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재량 판단과 비교 사례를 어디까지 확인할 수 있으며, 기준의 적용이 예외 없이 일관되었는지를 묻는다. 재량 판단이 다루는 항목과 일탈·남용의 판단 기준을 정리하고, 비교 사례와 평등 원칙을 함께 살핀다. 수단과 목적의 비례 검토, 신뢰 형성과 보호의 전제를 거쳐 재량처분 취소의 심리 범위를 확인한다.
5.1재량 판단이 다루는 항목
절차 항목의 확인이 남긴 자리는 재량 판단이 무엇을 향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 청구를 함께 내고, 기관이 불리한 내용의 통지와 자료 제출 요구를 보내온 사안에서, 통지에 적힌 기준과 내부 판단이 곧 재량의 적정성을 가르는 것은 아니다. 행정기본법 제21조는 재량 있는 처분의 기준을 둘로 나누어 적는다. 그 문언은 "행정청은 재량이 있는 처분을 할 때에는 관련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야 하며, 그 재량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아니 된다"(행정기본법 제21조)라고 선언한다. 이 조문이 재량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형량의 대상인 관련 이익과 행사의 경계인 범위이다.
관련 이익의 형량은 무엇이 이익인지, 그 이익이 어느 무게로 계산되었는지를 판단의 항목으로 만든다. 이 사안에서 통지 서면에 적힌 결정 이유와 내부 기준의 대응 관계는 미정이고, 반대 자료가 검토되었는지도 미정이다. 재량 판단은 먼저 관련 이익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그 확인의 결과가 서면에 적힌 이유와 일치하는지도 함께 살핀다. 미정으로 남은 항목은 미정의 상태로 두어야 하고, 자료가 있고 형식이 갖추어진 사실을 형량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대신할 수 없다.
재량권의 범위는 행사 자체의 경계를 말한다. 이 사안에서 어떤 불이익이 어떤 행위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불이익이 기관의 권한 행사 안에서 나온 것인지, 어느 선이 경계를 넘는지는 미정이다. 형량의 내용과 행사의 경계는 분리된 항목이면서도 함께 놓이고, 어느 쪽을 먼저 따지든 빠져나간 항목이 있으면 판단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조문의 문언은 재량 판단이 무엇을 확인하는지를 적되, 그 확인이 도달할 결론을 미리 적지 않는다.
이 사안에서 통지에 표시된 기관·직위·명의·규범·내부 기준·결정 시점이 서로 다르게 적혀 있다는 사실은, 재량 판단의 항목이 단 하나가 아님을 가리킨다. 어느 기준이 행사의 근거로 작용했는지, 그 기준이 행사의 시점에 적용되었는지, 관련 이익에 무엇이 담겼는지는 각각 별도로 확인되어야 한다. 자료가 있고 형식이 갖추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권한 행사의 적정성을 뜻하지 않는 것은 이미 가려진 바이다.
재량 판단이 다루는 항목은 형량의 대상과 행사의 경계라는 두 갈래로 읽힌다. 이 사안에서 어느 쪽이 먼저 확인되어야 하고, 확인의 결과가 어디에 머물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 재량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 다음에 남은 문제로 놓인다.
5.2일탈과 남용의 판단 기준
재량 판단의 항목을 확인한 뒤에는 그러한 판단이 어느 선을 넘으면 위법한지가 문제이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은 그 선을 긋는 기준을 제시한다. 같은 거래를 다룬 기관이 우리 측에 통지한 결정 이유와 제출 요구가 그 기준에 어느 쪽에 놓이는지는 뒤에 가려야 할 사실이다.
