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우리 반박에 대한 상대측 재반박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며, 법리와 사실 중 어느 축을 수정해야 견딜 수 있는지를 묻는다. 재반박의 두 축, 법리 축의 수정 범위, 사실 축과 심증의 한계를 차례로 살핀다. 문서 제출과 입증 축을 거쳐 일부 인정한 뒤 남는 주장을 정리하는 방법을 다룬다.
11.1재반박의 두 축
구별 논증이 기속력의 경계에서 멈춘 뒤에는, 상대방이 어떤 언어로 다시 밀고 들어오는지를 가려 읽는 일이 남는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손해 배상을 함께 주장하면서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과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내놓았고, 판례 인용까지 덧붙였다. 그렇다면 재반박은 법리와 사실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갈래로 나누어 읽어야 한다.
먼저 법리 축에서는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무슨 기준을 제시하는지만을 묻는다.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은 자유심증주의의 의미를 두고, "[1] [다수의견]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 제308조는 증거에 의하여 사실을 인정하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관이 증거능력 있는 증거 중 필요한 증거를 채택·사용하고 증거의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하여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힌다. 이 판시는 증거 판단의 주체와 방식을 가리킬 뿐, 계약 문건의 우선순위나 변경 합의의 성립 요건을 새로 정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그 판례로 계약 해지의 정당성까지 밀어붙인다면 판시가 다루지 않은 영역을 넘는 인용이다.
사실 축에서는 어떤 문건이 언제 만들어졌고 무엇을 증명하는지의 문제만 남는다. 위 판결은 자금 기록과 진술의 충돌이 있었던 사안에서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 이해관계 유무 등과 함께 다른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사실에 의하여 진술의 신빙성이 보강될 수 있는지, 반대로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사정이 존재하는지 두루 살펴 판단할 때"라고 판단의 방법을 밝힌다.(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이 기준은 진술과 서류가 서로 어긋날 때 무엇을 대조할지를 묻는 언어를 제공할 뿐이다. 이 사건에서 변경 이메일과 자금 기록의 대조가 그 방법을 어떻게 충족하는지는 아직 미정이다.
두 축을 나누어 읽는 것은 상대방의 재반박을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박인 어디에 붙어 있는지를 표시하는 일이다.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은 문서의 성격을 판단할 때 "문서의 표제나 명칭만으로 판단하여서는 아니 되고, 문서의 작성 목적, 기재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 당해 유형·종류의 문서가 일반적으로 갖는 성향, 문서의 소지 경위나 그 밖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문서의 제출을 둘러싼 이 기준은 문건의 이름이 아니라 문건이 처한 사정을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을 환기한다. 그렇다고 이 결정이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의 적용 관계를 직접 가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측이 준비한 대조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 정리일 뿐이다.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은 증거 판단에서 "충분한 증명력이 있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 없이 배척하거나 반대로 객관적인 사실에 명백히 반하는 증거를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 없이 채택·사용하는 등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법관은 자유심증으로 증거를 채택하여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힌다. 대조표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시점과 문건 구성의 차이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어떤 증거를 어느 자리에 놓을지에 대한 합리적 근거로 이어져야 한다. 그 근거가 끝까지 견디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재반박을 법리 축과 사실 축으로 나누어 읽는 작업은 이렇게 끝난다. 판례가 제시한 판단 기준과, 이 사건의 문건들이 놓인 자리는 서로 맞물리지만 서로를 대신하지 않는다. 자료가 제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곧 그 자료의 법적 평가를 뜻하지 않으며, 판례의 문언이 인용되었다는 사실이 곧 그 판례의 적용을 뜻하지도 않는다. 두 축 가운데 어느 쪽에서 압박이 시작되는지는 다음 판단에서 가려질 일이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반박의 방향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점뿐이다.
