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2017도18697의 판결요지에 적힌 말로 학문적 표현의 판단 구조를 읽고, 형법 제307조와 제310조가 그 안에서 놓이는 자리를 짚는다. 판결요지에 없는 사실은 보태지 아니하고, 무의 문장에 이 기준을 대어 본 뒤 남겨진 판단과 다음 물음을 밝힌다.
8.1판결요지가 적힌 말들
사례에 남은 물음을 대법원이 판결요지에서 실제로 무엇을 문제로 삼았는지와 견주어 보기 위하여, 먼저 판결요지에 적힌 말들을 그대로 가려내야 한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의 판결요지 [1]은 학문의 자유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지를 첫머리에 밝힌다. 그 판결요지가 적힌 말은 이러하다. "정신적 자유의 핵심인 학문의 자유는 기존의 인식과 방법을 답습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얻기 위한 활동을 보장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 문장은 학문의 자유가 보호하는 활동의 성격을 규정할 뿐이고, 특정 글이나 특정 표기의 적법 여부를 곧바로 정하지는 않는다.
같은 판결요지 [1]은 학문적 표현행위의 지위와 그 제한의 한계를 함께 적는다.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학문의 자유의 근간으로 보고 제한의 정도를 한정하는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학문적 표현행위는 연구 결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학술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비판과 자극을 받아들여 연구 성과를 발전시키는 행위로서 그 자체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을 자유롭게 거칠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 헌법 제22조 제1항이 학문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에 따르면 판결요지가 확인하는 것은 연구 결과의 공개와 학술적 토론이 학문적 과정에 포함된다는 점이며,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는 원칙이다. 무가 판결문을 모아 인터넷에 글을 낸 일이 이 문장이 말하는 연구 결과의 공개에 해당하는지는 판결요지가 직접 말한 바가 없다.
판결요지 [1]은 학문적 표현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볼 조건과 그에 동반하는 연구자의 의무를 함께 적는다. 먼저 정당한 행위로 볼 기준을 이렇게 둔다.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그와 나란히 적은 연구자의 의무 문장은 이러하다.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앞의 문장이 특별한 사정의 부재를 전제로 정당행위를 원칙으로 삼는 기준이라면, 뒤의 문장은 연구의 전 과정에서 연구자가 지켜야 할 존중 의무를 적는다. 이 두 문장에 적힌 문구의 적용이 무의 사례에서 무엇을 가려낼지는 이 자리에서 정해진 바 없다.
판결요지 [2]는 명예훼손죄의 '사실의 적시'를 인정하는 기존 기준과 학문적 표현을 평가할 때의 유의점을 함께 놓는다. 기존 기준을 적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여 왔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반면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은 학문적 표현을 다룰 때 지켜야 할 경계를 이렇게 한정한다.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앞의 문장은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넓게 인정하던 기준을 적고, 뒤의 문장은 학문적 표현에 대하여 그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다. 무가 나열한 형량과 판단 근거가 어느 쪽 문장에 놓일지는 판결요지에 적힌 말만으로는 미정이다.
판결요지 [3]는 형사재판에서의 증명책임 소재를 두 문장으로 밝힌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에 따르면 표현이 학문의 자유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는 사정은 검사가 입증할 몫이다. 무의 글에 대한 삭제 요구나 고소가 이런 입증을 실제로 요구하게 되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상이 판결요지에 적힌 말들의 자리다. 판결요지는 학문의 자유의 본질, 학문적 표현의 정당성 기준, 사실의 적시를 인정하는 방법의 한계, 증명책임의 소재를 말하면서도 무의 글에 대한 명예훼손의 성립이나 법률사무 취급 여부를 직접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앞서 확인한 문구들은 무의 사례에 적용할 판단의 재료일 뿐이고, 그 재료를 무에게 대입한 결론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8.2학문적 표현의 판단 구조
판결요지의 문장에 담긴 판단의 재료를 확인한 데서 이어져, 그 문장들이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 판단의 틀을 이루는지 살필 차례이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은 학문적 표현을 다루는 차례를 세 덩어리로 나누어 놓았다. 첫째는 학문의 자유의 본질과 그 제한의 한계이고, 둘째는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 필요한 신중이며, 셋째는 형사재판에서의 증명책임이다. 이 셋은 서로 갈라선 것이 아니라 앞의 것이 뒤의 것이 놓일 자리를 정하는 관계에 있다.