그 판결은 재량권의 범위 일탈과 남용의 판단 방법을 먼저 밝혔다. 판결요지 [1]은 “제재적 행정처분이 사회통념상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남용하였는지 여부는 처분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과 당해 처분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목적 및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 등을 객관적으로 심리하여 공익 침해의 정도와 그 처분으로 인하여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형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판시사항 [1]의 제목이 정한 쟁점은 제재적 행정처분의 재량권 범위 일탈·남용 여부의 판단 기준이며, 이 기준은 네 가지 요소를 심리하여 두 측면을 비교·형량하는 구조를 갖는다. 처분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 달성하려는 공익목적,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이 객관적 심리의 대상이고, 공익 침해의 정도와 처분으로 인한 개인의 불이익이 비교·형량의 양쪽이다. 이 기준은 처분의 적법 여부를 판단할 때 쓰이는 것이며, 그 판단에 필요한 사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이 사례에서 어떤 불이익이 어떤 행위에서 비롯되었는지와 기관이 내세운 공익목적이 무엇인지는 미정이다.
다음으로 그 판결은 부령으로 정한 처분기준의 지위를 밝혔다. 판결요지 [2]는 “제재적 행정처분의 기준이 부령의 형식으로 규정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을 정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이 없고, 당해 처분의 적법 여부는 위 처분기준만이 아니라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므로, 위 처분기준에 적합하다 하여 곧바로 당해 처분이 적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위 처분기준이 그 자체로 헌법 또는 법률에 합치되지 아니하거나 위 처분기준에 따른 제재적 행정처분이 그 처분사유가 된 위반행위의 내용 및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섣불리 그 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였다. 판시사항 [2]의 제목이 정한 쟁점은 부령에 규정된 처분기준을 둔 제재적 행정처분의 적법성 판단 방법이다. 여기에는 네 가지 말이 함께 놓여 있다. 부령의 처분기준은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에 지나지 않고 대외적으로 기속하는 효력이 없다는 점, 적법 여부는 그 기준뿐 아니라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따라 판단된다는 점, 기준에 적합하다는 사실만으로 적법성이 곧바로 확정되지는 않는다는 점, 그러나 기준이 헌법 또는 법률에 합치되지 않거나 그에 따른 처분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일탈이나 남용으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진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권한 행사의 적정성을 뜻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준에 따른 처분이 위법하다는 결론에는 별도의 사유가 요구된다. 이 사례의 통지 서면에 적힌 내부 기준의 명칭과 내용, 그 기준과 사건 당시의 대응 관계는 미정이다.
행정기본법 제21조도 같은 방향에서 형량을 요구한다. “행정청은 재량이 있는 처분을 할 때에는 관련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야 하며, 그 재량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아니 된다.” 이 조문은 두 가지 의무를 함께 놓는다. 관련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는 일과 재량권의 범위를 넘지 않는 일이다. 형량을 빼놓고 범위만 말할 수 없고, 범위를 빼놓고 형량만 말할 수도 없다. 이 사례에서 기관이 어떤 이익을 어떻게 형량했는지는 미정이다.
이 사례의 통지에 표시된 결정 이유와 그 이유가 근거로 삼은 규범, 내부 기준의 대응 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결정이 언제 내려졌고 통지와 의견 제출 요구가 절차의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도 미정이다. 반대 자료가 검토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구제 경로로 무엇을 먼저 검토할지도 함께 남아 있다. 기관 책임과 담당자 개인의 책임을 나눌 근거가 무엇인지도 이 자리에서 확정할 수 없다. 미정인 사실을 미정으로 남겨 두고 판단 기준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이 자리에서 할 일이다.
5.3비교 사례와 평등 원칙
재량권 일탈·남용의 판단 기준을 확인한 뒤에 남는 물음은, 같은 거래를 다룬 다른 사례를 우리 측과 견주어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가리는 데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는가이다. 합리적 이유의 유무를 묻는 첫 기준은 법령의 문언이다. 평등의 원칙은 행정기본법 제9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 문언은 다음과 같다.
행정기본법 제9조(평등의 원칙) "행정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조문은 차별을 금지하되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차별을 허용하는 구조를 취한다. 그러므로 이 사례에서 불리한 통지가 우리 측에 가한 처우와 비교 대상 사례의 처우가 서로 다른 까닭이 무엇인지가 판단의 출발점이다. 다만 통지 서면에 적힌 사유와 사건 당시 기준의 대응 관계, 반대 자료의 검토 여부는 미정이다. 확인되지 않은 차이를 가정해 두고 정당화의 근거를 삼을 수 없다.