11.2법리 축의 수정 범위
두 축을 나눈 뒤 남은 물음은 법리 축이 우리 반박을 어디까지 압박하는가이다. 상대방은 판례를 들어 계약 해지와 손해 배상을 함께 주장하지만, 판례가 세운 판단 기준을 읽기 전에는 그 판례가 우리 주장을 어떻게 제약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판례에 담긴 요건을 하나씩 옮겨 두는 일이 먼저다.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은 절차상 의무를 빠뜨린 처분이 어떤 경우 위법한지 다음과 같이 밝힌다.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미리 '처분의 제목', '처분하려는 원인이 되는 사실과 처분의 내용 및 법적 근거', '이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는 뜻과 의견을 제출하지 아니하는 경우의 처리방법', '의견제출기관의 명칭과 주소', '의견제출기한' 등을 당사자 등에게 통지하여야 한다(제21조 제1항)"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이어서 그 판례는 예외의 범위를 한정한다. "다른 법령 등에서 필수적으로 청문을 하거나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정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당사자 등에게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어야 하고(제22조 제3항), 다만 '해당 처분의 성질상 의견청취가 현저히 곤란하거나 명백히 불필요하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하여 처분의 사전 통지나 의견청취를 하지 않을 수 있다(제21조 제4항, 제22조 제4항)"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이 두 인용은 예외가 좁게 열려 있음을 보여 준다. 예외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넓은 재량이 아니라 좁은 문에 들어가야 한다.
그 판례는 예외사유의 뜻을 더욱 좁힌다.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은 행정절차법 시행령 제13조 제2호의 예외사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2] 행정절차법 제21조, 제22조, 행정절차법 시행령 제13조의 내용을 행정절차법의 입법 목적과 의견청취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종합적·체계적으로 해석하면, 행정절차법 시행령 제13조 제2호에서 정한 "법원의 재판 또는 준사법적 절차를 거치는 행정기관의 결정 등에 따라 처분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어 처분에 따른 의견청취가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법원의 재판 등에 따라 처분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되면 행정청이 반드시 일정한 처분을 해야 하는 경우 등 의견청취가 행정청의 처분 여부나 그 수위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이 기준은 '필요가 없어지는' 상황을 겨냥한다. 어느 쪽이 주장하든, 예외가 성립하려면 의견을 들음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 판례는 이에 덧붙여 경계를 분명히 한다. "처분의 전제가 되는 '일부' 사실만 증명된 경우이거나 의견청취에 따라 행정청의 처분 여부나 처분 수위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라면 위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일부'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수위가 달라질 수 있는지는 그 판례의 문구가 지키라고 한 경계다. 판례 문구 밖의 요건을 만들 필요 없이 이 경계선만 읽으면 된다.
상대방은 상대방의 판례를 가져와 이 사건의 시점과 문건 구성이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판례가 그 사실관계에서 확인한 것은 한정되어 있다.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은 그 사실관계에서 증명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나눈다. "위 각 유죄판결에 따라 '갑이 폐기물을 방치하여 1차 및 2차 조치명령을 받았고 이를 불이행하였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경우라고 볼 수는 있으나, 나아가 위 유죄판결에 따라 '3차 조치명령 당시 토지에 방치된 폐기물을 적정하게 처리하지 않고 있다'는 처분사유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이 사건에서 우리가 대조표로 정리한 대목과 이 사이의 간격은, 과거 사실의 증명과 현재 요건의 증명이 다르다는 점이다.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라는 앞선 구분이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어떤 계약서가 적용되고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는 여전히 미정이다. 우리가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도 미정으로 남는다. 다만 판례가 세운 기준을 넘겨 새로운 요건을 만들어 내지 않는 범위 안에서, 법리 축의 압박은 판례 문구가 그어 둔 선까지라는 점만 분명해진다.
