법적 평가를 담고 있지 않다. 대리의 예외 요건이 충족되는지도 여기서 정해진 바 없다.
한편 법령이 특정 사안에서 법인 아닌 사단이나 재단의 대표자·관리인에게 재판상 행위를 허용하는지도 정해진 바 없다. 제87조는 그런 법령을 직접 열거하지 않는다. 다만 자격이 법률에 근거한 대리에 묶여 있다는 선만이 문구 위에 놓여 있다. 이 선을 넘어서 대표자나 관리인의 자격을 새로 만들어 읽을 수는 없다. 자격의 원천이 되는 법률이 밝혀질 때 그 자격의 경계도 함께 밝혀진다.
3.4변호사 원칙의 근근
제87조는 법인이 아닌 사단·재단의 대표자나 관리인에게 재판상 행위의 자격을 인정하되, 그 자격을 사건의 명의에 묶어 두었다. 같은 조가 이제 소송대리인의 자격을 정하는 본칙을 어떻게 적어 두었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소송대리인 자격의 기본 선이 어디에 적혀 있는지 가리기 위하여, 민사소송법 제87조 소송대리인의 자격 조문의 문구부터 확인한다. 민사소송법 제87조 소송대리인의 자격은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한 문장 안에는 두 겹의 기준이 함께 놓여 있다. 먼저 변호사 자격이 소송대리의 기본 요건으로 적혀 있고, 그 앞에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이 예외의 자리에 배치된다. 조문은 변호사 자격을 전면에 세우면서,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을 그 바깥에 놓아 두어 두 기준의 관계를 한 문장에 담았다.
그러면 이 문장이 다루는 대상의 범위를 함께 살펴야 한다. 조문이 자격을 요구하는 자는 소송대리인이며, 당사자 본인이 아니다. 당사자 스스로 소송을 수행하는 경우는 소송대리인을 세우는 경우와 구별된다. 을이 혼자 소장을 내어 소송을 이어 가는 모습과, 상대방이 변호사를 통해 준비서면을 내는 모습은 이 구별의 양쪽에 놓인다. 을이 첫 변론기일에 판사로부터 청구원인 정리를 요구받은 점은 확인된 사실이고, 그 요구가 제87조상의 자격 문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제87조는 서면의 효력이나 법원의 석명을 정하지 않고, 오로지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는 자의 자격만을 정한다. 같은 이유로 제87조는 소장을 낼 수 있는 자나 준비서면을 쓸 수 있는 자를 따로 정하지 않으므로, 을이 낸 소장과 상대방이 낸 준비서면의 효력은 이 조문의 문장 안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을이 이웃의 도움을 받아 서면을 작성한 일이 소송대리인 선임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관찰된 사실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다만 제87조가 자격의 기본 선으로 변호사 자격을 세워 두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웃이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정은 관찰된 사실의 나열에 머무른다. 제87조가 변호사 자격을 요구하면서 두어 둔 예외의 요건은 이 문장 안에서 다 적혀 있지 않고, 다른 법령이 어떤 행위를 제한하는지도 이 조문이 말하지 않는다. 소송구조 신청 여부와 그 결과,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 조문이 말하지 않는 사항을 이 자리에서 끌어와 채울 수는 없다.
제87조의 문장은 허용되는 자와 허용되지 않는 자의 경계를 한 번에 긋는 방식을 택한다.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단정에 예외를 단 하나만 단 셈이고, 그 예외는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이다. 조문이 소송대리인의 자격만을 다룬다는 점을 함께 두면, 이 문장이 당사자 자신의 소송 수행이나 서면의 작성 방식까지 규율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기준을 을과 상대방의 장면에 놓아 보면, 상대방이 변호사를 통해 준비서면을 내는 모습은 조문이 상정하는 기본 선의 안쪽에 놓이고, 을이 혼자 소송을 이어 가는 모습은 소송대리인 자격의 문제와는 다른 자리에 놓인다.
결국 소송대리인 자격의 기본 선은 민사소송법 제87조의 본문에 적혀 있다. 조문은 변호사 자격을 원칙으로 세우고,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을 예외의 자리에 두어 두 기준의 관계를 한 문장에 담아 두었다. 을을 돕는 이웃의 행위가 이 문장 안에서 어떻게 놓이는지, 예외 문구의 요건은 무엇인지에 관한 확인은 이 자리에서 마치지 않는다.