비교 사례의 범위를 가를 때 참작할 판단 틀은, 재량 판단이 처분사유의 내용과 공익 목적, 제반 사정을 객관적으로 심리한 뒤에 형량에 이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데에서 마련된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은 그 판단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 "제재적 행정처분이 사회통념상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남용하였는지 여부는 처분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과 당해 처분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목적 및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 등을 객관적으로 심리하여 공익 침해의 정도와 그 처분으로 인하여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형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 판시는 비교의 축을 위반행위의 내용, 공익 목적, 제반 사정에 둔다. 따라서 비교 사례와 우리 측 사례 사이에 이들 항목에서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차이가 객관적으로 심리된 사실에 근거하는지가 차별의 합리적 이유를 가르는 관건이 된다.
내부 기준이 정해져 있다는 사정만으로 비교 사례의 적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 판결은 같은 선고에서 부령 형식의 기준이 가지는 효력을 다음과 같이 한정한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 "제재적 행정처분의 기준이 부령의 형식으로 규정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을 정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이 없고, 당해 처분의 적법 여부는 위 처분기준만이 아니라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므로 (…)."
같은 판시는 기준 준수의 의미도 함께 밝힌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 "위 처분기준에 적합하다 하여 곧바로 당해 처분이 적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위 처분기준이 그 자체로 헌법 또는 법률에 합치되지 아니하거나 위 처분기준에 따른 제재적 행정처분이 그 처분사유가 된 위반행위의 내용 및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섣불리 그 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사례에서 통지에 표시된 내부 기준의 명칭과 시점은 각각 다르게 적혀 있다. 그런데 내부 기준이 대외적 기속력이 없다는 이상, 기준의 존재 여부만으로 우리 측 처우와 비교 사례의 처우가 같아야 하거나 달라야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관계 법령의 내용과 취지가 함께 검토되어야 하고, 그 검토 결과는 미정이다.
같은 거래를 다룬 다른 사례의 실재와 내용 역시 확인된 바 없다. 비교 대상으로 삼을 사례가 특정되어야 위 판시가 말하는 항목별 비교·형량이 가능해진다. 자료가 없는 사실을 '없다'고 단정하거나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옮겨 적으면, 평등의 원칙이 요구하는 합리적 이유의 심사가 사실의 확인보다 앞서게 된다. 사례 간 차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확인된 사실과 법령의 내용과 취지 안에서만 찾아야 한다. 자료의 형식과 분량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정은 그 자체로 차별의 합리적 이유를 입증하지 못하며, 권한 행사의 적정성과 법적 책임의 성립을 뜻하지도 않는다.
5.4수단과 목적의 비례 검토
비교 대상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밖에서 만들지 않는 선에서 끝낸 뒤, 이 사례에서는 곧바로 수단과 목적의 대응을 어떻게 검토할지가 문제된다.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손해 청구를 함께 냈고, 기관은 같은 거래를 두고 우리 측에 불리한 내용을 통지하며 자료 제출을 요구하였다. 통지 서면에는 어떤 기관이, 어떤 직위가, 어떤 명의로, 어느 규범과 내부 기준에 따라 언제 결정했는지가 각각 다르게 적혀 있다. 이처럼 흩어진 사정을 한 자리에서 재는 기준이 필요한 바, 행정기본법 제10조는 그 항목을 놓았다. 이 조는 행정작용이 다음 각 호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정한 뒤, "1.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효하고 적절할 것", "2.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칠 것", "3. 행정작용으로 인한 국민의 이익 침해가 그 행정작용이 의도하는 공익보다 크지 아니할 것"을 들고 있다 (행정기본법 제10조). 곧 비례 검토는 목적 달성에의 유효성과 적절성, 필요 최소한도, 그리고 침해와 공익의 크기 비교라는 세 항목으로 나누어 살피는 일이다.