11.3사실 축과 심증의 한계
법리 축의 수정 범위를 좁힌 뒤에도 남는 질문은 사실 축이다. 어느 문서가 이 계약을 지배하는지에 관한 판단이 법관의 심증에 맡겨진다면, 우리가 정리한 대조표가 그 심증의 한계 안에서 무슨 구실을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자유심증주의가 어디서 힘을 발휘하고 어디서 멈추는지 읽어야 우리 반박이 어느 선까지 버티는지 가늠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과 제308조가 자유심증주의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관하여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 제308조는 증거에 의하여 사실을 인정하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관이 증거능력 있는 증거 중 필요한 증거를 채택·사용하고 증거의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하여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충분한 증명력이 있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 없이 배척하거나 반대로 객관적인 사실에 명백히 반하는 증거를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 없이 채택·사용하는 등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법관은 자유심증으로 증거를 채택하여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여기서 자유심증은 증거의 채택과 평가를 법관에게 맡긴다는 뜻이며, 우리가 제출한 문서와 상대방의 문서 중 어느 쪽을 어느 정도로 신뢰할지는 본래 법관이 정할 몫이다. 다만 그 자유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인정된다는 점이 이 판결이 그어 놓는 경계이다.
같은 판결의 반대의견은 그 경계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보인다. 반대의견은 수사의 상당성이 약한 경우를 전제로 "진술조서의 진술기재의 신빙성을 인정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사실이 존재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진술이 달라진 까닭이 분명하지 않은 때에도 같은 방향의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반대의견은 "진술이 달라진 데 관하여 그럴 만한 뚜렷한 사유가 나타나 있지 않다면 위증죄의 부담을 지면서까지 한 법정에서의 자유로운 진술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함이 원칙이다"라고 밝혔다(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비록 이는 반대의견이 특정 증거수집과정을 염두에 둔 표현이지만, 심증이 아무런 뒷받침 없이 서지 않는 자리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내용이다.
이 사례에서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의 사실관계는 진술의 번복을 둘러싼 것이다. 판결은 "자금 사용처에 관한 을의 검찰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므로, 을의 검찰진술 등을 종합하여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한 사례"이다(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판결이 판단한 것은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정황이 있었는지이며, 그 판단에는 진술 내용의 합리성과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 이해관계 유무가 두루 고려되었다. 우리가 정리한 대조표는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의 작성 시점과 문건 구성을 나란히 놓은 것으로, 이 판결이 놓은 사실관계의 뼈대와는 문건의 종류도 비교의 축도 다르다.
물론 그 차이가 곧 우리 반박의 승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판결이 신빙성 판단에 쓴 요소들이 우리 사건의 문건 평가에도 같은 자리에서 작동할지, 우리가 세운 구별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받아들여질지 판단되지 않았다.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 가운데 무엇이 적용되는지 역시 미정이다. 자유심증의 범위가 넓은 만큼, 반박이 깨지는 자리는 판례의 사실관계를 벗어난 곳이라서가 아니라 심증을 뒷받침할 객관적 정황을 채우지 못한 곳에서 열린다.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듯이, 문건의 차이를 적었다는 사실이 곧 구별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11.4문서 제출과 입증 축
심증의 한계가 확인된 자리에서, 남는 질문은 문서 설명이 사실 축 어디에 서 있는지이다. 우리 측은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준다고 설명하면서, 상대방이 내세운 판례의 사실관계가 이 사건과 다르다고 대조표로 정리하였다. 그 설명이 견디려면, 어떤 문서가 제출되고 어떤 사유로 거부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부터 확인하여야 한다.