첫 자리에 놓인 것은 학문의 자유가 무엇을 보장하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판결요지는 이에 대해 「헌법 제22조 제1항이 학문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밝힌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 문장은 뒤에 이어질 판단이 언제나 제한이 필요 최소한에 그치는지를 묻는 쪽으로 향해야 함을 못 박는다. 한편으로 연구자에게도 한계가 있음이 함께 적혀 있다.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 두 문장은 앞뒤로 맞물리며, 보호와 존중이 하나의 판단 안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함을 보인다.
그 다음 자리에서는 학문적 표현이 언제 정당한 것으로 보이는지가 정해진다. 판결요지가 밝히는 기준은 이러하다.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 기준은 정당한 경우를 하나하나 나열하는 대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정당하다고 먼저 보는 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앞에서 본 필요 최소한의 원칙이 여기서 구체화된다. 무가 형량과 판단 근거를 나눈 글에서 연구윤리를 지켰는지, 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에 있었는지가 이 기준에 놓이는 셈이다. 다만 무의 글에서 기업명 표기의 범위와 분석 방법의 재현 가능성은 아직 미정이다.
세 번째 자리에 이르러서는, 그 표현이 곧바로 형사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지를 가리는 문제로 넘어간다. 판결요지는 이 점에서 신중을 요구한다.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 문장은 학문적 표현이 놓일 자리로 학계의 검증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는 문장은, 글의 겉에 드러난 말을 뛰어넘어 배경을 지어내는 방식으로 사실 적시를 인정하지 못함을 분명히 한다. 무의 글에서 삭제 요구와 고소가 연구에 준 영향은 미정으로 남아 있으며, 이 관찰이 곧 명예훼손의 성립이라는 법적 평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앞의 판단들이 법정에서 누구의 몫인가가 놓인다. 판결요지는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밝힌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에 따르면 학문적 표현이 보호되는 영역에 들어가는지 아닌지를 다툴 때, 보호되지 않는다고 하는 쪽의 입증이 요구된다. 세 자리가 차례로 놓여 판단의 틀을 이루었고, 이 틀에 새 요건이나 별도의 단계를 더할 자리는 놓여 있지 않다.
8.3형법 제307조의 자리
학문적 표현의 판단 틀을 세우고 나면 그 표현을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에 놓는 일이 남는다. 이 자리는 형법 제307조의 문언이 정한다. 무가 확정판결의 형량과 근거를 나열한 글이 이 조항의 무엇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그에 앞서 이 조항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문언에서 읽어야 한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형벌을 정하면서 동시에 구성요건을 적는다. 공연성, 사실의 적시, 명예 훼손이 그것이다. 조문은 다음과 같다. "제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에 "사실"은 진실한 사실을 가리키며, 제2항이 허위의 사실을 따로 두어 형을 무겁게 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무의 글이 모은 것은 확정판결의 형량과 판단 근거다. 진실한 사실의 적시가 되는지 허위의 사실의 적시가 되는지는 이 문언 사이에서 갈리는 문제이고, 어느 쪽이든 공연성과 명예 훼손은 앞뒤로 함께 요구된다. 조문에 학문적 표현에 대한 단서나 예외는 적혀 있지 않다.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형법 제307조는 처벌 조항이지 면책 조항이 아니다. 제1항이 "사실을 적시하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의 적시를 요건으로 삼을 뿐, 적시된 사실이 연구의 산물이라는 사정을 요건으로 두지 않는다. 반대로 그 사정을 예외로 두지도 않는다. 따라서 무의 글이 학문적 연구의 결과라는 점은 형법 제307조의 문언 안에서 성립 요건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가중 요건이나 조각 사유의 자리도 얻지 못한다. 그 자리는 문언 밖에서 찾거나, 다른 조문이 맡아야 한다.
문언의 자리에 더해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은 "사실의 적시"를 어떻게 읽는지를 보인다. 해당 표현이 언론 보도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형태를 띠더라도 판단은 멈추지 않는다. 판결요지는 기존의 판단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로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무가 사건번호를 함께 적어 형량과 근거를 나열한 것은 인용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 글의 전체 취지가 무엇을 암시하는지 보는 작업이 제307조 제1항의 사실 해당 판단에서 남는다. 학문적 표현에 관하여 이와 함께 확인해야 할 조심성이 뒤에 온다. 같은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암시에 의한 적시의 인정은 표현을 읽는 한 방법이되, 표현 밖의 배경을 섣불리 끌어들여 사실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무의 글에서 기업명이 어느 범위로 쓰였는지, 분석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이 경계를 넘는지 판단하는 데 걸리는 사정이다. 다만 기업명 표기의 범위와 분석 방법의 재현 가능성은 미정으로 남아 있고, 글에 대한 삭제 요구와 고소가 연구에 준 영향도 미정이다. 미정의 사정은 미정으로 두는 편이 제307조의 자리에 맞다.