판례는 그 세 항목이 어떤 문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은, 제재적 행정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남용하였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처분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과 달성하려는 공익목적과 제반 사정을 객관적으로 심리하여 침해 정도와 개인의 불이익을 비교·형량하도록 하고 있다. 이 사례의 통지도 불이익을 의도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 판단 문구는 검토의 출발점이 된다. 다만 판례가 제시하는 비교 대상은 공익 침해 정도와 개인 불이익의 크기이고, 이 사례에서 두 크기를 결정할 만한 수치는 미정이다. 통지에 표시된 결정 이유가 사건 당시 기준과 어떻게 대응하는지, 반대 자료가 검토되었는지도 함께 미정이다.
같은 판결은 기준의 형식이 갖는 한계도 분명히 한다. 제재적 행정처분의 기준이 부령에 규정되어 있어도 그것은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일 뿐이고, 처분의 적법 여부는 그 기준뿐 아니라 관계 법령의 내용과 취지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 이 사례의 통지 역시 기관 내부 기준을 근거로 적혀 있으나, 그 기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적법성이 확정되지는 않는다. 판례는 기준에 적합하다고 곧바로 적법한 처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기준 자체가 헌법이나 법률에 합치되지 아니하거나, 기준에 따른 제재가 위반행위의 내용과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섣불리 재량권 일탈이나 남용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 따라서 이 사례에서 내부 기준의 존재와 내용은 모두 확인할 항목이지, 적법성의 결론은 아니다.
이 사례의 적용으로 정리할 검토 항목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첫째, 통지에 적힌 행정목적이 무엇이고, 같은 거래에 관한 기관의 조처가 그 목적 달성에 유효하고 적절한지 살핀다. 둘째, 그 조처가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는지, 같은 목적을 달성할 더 가벼운 수단이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셋째, 조처로 인한 이익 침해가 의도하는 공익보다 크지 않은지를 비교한다. 그리고 이 셋은 각각의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위반행위의 내용과 제반 사정을 놓고 함께 헤아려진다. 여기서 어떤 불이익이 어떤 행위에서 비롯되었는지, 기관 책임과 담당자 개인의 책임을 나눌 근거가 무엇인지, 어떤 구제 경로를 먼저 검토할지는 아직 미정으로 남는다.
결국 비례 검토는 통지의 형식이나 기준의 유무로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이 제시한 비교·형량의 문구에 따라, 이 사례에서는 수단의 유효성과 적절성, 필요 최소한도, 침해와 공익의 크기를 항목별로 확인할 일이고, 각 항목에 관한 사실은 확인된 것으로 한정한다. 자료가 있고 형식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이 권한 행사의 적정성이나 법적 책임의 성립을 뜻하지 않듯, 기준에 적합하다는 사실 역시 비례 판단의 결론을 뜻하지 아니한다.
5.5신뢰 형성과 보호의 전제
비례 검토에서 수단과 목적의 대응을 항목별로 확인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어느 조건에서 형성되고 어디까지 보호되는지가 문제된다. 행정기본법 제12조는 신뢰의 형성과 보호의 범위를 각각 다른 항목에서 다룬다. 같은 거래를 다룬 기관이 내린 통지에 불이익한 내용과 자료 제출 요구가 함께 실려 있으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신뢰의 근거가 통지 이전에 있었는지부터 차례로 살펴야 한다.
신뢰의 성립 요건은 행정기본법 제12조 제1항이 두텁게 서술한다. 법은 신뢰의 대상을 국민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신뢰로 한정하면서, 그 보호의 예외를 열거한다. 조문의 단서가 규정하는 예외의 뜻과 정당하고 합리적인 범위의 한계는 각각 따로 확인되어야 한다.
신뢰의 형성 시점은 그 자체로 중요한 구별 기준이다. 이번 사안에서 상대방은 계약 해지와 경제적 손해 청구를 함께 제기하고 있고, 기관 측은 같은 거래를 다룬 기관이 내린 불리한 통지와 자료 제출 요구를 근거로 삼고 있다. 통지 서면에는 어떤 기관이 어떤 직위에서 어떤 명의로 어느 규범과 내부 기준에 따라 언제 결정했는지가 각각 다르게 적혀 있다. 이런 차이는 신뢰의 성립 시점과 그 근거를 확인하는 작업에서 일단 구별의 지표가 된다.