3.5예외 문구의 자리
앞 절이 제87조에 적힌 변호사 관련 문구를 통해 소송대리인 자격의 기본 선을 확인한 데서 나아가, 이제는 그 문구 안에 띄워둔 예외가 어느 자리에 놓여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예외의 구체적 요건을 밝히는 일은 다음 장에 넘기되, 먼저 조문의 배치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소송대리인의 자격을 정한 민사소송법 제87조는 앞 절에서 본 바대로,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 문장에서 예외를 뜻하는 부분은 바로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이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이 변호사 자격이라는 원칙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이 절의 관심사다.
조문을 읽으면 예외 문구가 원칙보다 먼저 나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금지의 문장 앞에,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은 그 금지 밖에 서 있음을 밝히는 단서가 붙어 있다(민사소송법 제87조). 이 배치는 예외가 원칙의 일부로서 조문 안에 함께 적혀 있음을 뜻한다. 예외가 별도의 조문에 흩어져 있지 않고 이 한 문장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하다.
다만 이 구절이 어떤 요건을 갖춘 대리인을 가리키는지, 또 그 대리인이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는 이 문장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조문은 "법률에 따라"라는 한정을 붙일 뿐, 그 법률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다(민사소송법 제87조). 따라서 그 요건의 구체적 내용을 따져보는 일은 그 법률이 어디에 적혀 있는지 찾아 읽는 작업과 함께 다음 장에 넘기기로 한다.
나아가 이 예외 구절이 무엇을 허용하는지도 여기서 확정하지 않는다. 이 구절이 소송대리인 자격의 기본 선에 놓인 하나의 예외임은 분명하지만, 그 예외에 해당하는 대리인이 실제로 어느 범위의 행위를 할 수 있는지, 나아가 그 자격을 넘어서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이 문장이 말해주지 않는다(민사소송법 제87조). 미리 예단하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 옳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민사소송법 제87조는 변호사 자격이라는 원칙과 그 예외를 한 문장 안에 함께 적고 있으며, 예외를 뜻하는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이라는 구절이 원칙 앞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구절이 가리키는 대리인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은 다음 장의 몫으로 남는다.
3.6을이 세울 수 있는 사람
앞 절에서 예외 문구의 자리를 확인한 선을 그대로 이어가, 을이 대리인으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제87조에 적힌 자격 기준에만 비추어 살펴본다. 이웃의 도움을 받은 사정을 대리인 선임 문제와 섞지 않고, 자격의 유무를 따지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만 조문을 읽는다.
민사소송법 제87조는 소송대리인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한정한다.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민사소송법 제87조). 이 문장에 따르면 자격을 가진 사람은 두 갈래다. 하나는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이며, 다른 하나는 변호사다. 두 갈래 가운데 어느 하나에 들지 못하는 사람은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이 문장에 함께 담겨 있다.
을이 보증금 반환 청구를 혼자 수행하는 가운데 대리인 선임을 고려할 때, 후자의 갈래는 변호사 자격의 확인 문제로 남는다. 이 사례에서 확인된 사실만으로 을이 세울 특정 변호사를 지정할 수는 없다. 변호사 자격 요건의 범위는 조문에 적힌 대로 두고, 다른 기준을 더하거나 빼지 않는다. 을이 혼자 소장을 냈고 첫 변론기일에서 판사가 청구원인을 정리해 오라고 했다는 사정은 대리인 자격의 유무를 좌우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변호사를 통해 준비서면을 냈다는 사정 역시 을이 세울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거나 좁히지 않는다. 대리인을 둘 것인지 여부는 을이 정할 문제이고,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이 조문이 정한다.
전자의 갈래는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이다. 제87조는 이 자격의 원천을 법률에 두고 있다. 이 사례에서 이웃이 을의 서면 작성을 도운 일은 확인된 사실로 제시되어 있으나, 이웃이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는지는 미정이다. 이웃의 도움이 을이 혼자 쓰기 어려운 서면을 보완하는 데 쓰였다는 사정만으로, 그 이웃이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자격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생기고, 그 법률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이 조문이 밝히지 않는다. 수고비를 받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정은 처벌 문제에 관한 것으로, 대리인 자격의 유무를 확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처벌의 요건과 효과는 이 자리에서 다루지 않으며, 자격의 유무는 그와 별개로 조문에 적힌 기준에 비추어 판단할 일이다.
대리인 선임의 결과와 이웃이 받은 금액의 액수와 성격, 대리의 예외 요건 충족 여부는 미정으로 남는다. 이웃이 을의 소송에서 대리인의 지위에 서게 되었는지, 아니면 서면 작성의 조력에 그쳤는지 역시 확인된 사실에 드러나 있지 않다. 을이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제87조가 정한 자격 기준을 통과하는지에 달려 있고, 이 사례의 관찰된 사실은 그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모두 제공하지 않는다. 이웃이 처벌 대상이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