글의 내용이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 하여 형법 제307조의 문장은 다 끝난 것이 아니다. 공연성이 함께 요구되고, 무엇이 사실인지도 함께 요구된다. 동시에 앞에서 확인한 판단 틀이 이 문언 위에 얹힌다. 앞 판결요지가 확인한 대로 "학문적 표현행위가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이를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적극)" 무가 어떤 사건도 수임하지 않았고 대가를 받은 바 없이 글을 그대로 두었다는 관찰이, 이 사정들을 어느 쪽에 놓을지에 대한 법적 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관찰은 사실에 관한 기록일 뿐이고, 그 사실이 명예훼손의 성립을 이루는지 아닌지는 별도의 판단을 요한다. 한편 이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다. 형법 제307조의 문언에는 증명책임의 분배가 적혀 있지 않고, 같은 판결이 그 자리를 확인한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 소재(=검사) / 학문적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 소재(=검사)" 구성요건의 사실도, 학문의 자유가 보호하는 영역에 들지 않는다는 사정도 검사가 밝힌다. 무의 글이 그 영역을 벗어났다는 점이 밝혀지지 않는 한, 형법 제307조의 문언은 그 글을 가리키지 못한다. 이는 무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 평가가 아니라, 제307조가 서 있는 자리에서 확인한 판단의 순서일 뿐이다.
8.4형법 제310조의 자리
제307조가 놓은 성립의 틀을 확인한 뒤에 형법 제310조의 문언이 그 구조 안에서 어느 지점을 채우는지를 살핀다. 형법 제310조는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을 새로 열지 않고 제307조제1항의 행위에 조건을 달아 처벌을 거둔다. 제310조는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정한다. 이 문장은 처벌하지 아니하는 결과를 선언하되, 진실한 사실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두 조건을 함께 요구한다.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제310조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두 조건은 함께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제310조는 판단의 어느 단계에서 열리는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제307조의 성립이 먼저 서야 제310조가 논의될 자리가 생긴다. 이는 구성요건 해당성과 위법성의 순서를 뜻한다. 제310조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표현하므로 행위 자체를 구성요건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이른바 위법성 조각이라는 이름은 이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글의 문장이 제307조제1항의 요건을 채우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면, 그 글에 제310조를 들이댈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제310조의 문언에는 진실한 사실과 공공의 이익 외의 조각 사유가 적혀 있지 않다. 위법성 조각의 목록을 여기서 늘리거나, 이 두 조건에 새 기준을 보태는 것은 이 조문이 하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므로 이 사례에서 무의 글이 진실한 사실에 관한 것인지, 그 글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는 판단되어야 할 내용으로 남는다. 그 판단에 쓸 자료의 범위와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이상, 이 자리에서 두 조건의 충족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 미정의 사항은 미정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형사재판에서의 증명책임은 이 사례에도 그대로 놓인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은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의 경계를 놓고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판시는 무엇이 학문의 자유인지에 대한 입증의 방향을 정한다. 제310조에 관하여도 검사가 부담할 대상과 피고인이 내세울 대상의 구분은 이 판시가 가리킨 대로 읽힌다. 이 대목에 필요한 사실과 자료가 어디까지 확보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요컨대 형법 제310조는 제307조제1항의 행위를 먼저 전제로 하여, 진실한 사실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두 조건 아래 처벌을 면하게 하는 지점에 놓인다. 이 조문이 두 조건 밖의 사유를 품지 않으므로, 조문에 없는 예외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이 사례의 글에 이 두 조건이 어떻게 겨누어지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얹어 판단을 앞당길 이유도 없다.
8.5무의 문장에 대는 기준
형법 제310조의 자리를 확인한 데서 나아가, 이제 그 자리를 무의 글에 놓인 문장들에 대어 본다. 무는 확정판결 30건의 판결문에서 형량과 판단 근거를 모아 나열했고, 양형이 일관되지 않다는 글을 사건번호와 함께 공개했다. 이 글의 문장들이 어떤 자리에서 판단을 기다리는지 표시하는 일이 이번의 일이다. 그러나 판결요지에 없는 사실을 보태어 명예훼손의 성립을 확정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먼저 무의 글이 학문적 표현의 영역에 속하는지가 놓인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은 학문적 표현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보는 조건과 그 조건이 깨지는 자리를 함께 밝혔다. 그 판결은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무가 판결문에서 형량과 근거를 모아 비교한 것은 논지와 맥락을 따라 이루어진 작업에 놓이므로, 이 문장이 말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작업 자체에서 살펴야 한다.