한편 행정기본법 제12조 제2항은 권한 행사 여부에 관한 장기간의 불관용을 별도로 규정한다. 조문이 요구하는 불행사의 기간과 국민이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의 유무는 함께 판단할 항목이다. 이 사안에서 권한 행사의 기회가 언제 있었고 어느 기간 동안 행사되지 않았는지, 그 불행사가 국민이 권한 행사되지 않을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를 이루는지는 미정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항의 적용 범위를 먼저 단정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형식상 서류가 갖추어져 있고 자료가 제출되어 있다는 사정은 신뢰의 보호 범위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보호의 예외에 해당하는지, 어떤 행위에서 어떤 불이익이 비롯되었는지, 기관 책임과 담당자 개인의 책임을 나눌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두 확인 전의 사항으로 남는다. 구제 경로 중 어느 것을 먼저 검토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뢰의 형성과 보호가 각각 별개의 요건에서 판단된다는 것뿐이다.
5.6재량처분 취소의 심리 범위
신뢰 형성의 요건과 보호의 전제가 사건에서 확인된 범위까지 그치는 것이라면, 재량처분의 적정성을 법원이 심리하는 범위는 어느 경계에서 정해지는지가 이어서 확인할 문제이다. 상대방이 계약 해지와 손해 청구를 함께 내고 기관이 불리한 통지와 자료 제출을 요구한 거래에서, 통지에 적힌 결정 사유와 근거가 서로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이 사안에서 재량권 행사의 한계를 다루기 전에, 법원이 취소를 판단할 때 무엇을 심리하는지부터 검토한다.
행정소송법 제27조는 재량처분의 취소 요건을 이렇게 정한다. "행정청의 재량에 속하는 처분이라도 재량권의 한계를 넘거나 그 남용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이를 취소할 수 있다." 이 조문은 재량처분이라고 하여 처분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한계 초과와 남용이 있을 때 법원이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한다. 이 사례에서 기관의 결정이 재량에 속하는 처분이라면, 취소 판단은 그 재량 행사가 한계를 넘었는지와 남용이 있었는지에 맞추어진다.
재량권의 일탈·남용 여부를 판단할 때 심리할 사항은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제재적 행정처분이 사회통념상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남용하였는지 여부는 처분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과 당해 처분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목적 및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 등을 객관적으로 심리하여 공익 침해의 정도와 그 처분으로 인하여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형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위반행위의 내용과 공익 목적 및 제반 사정을 객관적으로 심리하고, 공익 침해의 정도와 개인의 불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절차가 요구된다. 이 사례에서 통지에 표시된 결정 이유가 사건 당시 기준과 어떻게 대응하는지, 반대 자료가 검토되었는지가 미정이므로, 형량에 필요한 사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같은 판결은 기준이 부령 형식으로 규정된 경우의 판단 방법을 함께 밝힌다. "제재적 행정처분의 기준이 부령의 형식으로 규정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을 정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이 없고, 당해 처분의 적법 여부는 위 처분기준만이 아니라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므로, 위 처분기준에 적합하다 하여 곧바로 당해 처분이 적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위 처분기준이 그 자체로 헌법 또는 법률에 합치되지 아니하거나 위 처분기준에 따른 제재적 행정처분이 그 처분사유가 된 위반행위의 내용 및 관계 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섣불리 그 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기준에 적합한 사실만으로 처분이 적법한 것이 되지는 않고, 그러한 기준에 따른 처분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일탈·남용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사례에서 통지 서면에 적힌 내부 기준의 명칭과 표시가 서로 다르므로, 어느 기준이 처분의 근거였는지가 미정이고, 그 대응 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례의 취소 판단은 형식상 자료가 있고 기재가 갖추어진 사실 자체를 권한 행사의 적정성으로 삼지 않는다. 기준의 적합 여부와 관계 법령의 내용·취지에 따른 판단이 함께 요구되고, 그 판단에 필요한 사정은 미정으로 남는다. 그 경계에서 심리가 이어지는 한, 판단의 범위는 넘겨진 자료에 머무르지 않는다.