문서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예외사유는 법령에 열거되어 있다. 민사소송법 제344조 제2항은 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제344조 제1항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문서의 제출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면서, 예외사유로서 ‘오로지 문서를 가진 사람이 이용하기 위한 문서’를 들고 있다. 사유의 명칭이 붙었다는 사실만으로 문서가 곧바로 거부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느 문서가 예외사유에 해당하는지는 문서의 표제나 명칭만으로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은 판단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문서가 오로지 문서를 가진 사람이 이용할 목적으로 작성되고 외부자에게 개시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개시할 경우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생길 염려가 있다면, 문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규정의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한다. 여기서 어느 문서가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하는지는 문서의 표제나 명칭만으로 판단하여서는 아니 되고, 문서의 작성 목적, 기재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 당해 유형·종류의 문서가 일반적으로 갖는 성향, 문서의 소지 경위나 그 밖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데”(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이 사건에서 상대방이 제출한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은 작성 시점이 서로 달라, 작성 목적과 소지 경위가 문서마다 나뉠 여지가 있다. 같은 결정은 내부 결재를 거친 문서라도 쉽게 단정할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설령 주관적으로 내부 이용을 주된 목적으로 회사 내부에서 결재를 거쳐 작성된 문서일지라도, 신청자가 열람 등을 요구할 수 있는 사법상 권리를 가지는 문서와 동일한 정보 또는 직접적 기초·근거가 되는 정보가 문서의 기재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 객관적으로 외부에서의 이용이 작성 목적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는 볼 수 없는 경우, 문서 자체를 외부에 개시하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문서에 기재된 ‘정보’의 외부 개시가 예정되어 있거나 정보가 공익성을 가지는 경우 등에는 내부문서라는 이유로 자기이용문서라고 쉽게 단정할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우리가 내세운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준다는 설명이 이 사례에서 자리를 얻으려면, 기재된 정보가 어떤 성격인지에 대한 확인이 선행되어야 한다.
거부사유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모든 문서가 제출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결정은 제출의 필요성을 따로 판단한다고 밝힌다. “자기이용문서 등 문서제출 거부사유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290조에 따라 제출명령신청의 대상이 된 문서가 서증으로서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제출명령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있고, 민사소송법 제347조 제1항에 따라 문서제출신청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 결정으로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제출을 명할 수 있으므로, 문서가 쟁점 판단이나 사실의 증명에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 다른 문서로부터 자료를 얻는 것이 가능한지, 문서 제출로 얻게 될 소송상 이익과 피신청인이 문서를 제출함으로 인하여 받게 될 부담이나 재산적 피해 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법인 내부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및 영업 비밀, 기타 권리에 대한 침해와의 비교형량 및 기타 소송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과연 문서제출이 필요한지 및 문서제출신청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이 기준은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에 관한 판단과 맞물려 있다. 문서 설명이 사실 축에서 견디려면, 문서 자체의 성격과 쟁점 증명에 필요한 정도가 함께 소명되어야 한다.
직업의 비밀을 사유로 내세우는 경우에도 보호가치의 판단은 남는다.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은 ‘직업의 비밀’의 의미를 밝히면서, “어느 정보가 직업의 비밀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문서 소지자는 비밀이 보호가치 있는 비밀일 경우에만 문서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하였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판단 기준도 비교형량에 맡겨져 있다. “어느 정보가 보호가치 있는 비밀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정보의 내용과 성격, 정보가 공개됨으로써 문서 소지자에게 미치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민사사건의 내용과 성격, 민사사건의 증거로 문서를 필요로 하는 정도 또는 대체할 수 있는 증거의 존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비밀의 공개로 발생하는 불이익과 이로 인하여 달성되는 실체적 진실 발견 및 재판의 공정을 비교형량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사유의 명칭이 확정되었다는 사실과 그 사유가 문서를 지켜 준다는 평가는 서로 다른 자리에 있다.
개인정보를 이유로 한 거부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같은 결정은 개인정보의 존재만으로 거부사유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2호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개인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고, 민사소송법 제344조 제2항은 각 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문서제출거부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문서소지인에게 문서제출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임직원의 급여 및 상여금 내역 등이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에 해당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문서소지인이 문서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
이 사례에서 우리 측 문서 설명이 사실 축에서 견디는 자리는, 문서가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을 넘어 쟁점 증명에 필요한 정도와 대체 자료의 존부를 함께 보여 주는 지점이다.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 우리가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는 미정으로 남는다.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곧 법적 평가가 아니므로, 문건의 제출 여부와 그 증명력은 각각의 판단 축에 따라 달리 확인되어야 한다.