그 판결은 연구자에게 함께 요구되는 것도 밝혔다.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무가 글에서 기업명을 어떻게 표시했는지의 범위는 정하여지지 않았으므로, 이 요구가 무의 글에서 어느 문장에 닿는지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발표 단계에서 명예 보호를 함께 살피라는 기준이 무의 글에도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무의 글의 각 문장이 사실의 적시인지가 놓인다. 그 판결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여 왔다"고 정리했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무가 확정판결문에 나타난 형량과 근거를 그대로 옮긴 문장은 그 자체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함께 살피며 읽어야 한다. 그러나 같은 판결은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무의 글에서 양형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어떤 문장으로 놓였는지, 그 문장이 숨겨진 배경을 단정하는 방식인지 여부는 정하여지지 않았다. 그 판결은 아울러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 신중함이 무의 글에 놓인 평가 문장에 어느 자리에서 작용하는지는 앞의 문장 표기 범위와 함께 미정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무의 글이 형법 제307조의 구성요건을 이루는지, 그리고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는지가 놓인다. 형법 제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한다. 그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밝혔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무가 어떤 사건도 수임하지 않았고 대가를 받지 않았다는 사정은 별도로 정하여지지 않았으나, 이 판단 구조에서 무의 글에 대한 평가는 앞서 표시된 자리들을 거쳐야 한다. 그 자리를 밝히는 일만이 여기까지이고, 성립 여부의 확정은 남겨진다.
8.6남겨진 판단과 다음 물음
무의 글에 대한 적용의 자리를 표한 데서 나아가, 이제 그 적용이 무엇을 결정하였고 무엇을 미정으로 남겼는지를 가려 적을 차례이다. 앞서 도출한 기준을 이 사례에 놓아 보았을 때 확정되는 것은 판단의 틀이지, 무의 글에 대한 법적 평가의 결론이 아니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은 학문적 표현행위가 보호되는 기본 영역을 다음의 말로 그었다.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 판시는 학문적 표현의 자유가 원칙적으로 보호된다는 규범을 세운다. 이 사례에서 무가 확정판결문을 모아 양형과 판단 근거를 정리한 행위가 학문적 표현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이 판시가 정한 기준을 대어 가려내야 할 대상이며, 그 결론 자체는 판시가 담고 있지 않다.
같은 판결은 연구자가 발표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사정도 적는다.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판시는 이어서 "학문 연구자들이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존중하여야 하는 타인의 권리"(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를 쟁점으로 삼는다. 이 판시가 지시하는 것은 연구 전 과정에 걸친 권리 존중이며, 무의 글에 적힌 기업명 표기가 그 범위를 넘어서는지의 여부는 판시가 답하지 않는 사실의 문제로 남는다.
명예훼손의 성립에 관하여 이 판결은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의 인정 방식을 분명히 한다.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이와 아울러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로 인정되는지 여부"(변호사법 제109조)는 쟁점으로 놓인다. 이 사례에서 무가 양형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적은 문장이 사실의 적시로 평가되는지는, 표현 전체의 취지가 무엇을 암시하는지에 관한 판단이 뒤따라야 하며, 그런 판단은 미정으로 남는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경우와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 공통으로 놓이는 조문도 있다. 형법 제310조(위법성의 조각)는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한다. 이 조문은 진실한 사실과 공공의 이익을 함께 요구한다. 무가 대형 경제범죄 확정판결 30건의 판결문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하더라도, 그 글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의 판단은 이 조문이 예정하는 다음 단계에 속하며, 그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는 것이 이 사례의 자리이다.
한편 학문적 표현의 자유와 위법성의 조각 사이에는 검사에게 돌아가는 증명책임의 자리가 있다. 이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고 선다. 이 사례에서 누가 어떤 사정을 입증하여야 하는지는 이 판시가 정하는 대로이고, 무의 글에 관한 소추가 제기되었는지조차 미정이다. 그 미정은 이 사례가 놓은 관찰의 한계이지, 법이 정한 결론의 빈자리가 아니다.
결국 결정된 것은 판단의 틀이다. 학문적 표현의 자유가 원칙적으로 보호되고,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는 신중하게 가려지며, 검사가 그 표현이 보호 영역 밖임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이 이 사례에 대어지는 기준이다. 무엇이 그 기준을 충족하는지는 사실과 판단의 자리로 남는다. 남겨진 판단은 이 사례를 마무리하는 결론이 아니라 다음 물음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