11.5일부 인정 후 남는 주장
일부를 인정하는 양보가 남은 쟁점을 정리하는 일로 저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전제 아래, 어떤 주장이 반론의 한 부분을 내준 뒤에도 그대로 남는지 살펴본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손해 배상을 함께 내세우면서 계약서와 변경 이메일, 자금 기록, 전문가 계산서를 한꺼번에 제시했다. 우리 측은 변경 이메일이 최종 합의를 보여 준다고 설명하면서도,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의 사실관계와 이 사건의 시점이 서로 다르다고 대조표로 밝혔다. 이 자리에서 우선 물어야 할 것은, 문서가 제출되었다는 사실과 그 문서가 어떤 법적 평가를 받는지가 서로 같은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구분을 법원이 어떻게 다루는지 보기 위하여, 문서제출 거부사유를 판단한 대법원 2016. 7. 1. 자 2014마2239 결정을 먼저 인용한다. 그 결정은 문서의 표제나 명칭만으로 성격을 단정하지 말고, 작성 목적과 기재 내용, 문서가 일반적으로 갖는 성향, 소지 경위 등을 함께 봐야 한다고 전제한다. 구체적으로 그 결정은 다음과 같이 설시한다. "어느 문서가 오로지 문서를 가진 사람이 이용할 목적으로 작성되고 외부자에게 개시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개시할 경우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생길 염려가 있다면, 문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규정의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한다." 이 기준은 문서에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문서가 쟁점에서 빠진다고 정리되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 측 대조표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곧 그 대조표의 증명력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같은 결정은 문서제출 거부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제출의 필요성을 따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에 관하여 그 결정은 다음과 같이 설시한다. "문서가 쟁점 판단이나 사실의 증명에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 다른 문서로부터 자료를 얻는 것이 가능한지, 문서 제출로 얻게 될 소송상 이익과 피신청인이 문서를 제출함으로 인하여 받게 될 부담이나 재산적 피해 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법인 내부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및 영업 비밀, 기타 권리에 대한 침해와의 비교형량 및 기타 소송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과연 문서제출이 필요한지 및 문서제출신청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기준은 우리 측이 설명한 변경 이메일이 어째서 필요한지, 그리고 그 제출이 남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를 함께 놓고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자료가 있다는 사실과 그 자료가 꼭 제출되어야 한다는 판단은 서로 같은 말이 아니다.
그 판단이 일부에 그칠 때 남는 주장을 가리는 방법으로, 사전 통지와 의견청취의 예외사유를 다룬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을 인용한다. 그 판결은 예외사유의 의미를 좁게 잡으면서, 일부만 증명된 경우에는 예외에 들지 않는다고 분명히 한다. 구체적으로 그 판결은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처분의 전제가 되는 '일부' 사실만 증명된 경우이거나 의견청취에 따라 행정청의 처분 여부나 처분 수위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라면 위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인정된 한 조각이 남은 주장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점을 가리킨다. 우리 측이 변경 이메일을 최종 합의로 설명하더라도, 그 설명이 어디까지 먹히는지는 별도로 가려야 한다.
같은 판결은 확정된 유죄판결에도 남은 시점의 사실을 그대로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 판결은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위 각 유죄판결에 따라 '갑이 폐기물을 방치하여 1차 및 2차 조치명령을 받았고 이를 불이행하였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경우라고 볼 수는 있으나, 나아가 위 유죄판결에 따라 '3차 조치명령 당시 토지에 방치된 폐기물을 적정하게 처리하지 않고 있다'는 처분사유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이 판시는 확정된 판단이 있더라도 그 판단이 덮는 시점과 이 사례의 시점이 다를 때 남는 주장을 따로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계약서의 작성 시점과 변경 이메일의 시점이 어긋나는 우리 사정도 같은 방식으로 읽힌다.
그렇게 나뉘고 남은 주장을 정리할 때, 확정되지 않은 사실관계를 뒷받침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의 사실관계와 이 사건의 문건 구성이 어긋난다고 정리한 것은 대조의 근거가 될 뿐, 그 근거가 이 사건의 판단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어떤 문건이 적용되는지, 상대방이 인용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 우리가 내세운 구별 근거가 어디까지 견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그 미정의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이, 반론의 일부를 인정하고도 남는 주장을 정직하게 다루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